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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01화 (1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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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남들이 7초에 한 번 공격할 수 있는 걸 안지우씨는 7초동안 일곱 번을 공격할 수 있으니까 공격력이 140 정도 되는 거네요?”

이익헌이 말했다.

“지우 형 컨디션이 좋을 때는 5초에 열 방도 때려요.”

강현이 말했다.

“정말입니까? 그러면 공격력이 낮다고 그렇게 기죽어 있을 것도 아니네요. 그렇다고 해도 F급 딜러보다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한 번 때려서 4, 5천씩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공격력을 가진 사람중에도 공격 기회를 못 잡고 어어어어 거리다가 늪을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안지우씨가 기죽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봐요.”

이익헌은 지우를 위로해주려는 이유보다는 지우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느라고 한 말이었는데 어느새 사람들은 감동한 눈빛으로 이익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는 생각난 김에 선대표나 쪼러 가야겠다. 익스트림 헌터에서 공격 증폭률만 조금씩 더 올려주면 레이드가 훨씬 쉬울 거라고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5급 늪을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공략할 수 있는지 그걸 목표로 할 게 아니라 1급 괴수를 12시간 안에 공략할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거니까요. 5급 괴수들은 쩌리들이 맡아서 하면 되는 거니까 우리가 신경쓸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동안은 체력 강화를 위해서 연습 삼아서 한 거였고. 이제부터는 5급 늪을 공략하는 건 하지 맙시다.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거라고 해도 4급 늪으로 올리고요. 지금부터는 훈련의 강도도 높여야 할 거예요.”

이익헌의 말에 모두들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1급 괴수 체력은 어느 정도예요?”

태인이 물었다.

“미국에서 참변을 일으켰던 괴수의 체력이 1억 8천만이었습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1억……, 1억, 8천만요?”

임정도 그 말에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런 괴수를 공략한다는 건 정말로 불가능하잖아요. 탱커도 없이 차크라 등급 최고의 B급 딜러 10명으로 구성해서 열 두 시간동안 내내 공격을 해야 겨우 가능할까 말까한데. 거의 불가능할 걸요? 클랜 A로는 안되겠어요. 뭐가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죠? 한국에 있는 1급 괴수의 체력은 그 정도는 아닌데. 불가능한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 이건 무슨……!”

임정이 말했다.

중학생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 녀석한테 프로 선수를 데려온 것만큼이나 심한 경우였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바디 펌은 최고의 재료를 익스트림 헌터에 제공하고 익스트림 헌터는 공격 증폭률을 지금보다 더 높이고 우리는 우리 실력을 더 키우는 겁니다. C급은 B급이 되고 B급은 A급이 되고. 아, 그 말은 정정. 나는 A급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이익헌이 말했다.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긴 한 거예요? 우리한테는 지우 형이 있으니까 지우 형이 괴수한테 치명상을 입히고 괴수를 무력화시켜주면 우리가 공격 기회를 더 많이 살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가진 차크라 양도 문제예요. 열 두 시간을 꼬박 버텨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강현이 말했다.

태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강현의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규태는 그동안 자신의 등급이 낮다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었다가 갑자기 다급함을 느꼈다. 자기라도 빨리 B등급으로 올려놓지 않으면 정말 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임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사람들한테는 자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자기가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자기 책임인 것 같고 미안해졌다.

그때 지우의 손이 임정의 어깨로 내려왔다.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조급해할 것 없어. 우리는 이 일을 해 낼 거야. 우리가. A급 헌터가 될 거고 우리 아이를 지킬 거라고.”

임정은 지우의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천기정은 이익헌의 집무실에서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 일어났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폭풍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 두 잔을 내리고 있었다. 집무실에 짙게 드리워졌던 살육의 냄새가 에스프레소 향에 의해서 강제로 지워지고 있었다.

천기정은, 몇 분 전에 바디 펌의 새 전무로 공표되었다. 당연히 엄청난 벽에 부딪쳤지만 이익헌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일이 그렇게 갑자기 진행된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익헌은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일을 처리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그도 바디 펌 내에서는 피의 숙청을 즐긴 편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기는 하지만 한때, 피 냄새가 살 떨리게 그리워질 때는 제 집 마당은 놔두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희생자를 찾았다. 제 집 마당에서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디 펌에서 그가 유지하고 싶었던 이미지는 무기력한 대표였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고 성장하는 1급 늪의 등장과 1급 괴수의 출몰, 불길한 차크라를 가진 태아와 그 아이의 아버지로 인한 문제 등등이 겹치면서 이익헌은 클랜 A를 빨리 최강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목표가 잡혔는데 게으름을 부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익스트림 헌터 쪽 조차도 힘을 내주고 있었다.

