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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그랬으니 임정이 식당 테이블에 버젓이 무기들을 꺼내 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손도끼였는데 임정은 태인의 앞으로 그것을 밀어 주었다. 그리고 크기와 칼날 모양이 다양한 여러 개의 칼이 나왔고 화살도 나왔다. 스턴건도 나왔는데 그건 괴수를 상대로 사용하는 건 아니고 반항하는 헌터를 제압할 때 쓰는 거라고 말했다.
“이런 것도 차크라를 실어서 쓰지 않으면 헌터한테 사용할 수 없거든요. 헌터도 기본적으로 차크라를 사용하는 사람이라.”
임정은 입으로는 부지런히 설명을 하면서 손으로는 계속해서 무기들을 꺼냈다. 별 것 별 것들이 다 나왔다. 말리지 않으면 뭣까지 나올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걸 어디에서 다 구해온 거예요? 일단은 그만 꺼내고요.”
지우가 말리자 임정은, '그럼 우선은 이 정도로만 할까요?' 라고 하더니 가방을 식탁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걸 혼자서 들고 왔다는 것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헌터의 힘은 가끔 상상을 초월한다. 아직 지우에게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지우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매번 아주 성실하게 놀라고 있었다.
“치안대에는 무기랑 장비가 공급되니까요.”
임정이 말하면서 칼날이 둥근 낫처럼 생긴 칼을 들어 보였다.
“제가 처음에 쓴 무기가 이거였어요. 블레이드. 손잡이가 손에 맞아서 편했거든요. 블레이드 종류 중에 절삭력도 강해서 손목을 베는데는 그만이죠. 찌르기 용도로는 불편한 감이 있지만 손목을 벨 때는 효과적이예요. 괴수의 발에 으깨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발목을 노리고 발목을 벨 수도 있고요. 그래도 이걸 주무기로 사용할 수는 없을 거예요. 반복적으로 데미지를 주는데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거든요.”
임정이 본격적으로 설명을 하려는 것을 멈춰놓고 지우가 설명을 요구했다.
“이걸 어떻게 가져온 거냐고요. 아무리 치안대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개인한테 함부로 들고 나가라고 정부나 헌터 협회에서 치안대에 무기를 제공하는 건 아닐 거 아니예요? 혹시 횡령한 거예요?”
지우가 임정에게 물었다. 그러자 임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횡령은 아니고 아마. 굳이 따지자면 사용절도 정도가 되려나? 잠깐 쓰고 갖다 놓을 생각이었어요. 걸릴 일도 없고요. 쓰고 갖다 놓을 거라니까요?”
임정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에는 당할 재간이 없을 것 같았다. 강현은 지우에게 너무 빡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럴 땐 형 꼭 꼰대같아요. 누나는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그러는 건데. 누나. 그러지 말고 그냥 저랑 사귀어요. 솔직히 누나가 지우 형을 좋아하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강현의 말은 임정에게 보기 좋게 씹혔다.
"그리고 이건 손도끼고. 태인씨한테 보여 주려고 가져온 거."
방물장수가 물건 소개를 하는 것처럼 임정이 태인에게 말했다.
“강현씨가 몰라서 그런 것 같아서 이번은 그냥 넘어가는데 아무도 나한테 그런 드립 안 칩니다. 못 치는 거죠, 아마?”
임정이 말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불쑥 하고 말긴 했지만 그동안 임정을 봐 오면서 느꼈던 것들이 있었기에 강현은 등에 난 솜털들이 바짝 일어설만큼 살기를 느꼈다.
"네. 장난이었어요. 장난요."
"당연히 장난이었겠죠."
임정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해놓고 이번에는 어느새 추억에 빠져든 것처럼 블레이드를 잡았다.
