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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임정의 단호한 말에 강현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늪을 빠져나갔다. 태인도 그 뒤를 따랐다. 지우는 임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요. 도망치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임정이 말했다.
“네. 할 수 있다는 것 알아요. 그리고 그건 나도 할 수 있고요. 그러니까 같이 나가죠.”
지우의 말에 임정은 멍하니 지우를 바라보았다. 스컨데르가 그런 임정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 달려들었다. 그순간 지우가 차크라를 끌어모아 무서운 속도로 도약을 해서 임정을 낚아채며 도망쳤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 모릅니까?”
지우가 말했다.
지우는 화가 난 모습이었다. 이 여자가 다치는 모습을 상상한다는 게, 왠지 끔찍하게 싫어져버렸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는 지우도 알지 못했다.
이래서야 영 탱커로서 체면이 서질 않았다.
임정은 지우의 목을 안은 채로 늪을 퇴장했다.
바깥에는 흥분한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현은 발까지 구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다 잡은 거였는데. 내 차크라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강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알 기회는 많았잖아."
태인이 말했다.
“차크라가 무한하다면 늪에 열 명씩이나 들어갈 필요가 없을 거예요. 차크라가 무한하기만 하다면 F급 딜러들도 5급 괴수는 어느 정도 공략이 가능할 거고요.”
임정이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임정과 지우가 리드를 들어 옮겨서 다시 늪을 막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들 힘도 없어서 도와줄 수가 없었다.
“가요. 데려다줄게요.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모두들 훨씬 잘 해 줘서 앞으로도 기대가 커요.”
임정이 말하자 태인이 고개를 저으며 강현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아닙니다. 오늘 정말 감사했고 저희들은 알아서 돌아갈게요. 오늘 좀 멍청하게 군 것 같긴 하지만 앞으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짜 대단했어요.”
태인이 엄지를 척 들어보이며 임정에게 말했다. 강현은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지만 태인에게 강제로 끌려갔다.
“형. 형. 우리 내일 익스트림 헌터에 가요. 태인이 형이랑은 이미 그러기로 했어요.”
강현은 저만치 끌려가면서 소리를 지르며 지우에게 말했다.
“그래. 전화해.”
지우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요?”
지우와 둘이 남게 되자 임정은 지우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임정은 지우와 다른 딜러들이 스컨데르와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을 하며 왜 그랬는지를 물었고 지우는 써전에게서 들은 퀘렌시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사체 운반을 하기 전에 써전님한테서 맵이랑 괴수에 대한 설명을 듣거든요. 이제는 늪 아래에 들어가면 괴수들의 퀘렌시아를 찾는 게 거의 습관이 됐어요. 괴수의 발자국이 유난히 많이 나 있는 곳이, 정말로 모든 맵에 다 있더라고요.”
“퀘렌시아라니. 그건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당연한 거잖아요. 괴수도 사람도 마찬가지겠죠.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 전투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는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을 뺏기면 평정을 잃게 되겠죠.”
지우의 설명을 들으면서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씨 말대로 내일은 꼭 '익스트림 헌터'에 가 봐요. 그런데. 블레이드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브 역할은 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임정이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하자 지우는 그동안 별러왔던 질문을 했다.
남들은 다 아는데 자기만 이해를 못 한 건가 해서 겁이 나서 묻지 못하던 거였지만, 실전을 치르고 보니 지금 확실히 알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괴수를 공격 할 때 괴수한테 치명상을 입히거나, 공격이 제대로 깊이 들어가도 데미지는 공격을 가한 딜러의 공격력만큼만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 훈련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괴수의 몸은 엄청난 회복력을 보여요.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잘라도 그 공격을 한 딜러의 공격력만큼만 괴수의 체력이 떨어져요. 그리고 몇 분 후에 회복이 되죠.”
임정이 말했다.
“회복이 된다고요?”
지우는 아직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임정을 바라보았다.
“네.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고 회복이 될 때까지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거죠. 그때는 모두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되는 거고요. 2급이나, 아니, 3급 괴수만 하더라도 딜러들이 1분에 한 두 번 공격하는 게 어려워요. 7초면 차크라를 다시 모으겠지만 차크라를 모았냐 모으지 못했냐의 문제가 아니라, 괴수에게 다가가서 공격할 타이밍을 노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15미터, 20미터의 거대한 괴수가 순식간에 도약을 해서 날뛰면 그 속도를 따라잡는 것만도 힘이 들고요.”
지우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지우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언가를 상상을 하려고 해도 상상의 기반이 되는 기초지식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지우에게는 그런 것을 상상할 정도로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었다.
늘, 공격력 200의 F급 딜러나 부러워했지 3급 늪, 2급 늪의 괴수와 싸우는 헌터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상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늪에서 괴수가 얼마나 발악을 할지, 딜러들이 어떤 환경에서 싸우는지에 대한 개념도 거의 없었다.
그동안은 모든 것이 어렴풋한 안개에 가려진 추상적인 지식이었다면 지금은 임정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것이 손에 잡힐듯이 구체화되는 것을 느꼈다.
지우가 놀라는 것을 보면서 임정이 설명을 계속했다.
