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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84화 (8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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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그들은 수시로 이익헌에게 관심을 드러냈고 놀랐고 감탄했고 떠들어댔다. 이익헌은 차라리 자기에게 그 사람들이 몇 급 늪 몇 개를 며칠 안에 공략하라고 미션을 주고 가만히 놔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자주 주어지지 않았고 그럴 때조차도 안지우는 꼭 옆에 붙어 있었다. 또 하나의 기다란 팔 같은 차크라를 이익헌의 어깨에 무겁게 두른 채로.

클랜원들은 전략적으로 쉬고 차크라를 회복하는 일에도 점점 능통해졌다. 개인 연습을 위해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5급 늪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는 일도 자주 생겨났다. 캐츠 아이 스톤이 특정 괴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후에는 한 군데의 늪이라도 더 들어가서 공략을 해 보려고 모두들 급하게 굴었던 것이다.

이제 체력 3백만짜리의 5급 괴수를 혼자서 처리하는 일은 지우를 제외한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 되었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었다. 지우가 같이 들어가서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괴수의 공격을 묶어주면 그 시간은 반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3분의 1까지로도 줄었다.

B급 딜러의 팔을 어깨에 끼운 이익헌은 기본 공격력 1000에 차크라등급과 무기의 지원을 받아 한 번의 공격으로 3000의 데미지까지 입힐 수가 있었다. 이익헌은 다른 사람들보다 차크라를 모으는 시간을 단축시켜서 1분이면 12번의 공격이 가능했고 수치상으로 혼자서 한 시간 만에 216만의 체력을 깎아낼 수가 있었다. 혼자서 괴수를 피하고 상대해가면서 매 5초마다 공격을 퍼붓는 것은 어려웠지만 지우가 함께 있어주기만 하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익헌도 갈수록 지우와 같이 하는 레이드에 재미를 느꼈다. 안지우가 감정의 교류나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조용히 같이 레이드를 해 주기만 한다면 최상의 파트너일 거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할 정도였다.

클랜 A가 함께 뭉치면 1시간 안에 5급 괴수를 사냥하고 나올 수가 있었다. 5급 괴수를 사냥하는데는 특별히 탱커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지우의 실력이 느는 동안 강현과 태인도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그들의 실력도 빠르게 성장했다. 전투 감각과 순발력이 모두 좋아졌고 5급 괴수의 공격 정도는 스스로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가 5급 늪만 공략하는 하급 헌터들의 원성이 나올 수도 있겠다면서 5급 늪의 사냥은 조절을 해 보자고 서규태가 말했지만 서규태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늪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

그날은 2급 늪을 공략하는 날이었고 모두들 이익헌의 실력을 기대하며 그 시간을 기다렸다.

강현은 임정의 옆에 머물러주다가 팀에 합류했다. 임정은 아이를 가진 후로 자주 신경질적이 돼서-그 전이라고 해도 딱히 성격이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지우보다 강현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임정의 설명대로라면, 김강현을 실망시키는 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데 지우를 실망시키는 건 너무 싫어서 그렇다는 거였다.

지우는 강현에게 미안해했지만 강현은 자기가 누군가에게, 특히 임정과 지우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를 가진 이후로 임정은 탱킹을 금지당했다. 임정이 탱킹을 하는 것은 다른 클랜원들도 모두 반대했다. 모두가 엄격히 정한 사안이어서 임정은 말을 해 볼 수도 없었다.

지우는 ‘우리 콩알’(이것은 지우가 제 자식에게 붙인 태명이다)을 다치게 할 수는 없다면서 임정의 걸음 하나 하나를 다 간섭하려고 들었고 임정은 미치지 않기 위해서 강현에게 피신을 하곤 했다. 다른 클랜원들도 그 집 콩알이 무사히 잘 자라주고 있는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제 임정과 마주치면 얼굴은 놔두고 배부터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정은 탱킹을 금지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겨우 우겨서 늪에 같이 들어가는 것까지는 허락을 받았다. 탱킹은 탱커 팔로 갈아끼운 이익헌이 대신 할 수도 있지만 부상당한 헌터를 치유하는 것은 임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클랜원들은 그 뜻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늪에 들어가기 전에 클랜원들은 각자의 무기와 장비를 챙기며 점검을 마무리했다.

“이 늪의 주인은 귀신늑대라는 이름이 붙은 놈이예요. 쉬운 녀석은 아닙니다. 귀신늑대를 상대하다가 부상당한 딜러들도 상당하고요.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해 봅시다.”

서규태가 말하자 모두들 눈을 빛내고 늪으로 들어갔다.

탱커 팔로 교체한 이익헌은 최고의 탱커였다. 실력이 전부인 늪 아래의 세계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이나 살인벽은 논할 것이 안 되었다. 이익헌이 자신의 공격성향을 괴수를 향해 온전히 쏟아내는 것을 볼 때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을 하곤 했다.

귀신늑대는 클랜 A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 확실해보였다. 클랜 A가 입장한 그 순간부터 날뛰면서 괴팍한 성정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괴수를 대하는 이익헌에게는 거침이 없었다. 이익헌은 론 디어를 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는 귀신늑대가 딜러들을 향해 관심을 돌리려고 할 때마다 바람처럼 움직여 귀신늑대의 시선을 잡아채갔다. 전투 센스만큼은 이익헌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익헌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싸웠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볼 것은 다 보고 있었다. 공략이 끝났을 때 이익헌이 누군가의 등 뒤로 다가가면 그 사람은 그 날의 레이드를 망친 장본인이 자기라고 조용히 깨달으면 되었다.