“이야아. 이걸 보니까 내가 처음에 괴수 잡겠다고 뻘짓 했던 게 생각나네. 어그로를 잘 못 끌어서 진짜 엉망이었는데. 다행히 좋은 딜러들을 만나서 괴수를 잡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요. 그리고 여러분도 5급 괴수에 대해서는 너무 겁먹지 마요. 귀엽잖아요. 아. 좋은 생각이 났다.”
임정은 손뼉까지 한 번 탁 치고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2급 늪을 돌아다녀 보는 거예요. 계속 2급 괴수들을 보다가 5급 괴수를 보면 엄청 귀여워 보이거든요.”
“그런 건 알아요. 저희도 사체 운반 하면서 느끼기는 했으니까요. 아직 2급 괴수를 날라본 적은 없지만. 근데 누나. 2급 늪을 돌아다녀 보자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5급 괴수도 아직 무서운데 안돼요. 우리는 네 명이잖아요. 최정예로 열 명이 들어가도 부상자가 나오는데. 인생은 실전이잖아요.”
강현은 임정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임정이 언제 자기들을 태우고 그대로 2급 늪으로 직행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임정도 크게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이 하급 헌터들을 차에 싣고 목적지를 말하지 않은 채 그대로 데려가면 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일단 겁을 먹고 긴장한 기색들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이 사람들은 서규태 써전이 지금까지 작정을 하고 가르쳐 온 사람들이었다. 내일의 모습이 다르고 일주일 후의 모습이 다를 거라는 것을 임정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모두들 식탁 위에 있는 무기를 들어보고 권해보고 휘둘러 보면서 그립감을 느꼈다.
태인은 일찌감치 결정을 마쳤는지 손에서 손도끼를 내려놓지 않았다.
“손도끼를 사용한 공격방법은 많지 않아요. 무기 자체의 무게도 꽤 나가는 편이지만 자유자재로 들고 휘두를 수 있도록 연습을 많이 해야 될 거예요. 초보자는 공격을 해 놓고 빼지 못해서 당황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괴수도 레이더 못지않게 당황하겠죠?”
임정이 주의하라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을 하는데 강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5미터짜리 괴수 머리 위에 올라가서 자기 도끼를 뽑겠다고 두 발로 버티고 끙끙거리는 형 모습이 방금 떠올랐어요.”
태인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실내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부웅 붕 소리가 나게 휘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지금 도끼를 휘둘러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임정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주위를 둘러봤잖아요. 실내가 아니었으면 휘둘러봤겠다고 생각했을 게 뻔하잖아요. 내가 따로 독심술을 가져서가 아니라 나도 그 과정을 전부 겪었으니까 하는 말이예요. 그걸 부웅 붕 거리고 휘두르다가 손에서 놓쳐서 도끼가 날아가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요.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서 혼자 날아가는 것도 봤는데 그건 제작이 잘못 돼서 생긴 문제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항상 미리 조심을 하세요.”
“꽤나 위험하네요?”
태인이 비로소 긴장을 하면서 말했다.
“야구장에서 한 눈 팔다가 파울볼에 맞는 것만큼이나 어이가 없겠죠.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동료가 휘두른 도끼 날에 맞으면요. 도끼날에 맞으면 어이가 없는 걸로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살덩이가 툭 떨어질 수도 있고 얼굴 한쪽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거든요.”
임정이 하는 말이 정말로 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건지 뻥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이건. 강현씨한테 권하고 싶은 건데.”
임정은 석궁을 들어보였다.
“계속 이걸 쓰라는 건 아니예요. 강현씨는 근성도 있고 좋은 마음가짐을 가졌지만 어쨌거나 아직은 어리잖아요. 근접전을 펼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됐을 수도 있으니까 조금 거리를 두고서 싸우면 좋을 것 같아요.”
임정이 거기까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고 강현은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사실 강현은 임정이 나이 제한을 푸는 특례 조항을 만드네, 법 개정을 하네 하면서 강현이 바로 실전에 투입될 수 있도록 법제를 손본다고 했을 때 부담이 엄청났다.