“그런데 괴수의 목을 잘라서 무방비로 만들었다. 그러면 중무장한 B급, C급 딜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딜을 가할 수가 있는 거죠. 7초에 한 번씩 들어가는 딜량이, 차크라가 5등급만 된다고 해도 B급은 기본 공격력이 1000이니까 1100의 세 배예요. 공격력을 200퍼센트 업 시키는 무기로 싸운다고 했을 때요. 그럼 어마어마해지죠. 그런 경우엔 딜러 아홉 명이 투입돼서 싸울 거고 탱커도 공격력을 보태겠죠. 그 사람들이 일제히 공격해서 4만 정도까지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거예요.”
“한 번에 4만요? 그런 사람들이 5급 늪을 뛰면 그냥 땅 짚고 헤엄치기인 거네요? 5급 늪 괴수의 체력은 기껏 400만 안팎이잖아요. 스컨데르처럼 체력이 270만인 놈도 있는데.”
“모든 스컨데르의 체력이 270만인 건 아니예요. 내가 이 놈을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네?”
“아, 아니예요.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계산을 하면 앞으로 훈련을 열심히 해야 된다는 답이 나오겠죠.”
“4만이라니.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그래도 그 경우에는 원거리 딜러들 숫자가 훨씬 많으니까 일 분에 세 번밖에 공격을 못하겠죠?”
지우가 물었다.
“아니예요. 원딜의 리로딩 시간이 긴 건 이유가 있죠. 먼 거리에서 공격을 가해서 괴수에게 데미지를 입히려면 차크라를 많이 모아야 돼요. 그래서 리로딩에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런데 괴수가 치명상을 입고 무력화된 시간 동안은 원딜도 괴수에게 가까이 가서 공격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죠. 그때는 원딜도 20초의 리로딩 시간이 아니라 7초의 리로딩 시간을 적용받는 거죠. 괴수가 어떤 치명상을 입었느냐에 따라 회복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지겠지만 2, 3분만 완전히 묶어 놓는다고 해도 엄청난 거예요. 목을 아예 자르면 괴수가 회복하는데 4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요? 그동안 숱하게 레이드를 해 왔지만 괴수의 목을 자르는 딜러는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괴수의 목을 자른 딜러가 없었어요?”
“내가 레이드를 하면서는 본 적이 없어요.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애초에, 그런 마음을 먹는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요?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의 위험에 자기를 노출시켜야 되는 건데 누가 그러려고 하겠어요? 그냥 적당히 시간 채우면서 적당히 공격하다가 안 되면 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 그런 걸까요?”
“괴수의 목을 벨 수 있는 딜러가 정말로 있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 4, 5분 정도 괴수를 완전히 묶어버릴 수가 있다고 하면 공략 시간은 정말 획기적으로 단축되겠네요. 그런데 그런 공격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딜러는 없겠죠. 전세계적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 정도로 하려면 차크라 소모가 극심할 텐데 그런 걸 지속적으로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해요.”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정이 하는 말을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지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사체 운반을 하면서 알게 됐다는 헌터 있잖아요? 그 사람도 가끔 치명상을 입혔어요. 괴수한테.”
“아. 그, 단도를 쓴다는 헌터요?”
임정이 물었다.
“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나도 궁금해요. ‘익스트림 헌터’에 가면 그런 종류의 무기도 한 번 살펴봐요. 무기 길이랑 폭도 알고 있으니까 찾아보면 종류를 줄일 수 있을 거예요. 괜히 손잡이에 현혹되지 말고 칼날 위주로 잘 살펴보세요.”
“같이 못 가요?”
지우가 물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일은 일이 있어요.”
“아.”
“‘익스트림 헌터’에 가면 그게 있을지 모르겠는데. 있으면 빌려와 봐요. ‘익스트림 헌터’는 무기를 대여도 해 주거든요. 한 번 사서 안 맞는다고 바꾸기에는 무기 가격이 엄청나고. ‘익스트림 헌터’가 머리를 잘 쓰긴 한 것 같아요. 어쨌든, 화살촉 같은 무기가 있거든요. 길이는 60센티 정도 되는데 들어갈 때는 부드럽게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갈고리에 걸려서 살덩이가 뭉텅이로 나오죠. 말 그대로 화살촉이예요. 그걸 크기를 키우고 손잡이를 만들어서 칼처럼 사용하는 건데 지우씨한테 맞을 것 같아요. 크리티컬 훅을 보여달라고 하세요.”
“데미지를 주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상처를 입힐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네. 하지만 심장을 공격할 때는 유용할 것 같아서요. 괴수의 심장을 공격해서 치명상을 입히면 4, 5분 정도는 괴수를 완전히 묶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
“그것도 어디까지나 서브 무기예요. 내 생각에는, 우리가 만약에 이 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런 방법을 연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3급 늪이나 2급 늪의 괴수도 빠른 시간 안에 공략하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몸놀림이 빠르고 위력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딜러가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공격력이 큰 딜러들이 집중적으로 딜을 퍼부으면.”
“우리 세 사람이 그렇게 대단했어요?”
지우가 진심으로 놀라면서 물었다.
“아뇨. 그때는 딜러가 네 사람이 되겠죠. 서규태 써전님이. 아니. 그때는 딜러님이 되겠죠? 서규태 딜러님이 합류하면 진짜 막강해질 거예요.”
“저는 좀 걱정이 돼요. 써전님은 수술에 기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잘 안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실망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네. 일단은 우리도 믿고 기다려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임정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은 지우에게 자신의 능력을 말해줄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소하게 공격하는데 쓸 무기는 그냥 단순한 검이어도 될 것 같아요. 그게 지우씨의 주 무기가 되겠죠. '익스트림 헌터'에 가면 그것도 같이 봐요.”
임정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