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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임재욱은 용모도 수준 이상이고 돈은 긁어들이는 것처럼 벌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남자가 결혼 한 번 했던 것, 아이가 딸린 것이 무슨 흠이 되냐고 하는데 그런 거야 선아영도 흠으로 삼지 않았다. 그저 임재욱이라는 인간이 싫을 뿐이었다.
아영이 봤을 때 임재욱은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치안대장에 오를 만큼 실력도 뛰어나고 촉망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모든 매력이 아영의 앞에서는 도무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왜 싫은지 묻는다면 아영도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이 좋고 싫은 것에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답답하지도 않을 터였다.
아영이 재빨리 돌아섰지만 임재욱은 아영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
“선 대표님 아니십니까?”
아니라고 하고 모르는 척 지나가버리고 싶은 생각에 아영은 걸음을 서둘렀다.
“어어! 공격 증폭률이 300퍼센트래. 300퍼센트. 괜찮은 것 같지 않아?”
지우는 강현에게 열심히 얘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영이 그때 고개를 숙인 채로 코너를 급히 돌면서 걸어나가지 않았다면 아영이 지우와 부딪쳐 넘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둘이 똑같이 부딪쳐 넘어졌지만 아영은 제 얼굴을 손으로 감싸면서 비명을 질렀고 지우는 멀쩡했다.
순간적으로 차크라가 둘러져서 지우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아, 정말 죄송해요.”
지우가 말했다.
“아뇨. 제가 앞을 안 보고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숙였다.
임재욱은 더 이상 다가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선아영을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웬 멍청이들이 나타나서 선아영을 가로챈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눈에 봐도 사체 운반이나 하는 하급 헌터들 같았다. 봐 두었다가 나중에 인생을 꼬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 그래도, 부딪쳐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냐 싶어서 우선은 그냥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임재욱이 지우와 강현을 몰라서 내린 오판이었다.
“아니예요. 제가 정신을 딴 데 팔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지우가 다시 물었다.
“네.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제가 바닥을 보고 걸어서 그래요.”
“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거든요. 코가 막 빨개지네요.”
지우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말했다.
“네?”
“코피도……. 흘러요.”
“으윽…….”
아영이 손등으로 대충 수습을 하고 있는데 손수건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 잠깐 빌릴게요.”
손수건을 받아 코피를 닦는데 아영은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냥 이런 상황이 전부 우습게 느껴졌다.
지우는 잘못해 놓은 게 있어서 웃지도 못하고 서 있었고 강현 역시 벌 받는 아이처럼 잔뜩 긴장한 채 지우의 옆에 딱 붙어서 서 있었다. 아영의 코에서 코피가 멎자 두 사람의 긴장도 풀어졌고 강현은 두 눈에 가득 호기심을 담은 채 아영을 바라보았다.
“헌터신가봐요? 당연히 헌터시겠죠. 여기는 헌터가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잖아요.”
강현이 물었다.
“아뇨. 아니예요. 저는 여기에서 일해요.”
“아아. 여기 직원은 헌터가 아니어도 여기에 올 수 있겠네.”
지우가 말하자 강현이 지우를 재촉했다.
“형. 저 저녁에 약속 있어서 빨리 다른층도 둘러봐야 돼요. 서로 잘못했고 두 분 다 많이 다치지 않았으니까 이제 헤어져도 되는 것 아니예요?”
“그렇지. 쿨하네. 그렇다네요. 얘가 바빠서. 혹시 나중에 더 아파진다거나 하면 저한테 연락주세요.”
지우는 제 손에 전화번호를 적었다. 남의 전화번호를 급하게 받아 적을 때 하던 짓이었는데, 제 번호를 아영에게 알려줘야 하는 상황에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어쩌라고요? 그 손은 이제 제가 가지면 되나요?”
아영이 웃으면서 말하자 지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손은 여분이 따로 없어서요. 이건 드리질 못하고. 머리 부딪치면서 바보가 됐나보네요. 이걸 보고 입력하시면 되겠죠?”
“네. 그러면 되겠네요.”
그걸 부딪쳤다고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영은 기어이 지우의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입력해 넣었다.
“맞죠?”
아영은 제가 입력해 넣은 번호를 보여주었다.
“아. 혹시 그러시려나 했는데 역시나 그러셨네요. 0이 아니라 6이예요. 제가 6 꼬리를 짧게 쓰는 버릇이 있어서.”
“아. 큰일 날 뻔 했네요.”
“큰일은 무슨 큰일. 코 부딪친 걸로 후유증 생길 일 없거든요? 하는 짓이 꼭 자해공갈단 같네.”
두 사람이 하는 짓을 보고 있던 강현이 기어이 한 마디를 하고는 지우를 잡아끌고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지우는 끌려가면서 인사를 했고 아영도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너 봤어?”
지우가 강현에게 물었다.
“뭘요!!”
“손잡이. 칼 손잡이. 그립감도 엄청 좋을 것 같고 간지가 좌르르르 흐르더라.”
지우와 강현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아영은 저도 모르게 실망을 했다.
‘너 봤어?’ 라는 말이 들릴 때부터 귀를 바짝 키웠는데.
저 여자가 나 보고 웃었어, 라든지 저 여자가 나한테 관심있나봐, 라든지 저 여자 진짜 예쁘지와 비슷한, 뭐 그런 말이 나오려나 하고 잔뜩 기대를 했더니 뭐? 칼 손잡이? 그립감?