그동안은 효과적인 핑계거리가 있었다. 나이가 안 돼서 못 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법으로 금지가 되어 있다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내미는 변명이 된 동시에 자신 스스로에게 한계를 지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더 해 볼 수 있어도, 어차피 나이 때문에 실전은 못 뛸 텐데 라면서 느슨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강현은 임정을 만난 게 독인지 이득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면서 생각하곤 했는데, 그것은 임정이 서규태 써전의 다리를 고쳐놓은 걸 몰라서 하는 고민이었다.
그것까지 알았다면 구시렁댈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정은 지우에게 경험치를 몰아주기 위해서 같이 레이드를 하고 싶다고 했던 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중이었다.
서규태 써전의 다리를 고쳐주고, 강현이 레이드를 할 수 있도록 법제를 개편하고.
처음에는 태인이 가진 문제가 가장 사소해 보였지만 지금은 어느새 태인의 문제가 가장 컸다.
지우는 어느새 임정이 자기에게 뭘 권해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한참이나 임정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임정은 자기 자신도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한 것처럼 테이블 위에 세 개의 무기를 나란히 올려 놓았다.
하나는 임정이 초기에 사용했다는 블레이드 류의 증보판처럼 보이는 무기였다. 일단 사이즈 업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칼날 전체의 길이가 남자 팔 길이 정도가 되었다.
“이거라면 단번에 목을 벨 수도 있을 거예요. 해 본 적은 없지만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거죠. 목에 달려들 때까지 괴수가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요.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주무기로 쓸 수 없어요. 지우씨한테 권하고 싶은 칼은 안 보이네요. 그건 '익스트림 헌터'에 가서 같이 골라보기로 해요."
"네. 그래야 될 것 같네요. 어쨌든 이 녀석도 마음에 들어요."
지우가 말했다.
사람도 아닌데 끌렸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임정은 다른 무기도 보여주려고 했지만 지우는 이미 블레이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이름이 뭐예요?”
지우가 물었다.
“시에라리온요. 올댓툴즈에서 만든 걸 거예요. 무기를 만든 사람이 자기 나라를 기리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걸로 알아요.”
지우는 시에라리온이라는 이름보다 올댓툴즈라는 이름 때문에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올댓툴즈가 이런 것도 만드나보네?”
“올댓툴즈를 잘 알아요?”
임정이 물었다.
“아주 잘 알죠. 그 회사를 아는 건 아니고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의 여자친구를 잘 안다고 해야 하나?”
“아아. 지우 형한테 여성 혐오증을 안겨준 그 여자 말이구나?”
강현이 아는 척을 했다. 임정은 관심을 보였지만 지우는 얘기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세상에는 우리가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자기가 했던 경험에서 실패했다고 앞으로도 전부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 겁먹고 포기하는 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임정이 말했다.
“네. 그 말이 맞을 것 같네요. 기다린 덕분에 이렇게 좋은 사람도 만났잖아요. 내가 경험치 올리면 뭘 먹고 싶을지나 생각해 두세요.”
갑자기 대답이 순순히 훅 나와버리는 바람에 임정은 아리송할 정도였다. 지우는 임정을 보고 한 번 웃더니 밥이 아니라 다른 거라도 괜찮다고 말해놓고 눈을 찡긋거렸다. 임정은 다른 걸로 뭘 생각했는지 정신없이 얼굴을 붉혔다.
지우는 겨우 술 정도를 생각하고 얘기를 했다가 임정의 얼굴이 무슨 적포도주 색깔만큼이나 급격히 붉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저도 얼굴을 붉혔다.
“어어어어. 뭐야. 이 두 분. 괴수 한 마리 잡고 그, 그, 삐리리?”
강현이 석궁을 만지작거리는데 임정이 재빨리 제정신을 수습하고 검을 강현에게 안겼다. 임정과 하급 헌터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임정이 차고 있던 것과 비슷한 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