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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85화 (8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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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이익헌이 휘두른 칼이 귀신늑대의 목 아래쪽을 베고 지나가자 귀신늑대는 앞다리를 뻗은 채 이익헌을 향해 돌진했다. 이익헌은 칼을 든 채로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예요?”

임정이 지우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직 아니야. 필요하면 우리를 찾을 거야.”

지우는 여유있게 관전을 이어나갔다. 귀신늑대는 다시 한 번 땅을 박차고 이익헌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익헌은 귀신늑대의 발아래에서 몸을 데굴데굴 굴리고 마지막에 몸의 반동으로 일어섰다. 귀신늑대는 이익헌의 론 디어가 앞다리 오른쪽 발목을 베고 지나가자 요란한 고함을 내질렀다.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되었지만 귀신늑대는 점점 화가 나는 것 같았다. 론 디어를 들고 이리저리 몸을 날리면서 귀신늑대를 몰아붙이던 이익헌은 싸우고 있는 헌터가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모두들 그를 지켜보기만 할 뿐 귀신늑대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뭣들 하는 겁니까? 왜 공격 기회를 안 노려요?”

이익헌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잖아요. 우리도 마냥 놀고 있는 건 아니라고요. 공부하는 거지.”

강현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사냥을 성공시키기 위해 차크라 안배를 하는 중이었다.

“클랜 내에서 자신의 지위가 노예라는 걸 인식하면 그쪽도 겸손해질 수 있을 텐데.”

태인이 말하자 이익헌은 허, 하면서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놓고 다시 귀신늑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귀신늑대는 이익헌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약을 하려고 하고 있었고 귀신늑대의 힘의 균형이 뒷다리에서 앞다리로 막 옮겨지려는 순간이었다. 이익헌은 전신에 차크라를 감싸고 귀신늑대가 앞 다리로 균형을 옮기려는 그 순간에 왼쪽 앞다리에 몸을 날려 귀신늑대를 밀쳤다. 귀신늑대는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헌터들이 날아와서 딜을 퍼부었다. 차크라 안배니 뭐니 해도 지금은 딜을 퍼부어야 할 때였다. 괴수가 주도권을 뺏긴 순간에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2급 괴순데도 전혀 밀리지 않네요.”

이익헌의 반대편에서 딜을 넣으며 지우가 서규태에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탱커 없이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슬슬 시간을 봐 가면서 싸워야 돼요. 여기까지 왔는데 시간이 다 돼서 괴수 체력이 리셋된다면 전부 다 빡 돌 걸요?”

서규태가 상황을 주시하며 말했다. 마침 이익헌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지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탱킹이 계속 필요할까요? 나도 딜 붓고 싶은데.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괴수한테서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딜러들은 그냥 일찍 죽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괴수가 무능력한 딜러의 살을 뜯어먹느라고 정신이 팔린 사이에 딜을 넣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익헌이 말하자 강현이 씩씩거렸다.

누구라고 특정을 하지 않아도 이익헌이 말하는 무능력한 딜러가 자기와 태인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것이다. 이익헌은 강현을 못 본 척하고 탱커 타투가 새겨진 팔을 빼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았다.

이익헌이 빠진 동안 그 자리를 서규태가 채우고 들어갔다. 서규태가 몸을 날리면서 공격을 퍼붓자 괴수의 체력이 시원하게 깎여 내려갔다. 하지만 서규태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이익헌이 딜러로의 변신을 마치고 등장할 때까지만이었다. C급 딜러와 B급 딜러의 공격력의 차이는 거기에 증폭률이 가미되는 순간 확연해진다. 드디어 팔을 갈아 끼우고 이익헌이 딜러로서 다시 레이드에 임했을 때 현장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귀신늑대는 머리를 이리 저리 돌리면서 날카로운 이로 헌터들을 위협했지만 그뿐이었다. 하나를 쫓으려고 하면 다른 곳에서 공격이 들어오고, 그쪽으로 정신을 파는 사이에 또 다른 곳을 칼이 가르고 지나가는 식이었다.

이익헌이 뭐라고 하건 말건 태인과 강현은 신중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면서 자기들이 해야 할 역할을 조용히 감당하고 있었다.

"자, 자. 이제 내 차롑니다. 소녀 주먹으로 백날 건들어 봤자죠. 귀신늑대 흥분이나 시키지 말고 멀리 떨어져있어요. 거치적거리지말고 조심들 하라고요."

이익헌이 말하자 태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일할 차례라고 저렇게 거들먹거리는 노예는 전무후무할 거야."

그러면서도 잠자코 뒤로 물러나 주었다. 이익헌은 잔뜩 뻐기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귀신늑대가 이익헌을 향해 돌아섰다.

“빨리 끝냅시다. 오래 보니 지겹네요. 귀신 늑대라는 것도.”

이익헌이 말했다.

2급 괴수를 보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익헌은, 이전 같았다면 절대로 시도해 볼 수 없었을 과감한 공격도 백업을 믿고 시도해 볼 수가 있었다. 자기가 어느새 클랜 A의 클랜원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이익헌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신체언어는 정확히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각자가 거인의 수족 같았다. 그들 모두가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괴물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동료들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고 서로가 기가 막히게 그곳을 채워 주었다. 몸을 사리지도 않았고 제 목숨을 아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게 치유 능력을 가진 탱커를 믿어서인지, 아니면 서로를 위하는 동료애 때문인지 이익헌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이들과 함께 싸우면 2급 괴수도 아무렇지 않게 제 발 앞에 꿇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흥분이 되는 것 뿐이었다.

“시간 없대. 조금 서두르자고요.”

