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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74)화 (7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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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침실에 들어선 주 태의는 어쩔 줄 모른 채로 황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화운의 상태를 보러 황후와 비빈들이 곧장 안정전으로 따라왔지만 황제가 모두를 물린 탓에 침실에는 황제와 화운, 그리고 태의 단 세 사람뿐이었다.

거의 정신을 잃은 화운을 엎드리게 하여놓고 피에 젖은 옷을 벗겨 상처를 살피는 내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황제의 시선이 어찌나 따갑고 살벌한지. 황실에서 터줏대감처럼 오래 머무르며 숱하게 황제를 마주했던 주 태의조차도 벌벌 떨리는 손을 어찌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먼저 급한 처치를 마친 태의에게 이윽고 황제가 입을 열었다.

“연빈의 상태는 어떠하냐.”

“예, 폐하. 우선 우려했던 것보단 상처가 깊지 않아 크게 염려하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헌데 어찌 이리 고통스러워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지?”

화운은 지금도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흘려가며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마른 몸 위로 생긴 발톱에 긁힌 상처는 처참해 보였다. 상처가 처음 드러났을 때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너무 꽉 쥔 탓에 이한의 손바닥에는 패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화운의 피부는 너무나도 얇고 연약해 이한이 힘을 주어 꽉 쥐는 것만으로도 멍이 오를 정도인데 그 여린 피부 위로 짐승의 발톱이 지나갔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자신은 그것을 생각하면 속이 뒤집혀 토기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건만, 상처가 그다지 깊지 않다는 태의의 말에 이한은 순간적으로 치민 분노를 몇 번이나 긴 숨을 내뱉고서야 간신히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런 황제의 반응에 땀을 뻘뻘 흘리는 얼굴로 태의가 대답했다.

“그, 그것은… 연빈마마께서 워낙에 유약하시어 이만한 고통과 출혈을 감당하기가 힘드신 까닭입니다….”

이한의 시선이 다시금 침대에 있는 화운에게로 향했다. 작고 마른 등과 어깨에 둘러진 붕대에는 벌써 피가 비치고 있었다. 내내 주먹을 쥐고 있던 이한의 손끝이 이번에는 천천히 허공을 쓸었다. 마치, 화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그사이 태의가 말을 이었다.

“하온데 폐하….”

“고하라.”

“소신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나 아무래도 흉터가 남는 것은…….”

“…….”

“완전히 흉터가 사라지는 것은 조금… 어려울 듯싶습니다.”

태의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연빈이 사내라고 하지만 그는 황제의 후궁이다. 황제에게 맨몸을 보여 시침을 들어야 하는 후궁에게 몸의 상처는 어느 때고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 오죽하면 선대의 어느 황제는 아끼던 후궁이 실수로 허벅지에 화상을 입자 그대로 그를 내쳐 다시 찾지 않은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말을 꺼내는 태의로서는 마음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후궁에게는 몸에 흉터가 남는 일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한 일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지금 흉터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태의는 연빈이 최대한 고통을 덜 느끼게 하고, 상처가 어서 아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도록.”

하지만 천천히 침대로 가까이 다가와 연화운을 내려다보는 황제는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태의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곤 황제를 바라보았다.

후궁의 몸에는 터럭만큼의 흉도 없어야 하고, 손으로 매만져 거슬리는 것이 조금도 없어야 하며, 완벽하게 백옥 같은 피부로 황제의 눈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처럼 여기는 황궁이다. 선대의 후궁들은 조금이라도 맑고 깨끗한 피부를 얻기 위해 매일같이 우유로 목욕을 하고, 평소 먹는 모든 것을 조심했으며,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게 되는 뾰루지 하나가 나는 것마저 두려워하며 살아갔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황제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일개 후궁의 상처를 바라보고 있는 황제 폐하는. 후궁의 몸에 난 저토록 크고 흉측한 상처를 보고도 남을 흉터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 폐하.”

그 마음이 문득 너무나도 버거워서. 감히 엿보아선 안 되는 황제의 어느 마음을 엿본 것만 같아서. 그래서 불현듯 등골이 오싹해진 태의가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연빈을 내려다보는 황제의 시선을 태의는 감히 감당할 수가 없음이었다.


황후궁엔 황후와 숙비, 그리고 정빈이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연빈이 걱정되어 다 같이 안정전으로 갔으나 황제가 태의만 남고 모두 돌아가라 축객령을 내리는 바람에 안의 상황을 듣지 못한 채로 나오게 되었다. 그대로 각자 돌아가려니 서로 마음이 심란한 탓에 따로 떨어져 있고 싶지가 않아 황후궁으로 함께 오게 된 것이다.

“숙비. 괜찮은가.”

