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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115)화 (115/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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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송운이 입궁을 했다고 하여 쓸데없는 경계를 일삼아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겠지만 그리 되었다면 황제 역시 연주원을 둘러싼 기류를 조금 더 기민하게 살펴야만 했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이한이 연주원의 충심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두려움을 아는 황제이기 때문이었다.

이한의 주원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딸이 아닌 아들을 후궁으로 맞이한 건 황제 역시 연주원에게 네가 원하면 쓸데없는 불씨를 만들어 놓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연주원은 아들을 황궁으로 보내며 자신의 변치 않은 충심을 증명했고 황제는 그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의심의 씨앗을 지웠다. 황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란 본디 겉으로 보이는 하나의 뜻 아래 천만 가지의 뜻이 담겨 있기 마련이었다.

“연주원만 괜히 발걸음이 무겁게 되겠구나.”

자란은 손수 귀걸이를 빼내며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선은 여기서 왜 갑자기 연주원의 이름이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였으나 자란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괴팍한 아들을 황궁에 보내놓고 그를 방패 삼아 몸을 웅크리던 이가 갑자기 그 방패를 무기로 삼아 나아가는 형국이 되어버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제 자식이 총애를 얻을까 봐 걱정하는 요상한 모양새가 될 터.

도대체 연화운, 그 한 명의 사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있는 건지. 그건 생각지도 않았던 사내 덕분에 오랫동안 마음에 지고 있던 짐을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게 된 자란에게도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어찌 이리 생각이 없는지….”

오늘도 유명 상단이며 어디며 온갖 곳들에서 밀려든 선물을 모조리 돌려보낸 연주원은 심기가 아주 불편했다. 그간 단 한 번도 이런 선물을 받은 적이 없건만 다들 지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은 연주원이 선물을 받든 받지 않든 성의는 보였다는 위안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홀로 뜰을 거니는 주원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남들은 연씨 가문의 유일한 골칫거리인 아들이 이제야 날개를 달게 되었으니 연씨 가문이 마치 잔칫집이라도 된 양 들떴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연주원은 요즘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후궁으로 들어간 아들이 황제의 관심을 얻고 있다. 그것이 과연 총애라고 불릴 만한 것이냐 한다면 연주원은 절대로 그렇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으나 어쨌든 유일하게 냉대를 받는 후궁이라는 명성이 자자했던 예전을 생각해 본다면 대단한 성과였다. 그토록 황제의 마음을 얻으려 발악을 하였던 아들이었으니 분명 근래에 벌어진 일은 아들에게 행복한 일일 것이다. 주원은 아비 된 자로서 마땅히 그 일을 기뻐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후….”

바닥으로 한숨이 내려앉았다. 기억을 잃으면 정말로 천성이 변하기라도 하는 거냐 묻던 숙진의 목소리가, 황제의 자리를 위해 끝이 어떨지를 알면서도 아들을 황궁으로 밀어 넣었던 지난날 제가 한 선택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헝클어졌다. 아무리 삶이라는 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흘러간다지만 어떻게 이토록 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는 건지 연주원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허면 이 변화들은 과연 앞으로 남은 연주원의 삶을 어떤 길로 이끌게 될까.

지금 이 순간을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듯, 남은 삶을 역시 짐작하는 일 역시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짜증 나!”

혹시나 시들거나 말라가는 식물은 없는지 화단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던 서서의 곁에 아진이 잔뜩 심술이 난 목소리로 툴툴대며 다가왔다. 마마께서 화단을 보고 미소를 지으실 때마다 인생의 보람을 느끼듯 뿌듯해져 요즘은 정원의 식물들 돌보기에 온통 정성을 쏟아 붓고 있는 서서가 아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찌 그러세요? 소 공공이 또 뭔가를 잘못했어요?”

서서는 아진이 무어라 말도 하지 않았건만 대번 이유를 짚어 물었다. 소정이 정안궁으로 오고 난 후 아진이 내는 짜증의 대부분은 소정 때문이었다.

“말도 마. 겁 많은 멍청이처럼 굴 때는 언제고 그게 아주 꼬리 아홉 달린 여우나 다름없다니까?”

말을 하면서도 짜증이 가라앉지 않는지 아진이 눈앞에 있는 줄기들을 심술 맞은 손길로 툭툭 쳐댔다. 기겁한 서서가 황급히 아진의 팔을 잡아끌고선 그 앞을 막아서며 눈을 흘긴다.

“아니, 왜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해요! 마마께서 얼마나 어여쁘게 보시는 아이들인데.”

“지금 그게 문제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글쎄, 걔가 목검에 달 장신구를 마마께 드렸지 뭐야?”

