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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79화 (7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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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임정도 잠시 고민을 하더니,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어차피 거기에서 죽지 않을까? 무기가 있건 없건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은데? 무기를 가져간다고 살아나올 수는 없을 거야. 혼자서는. 말도 안 돼. 불가능한 얘기야.”

“그래도 구경하는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요? 지우씨는 이 남자를 언제든 제압할 수 있죠? 맞죠?”

임정이 물었다.

지우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정의 커피숍에서 한 번 겨루었던 이후로 이익헌은 더 이상 지우를 향해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해 오지 못했다. 몸에 패배의 기억이 각인된 탓이었다. 몸의 세포들이 전부 지우의 공격성과 살의를 기억하고 있다가 일제히 움츠러들었다. 이익헌의 차크라마저도 그랬다. 그랬으니 이익헌이 갑자기 늪에서 튀어나오는 상황이 걱정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선아영이 만들어준 구속구라는 것도 꽤 쓸만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익헌이 끊임없이 시도를 했는데도 구속구는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 그러지.”

지우는 익헌에게 무기를 주기로 했다. 익헌은 그게 제 발을 풀어준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가 두 사람의 비웃음을 샀다.

“네 사무실에 있는 거지? 거기에 가서 내가 가져오지.”

지우가 말했다.

“그럼 그동안은 이 사람 옆에 내가 혼자 있어야 된다는 말이잖아요.”

임정이 살짝 겁이 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바람에 지우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자기가 갔다 와. 이익헌. 당신은 비서한테 연락을 해 놔.”

“여기서는 전화가 안 돼요. 해 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임정이 말하자 이익헌이 고개를 저었다.

“제껀 됩니다.”

지우는 귀찮아하면서도 이익헌의 귀에 그의 스마트폰을 가져다 주었다. 그랬다가 이익헌이 구조 요청을 하면 어쩔 거냐고 임정이 말하자 지우는 가볍게 대꾸했다.

“그러려면 그러라지 뭐.”

이익헌은 비서에게 임정이 올라갈 거라는 사실과, 임정이 올라가면 문을 열어주라는 말을 전했다. 임정은 이익헌에게서 서랍 열쇠가 있는 키홀더를 받아든 채 이익헌의 집무실로 향했다.

순조롭게 그의 사무실에 도착해  서랍을 열고, 그의 서랍에서 나온 것이 잘 관리된 론 디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임정은 몇 초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눈 앞에 론 디어가 나타나니 그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임정이 론 디어를 가지고 돌아갔을 때는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준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익헌은 자꾸만 버티면서 주저했다. 그 행동이 꽤나 수상쩍었다.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이대로는'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모양새였다. 그러면서도 쉽게 제 요구사항을 말하지는 못하고 이리저리 빙빙 돌리기만 하더니 이익헌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더요. 그런데 거기에는 나도 같이 가야 됩니다.”

“뭔데 그래? 왜 우리가 가면 안 되는 거지?”

이익헌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꼭 챙겨가야 할 물건이 금고에 들어 있고, 그 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홍채 인식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 이 두 사람이 주저하지도 않고 자신의 눈알을 도려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참을성 없는 임정이 화를 냈을 때는 이익헌도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호, 홍채, 인식인데, 눈을 빼내지는 마세요. 눈은 있어야 싸우죠!”

지우는 이 사람이 그동안 그걸 걱정하고 있었던 건가 하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고는 지하 6층의, 그들이 있던 방 가까이에 있었다. 세 사람이 방을 옮겨 금고에 다가갔을 때, 이익헌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얌전히 금고를 열었다. 육중한 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지우와 임정은 처음에 자기들의 눈앞에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금고 안에 소중하게 들어차 있는 이익헌의 콜렉션이, 타투가 새겨진 헌터들의 팔이라는 사실을 머리로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눈으로는 전부 봐 버렸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너무 컸던 탓이었다.

이익헌은 두 사람의 옆에 선 채로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가져가기 힘들 것 같으면 중앙에 있는 걸 챙겨주세요. 그게 공격력이 제일 높아요. B급 딜러에 차크라 등급도 높고.”

임정은 그 안에 있던 팔들을 전부 꺼내서 하나씩 확인을 했다.

“론 디어가 이익헌 부사장이라는 건 이로써 완전히 확실해진 거네요. 이 팔들, 더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사라진 헌터들의 등급이랑 일치해요.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등급이랑 경험치, 모두하고 맞아요. 이런 게 전부 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임정의 말에 지우는 이익헌을 노려보았다.

“하나를 더 가져갈 여유가 있으면 B급 탱커 팔도 하나 넣어줘요. 우선은 방어 위주로 가다가 싸워야 하나? 팔 두 개 가져가는데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늪에서 팔을 바꿔가면서 싸울 수 있으려나? 차크라 소모가 관건인데.”

이익헌은 외출할 때 낄 장갑을 고르는 것처럼 말했다. 제 생각을 말하다가 지우에게 말을 하다가, 도무지 제정신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우는 익헌이 말한, B급 탱커의 타투가 새겨진 팔을 보았다. 천기정의 커피숍에서 봤던 그 팔이었다. 이 팔들을 그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익헌이 그들을 마지막 순간에 제압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익헌이 B급 탱커와 딜러들을 상대로 꿀리지 않고 전투를 치른 것만큼은 사실일 거라는 생각에 지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우와 임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내 돈으로 살 테니까 무기는 몇 개 새로 살 수 있게 해 줘요.”