창백한 안색으로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숙비, 비영에게 황후가 물었다. 허나 비영은 무어라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초조한 얼굴로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비영의 옆에 앉은 정빈, 송현이 그런 비영의 어깨를 쓸어주었으나 비영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한참 만에, 비영이 입을 열었다.

“저 때문입니다….”

“갑자기 매가 날아와 공격을 한 건 사고였네. 그게 어찌 자네 때문인가.”

“아니요. 황후마마, 저 때문이에요. 연빈이 제게 위험하다고… 위험하니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라고 그리 말을 했습니다.”

비영은 그 순간을 아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며 아우성을 칠 때 연빈은 분명 비영이 서 있는 곳이 위험하다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 연빈의 말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 멍청하게 계속 서 있었던 건 자신의 판단이었다.

“연빈이… 연빈이 꾸민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비영이 말을 이었다.

“제 생일을 망치려고… 저는 애초에 연빈이 변했다는 걸 전부 믿지 않았기에, 이런 식으로 그가 저의 뒤통수를 치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

“그 순간까지도 연빈을 의심해서 제가… 연빈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제가 그때 연빈의 말을 듣고 피했다면… 그랬다면….”

연빈이 저를 감싸 안는 순간의 감각은 여전히 생생하게 비영의 몸에 남아 있었다. 그는 너무나도 마르고 유약한 사내였으나, 그 순간 비영의 얼굴이 조금도 저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게 끌어안는 두 팔과 품에서는 비영을 지키고자 하는 단단한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연빈이 비영을 감싸지 않았다면. 자신의 말을 무시한 비영을 그대로 두고 보았다면 그 커다란 매의 발톱을 정면에서 마주한 건 비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영은 분명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을 터였다.

그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해서. 아찔해서.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워서. 그 공포감의 무게만큼 비영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황후마마….”

그런 비영을 향해 황후, 자란이 무어라 한 마디 더 위로를 건네려고 하는 순간 황후궁에서 연빈의 상태를 알아오라 보낸 내관이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자란은 잠시 비영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내관을 향해 물었다.

“…연빈의 상태는 어떠하냐.”

“다행히 상처가 심각할 만큼 깊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몸이 약한 연빈마마께서 감당하기엔 출혈이 크고 충격과 고통 또한 심해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

“그리고….”

짐승의 발톱에 살이 찢겨나가는 고통은 그 누구에게라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빈은 황제의 품에 안겨 자리를 뜨기 직전까지도 비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비영이 저도 모르게 저를 달래주던 송현의 손을 꽉 쥐었고 말을 머뭇거리는 내관을 향해 자란이 말했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어서 고하라.”

“…태의가 전하길, 아마도 연빈마마의 어깨와 등에는 흉터가 남을 거라고 하였나이다.”

그 말에 눈을 꼭 감아버린 비영의 뺨으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비영은 연빈이 정말로 미웠다. 싫었다. 아비의 이름을 등에 업고 지엄하신 황후마마께 안하무인으로 구는 것도 싫었고, 어디에서나 패악을 부리며 시도 때도 없이 풍파를 일으키는 것도 싫었으며, 무례하고 상처가 되는 말들을, 등골이 서늘한 저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제게 퍼붓는 것이 끔찍했다.

이 내명부에는 연빈과 맞붙어 막아설 수 있는 이가 자신뿐이었으니 매번 그와 같은 기세로 부딪히긴 하였으나 비영이라고 그가 내뱉는 저주와도 같은 말에 상처를 입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연빈이 달라진 것을 황후마마께서 눈여겨보시고, 황제 폐하께서 신경 쓰시며, 급기야 제게는 친동생 같은 정빈마저 넘어갔어도 끝까지 그를 온전히 믿지 못했던 건 그간 연빈이 내두르는 가장 날카로운 말들을 맞아온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비영이 떠올리고 있는 건 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연화운의 모습이었다. 지난날 마마께 보였던 무례를 반성하고 있다고 말하던 연화운이. 그를 대놓고 비웃고 조롱하는 말에도 자신이 벌인 일이니 숙비마마께서 저를 믿지 못하시고 경계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던 그런 연화운이 비영의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렸다.

끝까지 연빈을 믿지 않고 의심하였던 자신을 위해 연빈은 기꺼이 몸을 던졌고 이제는 그로 인해 얻은 상처의 흔적을 평생토록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 누구라도 비영의 사정을 안다면 그의 행동 또한 이해 못 할 일이 아니겠으나 그러한 사실은 지금의 비영에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였다.

“……무사하면 된 것이지 흉터가 남는 일이 대수겠느냐. 폐하께서는 그깟 흉터 때문에 사람을 저어하실 분이 아니시다.”

무거워진 분위기 사이로 자란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허나 여전히 화운이 느낄 고통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어, 황후궁을 채운 이들은 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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