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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야로슬라프는 트레일러를 준비해두었다. 클랜 A가 러시아를 떠나있는 동안은 레오니드에게 관리를 맡겨도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야로슬라프가 거금을 들여서 구입한 트레일러였다. 미하일과 레오니드는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영문도 모른 채 트레일러에 올라탔다. 그나마 레오니드는 대충이라도 감을 잡을 수 있었지만 미하일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아침부터 몸에 이상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 모르게 입 안에 두통약을 몇 개나 털어넣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머리 안에서 무언가가 해골을 깨부수고 나오려는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미하일은 평소에 편두통으로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생경하고 기분 나쁜 그 느낌에 굉장히 불쾌하고 예민해져 있었다.
다행히 트레일러는 멀리 가지 않고 멈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4급 늪의 근처였지만 미하일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클랜원들은 이제 곧 미하일의 차크라가 폭주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레오니드도 그때부터는 클랜원들과 함께 했고 아무도 미하일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미하일은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고립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태를 혼자 겪고 있다는 공포, 분명히 무언가가 잘못돼 가고 있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없다는 당혹감.
미하일은 그 모든 것과 혼자 싸웠다. 그때 지우가 다가왔다. 그 곁에는 야로슬라프가 서 있었다. 미하일은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느낀 공포와 당혹감은 이루 설명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조에 불과했다.
미하일은 자신의 주위로 차크라가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괴수도 없는데, 레이드를 하는 상황도 아닌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그는 알지 못했다.
자기가 지금 왜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영영 말을 못하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고 겁이 났다. 하지만 제 몸의 변화를 느끼게 될수록, 말을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은 그저 사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하일. 당신한테는 특별한 차크라가 있습니다.”
지우가 입을 열었다. 미하일은 지우가 하는 말을 들었지만 그가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지금 이 순간에 그런 한가한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지우의 눈에도 미하일의 변화가 보일 텐데 왜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왜 그를 피하기만 하는 건지, 전부 의문투성이였다.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미하일은 지금까지 지우에게 적대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지우와 싸우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매순간 그가 고마웠고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자꾸만 튀어 나오려 하고 있었다. 미하일은 바득바득 힘을 주고 제 주위에 있는 것들을 붙잡았다. 그의 손 안에 잡힌 것들이 하릴없이 부서져나갔다.
미하일은 제 두 손을 꽉 잡았다. 그 수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뼈가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자기 손으로 지우를 공격하고 싶지가 않았다. 웬일인지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을 통제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지우는 조금 더 빨리 설명을 이었다.
“나도 당신과 같은 부류입니다. 나한테는 괴수의 차크라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와 같은 차크라를 가진 사람들은 E급으로 오른 후부터 1년안에 등급을 올리지 못하면 차크라가 폭주하게 돼 있어요. 왜 그러는 건지도 알지 못하고 누가 정한 건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의 희생양인지도 모르고요. 그게 우리가 다른 헌터들보다 더 많은 차크라를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경험치를 거의 채웠습니다.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한테 필요한 경험치를 줄 늪이 바로 트레일러 옆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당신이 당신의 차크라가 가진 본질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이 스스로 그 차크라를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제 그의 의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사람의 것 같지 않은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제가 지른 소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미하일은 울고 싶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자신의 몸이 아닌 것에 꼼짝없이 갇힌 채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된 그 느낌은 끔찍하게 무서웠다.
제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말하고 싶고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은데 그의 동작은 포악하기만 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팔이 부풀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팔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소나무 껍질 같기도 하고 거북이 앞발 같기도 한 두꺼운 석회질이 팔을 덮고 있었다. 팔은 원래의 것보다 스무 배 정도 굵어져 있었고 길이도 세 배쯤 길어져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변화는 그의 몸에 나타났다. 그의 몸은 계속해서 커졌고 트레일러를 곧 뚫을 것 같았다. 미하일은 나오지 않는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것이 제 몸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었다. 지우와 야로슬라프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번져가고 있었다. 지우가 그런 광경을 처음 본다는 것을 미하일은 그의 표정을 보고서 알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용하가 와 있었다. 용하는 겁에 질린 얼굴로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지우가 용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용하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벌벌벌 떨고만 있었다.
‘살려줘. 살려줘, 제발. 나를 여기에서 꺼내줘. 나를 구해줘.’
미하일이 소리없이 부르짖었다. 그런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살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그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더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몸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차크라를 가진 몸이라고 하더라도 바득바득 살아내고 싶었다. 일년만에 등급을 올려야 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렇게 할 터였다. 그러니 지금만 도와줬으면 했다.
“미, 미하일…….”
용하가 미하일의 이름을 불렀다.