이익헌의 머릿속에는 이제 온통 그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혼자 1급 늪에 들어가서 괴수를 죽이고 살아서 나와야 하니,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이 헌터들은 어디에 있나.”

임정이 물었다.

“알려주면 조금은 감경해줄 겁니까? 나한테 내리는 형벌요. 그렇게 해 줘요. 알아요. 나도.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걸. 그렇지만요. 그래도.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이익헌은 자기가 비굴하게 뭔가를 구걸해야 한다는 상황에서 굴욕감을 느꼈지만 기회를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닥치고 그냥 말해. 상처없는 입으로 말하는 게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거다.”

“…….”

이익헌은 협상의 여지가 없겠는가 하는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말해. 헌터들은 어떻게 됐어.”

임정은 이익헌이 거짓말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팔을 잃은 헌터의 시체를 봤기 때문이다.

“헌터들은 죽었습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꽤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묻지마 폭행을 해서 사람들을 죽게 한 것도 너지.”

이익헌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닌 건 아니지만 네 입으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인가?”

지우가 다시 물었을 때는 은근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해라.”

거기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백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하네요.”

임정이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익헌의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임정이 들고 있는 론 디어와 이익헌은 여러 건의 죽음에 같이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늪에서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해도 별로 불쌍할 것 같지 않군.”

지우가 말하자 이익헌이 심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렇게 하는 건 안 되겠습니까? 5급 늪에서 먼저 해 볼게요. 1급 늪에서 혼자 괴수를 죽이는 게 나한테 내려진 형벌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요. 그런데, 가능성을 조금 높일 방법을 찾게 해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가 아니잖아요. 아니. 무리한 요구죠. 네. 무리한 요구라는 건 맞죠. 저한테는 요구를 할 권리라는 게 애초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만. 조금만 사정을 봐주세요. 죽고 싶지는 않다고요. 그리고 잘만 되면 치안대에도 좋은 일이잖아요. 네?”

이익헌은 갑자기 그 논리가 떠오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부분으로 집중을 해서 공략하기 시작했다.

“1급 늪이 곧 오픈되리라는 건, 아는 사람들은 전부 알아요. 그래서 외국에서는 벌써 A급 헌터들을 육성하려고 캐츠 아이 스톤을 모으기에 나선 거고요.”

“뭐라고?”

임정이 물었다.

“캐…츠 아이 스톤요.”

“캐츠 아이 스톤?”

지우와 임정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A급 헌터를 육성한다고? 캐츠 아이 스톤이라는 게 A급으로 올라가기 위한 조건이야?”

임정은 왠지 다급해진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죠. 캐츠 아이 스톤은 A급 헌터를 만드는 염색체 같은 거죠. 아니. 이건 그냥 비유를 한 거고. 캐츠 아이 스톤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을 하면 캐츠 아이 스톤이 정말로 염색체인 줄 알겠네.”

이익헌은 어느덧, 자기가 꽤 가치있는 정보를 쥐었다는 것을 깨닫고 기고만장해졌다.

“캐츠 아이 스톤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봐.”

지우가 말했다.

협회장에게도 시간이 걸리는 정보를 이익헌이 알고 있다는 것은 다소 의외였지만 바디 펌의 정보력과, 바디 펌이 세계적으로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어다.

“캐츠 아이 스톤이라는 게 있어요. 러프 스톤과 별개의 스톤인데 괴수 사체에서 나오죠. 캐츠 아이 효과가 나타나는 보석이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스톤 중앙에 고양이 눈처럼 줄이 가 있죠. 그건 흰색일 경우도 있고 노란색일 경우도 있는데 색이 중요한 건 아니고. 캐츠 아이 스톤을 보게 되면 곧바로 알게 될 겁니다. 이게 캐츠 아이 스톤이겠구나 라는 걸요. 캐츠 아이 스톤은 괴수의 종료에 따라서 나오는 게 아니라 무작위인 것 같았어요. 2급 괴수들한테서 나온 경우가 많았지만 3급 괴수한테서 나온 적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몇 등급의 괴수한테서 나오는지도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A급 헌터들한테서 얻어낸 정보에 의하면 말입니다.”

“그 정보를 A급 헌터들한테서 얻어냈다고? A급 헌터들이 어떤 조건으로 그 정보를 내준 거지?”

지우가 물었다.

국가 차원에서 통제될 고급 정보를 헌터들이 순순히 내줬을 리는 없었다.

“그 사람들도 결국에는 나랑 비슷한 인간들인 겁니다. 레이드를 하는 동안에는 욕구를 해소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충동을 다스릴 방법을 찾아서 어두운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부류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서 싸워달라고 하고, 자기들을 위해서 괴물이 돼 달라고 한 것 아닙니까? 그래놓고,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거잖아요."

"헌터가 괴물이라고?"

임정이 물었다.

"레이드를 몇 번이나 해 봤죠?"

이익헌이 물었다.

"어린애 취급 받기에는 좀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임정의 말에 이익헌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비웃으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지만 웃음 소리는 그렇게 나와 버렸다.

"나도 헌텁니다. 이 팔은 내 팔이 아니죠. 어떤 괴수놈 아가리에 들어갔는데 그때 내 능력으로는 잘려버린 팔을 다시 돋아나게 할 수는 없었어요."

이익헌이 자신의 어깨를 만지면서 말했다. 수갑에 채워진 채여서 다른 손도 무력하게 따라 올라갔다.

"그 일이, 좀, 시간이 흐른 후에 일어났다면 나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뭐, 그런 얘기야 필요없는 거고."

이익헌은,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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