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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이제 이 사람들이 파이널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고 방심했는데 가장 모자라보이는 놈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협박을 할 줄은 몰랐기에 이익헌이 받은 충격도 상당했다.
“그렇게 비싼 건 오래 가지고 있어봤자 불안하니까 빨리 써버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캐츠 아이 스톤으로 A급 헌터가 되는 건 어떻게 하는 거라고요?”
태인이 물었다. 이익헌은 두 손을 모으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 요즘에 일이 너무 많다보니까 지금은 좀 헷갈리는데. 나중에 라미실한테 물어봐서 확실하게 알려줄게요.”
“나는 기억이 나요. 저한테 알려주셨었잖아요.”
강현이 말했지만 이익헌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강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너 따위에게 그런 중대한 이야기를 해줬을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B급 헌터가 캐츠 아이 스톤을 가지고 레이드를 해서 공략에 성공하면 경험치가 쌓이는 것과 동시에 A급 헌터로 등급이 올라간다고 했잖아요.”
강현이 말했다.
이익헌은 멍하니 강현을 바라보았다. 태인은 지우의 팔을 붙잡아 헌터 타투를 확인했다.
“어? 언제 C급이 됐어?”
“방금요.”
“B급 되는 것도 금방이겠네.”
“무슨 말이예요?”
지우가 물었다.
“네가 A급 헌터가 돼야 하는 거라고.”
태인의 말은 지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격이었다. E급이 되기 전에는 공격력이 오르는 것에 대해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우의 헌터 타투는 꾸준하고 치밀하게 모두의 뒤통수를 쳐왔다. D급으로 올라갈 때도, C급으로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지우에게 캐츠 아이 스톤을 쓴다는 것은 ‘낭비’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 얘기는 그만하죠.”
지우가 말했다. 기분이 많이 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어차피 나는 공격력으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캐츠 아이 스톤은 공격력이 제대로 나오는 B급 헌터한테 사용하는 걸로 해요. 클랜 A 중에서 공격력도 제대로 나오고 공격 기회도 놓치지 않고 잘 살리는 헌터로요. 이 사람은 제외하고요.”
임정의 어깨를 안으면서 지우가 진지하게 결론을 내렸다.
“나도 제외해줘. A급 헌터 따위는 관심없으니까. 나는 그냥 클랜 A의 메니저 노릇이나 하면서 레이드 같이 뛰고 그럴 거야.”
이익헌이 말했다.
"메니저요? 노예겠죠."
태인이 말하자 이익헌이 발을 구르면서 화를 냈다.
"그 말은 지겹지도 않은가 보네. 재미있어? 재미있냐고!"
"네."
바보를 상대로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서 이익헌은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쨌거나 나한테 캐츠 아이 스톤을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얘기를 끝내죠. 나한테는 그게 적합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한테 쓰는 걸로 해요. 그게 모두를 위해서 최선이예요."
“좋아.”
태인이 너무 순순히 말을 하는 바람에 실컷 진지하게 반박을 하던 지우는 갑자기 맥이 빠져버렸다.
“그건 내가 좀 더 갖고 있어도 돼? 실컷 구경하다가 천 대리님한테 내가 전해드릴게. 나를 못 믿는다면 할 수 없고.”
태인이 말하자 모두가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태인이 형 옆에 딱 붙어 있어야지. 내가 언제 캐츠 아이 스톤을 구경하겠어요?”
강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벌써 태인의 옆에 붙어서 제 눈을 캐츠 아이 스톤에 갖다 붙일 듯이 스톤을 바라보았다.
“황홀하다…….”
강현이 감격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캐츠 아이 스톤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자태이기는 했다.
저녁에 서규태와 천기정이 돌아왔을 때 캐츠 아이 스톤은 서규태와 천기정에게 공개되면서 그들의 심장을 한 번씩 들었다 놨다 했고 그 후에는 천기정에게로 넘겨졌다.
그것이 외부에 밝혀진, 공식적인 캐츠 아이 스톤의 행보였다.
***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클랜 A는 1급 늪의 공략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1급 늪의 공략에 앞서서 3급 괴수를 상대로 클랜원이 다같이 호흡이나 맞춰보자고 해서 다 같이 모였던 것이다. 중요한 레이드라고 생각했는지 특별히 강지연도 나와 있었다. 이익헌이라는 대단한 배경을 둔 덕에 그런 식의 재량은 발휘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서규태가 브리핑을 하는 동안 강지연은 감응기에 나타난 괴수의 차크라를 헌터들에게 보여 주면서 헌터들이 맵과 괴수에 미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설인 빅풋이라는 전설 속의 괴인이랑 비슷해요. 직립한 두 발 괴수죠. 이런 경우에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 같은 터부 때문에 헌터들이 공격을 할 때 자꾸 주저하게 되기도 합니다. 괴수의 몸이 전체적으로 사람이랑 비슷할 거라서 그 점에 대해서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될 거예요. 누구한테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네요.”
서규태가 이익헌을 바라보자 이익헌은 딴청을 부렸다.
“안지우씨. 급소를 노리는 건 쉬울 겁니다. 사람들의 급소를 생각하면 될 테니까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요. 다른 사람들은 각자 하던대로 하면 됩니다.”
서규태의 브리핑을 듣고 모두들 늪으로 들어가기 위해 장비와 무기를 챙겼다. 강현은 활과 화살을 가득 챙겼다.
“오늘은 활이야?”
지우가 묻자 강현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면적 넓은 녀석들한테는 차크라를 실은 화살을 날리면 잘 먹히더라고요. 그리고 익스트림 헌터에서 화살의 공격 증폭률을 잔뜩 높여놔서 데미지를 입힐 때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 잘 됐네. 오늘도 행운을 빈다. 많이 도와줘.”
