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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25화 (12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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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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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이라면 절대로 아이에게 레이드를 시키지 않을 겁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가 레이드를 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 F등급인 동안은 괜찮아요. 하지만 일단 경험치 1을 받고 나면 그때부터는 레이드에 대한 열망을 주체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이 처음에 어땠는지 생각해 봐요. 나는 그랬습니다. 괴수를 사냥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죠. 심장이 뛰었어요. 누워있으면 심장이 나를 일으켜서 끌고 나가는 것 같았죠. 일단 첫 경험치를 받고 나면 E등급으로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을 겁니다.'

야로슬라프의 웃음 짓던 얼굴이 한동안 지우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이가 절대로 E등급으로 올라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한테는 헌터 타투가 나타날 거예요. 지금부터 차크라가 나타난다면 말할 것도 없죠. 그 녀석이야말로 괴물이 되겠군요. 세상을 구할 구원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자기 몸에 붙은 폭탄의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걸 평생 지켜보면서 긴장을 풀지 못한 채로 살아야 할 겁니다. 그 아이의 평생이라고 해 봐야 얼마 되지도 않을 겁니다.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꼭 기억해야 합니다. F등급인 동안은 괜찮아요. 하지만 일단 E등급으로 올라간 후에는. 그때부터는 폭탄의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가 한 말이 지우의 뇌를 벌레처럼 파고 들면서 지우를 괴롭혔다.

그에게 4일이 남아있고 그를 살릴 방법은 캐츠 아이 스톤을 구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지우를 사로잡았다. 강제로 각성이 된 것 같은 상태가 이어지다보니 몸과 정신이 극도로 피곤해졌지만 그는 쉴 수가 없었다. 지우는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임정과 지연을 제외한 클랜원들이 모두 지우에게 모여들었다. 지연에게서 얘기를 들어 그들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알고 있었다.

임정은 아이와 지우가 사냥을 당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충격을 당해 일어나지 못했고 그 곁을 지연이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우는 임정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고 혼자서 서성일 뿐이었다.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임정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상태로는 차마 임정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

“형. 나는 형이 이걸 형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같이 힘을 합치면 이 일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요. 누나한테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줬어요. S-1등급으로 올라가야 하면 올라가면 되잖아요. 아직 1년 정도 남은 거라면서요. 그 동안에 캐츠 아이 스톤을 구하면 되잖아요. 클랜 A가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레이드가 하게 될지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에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거라고요. 구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 정부에서 사도 되는 거고요. 몇 천 조라고 하면 그 돈을 주고 사면 되죠. 우리는 형을 잃을 수 없으니까요. 우리를 믿어봐요. 걱정만 하지는 말라고요.”

강현이 말했다.

“바디 펌이랑 익스트림 헌터를 통해서 헌터들에게 캐츠 아이 스톤을 구해보라고 연락을 해 놨습니다. 우리가 지불할 수 있는 건 1조예요. 그 이상은 안 돼요.”

이익헌이 말했다.

지우는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그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탓이었다.

“야로슬라프한테 캐츠 아이 스톤을 구해주고 싶은 거잖아요. 구해질지 어떨지는 우리도 장담을 할 수 없어요. 그래도 일단 최선은 다 해 보자고요. 안지우씨는 지금 야로슬라프한테 과도하게 자기를 이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때 야로슬라프가 죽어버리면 골치아파지잖아요. 그래도 우리랑 크게 상관도 없는 사람을 돕는데 몇 천 조까지 지불할 수는 없어요. 그건 안지우씨도 이해를 해 주기 바랍니다. 굶주리는 이웃을 구하겠다고 내 가족을 노예로 팔 수는 없는 거니까요. 안 그래요?”

이익헌이 말했다.

“바디 펌이랑 익스트림 헌터를 통해서 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러시아 정부에 말을 해 뒀습니다. 캐츠 아이 스톤을 빌리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서규태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했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바는 엄청난 것이었다.

“네?”

지우는 클랜원들이 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야로슬라프를 위해서 그런 결단을 내려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병에 걸렸고, 그게 무슨 병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나랑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죽어버린다면 어떻겠어요? 더군다나 안지우씨는 안지우씨 혼자만 그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콩알도 같은 병에 걸린 거나 마찬가진데.”

이익헌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듣고서야 지우 자신이 느끼던 감정이 이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태인이 조용히 다가와서 지우의 등을 쓸어주었다.

"우리중에 아무도 이걸 지우 너만의 싸움으로 놔두겠다고 생각 안 해. 네가 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우리도 도울 거야. 그러니까 너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

지우는 울컥해져서 클랜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봤지만 바디 펌과 익스트림 헌터를 통해서는 캐츠 아이 스톤이 구해지지 않았다. 캐츠 아이 스톤을 가지고 있는 헌터가 없어선지, 1조를 받고 팔 수는 없다고 생각해선지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야로슬라프가 말한 날에서 이틀을 남겨둔 날, 이익헌과 클랜원들은 캐츠 아이 스톤의 가격을 10조로 올리기로 했다고 지우에게 말했다.

지우는 그런 부담까지 클랜원들에게 지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결정을 끝낸 후였다.