생각하자 또 분통이 터지는지 아진은 이제 아주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을 지경이었다. 조금 전 아진이 화풀이를 했던 줄기가 상하진 않았는지 힐끗 쳐다본 서서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래서요?”

“첫날부터 무례하게 굴었던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신 마마께 너무 감사하여 작게나마 보답을 하고 싶어 직접 만들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조잡하기 그지없는 장신구를 내미는데 마마께서는 또 그걸 너무 기뻐하시며 받아서는 목검에 다시는 거야.”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의아한 얼굴을 하게 되는 서서가 똑같이 또 물었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 조잡한 걸 마마께서 목검에 다셨다니까? 아니, 제가 뭔데 그 비루한 걸 마마께서 쓰시게 하냔 말이야. 검 자루 장식이야 내무부에 말하면 얼마든지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걸 구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마마께서 기뻐하셨다면서요.”

“마마께선 마음이 고우시니 당연히 기뻐하시지. 분명 그걸 노린 거야. 마마께 잘 보이려고 아주 수작을…!”

이제는 아주 두 주먹을 꽉 쥐고 떠는 아진을 향해 서서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런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나빠요?”

“뭐?”

“아니이…. 정안궁 사람들이 마마께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또… 좋은 거잖아요? 그걸로 마마께서도 기뻐하셨다면… 언니가 왜 이렇게 화가 난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니, 그건…!”

여태 설명을 해 주었는데도 이해를 못하는 서서를 향해 아진은 답답한 심정을 담아 다시 목소리를 높였지만 문득 ‘그건…!’ 하고 말을 꺼내놓고 나니 더 이을 말이 없었다. 서서의 말에 틀린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궁의 종들이 자신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잘 보이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진은 한 번도 검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 목검에 장신구를 달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소정은 목검을 아끼는 마마의 마음을 헤아려 나름 정성을 다해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물론 일개 내관의 솜씨로 만든 장신구는 궁의 주인이 달기엔 부족함이 크겠으나 그 주인에 마음에 들어 기뻐했다면 그 또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진은 그 일을 두고 이토록 분이 나고 짜증이 나 여기까지 나와 성질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아진이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서서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그간 마마를 가장 가까이에서 혼자 챙기던 사람이 누군가와 그 자리를 나누려고 하니 잔뜩 질투가 난 모양인데요…?”

“지, 질투는 무슨 질투? 내가 왜? 마마께 나와 그치가 어디 비교가 될 줄 알아?”

아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소정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소에는 언제나 마마와 자신 둘만 있던 곳에 같이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꼴만 보아도 속이 배배 꼬였던 날들이 떠올랐다. 아진은 그게 소정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동안 마마의 모든 수발은 혼자 다 들었는데 그걸 난데없이 나타난 수령태감과 나누려니 화가 많이 났나 봐요.”

“글쎄, 아니… 아니라니까…!”

하지만 어느덧 아니라고 대답하는 아진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전부 빠져 있었다. 서서는 그런 아진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진은 명실상부한 연빈마마의 최측근으로 마마께서는 그 어디에서도 아진을 몹시도 믿고 의지하는 것을 감추는 일이 없으니 정안궁에서는 그런 아진을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디 정안궁뿐인가. 황궁에 연빈마마의 이름이 드높아지고, 폐하께서 정안궁을 자주 찾으실수록 이제는 밖에서도 아진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아진은 그야말로 연빈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진 홀로 있던 곳에 대부분 소정이 같이 있었다. 수령태감이란 본디 한 궁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주인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자였으므로 하기에 따라 소정은 앞으로 얼마든지 아진처럼 연빈마마의 최측근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서서는 시시각각 안색이 창백해지는 아진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안궁의 궁녀들 대부분이 나이가 매우 어렸기 때문에 아진은 그들에게 늘 든든한 어른처럼 보였건만 오늘 보니 더더욱 아진에게 친근감이 드는 서서였다.


“방금 저쪽에서 무슨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어?”

정안궁의 뜰 바깥쪽을 지키고 있던 서천은 갑자기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새벽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라 선 채로 반쯤 졸고 있던 자문은 잠이 그득 묻어나는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소리를 낼 기력조차 없는 모양이다. 유달리 잠이 많은 자문은 도무지 밤 당직에는 적응을 하지 못해 제 차례가 될 때마다 고생을 하곤 했다.

“잠깐 가 보고 올게.”

하지만 서천이 몸을 움직이자 자문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가긴 어딜 가. 순찰 시간도 아닌데 괜히 정안궁 안을 돌아다니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래도 수상한 게 없는지 살펴보기는 해야지.”

“아서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아. 다른 곳도 아니고 후궁전인데 괜히 꼬투리 잡히지 말고 그냥 있어. 아무 기척도 안 들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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