미하일은 그를 바라보았다. 미하일은 용하가 자신에게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가 뭘해야 하는지 그것을 가르쳐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미하일의 포악한 두 팔이 용하를 향해 뻗어나갔다. 하지만 미하일의 두 팔은 용하를 잡지 못했다.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이 미하일의 차크라를 막는 건지 그는 알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은 사람은 이익헌뿐이었다. 처음 클랜 A에 들어왔을 때 제 어깨를 짓누르던 지우의 차크라를 그는 잊을 수가 없었다. 미하일의 표정을 보면서 이익헌은 미하일을 누르는 것이 지우의 차크라인 거라는 사실을 홀로 깨달았다.
미하일은 그저 다행스러워 하고 있었다.
“미하일. 당신이 주인이고 차크라는 당신 부하예요. 당신이 대장이고요.”
용하가 말했다.
미하일은 그 말을 듣고 울고 싶어졌다. 저게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 그게 어쨌다는 건가. 지금 미하일이 원하는 말은 그런 동화같은 말이 아니었다. 착하게 살면 행복해질 거라는 그런 동화같은 말이 아니라, 그가 붙잡고 일어설 말이 필요했다.
미하일의 마음 속에서 분노가 솟구쳤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들에 대해서 화가 났다. 그리고 이제는 클랜 A와 야로슬라프에게도 화가 났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하일이 괴수의 차크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일년이 되기 전에 등급을 올리지 않으면 이렇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던 거야!’
갑자기 모든 것이 순식간에 깨달아졌다. 미친 듯이 자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레이드를 같이 하고 경험치를 몰아주었던 것도 다 등급을 올리기 위한 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차크라가 폭주하도록, 등급을 올리는데 필요한 경험치에서 조금만 남겨둔 채 그가 변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미하일은 분노했다.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들을 가만히 놔두고 싶지가 않았다. 미하일이 괴성을 질렀다. 자신에게서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힘을 가진 것 같다고 느꼈다.
“미하일. 당신의 차크라에 지면 안 돼요. 당신은 미하일이예요. 미하일 세르게예프. 그게 당신이예요. 당신은 괴수가 아니예요.”
용하는 끈질기게 외쳐댔다. 하지만 미하일은 그가 하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미하일의 팔이 다시 용하를 공격하려고 했을 때 그 공격은 앞의 것과 확실히 달랐다. 이제는 괴수의 차크라와 미하일의 의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하일이 용하를 공격하려고 했을 때 지우가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야로슬라프는 지우의 눈을 보고 용하를 데리고 피했고 지우는 미하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미하일은 지우의 차크라를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미하일은 제가 뒤로 쓰러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채로 그는 늪으로 던져졌다. 언제 트레일러에서 나와서 늪으로 던져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우의 차크라는 압도적이었다. 지우의 차크라는 차갑고 냉정하고, 불손한 저항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다.
미하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늪이었다. 거기에는 30미터가 채 안 되는 괴수가 있었고 헌터들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미하일. 우리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도 당신 포기하지마.”
서규태가 말했다. 미하일의 몸이 움찔했다.
“당신은 저 괴수랑 달라. 달라야만 해. 왜냐하면 당신은 나랑 같으니까. 나는 내가 저 괴수랑 같은 존재라고 믿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이 증명해. 당신이 인간이라는 걸!”
지우가 거칠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목소리가 처절하고 절박하게 들렸다.
미하일은 지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반드시 이겨. 미하일!”
지우가 말했다. 미하일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순간 헌터들이 괴수를 향해 레이드를 시작했다. 미하일이 해야 할 일은 차크라에게 잠식당하지 않는 거였다.
이익헌과 서규태, 강현과 태인, 임정과 지우, 야로슬라프까지.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싸웠다.
자신들의 등 뒤에 괴수로 변해가는 미하일이 있었지만 그들은 미하일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저 바보들!’
미하일은 자신이 자신의 차크라를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저렇게 대책없이 자기를 믿어버리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스스로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봐, 내 안에 있는. 그래. 네가 뭐든. 너도 들었잖아. 내가 대장이라잖아. 꺼져주든지 아니면 찌그러져 있어!’
미하일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채로 그렇게 제 안에 있는 존재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게 통할 거라는 믿음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다보니 그 말에 믿음이 생겼다. 자기가 대장인 것 같고 자기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저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클랜이 모든 것을 걸고 나선 것은 아닐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 늪의 주인인 괴수는 헌터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 무자비한 레이드가 자행되었다. 모든 클랜원들이 차크라를 모으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정보창에 나타난 괴수의 체력은 숫자가 바뀌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순식간에 자릿수가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