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32화 (32/331)

0032 / 0331 ----------------------------------------------

2. 사체 운반 헌터

“그런 거군. 오픈일이 다가오는데 사냥이 안 끝나서 치안대가 나선 거군.”

써전이 말했다.

헌터 협회에서는 레이드를 원하는 공격대에게 오픈일이 가까운 늪을 우선적으로 배정한다. 하지만 공격대의 역량에 따라서 공격대가 처리할 수 있는 괴수가 달라진다. 운 좋게 전부 B급 헌터로 구성된 공격대를 꾸렸다고 하더라도 그 공격대가 무적인 것은 아니다. 늪 아래에서 어떤 괴수를 만나게 될지, 괴수의 체력이 얼마일지 미리 알 수는 있다. 내려가서 정보창을 보고 괴수의 체력을 알아내고 맵을 탐색하고서 그대로 퇴장을 하는 것은 늪과 괴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정보를 미리 모으고 거기에 대비를 하고 레이드를 하러 들어가도, 레이드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 같은 괴수라고 해서 움직임의 패턴이나 습관, 성격들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레이드에서 부상자가 생기면 그 개체를 기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요코를 공략하다가 딜러가 다쳤대.’라는 소문이 나면 헌터들은 요코를 기피하게 됐다. 우리도 당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생겨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높은 등급의 늪에 서식하는 괴수일수록 위협적인 존재가 많다. 1급 늪은 그 반경이 커지지 않고 성장이 멈춰서 오히려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커지는 2급 늪의 경우는 얘기가 달랐다. 유능한 레이더들이 2급 늪을 맡아서 해결해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급 늪에 서식하는 괴수에게서 얻는 러프스톤이 20억에 거래되고 2급 늪의 러프 스톤은 50억에 거래된다.

40퍼센트를 세금으로 제하고 나면 실질적으로 12억과 30억을 받아 분배하게 되는 것인데 위험을 감수한 레이드를 한 번 하는 것보다는 그보다 낮은 레벨의 레이드를 여러 번 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오픈일이 다가오는 2급 늪 중에 공략이 되지 않은 늪이 누적되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의 방치가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면 치안대원들로 구성된 공격대가 나서게 되는 것이다.

치안대원으로 구성된 공격대는 2급 늪이나, 레이더들이 기피하는 난폭한 괴수의 처리를 전담한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기에 혜택이 크다. 정부가 쉽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세제 혜택이고 그밖에 무기와 장비를 지원한다. 괴수의 공략에 성공하면 치안대 헌터들은 러프스톤 매각금이나 괴수 사체로 얻는 이익의 10퍼센트만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 수익금은 자기들이 챙길 수 있게 된다.

치안대원으로서 받는 연봉과는 별도의 수익이기 때문에 높은 위험부담을 감수할 자신이 있기만 하다면 매력적인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그런 배경으로 지우 팀이 사체 운반을 위해 출동한 늪에 치안대가 레이드에 나선 것이다.

평소에 레이드를 하는 상급 헌터만 봐도 괜히 기가 죽어 눌려 지내던 하급 헌터들은 치안대가 나선 레이드라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상급 늪의 포악한 괴수, 어머어마한 크기의 개체가 단번에 연상된 것이다.

“그래도 치안대가 공략에 성공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강현이 말했다.

그냥 그렇게 서로 지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태인이 귀신같은 시력을 갖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 저 분 그 분 아니야? 지우씨 여자친구.”

태인의 말에 모두가 치안대들이 서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이드를 마친 치안대원들이 힘들게 걷고 있었다. 임 정은 투구를 쓰고 있다가 벗은 상태여서 머리카락이 부웅 떠 있었다.

“가서 인사해요, 형.”

강현은 흥분감에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 응? 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우는 임 정이 먼저 가 주기를 바라면서 일부러 시간을 지체했다. 그때 마침 임 정이 사체 운반팀을 발견했다. 그냥 예삿일인 것처럼 얼굴들을 쭉 스킵해 지나가다가 임 정이 지우를 발견했다.

