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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미하일은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이 검게 변하는 것 같았다. 자기가 사각의 밀폐된 공간 안에 갇힌 것 같았다. 미하일은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분리해내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제 안의 차크라가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차크라가 미하일을 자신의 감정에 몰입시키고 있었다. 미하일은 제 것이 아닌 감정으로부터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어둡게 조여오는 상자 안에서, 빠져나갈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끝났어. 미하일. 다 끝났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하일은 그 목소리에 화답하고 싶었다.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제게 손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자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괴수의 팔. 그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미하일은 고개를 저었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의 의식을 되돌린 것은 끔찍한 통증이었다. 미하일이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그냥 떠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큰 충격을 입었다.
그의 눈 앞에서 임정이 멀뚱히 그를 바라보면서 그의 손을 치료하고 있었다. 미하일은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마주 바라볼 수가 있었다. 저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제가 두 손을 서로 잡았던 것이 떠올랐다. 조각을 다시 맞추기도 힘들 정도로 부서졌던 뼈가 다시 달라붙고 있었다.
임정은 미하일의 손을 내려놓았다. 미하일은 자기 손이 그대로 부서져 쏟아질 것 같아서 걱정을 했지만 손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야로슬라프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오니드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레오니드. 너는 다 알고 있었구나. 처음부터 내가 어떤 존재라는 걸.”
미하일이 말했다. 레오니드는 힘겹게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도?”
미하일의 말에 레오니드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야로슬라프도?”
“그래. 우리는 다 같은 존재들이야.”
레오니드가 다가와 미하일의 손을 잡았다. 미하일은 끔찍한 통증이 전해질 것 같아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손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레오니드가 미하일의 손을 잡아 미하일의 팔을 보여주었다. 헌터 타투가 보였다. 등급이 올라 있었다.
“아, 젠장!”
왠지 그 말이 나왔고 그 뒤에 눈물이 따라 나왔다. 왜 우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 자신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들자 지우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웃음을 지었다. 더 울컥해져서, 미하일은 괜히 그를 바라보았다고 생각했다. 지우의 품에는 어느새 시현이가 안겨있었다. 아기는 아빠의 품에 안긴 채로 호들갑을 떨었다. 미하일을 응원해주는 것 같고, 잘 참았다고 칭찬해주려는 것 같아서 미하일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밤,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파티라면 질색을 하는 클랜 A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하일은 자기가 특별한 차크라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럭저럭 잘 받아들였다. 세계 최강의 레이더인 안지우가 바로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 큰 위인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가진 차크라를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클랜 A처럼, 안지우처럼, 한 순간에도 후회를 남기지 않고 살아낸다면 되는 걸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레오니드는 야로슬라프가 다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했지만 언제든지 레오니드가 부를 때는 다시 올 거라는 야로슬라프의 약속을 믿기로 했다.
지우는 용하를 위로하느라고 진을 뺐다. 용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하일의 차크라를 막는데 자기가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큰 번민에 빠진 것이다. 미하일에게 통한다면 시현이에게는 완벽하게 통할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아무 것도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시현이는 용하의 기분이 별로라는 것을 알았는지 지우의 품을 마다하고 용하에게 특별히 저를 안을 은혜를 베풀어주었다.
“시현아. 삼촌이 별 것 아닌 사람이라도 삼촌을 좋아해줄 거야?”
용하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요아 안똔.”
시현이는 용하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바로 그게 용하삼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용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신용하는 처음부터 별 것 아니었지. 그런 삼촌을 시현이는 지금까지 이유없이 좋아해줬던 거고. 좋아하는 건 맞는 거지?”
이제는 그것마저 자신이 없어져서 용하가 우물쭈물하며 시현에게 물었다. 시현이는 이 네 개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지우가 다가와서 용하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오랜만에 어깨동무를 했다.
"갑자기 변하려고 하지마. 너는 그냥 너면 돼. 우리가 너한테 원하는 건 그거야. 언제까지 변치않는 너인 거. 그런 너로 남아있는 거."
“안지우. 나, 지금 생각났다.”
용하가 말했다.
“뭐가?”
“그 돈으로 뭐할 건지.”
“뭔데?”
“학교 법인을 만들어야겠어. 초,중,고등학교. 그거 만들어서 이사장이나 해야겠어.”
“갑자기 왜?”
“시현이를 지켜주고 싶은데 내가 가진 능력이 너무 별 볼 일 없는 것 같아서. 학교법인 이사장이 돼서 시현이가 학교다니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시현이를 따라다니면서 어떤 놈들이 시현이를 괴롭히는지 봐야겠어. 시현이를 못 살게 구는 선생들은 다 자르고. 시현이가 좋아할만한 여선생들로만 뽑고.”
“진지하게 생각한 거냐?”
지우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즉흥적이기는 했지만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용하는 갑자기 자존감이 확 되살아나서 의기양양하게 시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삼촌만 믿어. 삼촌만.”
“한똠만!”
“응. 삼촌만!”
용하의 두 눈이 의지로 활활 불타 올랐다.
***
회의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결론은 이미 난 것이 다름없었는데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말을 쉽게 꺼내질 못해서 계속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있었다.