“나라면, 내가 팀에 민폐가 된다는 걸 알면 조용히 팀을 떠날 겁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면 이 팀도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겠죠.”

이익헌이 그런 말을 등 뒤에서 하고 지나가버리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라도 이익헌의 몸 속에 있는 파이널 폭탄을 터뜨리는 스위치를 당장에 눌러서 이익헌을 날려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나 죽으면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거야!”

누구를 막론하고 이익헌의 성질머리를 참느라고, 그런 말이 자동적으로 나왔다. 그래도 실력의 부족을 이익헌처럼 노골적으로 지적해주는 사람이 생겨나자 확실히 자극이 되기는 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촉진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귀신늑대는 2급 괴수답게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지만 덩치에 비해서 날렵한 분위기를 풍겼다. 얼굴 위에 붙은 귀는 하늘을 향해 바짝 서 있었고 고귀해보이는 부드러운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살기를 드러내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었지만 살기를 거둔 채 가만히 서 있는 귀신 늑대의 모습을 본다면 귀신늑대의 축소판을 집에서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세련되고 귀족적인 모습이 물씬 풍기는 괴수였다.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몸에, 날카롭게 튀어나온 발톱과 길게 뻗은 엄니가 귀신늑대를 엄호했다.

귀신늑대는 몇 번이나 딜러들을 공격하려고 하다가 매번 이익헌에게 가로막히자 제 모든 분노를 이익헌에게 쏟아냈다.

지우는 적당히 임정의 근처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이익헌의 레이드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서규태도 마찬가지였다.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그때는 힘을 다 해서 싸우겠지만 지금은 이익헌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서 바꿔서 쓰기 위해 무기를 모아 둔 곳에는 특이하게도 딜러의 헌터 타투가 생겨진 팔이 놓여 있었다. 여차하면 이익헌은 팔을 갈아끼우고 방어력을 포기한 채 공격력을 높여 괴수에게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이익헌이 그러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은 다른 딜러들을 믿지 못하게 됐다는 뜻인 거라서, 강현과 태인은 이익헌이 씩씩거리면서 팔을 갈아끼우는 순간이 다가오면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실력은 월등하네요.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사람들 중에 최고예요.”

임정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우의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지우는 헌터로 각성한지 1년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였다. 그런 그가 엄청난 노하우를 축적한 이익헌과 자신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임정의 말에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헌은 서규태보다도, 그리고 임정보다도 실력이 월등했다.

각자에게 자신의 스타일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임정은 영리하게 싸우는 대신 과감한 부분에 있어서는 이익헌에게 뒤졌다. 서규태도 그 점에 부족함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식사를 하다가 식탁 아래에서 불쌍하게 바라보는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면 자기가 뜯던 닭다리를 가만히 내려놔 줄 사람들이었지만 이익헌은 애초에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을 것이며 만약에 눈이 마주치더라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손가락에 남은 국물까지 쪽쪽 다 빨아먹고 뼈를 정리할 사람이었다. 그런 매정함과 단호함 같은 것들이, 괴수의 몸에 칼을 찔렀다가 빼내는 마지막 순간에도 묻어나왔다.

이익헌의 우월한 기럭지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은 괴력이라고 할 정도였다. 신기한 것은 그의 동작에 과함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100을 투입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물이 있다고 하면 그는 정확히 100만큼만 투입을 했다. 100.1을 투입해서 0.1을 낭비하는 일은 스스로도 허용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가서 지적질을 해 주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강현은 네메시스로 괴수를 공격할 때 사전 동작을 과도하게 했다. 꼭 기사에게 작위를 내리면서 기사의 어깨에 검을 내리는 백작처럼, 강현은 괴수를 제대로 치기 전에 몇 번을 쓸데없이 톡톡 내리쳐 놓은 다음에 공격을 했다. 그건 괴수로서도 기분 나쁠 일이었다.

이익헌은 강현에게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말하고 한 번에 기합을 넣고 바로 베라고 했다. 그 말투는 당연히 좋지 않았고 강현은 자기가 왜 이익헌에게서 그런 지적질을 당해야 하는 건지 이해도 안 되고 분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강현에게 말을 못 했다뿐이지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해오고 있기는 했었다. 한 두 번이야 그냥 그렇다고 칠 수도 있겠지만 일곱, 여덟 시간을 계속해서 이어지는 레이드에 그런 동작이 매번 이어진다고 하면 1분에 수 십 번, 한 시간에는 수 백 번을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힘을 낭비한다는 뜻이 되었다.

도움을 구하는 강현에게 모두들 그 말이 맞다고 하자 강현은 샐쭉해진 채 습관을 고쳐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중에 그런 동작이 다시 나오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 동작을 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저도 느꼈는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이익헌이 노려보고 있다가 잔소리를 했다.

그런 일은 자기가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그게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인지 알지 못한다. 태인도 강현을 보면서 키득거리기만 하다가 이익헌에게 꼬투리를 잡히고나자 저절로 강현을 향해 측은지심이 생겼다.

이제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레이드 도중에 불필요하게 차크라를 소모하는 일을 해 놓은 다음에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이익헌의 눈치를 살폈다. 그것은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이익헌은 제 공격에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어서 누가 어디에서 실수를 하건 간에 그 현장을 놓치지 않고 꼭 보고 있었다.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실수를 하고 고개를 들어서 이익헌을 보면 언제든지 미리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이익헌의 시선에 걸려들게 되어 있었다. 무슨 저런 쓸데없는 재주가 다 있는 건가 하고 모두가 분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때의 이익헌의 눈빛은 꼭, 저렇게 하잘 것 없는 인간도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 라는 것 같은 눈빛이라서 그 눈빛을 받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팍팍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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