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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미움받는 남후궁이 되었다 (38)화 (38/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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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혔다. 온몸의 내장이 전부 쥐어짜내지는 것 같았다. 다른이가 그리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화운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의 고통이었다.

하운은 연화운을 구하고 허망하게 죽었다. 대다수의 이들은 그 일을 두고 오로지 하운을 동정할 것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던 죽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고작 연화운을 구하기 위해 사그라진 천한 삶. 그것이 세상이 보는 하운의 죽음일 터다.

하지만 하운은 그것이 온전한 사실이 아님을 안다. 이 일은 그토록 간단하게 흘러간 일이 아니다.

하운의 죽음은 모두가 알았다. 깊이 슬퍼하지는 않았을지언정 하운과 함께 생활을 하였던 시위들이 알았을 것이고, 이후엔 잊어버리셨겠으나 존귀하신 황제 폐하께오서도 연화운을 구하기 위해 어느 생 하나가 사그라졌음을 알아주셨다.

허나 연화운의 죽음은 어떠한가. 그가 죽은 것을 세상은 몰랐다. 그의 부모나, 그와 늘 함께 생활을 하였던 정안궁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세상에서 연화운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었을 황제 폐하조차도, 아 도 그의 죽음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세상천지 유일하게 연화운이 죽었음을 아는 는, 하운은, 이리 뻔뻔하게 연화운의 몸을 차지하고 앉아 응당 그가 누렸어야 할 것들을 대신 누리고 있으니.

“흑... 흐윽.......”

원하지 않았다. 하운이라고 이러한 일을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 하여 과연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연화운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연화운인 척을 하고 있는 자신이 과연 이 일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여 당당하게 여길 수가 있을까.

그것은 화운이 줄곧 등 뒤에 지고 있던 죄책감이었다.

정안궁의 아이들이 그를 향해 웃어 줄 때마다. 아진이 해맑은 미소로 저를 대해 줄 때마다.

다정하신 폐하께서 저의 노력을 너그러이 대해 주실 때마다. 그럴 때마다.

화운은 뿌듯하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한편 같은 무게의 죄책감에 짓눌려왔다.

“마마! 연빈마마!”

그때, 화운의 비명을 들은 아진이 사색이 되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 울음을 터트린 화운을 보곤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라 화운을 품에 끌어안으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태의! 태의를 불러라! 어서!”

“아진... 흐윽... 아진......”

“예, 마마. 저 아진이에요. 마마! 숨을 쉬세요. 저를 따라서 숨을 쉬시는 거예요, 마마!”

화운은 제가 아진의 세계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하운이 연화운이 되어서 아진은 조금 더 행복해졌고 , 사람답게 살수 있게 되었다고, 그것은 숱한 죄책감과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화운에게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화운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저를 달래며 태의를 찾는 아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존재가 거짓이라는 걸 아진이 알아도, 제가 마마라며 따르고 모시던 이가 사실은 저보다 훨씬 더 천한 존재였다는 걸 알아도. 그래도 아진에게 이 모든 것이 좋은 일일 수가 있을까.

혹여 그것이 아진에게는 차라리 모욕을 당하고 매질을 당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인 것은 아닐까.

“마마, 조금만 참으세요.... 곧... 곧 태의가 올 거예요, 마마....”

스러지듯 눈을 감자 서럽고도 서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울고 있던 연화운의 얼굴이 떠올랐다. . 이어 저에게 내밀어지던 황제의 단단하고 다정하던 손끝 역시 떠올랐으나 그 손길 역시 결코 천한 제 존재를 향한 손길은 아니었을 테니.

꿈속의 연화운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화운은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폐하.”

오 태감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조금 전 그가 잠시 침소 밖으로 나가 어린 내관에게 귓속말을 듣고 온 이후부터 내도록 그가 자신에게 전할 말을 기다리던 이한은 어두운 얼굴과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 태감이 말을 이었다.

“연빈마마께오서....”

"왜. 연빈이 또 무슨 짓을 했다더냐.”

