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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87화 (8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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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이익헌은 죽어버린 귀신늑대의 사체에 대고 손도끼를 여러 방향으로 처올렸다.

"이렇게요. 이렇게. 에?"

사방, 팔방에서 도끼 자국이 찍혀 들어갔다. 태인은 저도 그렇게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뻔히 다 보이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 보려고 했는데 그 방향으로는 도무지 힘을 넣을 수가 없어서 그랬던 건데 그게 이익헌의 눈에 딱 보인 모양이었다.

"자기 무기는 그게 중량이 얼마가 나가든지 간에 완전히 자기 몸이랑 하나가 되게 움직을 수 있어야 됩니다. 알았어요?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애초에 다른 무기를 골랐으면 됐잖아요. 이게 멋져 보여서 이걸 고른 겁니까? 무기가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악세사립니까?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예요, 제대로! 당신 같은 사람이 제대로 못하니까 같은 클랜원들이 뺑이치는 거잖아요!"

이익헌은 점점 화가 나는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클랜의 노예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적당히 하죠? 노예는 자기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매번 눈물을 뿌리고 참회를 하면서 닥치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태인도 계속 참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한 마디를 쏘아주었다.

"싫은 소리도 들어야 발전이 있는 겁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뜻밖의 반격에 움찔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넘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 말이 그 말이예요. 싫은 소리도 들어야 발전이 있는 거라고요. 노예라는 말이 듣기 싫어도 계속 들어봐요. 그러면 또 모르죠. 발전이 있을지."

"노예라는 말을 계속 들어서 도대체 무슨 발전이 있다는 거죠?"

이익헌의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그건 그쪽이 풀어야 될 문제 아닙니까? 나는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서 그 문제까지 신경써 줄 시간이 없네요."

태인이 이익헌에게서 제 손도끼를 회수하면서 말하자 이익헌이 매의 눈으로 태인의 손을 보고 있다가 또 꼬투리를 잡았다.

"그 습관부터가 잘못된 겁니다. 이태인씨는 손도끼를 잡는 기본 동작부터가 틀렸다고요. 처음부터 공격할 수 있는 동작으로 잡고 있으라고요."

"싫은데요?"

"이태인씨!"

"왜요, 노예씨!"

유치한 줄은 알지만 이렇게밖에 대응할 수 없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태인은 얼마든지 이익헌을 그런 식으로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하아, 진짜 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 줄 압니까? 무능력한 주제에 고집만 센 사람이예요."

이익헌이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아. 지금이 혹시 고해성사 시간인가요? 무능력한 주제에 고집만 세서 미안하다고 참회하는 거예요? 하긴. 무능력이랑 고집이 노예한테 어울리는 덕목은 아니죠. 그래도 열심히 해 봐요. 덤으로 얻은 인생이잖아요. 죽을 수도 있었는데."

태인이 깐족거리는데도 굴하지 않고 이익헌은 태인의 손에서 손도끼를 낚아채갔다. 그리고 손 안에서 손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손도끼는 이익헌의 손 안에서 360도로 회전을 하면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익헌은 똑똑히 보라는 듯이, 손도끼가 회전하는 동안 무작위로 손도끼를 잡고 고르게 힘을 주며 허공을 벴다.

그것을 보는 동안 태인의 눈빛도 심상치 않게 변했다. 이내 태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아. 내가 진짜. 어떻게든 저건 하고 만다! 악세사리? 멋져보여서 골랐냐고? 그래! 멋져보여서 골랐다. 허, 참나! 내 손도끼를 왜 지가 돌려. 그게 그렇게 대단해? 나라고 못 하란 법이 뭐가 있어. 다음에 나를 볼 때는 아주 눈알이 튀어나오게 만들어 줄 테니까 기다려. 딱 기다려! 아, 진짜. 살다살다 이런 수모는. 아우, 짜증나!'

"긴장 좀 합시다. 이태인씨. 클랜이잖아요. 클랜. 남도 좀 돕고 삽시다. 이태인씨 때문에 막노동하게 되는 노예 생각도 좀 해 달라고요. 착하게 생긴 분이 못되게 구네."

이익헌은 끝까지 깐족거리더니 손도끼를 왼손으로 넘겼다. 왼손으로도 그걸 똑같이 해 내는 걸 봤을 때는 태인도 기가 질려버렸다. 기가 질리기는 서규태와 임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왼손으로 무기를 그렇게까지 다룰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은 그럴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왼손으로도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무기를 다룰 수 있으면 왼손에 쥔 무기의 위력이 오른손에 쥔 무기의 위력만큼 나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공격기회를 그만큼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 2급 괴수의 공략 횟수를 늘이고 1급 괴수에 대한 공략까지 시도를 할 거라면 그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익헌은 아예 두 손으로 손도끼를 주고받으면서 이 손 저 손으로 옮기며 손도끼로 허공을 갈랐고 심지어 불필요하게 제 다리를 들어올리고 그 사이로도 손도끼를 날렸다. 그것을 보면서 태인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는 손도끼가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 같은 것은 같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태인에게는 늘 그런 마음이 있었다. 잘못해서 손도끼를 놓치기라도 하면 거기에 발등을 찍히거나 제 손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걱정과 불안이. 그러나 이익헌은 자유자재로 손도끼를 다루고 능수능란하게 동작을 만들어내면서 불안함을 전혀 갖지 않았다.

"봤습니까? 무기를 먼저 장악해야 돼요. 무기가 나를 칠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안 됩니다. 나를 노예로 두려고 하지 말고 무기를 완전히 장악하라고요. 무기가 이태인씨한테 완전히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만들어요. 그게 시작입니다."