“아!”

임 정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봤나봐요, 형. 빨리 가서 인사해요.”

강현은 자기 일도 아닌데 괜히 방방거렸다.

“어. 어. 근데 바쁜가보네.”

지우가 말했다.

레이드 끝난 헌터가 바쁘긴 개뿔. 임 정은 스스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따로 갈 테니까 먼저들 가세요. 오늘 수고들 많으셨고요.”

임 정은 아예 뒤에 남아있던 치안대원들에게 그렇게 인사까지 했다. 이쪽으로 붙기로 확실히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아. 음……. 우리 바쁘지 않나요? 이 뒤에도 우리가 처리해야 할 늪이 세 개나 남았잖아요. 오늘도 치안대랑 마주친 거니까 할당량을 못 채우면 패널티를 받을 텐데요?”

지우가 써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되지도 않는 말을 생각나는대로 막 주워담는 중이었다.

“치안대와 이런 식으로 마주치는 것에 대해서는 바디 펌도 관여 안 하고요. 시간은 충분합니다. 앞으로 삼십 분은 놀다가 들어가도 돼요.”

써전이 확실히 못을 박았다. 지우는 아무 것도 모르고 다가오는 임 정을 향해 손을 들었다.

“어. 저, 정아. 레이드했어?”

임 정이 멈칫하면서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우가 울상을 짓고 주위의 동료들을 살피는 것을 보면서 이내 눈치를 채고 밝은 얼굴로 거리를 좁혀왔다.

“이렇게 뵙게 되네요. 지우씨한테서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시원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다가온 임 정이 좌중을 둘러보며 활기차게 말했다.

“써전님이시죠? 임 정입니다.”

임 정은 써전을 보고 먼저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서규탭니다.”

써전도 만족스러워하면서 임 정을 반겼다.

화장의 기술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어서, 화장기 없는 임 정을 보고 그 사람이 광고계의 여왕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강현은 아무 말도 못하고 태인의 손을 끌어다가 제 가슴 위에 얹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강현에게만 나타나는 상황이 아니었다. 태인은 입을 열면 입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괴수의 사체 운반이나 하는 하급 헌터들에게 치안대의 B급 탱커가 와서 먼저 인사를 걸어주다니.

“엄,청나게, 미인이십니다.”

태인이 말했다.

“아. 수술했어요. 의사가 실력이 좋더라고요.”

임 정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칼은 제2의 자궁벽이죠. 어쨌거나 결과물이 좋아서 그저 감탄스럽습니다.”

태인이 성형 수술에 대해서 그렇게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게 적절하게 대응되는 개념의 비유예요? 칼과 자궁벽이?"

강현이 태인에게 딴지를 거는 동안 지우는 재빨리 임 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임 정이 적당히 돌아가 주기를 바라면서 복화술을 선보였다.

“얼굴 봤으니까 이제 가요.”

지우가 입으로만 웃으면서 임 정에게 말했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고 보톡스라도 맞은 것처럼 눈가가 팽팽했다.

“나는 일 다 끝났는데. 써전님에 대해서는 말씀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C급 헌터시면서 차크라 등급 1등급에, 차크라 숙련도 100%의 전설적인 써전님이시라는 분을 여기에서 뵐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예요. 저도 써전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거든요.”

임 정이 말했다.

“그래요? 그럼 늪에 같이 들어가시겠습니까? 오신 김에 일도 좀 거들고요. 안에 있는 놈은 상당히 클 것 같은데.”

써전이 말했다.

지우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놀라서 써전을 바라보았는데 임 정은 정말 그래도 되느냐면서 당장에 따라 붙었다.

"개체는 그다지 크지 않아요. 레이더들이 기피하는 녀석이라서 저희가 나선 거고요."

"아마 레오파드죠?"

써전이 물었다.

"네."

지우를 빼고는 모두가 들뜬 표정이었다. 임 정이 걸을 때마다 칼이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급 헌터들은 임 정의 옆에서 걸으면서 임 정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괴수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은 비늘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팔과 정강이에는 윤기가 흐르는 보호 장구가 둘러져 있었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견고해 보였다.

