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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A급 헌터들이 왜 당신한테 정보를 준 건지 말해봐."
지우가 말했다.
"우리는 사건을 공유하죠. 재생능력을 가진 탱커는 나뿐이라서 그 사람들은 내가 일으킨 사건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예요. 팔이 없는 게 나한테는 더 유리하게 작용했죠. 언제든지 다른 팔을 끼워넣을 수 있었으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은 나처럼 효과적으로 신분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자기들이 직접 나서서 일을 저지르려면 그 높은 곳에서 추락할 각오를 해야 하는 건데. 그러기에는 너무 높이 올라가버린 거죠."
냉소적인 목소리로 이익헌이 말했다.
“모든 사람의 기대와 존경을 한 몸에 받다가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해 봐요. 어떻게 살겠어요? 처음부터 바닥에서 살던 사람이 계속해서 바닥에서 사는 거랑은 다른 얘기인 겁니다.”
이익헌의 눈이 어느새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셋 뿐인 A급 헌터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최고 성직자, 어떤 중요한 기관의 대표나 세계적 기업의 CEO 할 것 없이 아무리 존귀한 자리에 있다고 해도 모두 대체될 수 있지만 A급 헌터들은 대체될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사고를 당해 죽는다면 또다른 A급 헌터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A급 헌터의 수가 그만큼 줄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A급 헌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으로의 이민이 광풍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그 중에는 슈퍼 리치의 행렬도 포함되었고, 미국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특별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이 다시금 세계 경제 대국의 위상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A급 헌터의 의미란 그런 것이다. 토네이드가 지나갈 때 쉘터로 숨어 들어가듯, A급 헌터가 지켜주는 나라에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믿으면서 사람들이 그들의 그늘 아래로 몰려드는 것이다. 1급 괴수가 출몰하게 되는 날, 그들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어줄 거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실상이 어떤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임정과 지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격력과 방어력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높아질 테니 괴수에게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익헌은 부지런히 눈을 굴렸다. 뜻하지 않게 캐츠 아이 스톤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정보로 자기가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자 이익헌의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A급 헌터들과의 교류가 자신을 살릴 수 있다면 그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라도 전부 뽑아다 팔 자신이 있었다.
지우는 이익헌의 상태를 살폈다. 수갑과 족쇄는 견고했고, 그의 몸을 칭칭 감아 묶은 밧줄도 전혀 느슨해지지 않았다. 차크라의 양은 형편없이 낮아져 있어서 지우가 이익헌의 몸에 다시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을 재생시키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A급 헌터가 없다면 1급 늪을 공략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공략이 끝날 때까지 차크라를 유지할 수 있는 헌터도 없을 거고.”
이익헌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1급 공략에 A급 헌터가 꼭 필요하다고 믿게 할 수 있으면, A급 헌터들과 인맥이 있는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세운 전략이었다.
“그거야 나중 일이지.”
지우가 말했다.
“그렇게 한가하게 말할 것도 아니예요. 이상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니까. 세계는 지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익헌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이상징후?”
“1급 늪이 몇 몇 곳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요. 그 정보는 지금 통제되고 있지만. 아마 헌터 협회장이랑 대통령 정도에게만 보고가 되어 올라갔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예요. 정보를 통제한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없던 걸로 되는 건 아니니까.”
“치안대도 모르는 일이라고?”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런 일이라면 헌터 협회장보다는 치안대에서 더 일찍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치안대장이라면 보고를 받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이익헌이 말했지만 임정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도 그 소식은 들려온 적이 없었다.
“다른 늪들처럼 0.5mm씩 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오픈일이 다가오는 중이예요. 느린 속도로 자라고는 있지만 나중에 1급 늪의 입이 열리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하겠죠.”
이익헌이 말을 이었다.
“그럼 얼마나, 어떤, 속도로, 늪들이…….”
너무 많은 것을 급하게 물으려다보니 임정이 하는 말이 자꾸 꼬여서 나왔다. 임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심호흡을 했다.
“늪이 어떤 속도로 자라고 있다는 거지?”
임정이 물었다.
“제각각입니다.”
“그런 늪이 얼마나 되는 거야.”
“알려진 건 네 개예요.”
“알려졌다는 건 무슨 뜻이지? 누구한테 알려졌다는 거야.”
“A급 헌터들이 공유한 정보라는 뜻입니다.”
이익헌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정보를 아끼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임정은 어느 새 이익헌에 대한 대우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속도를 유지하기는 하는 건가?”
“무슨 말인지 압니다. 맞아요. 속도를 유지하면서 커져요. 최근에 성장을 시작한 1급 늪 하나는 하루에 0.08mm씩 자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픈일을 가늠할 수는 있겠군. 일단.”
임정이 기대하는 눈으로 물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그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A급 헌터들이 뭉쳐야 할 거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고요.”
“그걸 치안대장한테도 알리지 않고 지금까지 정보를 통제했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임정은 드디어 화를 터뜨렸다. 이익헌은 잠시 혼란스런 표정을 짓다가 놀란 얼굴로 입을 벌렸다. 벌리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저절로 벌어져버렸다. 지우도 거의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임정은 지우에게 자신이 치안대장이라는 사실을 언젠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임정은 지우가 배신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자기가 치안대장이라고 말하면 지우가 멀어질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불안감을 느껴 그랬던 거라는 것을 지우에게 천천히 설명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우는 그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와우. 그 정도까지인줄은. 정말 몰랐네.”