“돈을 벌어서 쌓아두기만 했지, 그걸로 뭘 하면 즐겁겠다는 생각같은 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기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규태가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10조를 걸었음에도 캐츠 아이 스톤은 구해지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서규태와 이익헌이 러시아 정부를 찾아갔다. 그들은 캐츠 아이 스톤을 빌려달라는 클랜 A의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우는, 캐츠 아이 스톤을 받아온 두 사람과 함께 야로슬라프를 찾아갔다. 야로슬라프는 피곤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들을 맞았다.

집은 초라했다. 그가 끝없이 레이드를 해 온 헌터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상하기가 어려운 집이었다.

야로슬라프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내가 죽기 전에 구경이라도 한 번 더 하고 싶었나보죠? 내 차크라를요."

야로슬라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빛 아래에서 보니 그가 굉장히 어리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스물 한 살이었다. 가까스로 스무 살을 넘기기는 했지만 그게 자기가 넘을 수 있는 한계였다고, 야로슬라프는 무기력하게 고백했다. 강현보다 불과 몇 살이 많았을 뿐이었는데도 그에게서는 전혀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통통볼같이 언제나 생기가 넘치는 강현을 떠올리자 야로슬라프의 모습이 더욱 슬프게 보였다.

서규태가 그의 앞에 캐츠 아이 스톤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구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야로슬라프는 크게 웃었다. 눈이 붉어질 때까지 웃었다. 그렇게 웃어대더니 그는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촉촉한 막으로 가려졌지만 눈물만큼은 끝까지 참아냈다.

“바보같이 내가 한 말을 전부 믿었습니까?”

지우는 대답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캐츠 아이 스톤이 얼마에 거래되는지는 알고 내 말을 믿은 겁니까? 내가 감성을 팔아서 캐츠 아이 스톤을 빼돌리려고 한 사기꾼이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당신들을 속이는 건 정말 쉽겠군요. 그 정도라면 순진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예요.”

야로슬라프는 혼자서 멋대로 떠들어댔다.

“거짓말이라는 겁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우는 그게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보라고 실컷 놀려도 좋으니 자기가 들었던 말이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만 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아이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그렇게만 말해 준다면 더이상 다른 것을 원할 게 없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겠죠. 내가 한 말은 거짓말투성이었습니다.”

야로슬라프는 캐츠 아이 스톤이 들어있는 보석함을 탁 소리가 나게 닫고 그것을 서규태에게 다시 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더니 침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머물다가 나왔다.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커다랗고 투박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야로슬라프의 얼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가 그것을 가져와서 세 사람이 앉아있던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을 때 세 사람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우를 향해서 그것을 열어보라는 동작을 해 보였다. 지우는 주저하다가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 있던 것이 열 한 개의 캐츠 아이 스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로슬라프는 예의 그 신비한 눈빛을 하고 지우를 바라보았다.

“유리 세멘노프 교수가 알아낸 건 내가 말했던 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세멘노프 교수가 우리를 모았던 건 다른 사실을 알아내서였지요. 괴수가 죽으면 러프 스톤을 남기듯이,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우리같은 헌터들이 죽으면 캐츠 아이 스톤이 남겨집니다.”

지우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서규태와 이익헌도 마찬가지였다.

"세멘노프 교수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F등급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차크라가 폭주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숨겼죠. 세멘노프 교수가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를 모은 거였다면 그 사람은 우리에게 경험치를 쌓지 말라고 말해줘야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숨기고 우리가 경험치를 쌓고 E등급이 되게 했어요. 그런 후에 우리를 몰아붙였고요. 그 사람은 우리가 죽으면서 내놓을 캐츠 아이 스톤을 가지려고 했던 거예요.“

야로슬라프가 잠시 말을 멈춘 동안에야 세 사람은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숨쉬는 것조차 잊은 채 야로슬라프의 말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F등급인 동안에는 안전하다는 사실은, 내가 나중에 알아낸 사실이예요. 우리 중에 일찌감치 등급 올리는 걸 포기 한 녀석이 있었죠. 그 녀석은 우리같은 사람들이 레이드만 하다가 결국 더이상 등급을 올리지 못하게 됐을 때 죽는 걸 계속 보면서 자기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그 녀석은 죽지 않았죠. 2년이 지났는데도. 그 녀석이 다른 사람들이랑 달랐던 건 그 녀석이 E등급으로 오른 적이 없다는 것 뿐이었어요.”

"만약에 그 헌터를 죽인다면."

이익헌은 말을 하고 나서야 후회했다. 굉장히 부적절한 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야로슬라프는 그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맞습니다. 그 녀석을 죽이면 캐츠 아이 스톤을 얻을 수 있겠죠."

대답까지 듣고 보니 이익헌은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더 미안해졌다.

"미안합니다. 내 질문이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은데."

지우는 가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나쁜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이익헌이 하는 말을 듣고 자기가 정말 안 좋은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이익헌이 사과를 했다는 건 지우가 아주 안 좋은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지우가 지금 어떤 말에도 상처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익헌이 그렇게 말하는 거라는 것을 지우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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