그런데도 지우는 그게 히로의 단단한 껍질로 만들어졌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았다.

임 정의 팔을 거의 완전히 덮는 긴 장갑과 신발까지도 괴수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탱킹을 할 때 괴수의 공격을 받더라도 곧바로 쓰러지지 않게 방어 증폭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제품이었다.

임 정은 일반적인 복장 위에 사슬로 얽어진 셔츠를 입고 그 위에 다시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등과 가슴이 완벽하게 보호되었고 손에 든 방패까지 들어 올리고 투구까지 쓴다면 빈틈을 노리기가 힘들 듯했다.

“아, 이건 제가 들어드릴, 내가 들게.”

지우는 임 정에게 존대말을 하려다가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강현을 의식하고 말을 놓았다.

지우가 방패와 투구를 들어주겠다는 뜻으로 손을 내밀자 정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손에 있어야 더 안심이 돼요. 빈 손으로 있으면 오히려 더 불안하거든요. 차라리 무거운 게 낫죠. 그리고 별로 무겁지도 않고요.”

“그 정도로 장비를 갖추려면 얼마나 들까요? 그런 칼은 얼마나 해요? 제가 아직 무기를 정하지 못해서요.”

태인이 물었다. 임 정이 그를 바라보자 태인은 자기도 이제 곧 레이드를 하게 될 거라고 설명했다.

“딜러시라면 얘기가 전혀 다르죠. 저는 탱커라서 방어력 증폭에 집중한 거고요. 딜러는 공격증폭률을 높인 무기 중에 골라야죠.”

“그렇겠죠?”

“갑옷이랑 보호장비를 갖추시면 도움은 되겠죠. 가격은 좀, 많이 비싸고요. 이건 방어증폭률이 300퍼센트거든요.”

임 정은 가슴과 등을 덮은 갑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B급 딜러는 공격력이 1000이죠. 차크라 등급과 숙련도를 끝까지 높이면 공격력과 방어력을 100퍼센트 증폭시킬 수 있고 무기로 200퍼센트를 증폭시키면 4000의 공격력이 나와요. 그건 아시죠?"

"네."

치안대 B급 탱커한테서 조언을 들을 기회는 자주 있는 게 아니라서 태인은 임 정이 하는 말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면서 귀를 기울였다.

"차크라 등급이 6등급에서 1등급까지 한 등급씩 올라갈 때마다 방어증폭률이랑 공격증폭률이 동시에 10퍼센트씩 오르고 차크라 등급이 5등급이 된 후부터는 차크라 숙련도가 20% 오를 때마다 증폭률이 오르죠. 차크라 등급 1등급에 차크라 숙련도 100%가 되면 장비 착용 없이도 100% 증폭률의 효과를 볼 수 있어요. 근데 그 차크라 숙련도가 진짜 안 올라가요."

임 정이 말하자 태인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크라 등급이 1등급이 됐다고 쳐요. 차크라 숙련도가 100퍼센트가 됐다고 치고. 그러면 B급 딜러는 한 번의 공격으로 괴수에게 4천의 데미지를 입힌다는 얘기예요. 이론적으로 그런 딜러가 4백만의 체력을 가진 괴수한테 천 번의 공격을 가하면 혼자서 괴수를 공략할 수 있어요. 리로딩에 걸리는 시간이나 괴수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걸 다 빼고 계산을 할 때 그렇다는 거죠. 실제로는 백 번을 하는 것도 힘들 수 있지만. 무기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그런 계산을 하고서 투자하는 거겠죠. 나중에 등급이 올라서 높은 등급의 괴수를 사냥하면 얼마든지 그 돈을 회수할 수 있다고요. 틀린 생각도 아니죠. 그렇게 계산을 하면 무기 하나의 가격이 30억, 40억을 그냥 웃돌아버리는 건 이상한 것도 아니고요.”

듣고 있던 태인의 입이 벌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