‘처음 온 사람 같은데. 신규 고객 대상으로 무상 대여 이벤트 같은 걸 해 볼까? 추첨방식이라고 하고 마지막에 이 번호로 연락을 하고. 그랬다가 들키면 사기라고 지탄받으려나?’
아영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상상의 날개를 무한으로 펼치고 있었다. 그러느라고 아영은 임재욱이 가까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치신 겁니까?”
가까이에서 임재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영은 깜짝 놀라서 몸을 들썩거렸다.
“뭡니까? 그 사람들은.”
임재욱은 에스컬레이터 쪽을 노려보며 물었다.
“괜찮으시면 저는 미팅 때문에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아영이 말했다.
괜찮지 않다고 하더라도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임재욱은 기회를 놓치는 게 싫었는지 아영의 앞을 막아섰다.
“‘익스트림 헌터’에서 놓치면 안 되는 계약건이 있어서 온 겁니다.”
“그 일이라면 담당자를 소개해 드리죠.”
“그건 대표님과 직접 얘기하고 싶은데요.”
“중요한 일이었으면 미리 공문을 보내주셨다면 좋았을 걸 그랬네요. 죄송합니다. 먼저 잡힌 일정이 있어서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임재욱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아영은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려다가 방향을 바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빨리 내려오지 않으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임재욱과 다시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지우와 강현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열심히 뭔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얼핏 봤을 때 F등급 헌터인 것 같았다.
나이로 봐서 한 사람은 헌터 각성이 된지 한참 지났을 것 같은데 아직 F등급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사람의 속사정을 알지 못한 채 함부로 판단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F급이라면 헌터로서 실력이나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자기가 왜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건지, 아영은 알 수가 없었다.
지우와 강현은 단검 종류가 진열된 매장 앞에 서 있었다.
“김강현. 이거 봐. 내 생각엔 이게 맞는 것 같아.”
지우가 강현에게 단검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강현도 지우의 머리 옆으로 머리를 들이밀면서 단검의 날을 바라보았다.
“제 생각에도 상당히 비슷한 것 같긴 하네요. 괴수한테 찔러 넣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괴수를 어디에서 구하냐?”
“괴수를 못 구하면 괴수 사체라도.”
“괴수 사체는 어디에서 구하겠어?”
그러면서 지우는 점원을 바라보았다.
점원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일단 찔러보면 좋겠는데.”
지우가 미련을 못 버리고 말하자 점원이 지우에게 대여를 권했다.
“렌트 서비스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저희 ‘익스트림 헌터’의 많은 고객들이 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계십니다.”
“아. 저희는. 이걸 사용해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 칼이 저희가 찾는 칼이랑 같은 종류인지 그걸 확인해 보고 싶은 거거든요.”
“그러면 6시간 대여 서비스를 이용해보세요.”
“6시간 빌리는데 얼만가요?”
강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40만원입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하루 일당이네. 거의. 그럴 수는 없지.”
“그러게. 돈지랄이지. 우리가 무슨, 이걸로 범법자를 잡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호기심 때문에 하는 일에 돈을 이렇게까지 쓸 수는 없지.”
지우도 단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돌아섰지만 열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세 번은 고개를 돌려 단검을 바라보았다.
점원은 그 겨루기에서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들의 앞으로 선아영이 나타났다.
지우와 강현은 선아영을 알아보았다.
“왜요? 후유증이 벌써 나타난 것 같아요?”
강현이 물었다.
어째 강현은 이 여자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없지만 이 여자가 임정의 연적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불길하게 들었던 것이다.
“아뇨. 그런 이유가 아니라. 두 분이 하시는 얘기를 우연치않게 들었거든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선아영이 말했다.
“어떻게요?”
지우와 강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뭘 하는 사람인데 이런 제안을 하는 건가 했다.
“대표님…….”
점원이 나와서 선아영에게 허리를 숙였다.
“대표래. ‘익스트림 헌터’ 대표?”
강현이 지우에게 물었다.
지우도 아는 바가 없었기에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지우는 선아영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기가 발견한 그 단검이 문제의 헌터가 사용하던 무기와 일치하는지, 그렇다면 그 무기를 사갔던 사람들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지 그것만이 궁금했다.
당연히 일반인에게 함부로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치안대원인 임정이라면 그 일을 능숙하게 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집무실에 괴수 사체가 담겨있는 바디 팩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이 론 디어(lone deer)를 사용해 보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론(loan) 디어요?”
지우가 물었다.
“이 단검의 이름입니다.”
“론 디어를 사용해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정확히 무슨 말씀인가요?”
“저희는 큰 고객들을 위해서 바디 팩을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괴수 사체를 저장하고 있는 거죠. 고객분들 중에는 무기의 성능을 그 자리에서 시험해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아. 저기.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저희는 작은 고객이예요. 아직은 고객도 아니고 조만간 고객이 될 가능성도 별로 없어요.”
강현이 서둘러 말했다.
이 사람이 자기들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서 과도한 친절을 베풀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면서 생각난 김에 타투도 보여주었다.
선아영은 강현이 F등급 딜러라는 것만 대충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큰 고객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고 저희가 바디 팩을 준비해 두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한 얘기였습니다.”
선아영이 말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데요?”
지우가 물었다.
“손수건을 빌려주신 답례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 그런 거라면. 손수건은 가지셔도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