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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53화 (15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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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강요섭은 이제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부사장님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혹시 그때 나를 찾아와서 했던 말은 나를 함정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거였습니까? 부사장님을 보낸 게 클랜 A인가요? 클랜 A는 그렇게 비열한 수법을 쓰는 집단입니까?”

이익헌은 강요섭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바디 펌 부사장입니다. 늪을 순찰하는 것도 넓은 범위에서 내 업무에 속합니다."

이익헌의 목소리는 차갑게 흘러나왔다.

“저기에 내 차와 카메라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성실하게 녹화를 했을 겁니다. 나는 이 늪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알아볼 겸 나왔습니다. 러프 스톤을 찾겠다고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아직도 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의원님은 여기에 어쩐 일이신가요? 혹시 그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찾는 걸 먼저 차지하고 싶어서 바보 대열에 뒤늦게 합류하려고 그렇게 서두른 겁니까?”

“내가 뭘 어쨌다는 겁니까?”

강요섭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톡 쏘아붙였다.

“그래요? 나는 뭔가 대단히 급한 일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의원님이 바지 지퍼도 안 내리고 오줌 쌀 일은 없을 줄 알았거든요. 내가 잘못 알았나보죠? 급한 일이 없어도 종종 그렇게 일을 보시나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지구에 인간들이 넘쳐나다 보니까 별별 인간이 다 있잖아요. 꼭 있을 필요 없는 인간도 안 죽고 끈질기게 연명해나가고. 안 그런가요?”

강요섭이 할 말을 잃고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았습니까?”

이익헌이 강요섭을 바라보며 말했다. 멸시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럽니까.”

“뭘요? 왜 구해놨냐는 말을 하는 겁니까? 국회의원이 늪 주변에서 괴수한테 당해서 죽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불쌍한 치안대원들이 얼마나 시달리겠습니까? 혹시 나중에라도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유서를 써 놓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내려서 죽든지 하세요. 괜히 사인 밝힐 일 생기게 하지 말고. 대중 앞에서의 자살. 얼마나 명쾌하고 깔끔합니까?”

이익헌이 말했다.

강요섭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법 개정에 반대하는 입장입니까?”

강요섭은 이익헌이 노린 것이 역시 처음부터 그거였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의원님. 눈깔 까세요. 아무리 대가리가 안 굴러가도 네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알자고요. 네? 그거 못해서 환장한 여자처럼 실컷 다리 벌리고 허리를 끌어안고 뒹굴다가 이제 와서 남을 강간범 취급하지 말라고요.”

강요섭은 눈 앞의 남자가, 자기가 알던 이익헌이 맞는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대답이나 듣고 헤어집시다. 나는 의원님이 소신을 지켰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 방식대로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멍청하게 도망치는 꼴을 보면 사람들이 아마 강요섭씨를 다시 찍어주고 싶진 않을 거야? 애초에 다시 선거에 출마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정상이겠지만 당신한테는 정상적인 사고를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고. 저번에 당신을 찍어줬던 사람들도 이번에는 안 찍겠지. 당신같은 사람한테 미래를 맡기는 바보는 없겠지.”

“더이상 반대는 안 하겠습니다.”

강요섭이 말했다.

“그러니까 영상은 유출하지 말아주세요.”

강요섭은 꼭 들어줘야 한다는 듯이 이익헌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 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 아닌가요? 피고인의 인권은 눈깔에 불을 켜고 지키려고 지랄을 하던 분이 왜 남의 표현의 자유는 탄압을 하시려고 합니까?”

“부탁드립니다.”

“충고 하나만 합시다. 뭘 알고 깝쳐요. 당신 같은 것 하나는 그냥 묻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 이걸 협박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해. 이건 명백히 충고니까. 이게 뭐라고요?"

“…충고요.”

“그래요. 충고라고.”

이익헌이 강요섭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말귀 알아들었길 바랍니다.”

강요섭의 귀에 목소리를 바람처럼 흘려넣고서 이익헌은 어깨에 차크라를 잔뜩 실어 강요섭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강요섭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서 어깨를 잡고 주저 앉았다. 보지 않아도 어깨뼈가 작살이 났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이고. 부딪치셨어? 그러니까 왜 걸리적거리게 거기에 서 있어? 이상한 사람이네. 길이 이렇게 넓은데. 딱 내가 지나갈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겠네. 왜. 내가 잘못한 건가?”

“…아닙니다.”

“그럼 누가 잘못한 거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거 아마 뼈가 조각조각 났을 거거든? 의사들이 뼈조각 맞추면서 욕깨나 할 건데 그냥 그러련 해.”

그렇게 이익헌은 사라졌다.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라 법 개정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서규태가 말했던대로 드론이 다시 전국 각지를 쉴새없이 돌아다녔고 늪을 발견했다. 드론이 발견한 늪에는 다시 대대적으로 리드가 설치되었고 새롭게 설치되는 리드에는 살벌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리드를 가져가려고 보고 있습니까? 이 리드가 당신의 생명 값입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고, 리드의 절도행위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리드가 사라져서 괴수가 출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클랜 A의 클랜원들과 시현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

선아영은 턱을 괸 채 펜을 굴리고 있었다. 확인하고 검토해야 할 서류들이 수북했는데도 생각은 다른 곳을 떠돌고 있었다.

이익헌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아직 자기를 찾아오지 않은 것 때문에 선아영은 영 심란했다.