시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미국에 있어도 되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결정이 내려져야 했다. 문제 제기를 먼저 한 사람은 용하였다. 용하는 시현이가 같이 있는다고 해서 시현이가 위험해질 일은 없는 것 같으니 지우 옆에서 시현이가 엄마, 아빠랑 같이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가 시현이를 보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두 사람이 편히 레이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기는 계속 시현이를 돌봐줄 거라고 분명히 못을 박고 말을 했다.
시현이가 돌아가기로 예정됐던 날이 다가올수록 지우와 시현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용하의 가슴이 미어졌다. 시현이를 저대로 데리고 가면 시현이가 제대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그 걱정이 컸다. 하지만 지우마저도 그 의견에 반대했다. 시현이가 안전할지는 모르더라도 시현이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거쳐야 할 것들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환경에서 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트레일러에 살면서 늪을 찾아다니며, 늪 밖으로 출몰한 괴수와 싸우는 걸 보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삶을 시현이에게 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들이었다. 시현이를 돌려보낼 생각을 하면 상남자들이 각각 십 리터의 눈물은 족히 흘릴 것 같기는 했지만 시현이의 장래를 위해서 거시적으로 생각을 하자면 시현이를 보내는 게 맞다는 거였다.
용하 역시 비슷한 생각이기는 했지만 시현이와 지우가 다시 이별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용하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지우가 용하의 등을 치며 말했다.
“시현이가 우울해하는 것 같으면 늪에 데려가 줘. 내 늪에.”
“그래야겠다. 내가 늪 아래로 같이 내려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시현이는 헌터 타투가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늪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는데. 내 늪이 너도 받아주면 좋겠다.”
지우의 말에 용하는 고개가 끊어질 듯이 끄덕였다.
“정말 그러면 좋겠어.”
시현이가 떠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지우는 말이 없어졌다. 지우는 혼자서 시현이를 안고 시현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추려놓으면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임정은, 자신도 시현이와 이별하는 게 슬펐으면서도 지우가 너무 걱정이 돼서 제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안시현. 엄마한테도 와 봐야지. 너 정말 끝까지 이런 식으로 굴면 엄마 정말 서운하다.”
그러자 시현이가 쿨하게 두 팔을 벌렸지만 임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시현이를 안는 것이 어설펐다. 시현이는 나름대로 엄마를 위해서 불편함을 3초 가량은 참아주었지만 더는 못 견디겠는지 몸부림을 쳤다.
“시현이 다시 볼 때까지 안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임정이 말하자 용하가 큰 소리로 웃었다.
“다시 볼 때는 안기려고 하지 않을 걸요? 그때는 걸어다닐 텐데요?”
“어머. 정말 그러겠네요.”
임정이 말했다. 시현이가 자라는 순간들을 놓친다는 것이 서러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시현이가 떨어지려고 하질 않아서 시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용하가 시현을 데리고 떠났다. 시현이가 떠나고 나서 클랜원들은 한동안 침통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현이가 잡고 일어서던 의자, 식탁다리, 기어 올라가려고 바둥거려대던 소파, 붙잡고 침으로 적시곤 하던 이불.
여기저기에 시현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너무 기운 잃지 마세요. 지우씨가 그러고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지우씨한테는 시현이같은 아들이 있지만 우리한테는 아들도 없고 아들을 만들 기회도 없잖아요. 시현이같은 아들이 있다는 걸 행운으로 여기고 감사하세요. 그런 행운을 가졌으면서 그 시간을 전부 슬퍼하는데만 보내지 말고.”
서규태가 하는 말에 지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남자들에게 아기 만들 기회를 만들어주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는데 자꾸만 일에 밀리고 레이드에 치였다. 괴수들이 미쳤는지, 오픈일이 되지도 않은 늪에서 괴수들이 자꾸만 출몰했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는 한데 그게 무엇인지를 안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 조만간 강지연이 미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왜 늪의 성장 속도가 달라졌는지, 왜 오픈일을 예측하는 시스템이 붕괴된 것인지 알아야만 했다.
그동안 모아진 캐츠 아이 스톤은 모두 서른 네 개였다. 클랜원들이 개별적으로 레이드를 해서 모은 것과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것들, 그리고 야로슬라프가 시현이의 몫으로 준 것을 전부 합한 개수였다. 그것은 충분한 숫자가 아니었다. 시현이뿐만 아니라 지우와 야로슬라프의 등업에도 계속해서 캐츠 아이 스톤이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일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차근차근 레이드를 하다보면 부족하지 않게 모아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현이가 떠나고 며칠 후.
그날은 미국 정부를 위해 1급 괴수를 공략해준 대가로 캐츠 아이 스톤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서규태와 이익헌이 같이 나섰다. 그들을 맞이하는 헌터 협회장의 분위기가 다른 때와 다르다는 것은 처음부터 느껴졌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협회장은 일을 바로바로 진행시키지 않고 임의로 자꾸 멈추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헌터 협회장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캐츠 아이 스톤을 주지 않았다. 5미터 두께의 특수 금속으로 만들어진 금고 열쇠를 가진 책임자가 휴가중이어서 금고를 열 수 없다는 말에 서규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