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33화 (3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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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체 운반 헌터

막연하게 무기를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실감나게 부담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그렇겠네요. 여러 가지를 따져서 신중하게 결정해야겠어요.”

태인이 말했다.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듣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지만 실전 경험이 많은 임 정에게서 얘기를 들으니 뭔가 현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임정은 지금 막 레이드를 끝내고 나온 상태였다. 상대는 치안대가 직접 나서야 했던 괴수였다. 치안대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레이드였다. 그런 괴수와 싸우다보니 임 정의 몸은 괴수의 체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임 정이 레이드 도중에 괴수의 머리에 일격을 가했을 때 괴수의 머리가 파열되면서 괴수의 피와 뇌조직이 임 정의 몸으로 튀었고 임 정은 그 미지근하고 끈적거리는 체액을 뒤집어 썼다. 임 정에게서 나오는 팁은 하나 하나가 다 중요했지만 임 정에게서 나는 괴수의 피와 체액의 냄새는 간단하게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임 정은 써전과 하급 헌터들이 점점 자기에게서 거리를 두면서 멀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간의 대화가 점점 큰 소리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내서 물어볼 거면 가까이에서 물으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임 정이 다가가면, 임 정이 다가가는만큼 사람들이 임 정에게서 물러났다. 어떤 때는 고개를 돌린 채 숨을 참고 있다가 후압! 하고 한꺼번에 들이마시는 소리도 났다. 드디어 임 정도 무슨 문제인지 깨닫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아……. 나한테서 지독한 냄새가 나겠네요. 이런 치욕은 진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것 같아요. 아, 창피해.”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임 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한 번 터진 웃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정말로 창피한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도 임 정은 이 팀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는 게 영 아쉬웠는지 재빨리 대안을 냈다.

“근처에 씻을 곳이 있겠죠? 모텔이든 사우나든 찾아 들어가서 씻고 장비 정리하고 다시 올게요. 넉넉히 잡으면 한 시간쯤 걸릴 것 같으니까 이 다음에 처리할 늪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세요. 거기로 갈게요.”

임 정이 말하자 강현과 써전이 동시에 웃음을 지었다. 써전이야말로 임 정을 만난 게 반가웠다. B급까지 올라온 탱커라면 수많은 레이드를 경험했을 터였다. 그래서 써전은 임 정에게, 단도를 사용해 이상하게 레이드를 하는 헌터에 대해서 물어보고 의견을 듣고 싶었다.

“바로 갈 거니까 먼저 들어가지 말고 기다리고 계세요. 도착했는데 제가 안 보이면 전화하세요. 꼭요. 꼭 꼭 꼭요.”

임 정은 써전과 지우에게 몇 번이나 당부를 하고 사라졌다. 빨리 가고 싶은데 정강이를 감싼 보호구 때문에 제대로 뛰지 못해서 답답한 것처럼 보였다.

치안대 일행과 갑자기 헤어지지만 않았다면 그런 문제로 곤란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지우를 만난 게 반가워서 앞 뒤 안 가리고 그들과 합류해 버린 바람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임 정은, 절대로 자기를 두고 먼저 들어가면 안 된다는 듯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형을 엄청 좋아하나 봐요.”

강현이 팔꿈치로 지우를 툭 치면서 웃으며 말했다. 써전과 하급 헌터들은 드디어 치안대원들의 레이드 현장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잔뜩 기대감을 품었다.

역시나 치안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늪은 3등급이었다. 3등급 늪인데도 아직까지 공략이 되지 않은 것은 그곳에 있던 괴수가 악명 높은 레오파드였기 때문이었다. 4등급 늪의 처리만 맡기로 했던 써전에게 그곳이 맡겨진 것은 레오파드의 모피가 거대 아나콘다의 가죽만큼이나 높은 가치를 지녀서였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괴수. 그러면서도 최고의 모피를 제공할 수 있는 개체.

그것이 바로 레오파드가 살아생전 누리던 명성이었다.

레오파드는 12미터 86센티에 달했다. 털의 바탕 색은 눈이 부실 정도로 희었고 그 위에 특이한 패턴의 반점이 그려져 있었다.

써전도 모피의 상품 가치를 먼저 파악했는지 그 일은 자기 혼자서 하겠다고 미리 선언을 했다.

“이 사체에서는 배울 게 정말 많네요. 알다시피 이 녀석은 3등급 괴수 레오파드죠. 도약 후에 발톱으로 갈퀴면 사람 목이 떨어져나가기도 한다고 하고 실제로 괴수가 출현한 초기, 헌터가 아직 나타나기 전에는 레오파드에 당한 사람들이 많았죠. 레오파드에게 당하면 대부분 목이 잘려나갔고요.”

실제로 사람들이 레오파드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하급 헌터들은 갑자기 경직되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이미 죽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써전은 레오파드의 털을 한 번 휘익 쓸었다.

죽은 레오파드는 고급 카펫처럼 보였다.

“이 레이드는 정말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졌습니다. 필요한 공격이 적시에 집중적으로 가해졌어요. 임 정 탱커님이 탱킹을 한 걸 추측해 보세요. 탱커가 어그로를 끈 순간 딜러들은 효율적으로 공격을 가했어요. 여길 보세요. 한 방향에서 비슷하게 공격들이 들어오죠? 포지션이 안정적이었다는 겁니다. 이건 딜러들이 탱커를 믿고 있을 때 나타나죠.”

써전의 설명을 들으니 임 정이 한층 대단하게 느껴졌다.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가 공대장으로 있는 공격대의 레이드를 보면 탱킹이 확실히 대담해요. 탱커가 어그로를 끌다가 괴수한테서 공격을 받아도 일격에 나가 떨어지지는 않으니까 회피 위주로만 하지 않고 때때로 딜러들이랑 같이 딜을 넣기도 하죠. 임 정 탱커님한테도 재생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만나면 물어보도록 하죠. 아까 가지고 있던 무기를 생각해보면, 이 상처들이 임 정 탱커님 작품 같군요.”