지난 번에 미국에 갔었을 때 일어난 일은 뭐란 말인지. 그 정도로 진전이 됐으면 이제는 둘 사이가 연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선아영 자신만의 오해였다는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화를 내고 싶고, 내가 당신한테 도대체 뭐냐고,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기는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러주고 싶기도 한데 왠지 그게 안 됐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익헌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연령을 초월해서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의 골드미스까지, 이익헌과의 데이트를 꿈꿨다.

그런 이익헌과의 첫만남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공격증폭률을 고작 그것밖에 못 올리냐고 하면서 따졌던가. 겉으로 보기에는 댄디하고 젠틀해보이던 남자가 사실은 두 번 상대하기도 싫은 재수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익헌과는 그런 식으로 틀어지지 않았다.

그는 손톱 밑의 거스러미처럼 자꾸만 신경쓰이고 생각이 났다.

채준형이 만든 무기들을 선아영이 직접 가지고 미국으로 갔던 것은 이익헌 때문이었다는 게 솔직한 말이었다.

그러나 기껏 거기까지 날아가고도 정작 이익헌은 만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올 뻔 했었다. 이익헌은 남부로 내려가서 그 지역의 2,3급 늪을 초토화시키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캐츠 아이 스톤을 찾기 위해서였다. 캐츠 아이 스톤이 갖는 정확한 의미까지는 알지 못하는 선아영은 그런 모습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벌어둔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은데 레이드에 중독이라도 된 사람처럼 레이드에 모든 시간을 바치는 이익헌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갔을 때는 선아영도 기대를 한 것이 있었지만 정작 자기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다 바빴고 선아영이 한껏 들뜬 채 자랑하고 싶어했던 무기를 보고는, 아, 잘 됐네요. 분명히 도움이 되겠네요, 라고 말을 하고 트레일러에서 쓰러져 자기에 바빴다.

그런 사람들을 보노라니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열정적으로 내달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그게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드는 더 큰 마음은 그들이 안돼보인다는 거였다. 그들을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게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안타깝고 불쌍했다.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이 미국에 왔다는 소식은 미국 전역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소식을 듣고서 관계부처 장관들과 관련 산업의 CEO들이 의기투합을 해서 선아영을 환영하는 파티를 열고 선아영을 초대했을 때 선아영은 거기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자리라면 다른 곳에서 듣기 어려운 고급 정보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판에 어려운 결정을 하고 파티장에 나갔다.

선아영이 쉽게 옷을 고를 수 있도록 최고급 백화점의 엠디들이 직접 이브닝 드레스를 가져와서 그 중에서 고를 수 있게 편의를 제공했다. 선아영과의 만남을 꼭 성사시키고 싶은 주최측의 열성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선아영은 디테일이 없는 원숄더 드레스를 선택했다. 새틴 소재에 밋밋한 디자인이었지만 선아영이 입었을 때는 도도한 시크함이 묻어나서 좋은 선택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엠디들이 같이 가져온 쥬얼리는 사양하고 선아영은 그냥 자기가 하고 있던 것들을 그대로 착용하고 나갔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없는데 외모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선아영을 보려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평소라면 자신들이 카메라 포커스를 집중적으로 받을 사람들이 선아영을 보며 열광하면서 선아영과 한 마디라도 나눠보기 위해서 줄을 서면서 기다렸다.

선아영은 필요한 만큼 웃어주고 필요한 만큼 말 상대를 해 주면서 미국 사회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읽어내려고 했다. 선아영에게 가장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헌터 무기와 장비를 생산하고 개발하는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선아영은 그들과 유익한 정보를 나누기는 했지만 점점 피곤을 느꼈다.

슬슬 파티장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곳에 뜻밖에도 이익헌이 나타났다. 이익헌은 선아영을 찾는 중이었고 선아영이 먼저 그를 발견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익헌이 자기를 찾아내서 다가오도록 하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그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익헌이 선아영을 드디어 발견하고는, 꼭꼭도 숨어 있었네! 라는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리고 다가왔다.

흠잡을 곳 없는 모습이었다. 이익헌은 검은 야회복 정장에 검은 나비 넥타이를 하고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 이익헌을 발견한 이후로 선아영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전부 성의없이 그려진 캐릭터들 같다고 느꼈다.

“언제 왔어요?”

이익헌은 선아영에게 가까이 다가온 후로 선아영과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자꾸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도 선아영이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으면 그때마다 선아영의 모습을 찬탄하듯이 바라보았다. 가끔 그가 한숨을 쉴 때마다 선아영은 그 더운 입김을 몸에 느꼈다.

“온 줄 몰랐어요?”

선아영이 물었다. 처음에 한 말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였다.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선아영은 이익헌을 바라보다가 이익헌의 머리에 앉은, 정말로 그의 차림과 장소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선인장 가시를 보고 놀라서 입을 벌렸다.

“헐. 어디에서 싸우고 온 거예요?”

그러면서 선아영은 이익헌의 머리에서 가시를 떼내주었다. 가시가 손가락만했다.

“아, 그게 있었어요? 어쩐지 머리가 무거운 것 같더라니. 그걸 여기까지 이고 와서 그랬나보네. 더 봐요. 잘. 그게 다예요?”

“네. 이게 다인 것 같아요.”

“아. 굉장히 억울하네.”

“레이드하고 바로 온 거예요?”

이익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양복을 입은 직원이 샴페인 잔이 놓인 쟁반을 들고 지나가자 이익헌이 한 잔을 건네받아 선아영에게 주었다.

“마셔요. 긴장한 모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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