이익헌은 바디 펌으로 들어오는 괴수 사체 중에서 최고의 재료를 익스트림 헌터에 제공하기 위해 임직원들을 설득했지만 뜻밖에도 그 일이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것은 이익헌의 자존심에 굉장한 타격을 입혔다. 공격 증폭률을 높이는데 필요한 재료가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으로 수집가들에게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임원 회의에서 강한 반발이 나왔다. 이익헌은 바디 펌이 공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자사의 이윤을 포기할 수도 있는 시점이라고 강변했지만 비웃음을 샀을 뿐이었다. 그건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격이었다.

인간 말종 쓰레기 역할은 이익헌의 전담이었는데, 진면목을 드러내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보니 진짜 쓰레기들은 따로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1급 괴수가 나타날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디 펌이 나서야 하는 거고요!”

이익헌이 말하자, 이익헌이 내린 최근의 인사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하던 전무 한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부사장님이 말씀하신 아이템들은 이미 예약이 돼 있습니다. 이제 와서 못 주겠다고 하면 그건 회사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가 됩니다.”

사람들은 판세가 전무를 향해 기울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하는데 뭐라고 반박을 하겠는가 싶었다. 한동안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는 했지만 자기들이 조금만 더 압박을 하면 예전의 이익헌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다시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본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이익헌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페어 플레이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제쪽에서도 제대로 응수해 주겠습니다."

이익헌의 말 뜻을 정확히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기정조차도 아무 것도 예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익헌은 최후의 경우에 쓰려고 했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익헌이 갑자기 태블릿을 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익헌이 꽁무니를 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절벽에 내몰린 채로 할 말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몇 사람은 이미 싸움이 끝났다는 듯이 허허거리고 웃기까지 했다.

"제가 몇 분에게 선물을 좀 보냈습니다. 지금 메일을 확인해 보시면 되겠네요. 열심히 준비한 선물이니만큼, 마음에 들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익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선물을 받지 못한 분들도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세요. 선물이 준비되지 않아서 안 보낸 게 아니거든요. 그냥 한 번에 다 풀면 축제 분위기가 너무 쉽게 사라질까봐서 그러는 것 뿐이니까 쭉 기대들 해 주시고요."

임원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메일함을 확인했다. 몇 사람은 그 자리에서 새로 온 메일을 열었다. 이익헌이 그들에게 보낸 것은 각 사람들을 사회에서 한 방에 매장시켜 버릴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자기 USB에만 잘 숨겨두었던 소아성애 자료를 메일로 받았고 어떤 사람은 엽기적인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 청구 소송 자료를 받았다. 그들의 은밀한 자료가 그들의 메일함으로 들어왔는데 발신인이 이익헌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그 자료들을 손에 넣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가 사회적인 지위를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한 자료들이었지만 이익헌이 가진 자료가 그것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게 더 두려웠다. 이익헌은 그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충분히 즐기다가 입을 열었다.

“바디 펌은 이제 변화하게 될 겁니다. 변화가 두려운 사람은 지금이라도 갑판에서 뛰어내리세요. 남으려는 사람들은 바디 펌과 같이 변할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각오를 하고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익헌은 극적인 효과를 노리며 말을 멈추었다.

“내가 몰랐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한 번 알았던 사람은 두 개의 카테고리에 분류해 넣는 버릇이 있습니다. 친구나 적. 모든 사람이 둘 중 하나로 분류되죠.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사람이란 없습니다. 스스로는 뛰어내릴 자신이 없는 것 같은 몇 사람의 등은 내가 밀어주겠습니다.”

그리고 이익헌은 그 자리에 있던 몇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정리해서 나가는데 몇 분이나 걸릴 것 같습니까?”

그 말에 그들은 몇 분만에 그곳에서 사라졌다. 순순히 물러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무릎으로 기어서 나가지 않으려면 서두르는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천기정은 한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자기가 어쩌다가 이익헌에게 걸려서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고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이익헌은 일단 마음을 먹은 후에는 완전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제 자신의 본모습을 들킬까봐 조바심을 낼 일도 없으니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처럼 꾸미고 있느라고 괜한 정력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그 회사에는 이제 자주 나올 생각도 없었다. 천기정과 강지연이 적응을 마치면 그는 슬슬 이곳에서 발을 빼고 '안지우 A급 헌터 만들기 작전'에만 몰입할 생각이었다.

캐츠 아이 스톤, A급 헌터, 공격 증폭률 500퍼센트 정도 되는 무기.

지금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중에 가장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공격 증폭률 500퍼센트인 무기를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만들려면 바디 펌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임원들이 징징거리고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바람에 기분이 확 상해버린 것이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부사장실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크레마가 탐나게 잘 빠진 에스프레소 잔을 천기정에게 건네며 이익헌은 천기정의 불만 섞인 얼굴을 보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래도 나만 악당인 것 같습니까? 왜요, 천기정씨?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비겁한 사람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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