써전이 괴수의 사체에 난 상처 몇 개를 가리켰다.

“이건 도끼로 낸 상처예요? 써전님?”

태인은 써전이 보여주는 상처의 옆에 있던 상처에 관심을 보였다. 써전은 그런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여기도 있네요. 도끼 자국.”

강현이 비슷한 상처를 여기 저기서 찾아 보여주었다.

“이 사람 정말 영리하게 공격을 하네. 이런 딜러라면 5급 괴수는 충분히 혼자 처리할 수 있겠네요.”

써전의 말을 듣고 태인은 머릿속에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저도 이걸로 해야겠어요. 도끼요. 훨씬 부담이 덜할 것 같아요. 도끼는 좀 휘둘러 봤었거든요.”

태인이 말했다.

“도대체 도끼를 언제 휘둘러 봤는데요?”

그 말이야말로 희한하게 들려서 강현이 즉각 되물었다.

“장작 팼지. 할머니 댁이 강원도 산골이었는데 거기 가면 자주 했지.”

“아아. 난 또.”

태인은 눈으로 도끼 자국들을 찾으며 따라갔다. 레오파드의 앞다리, 어깨 근육, 귀, 눈과 눈 사이의 한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목 밑에 난 상처였다. 도끼를 사용한 딜러는 레오파드의 목 밑에 도끼를 박아 넣은 채 그대로 차크라를 실어 도끼를 비틀어버린 듯했다.

태인은 두 손을 모았다. 오랜 고민이 해결된 듯한 속시원한 모습이었다.

“내 무기는 도끼로 해야겠어. 도끼로. 굉장하네.”

“도끼는 얼마나 할까요? ‘익스트림 헌터’에 도끼 사러 가셔야겠네요?”

강현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자기도 곧 그 고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시무룩하게 바라보던 지우는 자기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고개를 들었다가 써전과 눈이 마주쳤다. 써전은 조용히 격려하는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레오파드에게 다가갔다.

“자. 내가 예술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옆에서 조금 쉬고 계세요. 목에 도끼를 박은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심미안은 영 꽝이네.”

누군가는 거금을 들여 레오파드의 모피를 벗겨서 응접실을 장식할 것이다. 그런 세상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세 사람은 치안대원들의 모범 답안지를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정말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살육이었다.

***

써전과 하급 헌터들이 레오파드를 처리하고 다음 늪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임 정이 손을 흔들면서 그들을 반겼다.

네 사람은 임 정의 옆에서도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제 첫인상은 완전히 꽝이었겠네요. 첫 만남에 그런 냄새를 풍겨버렸으니.”

임 정이 말하며 웃었다.

“치안대 B급 탱커가 아니라면 감히 풍길 수 없는 냄새였죠. 나름 강력하고 매력 있었어요.”

강현이 말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맡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갑옷과 투구를 벗고 보호장비와 무기를 내려놓은 임 정은 영락없는 소녀 같았다. 써전과 하급 헌터들을 돌아볼 때마다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것이 꽤나 경쾌해 보였다.

“저 질문 있는데요.”

태인이 임 정을 보면서 손을 들었다.

“네.”

태인은 도끼를 쓰는 치안대원에 대해서 임 정에게 물었다. 레오파드를 처리하면서 자기들이 발견한 상처에 대해 말을 하면서 태인은 자기가 그 공격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끼를 무기로 쓰면 장단점이 뭐가 있을까요?”

태인이 묻자 임 정은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선에서 답을 해 주었다. 그러면서 태인의 팔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런 팔로 도끼는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 의심이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사체 운반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해와서 근력이 많이 붙었을 겁니다. 헌터들은 사체 운반 일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체 운반을 꾸준히 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훈련 효과를 보게 되죠."

써전이 말하자 임 정도 그 말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따로 레이드 훈련은 하고 계시죠? 어떻게들 하고 계세요?”

임 정이 생각난 김에 질문을 하고 하급 헌터들을 바라보자 세 사람은 불시에 숙제 검사를 맡게 된 학생들처럼 갑자기 딴청을 부렸다.

“미리미리 훈련을 해 둬야 돼요. 민폐가 되지 않으려면요. 그런 사람은 그냥 혼자서 죽는 게 낫지 괜히 레이드에 끼었다가 걸리적거리면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임 정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써전을 선두로 하급 헌터들이 늪에 입장하자 임 정도 늪으로 따라 들어갔다. 레이드가 끝난 후에 들어가는 건 색다른 것 같다면서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괴수의 사체 곁으로 다가간 사람은 써전이었다. 써전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세 명의 하급 헌터는 동시에 써전에게 달려갔다. 묻지는 않았지만 써전의 분위기를 보았을 때, 단도를 쓰는 의문의 헌터가 그 곳을 다녀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수의 사체에는 그가 만들어낸 것과 비슷한 상처가 수두룩하게 남아있었다.

“4급 괴수도 사냥을 할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 사람은?”

강현이 말했다.

“벅찬 상대를 만났을 때는 제 실력이 발휘되는 모양이예요.”

써전은 말을 하면서 눈으로 같은 패턴의 상처들을 찾아냈다. 임 정은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우가 임 정에게 스마트폰에 있던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사체를 처리한 괴수 중에 이런 상처를 가진 괴수들이 있었어요. 써전님은 이게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상처라고 생각하시는 거고요.”

“이렇게 많은 상처 중에서 같은 패턴의 상처를 정확하게 찾아내신다는 게 놀랍네요.”

임 정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괴수한테도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지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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