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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차크라를 흘려 넣어서 괴수한테 직접 데미지를 입히는데 가장 좋은 무기는 이거예요. 차크라를 흘려넣는 훈련을 하기가 좋아요. 당분간은 시간을 들여서 이걸로 훈련을 할 거예요. 가장 초보적인 무기이면서 궁극의 무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모든 사람한테 맞는 건 아니고, 하다보면 자기한테 맞는 무기가 뭔지 알게 될 거예요. 무기가 헌터를 먼저 부를 때가 있어요. 도끼랑 시에라리온처럼요.”
임정은 시에라리온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지우를 보면서 말했다.
“제 도끼에는 이름이 없나요?”
태인이 물었다.
“손…도끼요.”
임정도 딱히 다른 생각이 나지는 않아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좋은 생각이 났는데. 공대장한테서 사체 처리를 의뢰받고도 바디 펌이 인력 부족으로 사람을 배치하지 못한 늪에 들어가서 죽은 괴수를 상대로 레이드 연습을 해 보는 거예요.”
임정이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태인이 물었다.
“살아있는 괴수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괴수한테 정말 무기를 가지고 공격을 해 보면서 실전 감각을 익히는 거죠. 내가 괴수라고 생각하고 나한테 도끼를 휘두를 수 있겠어요? 예가 극단적인가? 도끼로 생명체를 쪼갤 수 있겠어요?”
임정이 묻자 태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말 필요한 훈련일 것 같네요.”
그것을 상상했는지 잔뜩 얼굴이 굳어진 채로 태인은 순순히 임정의 말에 수긍했다.
“며칠 후부터는 제 일정이 빡빡해질 테니까 시간이 있을 때 바로바로 하자고요.”
임정이 말하자 세 사람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거의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제대로 알았다면 좀 더 신중하게 대답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임정은 마치 흥분제에 취한 여행 가이드 같았다. 머릿속에 자꾸 뭔가가 떠오르는 듯했고 일단 뭐가 떠오르면 대단한 추진력으로 그 일을 실행하고 있었다. 임정은 일단 되는지 안 되는지 해보고 결과를 보자는 주의였다.
임정이 하급 헌터들을 차에 태워 휑한 공터로 데리고 갔을 때 하급 헌터들은 왠지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선전포고보다 더 무서운 말이 들렸다.
“자기가 고른 무기가 손에 맞도록 연습을 해 보고 그 다음에는 어제 봤던 늪으로 가는 거예요. 평화로울 때 연습하는 걸로는 실력이 느는데 한계가 있는 거거든요.”
지우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차크라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임정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그때 임정은 지우에게,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그런 게 깨달아지기도 한다더라고 말을 했었다. 임정도 지우의 얼굴을 보고 지우가 그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웃음을 지었다.
폐타이어와, 썩어가는 나무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곳이었다.
“누나는 어떻게 이런 장소를 알아요?”
강현이 묻자 임정은 그거야말로 쉽다고 말했다.
“늪은 아무데나 나타나잖아요. 오픈일이 다가오는 늪이 장소를 정해놓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어디로든 출동을 하니까 이런 곳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도 미리 알아놓을 수가 있죠.”
임정은 폐타이어가 쌓여있는 곳 위에 껑충 뛰어 올라가서 하급 헌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은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이 보이면 내려가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검을 뽑아서 한껏 몰아세워 주었다.
“태인씨는 도끼를 휘두를 때 편한 방향을 찾아내도록 하세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찍어 넣는 게 좋은지 그 반대가 좋은지. 아마 오른손으로 하는 게 편하겠지만 사람들 중에는 그런 경우도 있거든요. 원래는 오른손잡인데 물건에 힘을 실을 때는 왼손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요."
"저는 도끼 쓰는 거도 오른손잡이 같아요."
태인이 말했다.
"태인씨는 일단 공격을 한 번 한 후에 다음 동작으로 바로 연결이 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몇 초간 움직임이 붙잡히는 꼴이 되니까 영리하게 계산을 하고 움직여야 돼요. 지금은 도끼에 주력을 하겠지만 칼을 하나 더 준비하고 같이 연습하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도끼랑 칼을 같이 들고 싸우는 거죠. 도끼가 박혀있는 동안 괴수가 앞발로 찬다고 할 때 그걸 맨몸으로 받아낼 수는 없잖아요?”
“그렇겠네요.”
“헌터들이 괴수를 처리하겠다는 의욕이 넘쳐서 레이드를 하겠다는데, 내가 치안대 물건을 좀 빼돌린다고 큰 죄가 되는 것도 아닐 테고. 내일은 구석구석 더 뒤져서 좋은 것들을 찾아와 볼게요.”
“도둑이 치안대원인데 치안대가 뭘 지키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지우가 말했다.
“안지우씨의 심장?”
임정의 말에 지우가 김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피식 웃어버렸다. 그렇게 웃게 되는 일들이 요즘에는 자주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임정이 되었다. 임정이 먼저 와 있지 않으면 괜히 한쪽 구석이 허전해지는 것 같았고 임정이 먼저 와 있다가 손을 들어주면 희한한 만족감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속 마음으로는, 자기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때 임정과의 교제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임정을 조금만 더 늦게 만났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임정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여자 앞에서 좀 더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건 당연했다.
써전이 수술을 받는다고 출국을 해 버린 후로 임정이 거의 매일 훈련을 봐 주다보니 감정이 급속히 무르익었다. 강현이 부지런히 공수해주는 야동 파일은 클릭질도 당하지 못하고 쌓여만가고 있었다.