저만치서 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한하게도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 가늠되지 않았다. 한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외치는 것처럼 첫 소리와 마지막 소리가 각각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이익헌이 고개를 들었을 때 안지우는 허공을 날고 있었다. 손에 무기는 들려있지 않았다. 도대체 저 인간이 뭘 하려고 저러나, 하고 멍하니 보고 있는데 지우의 오른 손에 푸른 물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거대하고 위압적인 차크라였다.

허공에서 지우의 두 다리가, 가위질을 하는 것처럼 어긋났다. 그러면서 지우의 몸은 더 높이 붕 떠올랐고 귀신늑대의 머리를 향해 내려앉았다. 귀신늑대의 머리에 먼저 닿은 것은 차크라로 푸르게 물든 손이었다. 귀신늑대는 제 앞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듯이 비명을 질렀다. 지우의 오른 팔이 허공을 베기 시작하다가 귀신늑대의 머리를 쪼갰다.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익헌의 가슴 속에서 꽃봉우리가 퐁,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대단했다.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감격스러웠다.

서규태를 비롯한 모든 딜러들은 그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가 귀신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들의 무기가 귀신늑대를 갉아먹었다. 귀신늑대는 그러는 동안에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익헌도 달려가 딜을 퍼부었다. 움직이지 않는 괴수에게 공격을 한다는 것이 치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익헌은 그러는 중에도 지우를 살펴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지우의 여자인지도 모르고 임정에게 깝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엉덩이 사이가 타들어갈만큼 소름이 끼쳤다.

지우는 의욕없이 딜을 부었다. 그럴만도 했다. 이 미친 놈의 시스템은 지우를 철저히 외면했다.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 공격을 할 때는 제 존재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데미지를 입히고 괴수의 체력을 깎아갈 때는 제 자신이 형편없이 느껴졌다.

이익헌이 이들의 클랜에 합류를 하고 클랜 A와 같이 레이드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정보창에서 괴수의 체력이 이상하게 변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익헌은 정보창에서 괴수의 체력을 나타내는 숫자가 1의 자리까지 바뀌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마땅히 물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만 끙끙 앓다가 그게 지우의 낮은 기본 공격력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우의 차크라 등급이 아예 끝까지 다 올라가서 공격력을 100퍼센트 다 지원 해 주면 모르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우는 차크라 등급으로 인한 지원을 60퍼센트만 받고 있었다. 기본 공격력 10의 60퍼센트라서 자꾸 6만큼의 데미지가 같이 들어가는 건데 그걸 보고 있으려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는 죽지 않는 존재인 괴수에게 강제로 일시적인 죽음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남자가, 공격력은 10이라는 게 웃겨 죽을 것 같았다.

‘혹시 웃겨서 죽게 하려는 게 저 타투의 비밀인 건가?’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제 이익헌을 빼고 다른 사람들은 지우의 공격력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헌터가 지우의 공격력을 조롱한다 것은, 수천억짜리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한테 카 푸어가 한 3억 정도 되는 차를 끌고 가서 재산 자랑을 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미친 시스템이 벌여놓은 판에서 놀아주느라고 10짜리로 평가받는 딜을 부어주고 있는 것 뿐이지 이제는 지우도, 다른 누구도 공격력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언젠가 임정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지우의 동료들이 지우의 무기가 되어 줘서 지우의 낮은 공격력을 완벽하게 커버해주는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레이드가 거의 끝나갈 무렵, 동료들이 차크라를 거의 소진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도와줄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속이 상했다.

그러는동안 태인이 손도끼로 귀신늑대의 다리를 찍고 차크라를 모아 배에 다시 가격을 했다. 그때 이익헌의 레이더가 발동했다. 태인은 자신에게 편하게 여겨지는 하나의 동작을 찾은 후 계속 같은 동작으로 손도끼를 날렸다. 손을 오른쪽 상단으로 높이 들어올렸다가 거기에서 왼쪽 하단을 향해 내리치는 것 말고 다른 공격 방법은 없었다. 공격은 단조로웠고 각도나 괴수와의 거리가 어정쩡할 때는 공격 기회를 날려버렸다. 오늘의 레슨은 이태인에게 해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익헌은 귀신늑대에게 다시 열심히 딜을 퍼부었다.

귀신늑대가 입은 치명상이 나을 때까지 집중적으로 공격을 한 결과 딜러들은 괴수의 잔존 체력을 10퍼센트 가까이 깎아 놓았다.

“귀신늑대가 회복됩니다. 딜을 멈추고 안전 거리를 확보해요. 지금은 탱커 없이 싸우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요.”

서규태가 말했다.

태인과 강현은 귀신늑대에게 마지막 딜을 넣고 뒷걸음질로 물러서며 충분한 거리를 벌렸다. 비슷한 공격이 몇 번 더 반복되었다. 지우가 귀신늑대를,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쓰러뜨려버리면 딜러들이 귀신늑대에게 데미지를 입혀 귀신늑대의 체력을 깎아냈다.

이제 괴수의 체력은 8백만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공략에 성공하면 드디어 귀신늑대의 러프스톤을 손에 넣게 될 터였다.

지우와 서규태는 사람들의 차크라량을 가늠했다. 강현과 태인은 현저히 지친 모습이었다. 지우가 서규태의 의견을 묻는 표정으로 서규태를 바라보자 서규태는 고개를 저었다. 태인과 강현 두 사람은 더 이상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B급, C급의 상급 헌터들로만 열 명을 구성해 채워서 공격대를 만들어 들어가도 공략 가능성이 높지 않은 2급 늪에 여섯 명의 헌터들이 도전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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