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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매번 대기가 불안정하다느니 하면서 기류 탓을 하는데 채준형이 실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흔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이익헌의 머릿속에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캐츠 아이 스톤을 가지러 가는 겁니다. 우리가 받았어야 할 것들요. 대통령이 먼저 계약을 파기한 거니까 우리한테는 그걸 가질 권리가 있죠. 레이드를 다 마치지 않아도 말입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고 해도 캐츠 아이 스톤을 뺏을 거잖아요."
"당연하죠. 우리가 받기로 돼 있던 것만 챙겨올 건 아니거든요. 헌터 협회에 있는 캐츠 아이 스톤은 1캐럿도 안 남기고 전부 챙길 겁니다. 원래 위약벌이라는 개념이 그런 거잖아요. 잘못한 만큼만 뺏으면 벌이 아니죠."
이익헌이 헌터 협회 건물에 들어섰을 때 그를 막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익헌은 곧바로 헌터 협회장을 찾아갔다. 그의 걸음걸이가 하도 당당해서, 그리고 그가 헌터 협회장과 보기로 되어 있었다고 말을 해서 사람들은 이익헌의 말을 순순히 믿었다.
헌터 협회장은 이익헌과 맞닥뜨리는 그 순간까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헌터 협회장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이익헌을 맞아들였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입니까?”
협회장이 물었다.
“연락이 없어도 우리 사정에 대해서 미리미리 잘 챙기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뭘 하고 다니는지. 필요이상으로 말이죠.”
이익헌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뭘 새삼스럽게 시치미를 뗍니까? 그런 이미지를 고수하는 사람 같지도 않던데.”
이익헌은 이제 얼굴에 표정을 짓지도 않고 말했다. 헌터 협회장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려던 것을 걷어치우고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대통령이 클랜 A와 얘기를 해 보겠다고 하더니 얘기가 잘 안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그는 아직 대통령과 클랜 A 대표단이 서로 얘기를 하는 중일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이익헌이 갑자기 들이닥쳐버린 것이다. 그의 표정을 봤을 때 얘기가 잘 진행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기가 이익헌의 앞에서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한층 더 강해진 A급 헌터들을 출동시켜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판은 심각했다. 이미 두 곳에서 괴수들이 출몰했고 내일이 되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더 심해질 터였다. 치안대원들을 중심으로 에이스 헌터들이 총출동을 해서 급한 불을 끄고 있었고,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이제는 대통령이 A급 헌터들과 클랜 A 가운데서 빨리 선택을 하고 그들을 즉시 현장에 투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대통령에게 연락을 해 보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밖에서 인내심 없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끝내고 가야하는데. 내가 받을 캐츠 아이 스톤이 아직 좀 남아있지 않나요?”
이익헌이 말했다.
“예?”
“정산이 안 된 게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건 없습니다만. 그리고 아마 지금 대통령님이 당신들 클랜 A의 대표단과 새 계약 내용에 대해서 협상중이실 겁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지금 당장 금고를 열어줬으면 하는데. 전에 뭐가 없어서 못 열어준다고 했지? 열쇠가 없다고 했나? 아닌가? 열쇠를 가진 사람이 휴가를 갔다고 했던가? 당신은 협회장이지. 내 생각엔 당신 눈알 두 개를 금고에 가져다 대면 금고가 열릴 것 같아. 홍채 인식 시스템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 없겠지. 이게 협회장 눈알인데 열쇠 갖고 있는 놈이 재깍 튀어와서 금고를 열지 않으면 그 눈알도 같이 도려내준다고 하면 빨리들 움직이고 싶어지지 않을까?”
이익헌이 말했다. 말을 하는 동안 그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를 못했다. 협회장의 비서가 들어와 필요한 게 있냐고 묻자 이익헌은 비서의 앞에서 문을 발로 차 닫아버렸다.
“필요한 건 우리 둘만의 시간이다.”
비서는 그 말을 문 뒤에서 들어야 했다. 협회장은 이익헌이 잔뜩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통령과 협상이 결렬될 때 클랜 A가 이렇게 날 뛸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아이가 괴수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사실로 효과적으로 클랜 A를 협박하고 그들을 자기들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에서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금고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두 발로 가거나 네 발로 가거나. 아니. 다른 방법도 있으려나? 발이 닿지 않은 채 갈 수도 있겠지.”
이익헌이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협회장. 당신 사람을 아주 잘못 봤어. 가끔은 말이야. 뇌로 흐르는 혈류를 콱 막아주면 생각이 더 잘 되기도 해. 당신같이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인간들한테 아주 잘 통하는 방법이지.”
이익헌은 협회장의 목을 틀어쥐고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협회장은 순식간에 목이 조여지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다리만 버둥거렸다.
“손으로 가리켜. 어디로 가면 되는지.”
협회장의 얼굴은 순식간에 검붉은 색으로 변했고 관자놀이 주변과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올랐다. 그러다가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도 없어보였다. 이익헌은 복도에 협회장을 던졌고 협회장은 몇 미터나 미끄러져가다가 허리를 벽에 부딪치고 멈췄다. 비서가 벽에 등과 손을 붙인 채 겁에 질린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허튼 짓을 하면 가만 놔두지 않는다. 나를 없앨 수는 있어도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을 거야. 당신 발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협회장. 열쇠는 필요없어. 그냥 금고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만 하면 된다.”
