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 몸의 신비를 모르던 초딩시절, 누나가 잔뜩 인상을 쓰며 엉거주춤 배를 부여잡고
한.국.인.의 두.통.약을 먹은 후 조금있다 말짱해진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나.
어느 날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중학생인 형이 나보다 빨리 와 있었다.
몸이 아파서 조퇴를 했다며, 얼굴이 창백해져서 배를 잡고 웅크린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빠는 출근을 하셨고, 엄마는 그 날 제사준비로 큰집으로 간 후이고, 6살 터울인 누나는
고등학생이라 늦게 들어오기에 나는 당황했다.
그러다 지혜롭게(?) 생각해낸 것이 누나방에 있는 그.약.이었다.
나는 누나 책상서랍에서 약을 찾아내 남아있던 알약 6알을 손에 까서 형에게 건네주었다.
아픈 와중에도 형은 의심스러워 거부했지만 나는 누나가 이 약을 먹고
씻은 듯이 나았다며 형에게 먹을 것을 종용했다. 또 나는 형을 무척 따랐기에
형이 배가 아파서 죽어버리면 나도 따라서 죽을 것이라며 엉엉 대성통곡을 했고
형은 그런 나를 보다가 그 약을 통째로 삼켰다.
약을 먹은 후에도 괴로워하던 형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다 정신을 잃었다.
나는 그때서야 큰 일이 터진 것을 알고 부랴부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연락을 해서, 형이 응급실로 호송되었다.
위. 세. 척을 하고 수........술........했.........다..........
급성맹장이었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큰 일 날 뻔했단다.
나 때문에 골로 갈 뻔한 형을 보고 약을 오용하면 안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고 나온 핼쑥해진 형을 보고 미친 듯이 울었고,
귀한 남의 자식 죽일 뻔했다면서 아빠와 엄마께 엄청 혼이 났다.
형은 아빠 친구의 아들로 무슨 복잡한 이유 때문에 우리 집에서 1년 정도 함께 지내다,
강력계 형사였던 아빠가 사건 현장에서 순직함과 동시에 소리없이 떠났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두 남자를 함께 잃었다.
잠시 알약을 보고 있는데 물컵이 코밑에 다가와 있다.
"아, 고마워."
씽긋 눈가에 웃음을 달며(나는 눈이 먼저 웃는다. 다른 말로 하면 눈웃음이 되나?)
손에 있는 빈 껍질을 얼떨결에 씽크대 위에 두고 컵을 받는데........
얼라리요~ 이 놈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손을 잽싸게 뗀다.
이 놈 혹시 내가 약봉지 꺼내는 것보고 지레짐작으로 병 있는 환자로 안 것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무슨 병이 얼마나 전염된다고 저렇게 흠칫 손을 떼냐!!
일단 약을 먹고 물을 마셨다.
이 놈이 내 옆을 지나쳐 현관 옆의 욕실문을 열고 불을 키며 턱짓한다.
그래, 니 놈 깔끔하다. 병자 같으니 더더욱 병 옮기 싫다는 것이겠지.
나는 가방을 내려두고 욕실 앞으로 걸어갔다.
"옷 벗어두고 들어 가. 말려 둘테니."
손으로 단추를 풀려고 하는데 젖어서 잘 되지 않는데다 이 놈이 옆에 서서
빤히 쳐다보자 더 손이 엉킨다.
하나 겨우 풀고..... 두 번째 단추, 어 이상하게 안 풀린다.
어라, 단추 구멍 옆에 실 처리한 부분이 옷감과 떠서 또 하나의 구멍을 만들었는데
나는 그 틈으로 잘못 단추를 넣어 낑낑대고 있었다.
왜 안 빠져......./////.......
옆에 있던 그 놈이 자기 쪽으로 몸을 돌리게 하더니 고개를 숙인다.
아무렇지 않은 이 자세가 웬지 묘하게 긴장된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향수를 뿌리나? 시원한 향이 코 끝을 간지른다.
셋째, 넷째 단추까지 풀러 준다. 뉘 집 자식인지 손 빠르네.
나 런닝셔츠도 입지 않았는데, 녀석이 내쉬는 숨이 맨 살 가슴에 부딪혀 간질간질~
이상하고 묘한 느낌 얼굴을 붉히며, 또 다시
"꼴깍!!........///////"
내친 김에 서비스 정신인지 벨트도 풀러준다.
핫!! 내가 뭐하는 짓인가.
"고,고마워..../////........ 바지는 내가 할게........../////.."
성급히 외치듯 말하곤 돌아서서 위의 옷을 벗고, 지퍼를 내려 바지를 벗었다.
옷을 어디다 두어야 할까 싶어 뒤돌아보니 내 몸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래 내 몸 빈곤하다. 친구놈들이 체육시간에 옷 갈아입을 때 내 몸 보며 놀린다.
'왜 이리 가늘어. 이게 계집애지 사내냐? 피부 봐라. 뽀샤시하니 장난 아닌데.
한 번 안아보자.'
말로 놀리는 것은 그 나마 약과다. 변태처럼 엉키는 것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어떻하겠느냐. 집안 식구들 모두 뼈대가 가늘고 호리호리 여리여리한데
콩 심은데서 팥 나는 것 봤냐?