“저도요, 형. 행운을 빌어요.”
강현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했어도 지우는 거기에 별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의례적인 말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
태인이 갑자기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지우와 강현을 바라보았다.
“우리. 빅풋을 본 적 있어. 기억 안 나?”
“우리가 빅풋을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지우가 말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빅풋을 상대해 본 적은 없었다.
“우리가 레이더였을 때 말고. 사체 운반 헌터였을 때. 써전님이 우리한테 빅풋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잖아.”
그 말을 듣고 서규태가 태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아아아아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맞아요. 그런 일이 있었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우리가 같이 절단하고 운반했던 괴수중에 빅풋이 있었군요."
서규태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자 태인은 뿌듯해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때 론 디어의 칼자국을 발견했었죠. 무릎과 턱에 난 거요. 우리가 론 디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건 그때였을 거예요.”
태인이 말하자 강현과 지우도 아아아아, 하면서 기억을 해냈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이익헌도 그들이 뭐에 대해서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눈치였다.
“이 부사장님은 한 번 싸워봤던 개체니까 쉬울 수도 있겠네요. 그때의 빅풋보다는 훨씬 더 클 거라는 점만 명심하고 싸우면 무리없이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규태가 말하자 이익헌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이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론 디어의 칼자국을 보면서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 궁금해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론 디어하고 같이 싸우고 있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강현이 지우의 곁에서 조잘조잘 말을 해댔다. 갑자기 사체 운반 헌터 때의 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는 레이드 한 번 해 보는 게 꿈이었던 헌터들이 어느새 경험치 깡패들이 돼서 이제는 전부 B급 헌터가 돼 있고 말입니다.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어요?”
서규태야말로 감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천기정과 선아영의 공이 컸다. 바디 펌과 익스트림 헌터가 전격적으로 협력을 해서 가공할만한 공격증폭률을 가진 무기를 만들어낸 덕에, 불가능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레이드들이 가능해졌고 시간은 훨씬 단축이 되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어느덧 모두가 B급 헌터가 된 채 각자가 경험치의 차이만 두고 있었다.
실전의 감각이 몸에 체득된 덕에 딜러들은 이제 탱커가 없이도 괴수의 능력을 피하면서 싸울 수 있었고 만약의 경우에 부상을 당하는 딜러들이 나오면 임정이 그들을 치료해 주었다.
"준비됐으면 다들 들어갑시다."
서규태의 말을 신호로 모두들 늪으로 들어갔다. 늪 아래에 있던 빅풋은 그들이 사체 운반을 할 때 만났던 빅풋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은 커 보였다. 죽어있던 빅풋만 봤던 지우는 바닥에 두 다리를 딛고 단단하게 서 있는 빅풋을 보고서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서규태가 고함을 지르고 가장 먼저 빅풋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익헌도 그 뒤를 이었다. 그들의 공격으로 괴수의 체력이 시원하게 깎여나가는 것을 보고 다른 헌터들도 용기를 냈다. 빅풋이라고 불가능할 건 없다는 생각에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빅풋에게 달려갔다.
초반에 빅풋은 위력적인 공격을 하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헌터들에게 밀렸고 헌터들의 차크라가 어느 정도 소모되었을 즈음에야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야말로 지우의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지우는 엑스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빅풋을 공격했고, 빅풋은 지우의 엑스 블레이드에 각각 머리와 허리를 잃고 나뒹굴었다. 헌터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빅풋을 공격했고 그들의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괴수의 체력이 깎여 나갔다.
임정이 나설 일도 없이 깔끔한 레이드가 끝이 났다. 어려울 것이라고는 전혀 없던 레이드가 마침내 끝이 났을 때 지우는 러프 스톤을 주웠다. 이제는 경험치 몰아주기의 의미도 사라졌기 때문에 모두가 끝까지 남아 레이드를 같이 했다. 태인과 강현이 지우에게 다가왔을 때, 지우는 그들이 다가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강현이 자기에게 바짝 다가와서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우는 강현이 러프 스톤을 받으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강현에게 러프 스톤을 건넸다. 하지만 강현은 러프 스톤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강현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지우의 보호장구였다.
"왜 그래?"
지우가 묻는데도 강현은 대답이 없이 지우의 오른 팔을 감싸고 있던 보호 장구를 벗겨냈다.
"왜 이러는 거냐니까?"
지우는 다시 물으면서 몸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강현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마침내 지우의 오른팔을 감싸고 있던 보호장구가 벗겨졌다.
“헉!”
지우의 헌터 타투를 본 태인이 숨을 들이켰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서 임정도 그들에게 달려갔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그때는 지우도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깨달았다.
강현과 태인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늪에 들어오기 전에 태인은 천기정에게서 미리 캐츠 아이 스톤을 받아왔었다. 그리고 지우가 갑옷 입는 것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지우의 갑옷 벨트에 캐츠 아이 스톤을 단단히 묶어 두었다. 잘되면 영웅이 되겠지만 잘못되면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베팅이었다. 영웅이 될 가능성은 역적이 될 가능성의 천만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태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캐츠 아이 스톤의 주인이 지우라는 사실을 태인은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헌터 등급 - A
경험치 : 4
공격력 : 2,000
방어력 : 2,000
차크라 등급 - 1
차크라 숙련도 : 100%
능력치 증폭률 : 0%
지우의 헌터 타투를 보고 태인은 입을 열지도 못한 채, 꺽꺽 숨을 속으로만 삼긴 채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