협회장은 식은 땀을 흘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를 금고로 안내했다. 이익헌은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져가고 싶은데.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나? 이래서야 영. 내가 강도같잖아.”
“가져가십시오.”
협회장이 말했다. 이익헌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이건 원래 클랜 A가 가져가야 할 게 맞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습니다.”
“네 입으로 그렇게 말을 하라고.”
“이건 원래 클랜 A가 가져가야 할 게 맞습니다.”
“다 담아서 안기는 성의라도 보여봐. 오늘 내가 여러 모로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서 오랫동안 끊었던 나쁜 습관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구를 자꾸 느끼거든. 너를 날려서 저 유리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기도 하고. 네 머리가 유리를 깨고 나가겠지. 유리 조각은 붉게 물들 거고. 나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도발하지 말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이익헌이 협회장의 엉덩이를 뒤에서 발로 걷어차자 벽에 부딪쳤을 때 이미 어긋났던 것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동안 받아갔던 캐츠 아이 스톤도 다 내 놓으라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보수로 레이드를 하라고? 개같은 새끼들!”
이익헌이 소리를 질렀다. 헌터 협회장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 말씀을 어디에서 들으신 겁니까?”
헌터 협회장은 제 목소리가 이익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대한 이익헌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다."
"대통령이요? 그동안 받아갔던 캐츠 아이 스톤도 다 내 놓으라고 했다고요? 설마 그렇게까지요?"
이익헌은 헌터 협회장의 표정을 보고 그것이 대통령의 개인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통령이 혼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국가의 재정을 위해서 내린 결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익헌의 얼굴을 보면서 협회장도 깨닫는 것이 있었다.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종족 번식의 욕구에 어찌나 충실했던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류애를 펼쳐 보여서 대통령을 빼다박은 아이들의 수가 열 다섯 명을 넘어섰고 임신과 출산에 이르지 않은 스캔들은 훨씬 더 많았다. 이제 대통령과의 섹스를 했다면 스캔들로는 웬만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힘들 정도로 대통령은 방탕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지도 못하고 계속 벼랑 위의 유희를 즐겨오고 있었다.
어렵사리 언론을 통제하고 있기는 했지만 막대한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민사소송이 몇 건이나 동시에 걸려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도 전부 다 있는 사안들이어서 대통령이 파산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들려오는 중이었다.
임기 동안은 조용히 지나갈 수 있도록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대통령의 동지들과 그의 아내까지 나서서 일을 무마시켜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일단 임기가 끝나고 나면 그는 그야말로 붙잡을 끈도 없이 절벽을 구를 거라는 게 주위의 예상이었다.
‘캐츠 아이 스톤을 슬쩍 하려고 한 거군.’
헌터 협회장의 생각이 거기에 미쳤다.
'하긴. 캐츠 아이 스톤 하나면 시끄러운 사람들의 입을 전부 다 틀어막고 새 하렘을 건설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헌터 협회장은 슬쩍 이익헌의 눈치를 살폈다. 그 얘기를 들었다면 협상의 결과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순순히 대답을 해 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동안 만나던 곳에서 만나지 않고 웬 이상한 곳으로 불러낸 건 그 이유가 있었던 거군. 캐츠 아이 스톤을 빼돌리려고 했던 거라는 거지.’
이익헌도 그 생각을 했다.
대통령이 제가 저지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걸 돌려 막으려고 클랜 A를 동원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더 치밀었다. 그때까지는 미국 대통령과 스무 명의 경호 헌터들이 지우의 차크라에 무참히 희생됐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조금쯤은 들었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경호 헌터들이야 안 된 면도 있기는 했지만 누구를 지킬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그들의 운명도 같이 결정되는 것이다.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의 경호를 맡기로 결정을 했다면 자신의 죽음의 가치도 그렇게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익헌은 그 후로 급격히 말이 없어졌다. 헌터 협회장은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어차피 그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이익헌을 내보내고 싶었다. 그런 후에 대통령과 연락을 해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열린 늪에서 튀어 올라오는 괴수들을 공략할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캐츠 아이 스톤을 받아 올라오면서 이익헌은 헌터 협회 직원들이 벌집을 잃은 벌떼처럼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았다. 금고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이익헌은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드디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브래들리 허버트라는 미친 놈 때문에 지옥이 여기저기에서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익헌의 심장은 고요하기만 했다.
It`s not my business.
깔끔한 마음으로 그는 헌터 협회 건물을 빠져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채준형은 시계를 한 번 보고 이익헌을 노려보았다. 말은 안 했지만 더럽게 오래 걸린다고 속으로 엄청나게 구시렁거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익헌은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는 절대로 이 남자랑 같이 다니지 않을 거라고.
"이제는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채준형이 말했다.
"돌아가도 되는 게 아니라.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채준형은 기분좋게 헬기를 띄웠다. 채준형이 입을 열려고 하자 이익헌이 먼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에. 예에. 뭐든 꽉 잡고 있겠습니다."
채준형이 피식 웃으면서 멀어지는 헌터 협회 건물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