이 놈이 내 옷을 들곤 현관쪽으로 나간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 팬티를 마저 벗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아...... 개운하다. 아침에 씻지 못해 찝찝했는데.......
아까 긁힌 상처는 닦고 보니 대단치 않아서 다행이다.
따뜻한 물이 좋아 생각보다 한참 있었다. 물기를 대강 닦고 문을 빼곰히 열었다.
바닥에 옷이 보인다. 옷을 들고 다시 욕실에 들어왔다.
새 팬티까지 있네. 어라? 내 사이즈네....... 일부러 사온 것인가?
저 놈 생각보다 된 놈이네.
놈이 준 고무줄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음~ 향긋한 원두 커피향........ 그리고 담배 냄새........
놈은 아직도 젖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씽크대에 기대서 담배를 피고 있다.
한 두해 핀 솜씨가 아니다. 무척 어른스럽다.
나를 보자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곤 머그잔을 건넨다.
"마시고 있어."
머그잔을 받아쥐고 놈을 보자, 손을 들어 내 머리를 헝클리 듯 쓰다듬고 욕실로 들어간다.
머리를 쓰다듬은 느낌이 그리운 무언가를 생각나게 한다.
형도......... 자주........내 머리를.....헝클리 듯......... 쓰다듬었다.......
나는 무심결에 잔을 입에 대고 조금 마셨다.
"엥.....이게 뭐야?"
우유에 탄 따뜻한 코코아였다. 원두커피가 저렇게 있는데 일부러 코코아를.........
후루룩 소리를 내어서 마셨다. 맛이 진하고 달다.
나는 코코아를 탈 때 쵸코릿을 좋아해서 엄청 진하게 탄다.
저 놈이 내 입맛을 어떻게 알았지? 자식! 너도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입맛은 어린애구나.
동지의식(?)을 느낀다. 맛있게 마신 후 개수대에 놓았다. 점점 마음에 든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더니...... 자식! 괜찮은 놈인 것 같다.
나는 침대 옆으로 가서 바닥에 앉고 등을 침대에 기댔다. 조금 졸립기도 하다.
머리를 뒤로 제껴 침대에 뒷통수를 파묻고 눈을 감았다. 아----편하다.
그래도 무성한 소문만큼 무서운 놈은 아닌 것 같다.
학교에서 눈이 마주칠 때 간담이 써늘할 만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만 빼면......
그런 시선을 느낀 성재놈도 언젠가 우리가 저 놈 몰래 뒷담화 한 것이
놈의 귀에 들어가 찍힌 것이 아닐까하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오두방정을 떨었다.
나는 성재놈이 저 놈 흉보며 이죽거릴 때 맞장구 친 죄밖에 없는데........
언젠가 저 놈이 물어오면 나는 매가 무서워 진실을 밝힐 것이다.
사실 우리는 저 놈이 부러워 괜히 트집잡아 뒷담화하며 열등감을 달랜다.
우리 누나가 탤런트나 가수를 보며 어디어디를 고쳐 견적이 장난 아니네하며
콧방귀를 낄 때 사실은 부러운 질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나저나 너무 편하다. 아--함 졸립기도 하고.......................................
시원한 향과 함께 침대가 출렁인다. 깜박 졸았나 보다. 나는 게슴츠레 놈을 보았다.
반바지만 입은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깊은 눈으로 본다.
나도 눈을 못떼고 놈을 본다. 마치 빨려들 것 같다.
벗은 상체가 군살 하나없이 단단해 보인다. 나랑은 틀리게 완전한 성인 남자 같다.
여자애들이 설레는 이유를 알겠다. 남자인 내가 봐도 눈을 못 떼는데........
녀석의 긴 손가락이 조심스레 내 뺨에 와 닿았다가 떨어진다.
찌릿 전류가 흐른 것처럼......가슴이 떨린다.
"올라와 앉아. 치료하자"
나는 조심스레 녀석 옆에 앉았다. 침대 사이드테이블 아래에서 구급함을 꺼내 약을 찾는다.
놈이 상처난 내 오른팔을 잡아 자기 무릎 위에 얹었다.
약 상자에서 후시딘을 꺼내 내 팔꿈치 아래 부분을 긴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펴발라준다.
피부에 닿는 놈의 긴 손가락이 간지러우면서 찌릿한 느낌에 그만 소리를 냈다.
"읏.........///"
"많이 아퍼?"
"아..아니........간지러워서.......////..."
나는 소리를 낸 것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놈의 탄탄한 허벅지가 눈에 박힌다. 조금 고개를 드니 군살없는 배가 보인다........////.......
놈은 열심히 치료를 한답시고 밴드를 모양좋게 붙인다.
치료가 끝나자 아까처럼 머리를 헝클리듯 쓰다듬곤 일어서며 말한다.
"학교가야지..."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 날 우리 둘은 2교시 시작할 시간에 맞춰 나란히 등교했다.
별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녀석이 내게 보여준 자상함에 나는 녀석에게 호감이 커졌다.
또 하나 옷을 갈아입다 내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그 날 본 놈의 몸을 떠올린다.
흠.....여러모로 부러운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