그렇게 말한 것이 전부였다.
“화난 거 아니예요?”
“오늘은 뭐. 일단은. 웬만한 것들은 다 용서해 줄 생각이야.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우니까. 그러니까 나 모르게 잘못한 게 있으면 오늘 전부 다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두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그 사이에서 이익헌은 부지런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는 정보의 조각을 맞춰서 연결을 하려고 열심이었다.
“그렇게 예측된 오픈일이 언제지?”
임정이 이익헌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죠. 이 1급 늪들도 다른 늪들처럼 3미터가 됐을 때 괴수들이 튀어나올지 아니면 더 커진 후에 나올지. 다른 늪들처럼 3미터라고 한다면 첫 1급 늪의 오픈일은 17일 후가 될 겁니다.”
“17일 후…….”
임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기가 어디야. 그 늪이 나타났다는 곳.”
지우가 물었다.
“미국 동북부예요.”
“그런데 왜 아직 A급 헌터들이 나서지 않는 거지?”
“치안대와 비슷한 이유 아닐까요? 다른 공격대가 나서기를 기다리면서 위험을 피하려고 하는 거겠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그때는 한껏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려고 할 거고요.”
이익헌이 말했다.
“A급 헌터들이 괴수를 놓칠 확률은?”
지우가 물었다.
지우는 A급 헌터들을 믿었다. A급 헌터들이 협력을 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1급 늪의 괴수라고 하더라도 공략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잡을 확률보다 훨씬 더 높겠죠. 열 배 이상 높을 겁니다.”
지우는 이익헌의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정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것이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안전할 거야.”
지우가 임정에게 말했다.
임정은 지우를 바라보다가 이익헌을 보며 물었다.
“당신. 캐츠 아이 스톤을 구할 방법을 알아낼 수 있나?”
“캐츠 아이 스톤이 나오는 건 무작위라서 장담할 수 없어요. 다른 A급 헌터들이 그것을 어떻게 얻었는지 상세하게 물어봐줄 수는 있지만 그게 캐츠 아이 스톤을 찾는데 도움은 안 될 겁니다.”
대충 간단하게 말을 하고 자기가 살 길을 도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익헌은 이야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멍청할 정도로 솔직해져버리고 말았다. 얘기를 듣는 동안 지우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미국 동북부에 나타날 괴수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는지 임정은 과도하게 불안에 떠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A급 헌터가 되는 것이 지상 유일의 과제인 것처럼 구는 임정이 그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히 임정이 아직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지우가 묻자 임정이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이익헌이 있는 곳에서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저 사람한테는 지금 남아있는 차크라가 거의 없어. 구속구도 안전하고. 할 얘기가 있으면 잠깐 나가서 얘기할 수도 있어.”
지우가 말하자 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지우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기가 치안대장이기 때문에 1급 괴수가 출몰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그런 사명감을 가져서 저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우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에 정말로 1급 괴수가 출몰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는 임정에게 치안대도 그만두고 레이드도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임정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지우는 임정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릴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등 뒤로 문을 닫고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말해봐. 그게 왜 자기한테 중요한지. A급 헌터가 되는 게 말이야.”
지우의 목소리가 다소 사납게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런 말에 임정이 울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기에 임정의 갑작스런 눈물을 보고 지우는 크게 당황했다.
“왜, 왜 그래, 정아.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지우가 임정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시 그 손으로 임정의 얼굴을 감싸며 물었다.
“나는 지우씨랑 있는 게 좋아요. 지우씨랑 같이 웃는 게 좋아요. 그 이상의 행복을 상상할 수는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임정은 지우의 얼굴을 보았다. 지우가 얼마나 큰 혼란에 휩싸여있는지 알 수 있었기에 빨리 지우에게 말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어떻게 꺼내야 하는 건지, 임정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임정은 세련미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방법으로 그 일을 고백하고 말았다.
“나. 임신했어요.”
“뭐?”
“우리 아이예요."
"당연히 그렇겠지."
지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 아이 지키고 싶어요. 1급 늪에서 괴수가 나오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우리 아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끔찍할 거예요.”
“……!”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아이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지우는 한 손으로 임정을 안았다. 그의 품 안에 안긴 임정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것은 점점 커졌고 임정은 오열했다. 괴수가 출몰하는 혹독한 세상에서 아이가 겪을 고통과 두려움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마워. 그리고. 우리 아이는 우리가 지키자.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어.”
지우가 임정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저를 바라보게 했다.
“내가 그렇게 할 거라는 거 알지?”
임정은 지우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그게 되는 수밖에 없겠군. A급 헌터. 강해지겠어. 내가 더.”
지우는 임정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이익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이익헌은 피곤한 듯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우는 이익헌을 향해 곧장 다가갔다. 이익헌은 다시 폭행이 시작되는 건 줄 알고 움찔하며 손으로 배를 가린 채 고개를 파묻었다. 하지만 지우는 이익헌을 그대로 지나쳐 이익헌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신호가 가자 서규태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서규태는 모르는 번호가 뜨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듯했다.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이익헌 부사장 전화깁니다. 전 지우고요. 써전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
서규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클랜 A에 새로 들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 의견을 모두 듣고 결정을 하겠지만 우선은 써전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누굽니까.”
“론 디어. 이익헌입니다.”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