태인이 정신이 멍해졌다. 고집 부리고 싶은 것도 아니고 제 부족한 실력에 눈을 감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죽자사자 연습을 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익헌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이 정도는 해 놓고 노예 노예 거리죠."

이익헌은 보란 듯이 손도끼를 한 번 더 손 안에서 회전을 시키더니 태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차크라를 다 쓰고 기진맥진하더니, 열등생을 가르치려고 보면 또 어딘가에 끝까지 숨어있던 차크라가 기어나오게 되어 있는가 보았다.

"대단해. 진짜 대단해. 정말 대단하게 재수없는 사람이야. 내가 다음 타겟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만들잖아."

지우가 임정에게 말하자 임정도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한테도 그렇게 말하면!"

조용히 있던 강현이 갑자기 말했다.

"나는 파이널을 터뜨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론 디어님도 말투 좀 고쳐주세요. 좋은 말이라는 건 알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너무 힘들다고요. 받아들이기가. 본의는 아니겠지만 그 말을 저한테 했다면 저는 벌써 터뜨렸을 거예요."

말은 다소곳하게 했지만, 정신차리고 들어보면 그건, '나한테 그랬다간 나는 너를 죽여버릴 거다.'라는 말이었기에 이익헌의 목구멍으로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네."

이익헌이 얌전히 말했다.

처음부터 가장 마음에 걸린 것도 김강현이었다. 김강현은 두 번 생각하고 행동하는 부류가 아니라, 먼저 행동해놓고 나서 두고두고 후회를 할 부류인 것 같았던 것이다.

"조심할게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이익헌은 생전 써보지 않았던 말까지 써가면서 김강현을 달래느라 바빴다.

태인은 손도끼를 바라보았다.

'나도 너를 믿어볼 테니까 너도 나를 믿어봐줘.'

태인은 손도끼가 제 마음을 알아주고 저를 강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

지우는 샤워를 하고 민달팽이처럼 기어나왔다.

"힘들어. 진짜로 죽을 것 같다."

지우가 임정을 바라보며 하소연을 했다. 차크라를 두르고 있을 때의 안지우는 최강이며 무적이지만 차크라를 사용하지 않으면 육체의 피로를 고스란히 느꼈다. 임정은 지우가 육체의 상태를 계속 감지해 갈 수 있도록, 매번 규칙적으로 차크라를 사용하지 않은 채 몸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고 권고를 해 오고 있었다.

격렬한 운동을 하는 선수들이 경기중의 통증을 이기려고 진통제를 먹는 것처럼 차크라의 사용은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왔다. 진통제가 피를 묽게 해 주고 근육이 뭉치는 것을 막으면서 통증을 견디게 해 주지만 갑자기 큰 부상을 입었을 때 치료할 수 없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차크라를 두르면 다시 힘이 날 테지만 거기에는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그리고 차크라로 온 몸을 감싼 채로 임정의 애무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나른하게 쓰러져버린 지우의 곁으로 임정이 다가갔다.

"아빠 힘들었다, 콩알. 그래도 아빠가 빨리 세져야 우리 콩알을 지킬 수 있겠지. 너랑 엄마는 아빠가 지켜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자라기만 해."

지우가 임정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이를 가진 배라고는 해도 임신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혀 표시가 나지도 않았다. 맑게 웃는 웃음이 이제 임정의 얼굴에도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자기, 나 만난 다음부터 자주 웃는다. 나 만나기 전에는 웃을 일도 없었지?”

"그러게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더 일찍 만나면 좋았을 텐데. 아닌가? 내가 헌터가 되자마자 당신을 만난 거네? 다른 사람이 올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때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 왔으면 우리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겠지?"

"재미도 없었을 거고."

"내가 헌터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겠지?"

"모르겠어요. 당신이었다면. 헌터가 아니었다고 해도 좋아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이렇게 못생긴 사람을 왜 좋아하게 된 걸까?"

"알게 되면 나한테도 말해줘. 나도 궁금해."

거기까지 말을 해 놓고 지우는 작게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다. 지우가 잠든 걸 알고 임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지우의 곁에 누웠다.

임정의 차크라가 지우의 몸 곳곳을 파고 들었다. 두 사람의 차크라는 제법 잘 어우러졌다. 그것을 느낀 것은 이익헌이 지우의 차크라를 소름끼쳐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다.

임정도 지우에게 여러 가지의 차크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을 괴롭히고 싶을 때는 상성이 다른 차크라로 다른 사람의 온몸을 휘감아 누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평온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는 지우는 임정의 차크라를 온순하게 받아들이며 몸을 회복했다. 잠든 지우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 올랐다. 임정은 그런 지우의 얼굴을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지우의 턱 밑에 머리를 갖다 붙이고 지우의 팔을 끌어 제 몸을 두르게 하고 같이 누웠다.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렇죠?'

임정은 지우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일은 임정의 집무실로 헌터 협회 직원이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를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헌터 협회 직원이 치안대 건물에 직접 찾아와 치안대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를 그런 식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무척 중요한 용무가 있다는 것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기에 임정은 그를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내 주었다.

“헌터 협회의 정재군입니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하실 말씀이?”

정재군은 몇 초간 망설이다가 임정의 앞에 몇 장의 사진을 내놓았다. 익숙한 곳의 사진이었다. 그곳은 지우의 집 거실을 찍은 사진이었다.

임정은 정재군을 바라보았다. 이 사진을 왜 당신이 갖고 있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정재군은 자기 소개를 다시 했다. 자신은 헌터 협회 직원으로서 안재우의 늪이 나타난 아파트를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 같다는 말을 힘겹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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