갑자기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면서 눈 아래에 느닷없이 홍조까지 깃드는 순간 언제 왔는지 임정이 지우의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공격할 때는 방향을 정할 수 있지만 방어할 때는 방향을 정하지 못해요. 공격이 들어오는 곳을 막는 수밖에 없죠.”
그러고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보라는 듯이 지우의 옷을 움켜잡고, 자기가 들고 있던 긴 나무 막대기로 지우의 목을 겨냥해 휘둘렀다. 차크라가 실린 손이었다. 순간 방심을 했기에 지우는 방어를 하지 못했다. 목이 조여졌다. 웃음을 지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우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몸을 뒤로 뺐다. 물 위로 솟구치는 활어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임정이 다시 목을 겨냥했지만 지우는 몸을 돌려 임정의 막대기를 피하고서 임정의 손목을 잡았다.
“끝까지 해요. 연습을 할 때는 실전처럼요. 나를 여자라고 생각하고 봐주지 말고요.”
지우가 손목을 소극적으로 살짝 잡은 것에서 그치자 임정이 말했다.
"여자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멘토잖아요."
지우가 말했다.
임정의 손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장난이나 하자고 바쁜 시간을 낸 건 아니니까.”
임정은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나오는지 보겠다는 듯이 다시 공격을 가해왔다. 이번에는 연속된 동작으로 훨씬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임정 자신도 아예 나무 막대기를 던져버리고 검을 빼들었다. 지우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우는 임정의 검을 막아내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검으로 임정을 향해 내려칠 것처럼 휘둘렀다.
“속도를 더 빠르게 해 봐요.”
지우는 임정이 휘두른 검을 가까스로 막았다. 힘을 잔뜩 실어 들어온 공격에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라고 생각해서 얕잡아보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여자와 남자라는 성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헌터인가, 일반인인가. 차크라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며 차크라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 기본적으로는 그 문제였다.
차크라 운용능력을 익힌 '여자 헌터'란 없다. 단지 '헌터'가 있을 뿐이다.
임정의 칼이 지우의 얼굴 앞으로 날아들었을 때 지우는 가까스로 그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지우의 오산이었다. 임정의 칼을 막아내는 두 팔이 점점 버거워지더니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서로가 칼을 겨누고 있었고, 얼굴은 지금껏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을 만큼 가까이 마주닿아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의 눈을 쏘아보던 시선의 팽팽한 균형이 무너진 건 지우의 시선이 임정의 입술로 내려가면서였다. 임정이 자신의 사정을 알아챘다면 화를 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동안 지우의 다리에 엄청난 타격이 날아왔다.
임정의 두 손은 칼을 붙잡고 있었기에 지우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공격이었다. 자기를 친 게 임정의 다리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지우는 제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 순간에는 하늘이 보였고 넓게 펼쳐진 하늘의 한 가운데로 임정의 머리가 나타났다. 임정은 쓰러진 지우의 위에서 칼을 쳐들었다.
목을 겨누지는 않겠지만 상징적으로 패배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얼굴 옆의 땅으로 칼을 찔러 넣을 거라는 게 예상이 되었다. 지우는 재빨리 몸을 굴렸다. 그 전에 보여왔던 것보다 속도가 세 배는 빨라지는 바람에 임정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지우는 그 상태 그대로 임정을 넘어뜨리고 임정의 허리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단단한 두 허벅지로 임정의 몸을 구속했다. 임정은 눈에 불을 켜고 칼을 든 손을 움직이려고 했고 지우는 임정의 위에 쓰러지듯 몸을 굽히며 임정의 손목을 꽉 눌렀다.
두 사람의 호흡이 거칠게 얽혀들었다. 지우의 시선이 임정의 입술을 훑다가 그 아래로 내려갔다. 임정이 다리를 바둥거리자 지우는, 순전히 임정의 두 다리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는 듯이 무릎으로 기어 아래로 내렸다. 쓰러진 임정의 허벅지가 지우의 두 허벅지로 완전히 조여지고 있었다.
태인과 지우는 정신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정은 제 위에서 제 손목을 찍어 누르고 있는 남자의 입술이 관능적으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지우가 눈을 꾹 감았다. 지우가 어떤 상황을 감추고 싶은 건지는 임정에게 충분히 느껴졌다.
팔의 한 가운데로 뜨거운 느낌이 관통했다. 지우는 계속해서 팔에 힘을 주고 버티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저, 저기, 우리는 차에 가서 다른 무기를 좀 가지고 와볼게. 칼을 같이 들고 연습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태인이 말했다.
말의 내용은 임정에게 하는 말인데 왠지 지우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반말을 하다가 황급히 '요'자를 붙였다.
“김강현. 너도 따라와.”
태인이 말했다.
“왜요?”
“따라와, 인마. 그냥!”
강현과 태인은 무기를 가지러 간다는 명목으로 사라졌다.
임정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끝까지 한 번 제대로 겨뤄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기회를 살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임정은 지우의 차크라가 궁금했다. 차크라를 운용하는 지우의 능력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걸 알아볼 기회야 다음에도 있겠지, 하면서 임정은 어느덧 방만하게 생각해버렸다.
지우는 그대로 몸을 내렸다. 임정은 눈을 감았다. 젖은 입술이 하나로 감겨들었다. 임정의 혀가 지우의 입술에 붙잡혔다. 지우는 혀를 내밀어 임정의 연한 살을 구석구석 맛보았다.
“뭐하는 거예요?”
지우가 임정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임정이 물었다.
“수강료 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미안해하지 말고 받아요.”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