불안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부러 타박을 하는 투로 물었다. 스스로를 속이려는 사람처럼 이한은 문득 들어온 불안한 예감을 애써 무시하려 들었다. 설령 그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리 말을 하고 싶었으니까. 연빈에게 생기는 일 따위 그 무엇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항변을 하고 싶었으니까.

“...연빈마마께서 몸이 아프시어 아침부터 정안궁에 다급히 태의가 들었다고 합니다.”

“정안궁에서 전하기로는, 크게 고통스러워하며 정신을 잃으셨다고....”

오 태감의 목소리는 끝까지 들리지도 않았다. 마음을 다스린 보람도 없이 연빈이 아프다는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심장이 거세게 옥죄어왔기 때문이다.

연화운이 아프다고 하는 일이야 1년에 200일이 넘도록 있는 일이니 굳이 하나하나 신경 쓸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듣는 순간 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이한은 동요했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얼... 무얼 하였다고........”

별것도 아닌 듯 말을 하려던 것도 실패했다. 이한의 목소리는 속절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파 보였던가. 이한은 황급히 기억을 더듬어 수화원에서 보았던 화운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파 보였다. 어딘가 좋지 않은 기색이 있었다. 연빈의 얼굴이야 언제나 창백했고, 그의 몸은 늘 말라 있었기에 평소와 다름은 느끼지 못하였는데 사실은 아픈 것을 참고 있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감각에 이한의 모든 생각이 뒤죽박죽 어그러진다.

연화운을 품에 당겨 안았다가 밀어내었을 때 그가 비틀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이 혹시 신호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연화운은 언제나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이제 이한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달라지겠다고 모두에게 공표한 이후부터는 단 한번도 제 입으로 황제의 앞에서 아프다 말을 한 적이 없는 이였다. 그러하면 그 때에도 사실은 버티기 힘든 만큼 몸이 좋지 않았던 것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믿지 않는다고 하여서. 너의 가증스러운 놀음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그렇게 엄포를 놓아서. 그래서 연화운은 자신의 앞에서 아프지 않은 척을 하며 버텼던 걸까.

이한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무어라 생각을 하고 옮긴 걸음이 아니었다. 연화운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저는... 저는 폐하께서 ...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감 당하려 하시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한은 화운이 제게 건방지게도 건네던 말을 떠올렸다. 폐하께서 결코 홀로 무겁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그리 간절하게도 말하던 연화운의 여린 어깨를.

하여 이한은, 일국의 황제이자 연빈, 연화운의 황제이기도 사내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하면 연화운에게는 누가 있을까. 모두의 멸시와 조롱 앞에서 변하겠다고 마음먹고 어려운 길을 걷기 시작한 연화운에게는 과연 누가 있어 주었을까 . 그가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시선과 경멸을, 황제의 외면 앞에 그는 과연 누구와 나누어 질 수가 있었을까.

“정안궁으로 가자.”

저도 모르게 불쑥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자 미리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본능처럼 말이 흘러나왔고 그보다 더 먼저 두 발이 움직였다. 그런 이한의 걸음을 막아선 건 오 태감이었다.

“.... 폐하. 조회에 드실 시간이옵니다.”

“.........”

“대신들이 전부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이한은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제 앞에 허리를 굽힌 태감을 노려보았다. 그가 무엇을 잘못한 것도 아닌데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에 불길이 일었다. 하마터면 당장 비키라고 소리를 지를 뻔하기까지 하였다.

무엇 때문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연화운이 아픈 것 따위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된 지 오래였는데 이번에는 무엇이 다르다고 이한은 이토록 동요하고 있는가. 왜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명백하게 우선해야 하는 일을 두고도 황제는 걸음을 망설이며 애꽃은 이를 노려보고 있는가.

“황후궁에도 사람이 갔을 것이니 황후마마께서 먼저 잘 챙겨 주실 것이옵니다. 정무를 마치신 뒤에 정안궁으로 납시어도 늦지 않습니다, 폐하.”

멈추어 서서 움직임이 없는 황제를 오 태감이 다시 한 번 설득했다. 이한은 여전히 이 일은 태감이 굳이 설득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도대체 무슨 연유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황제에게 있어 나라의 일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한 것이 세상천지에 무엇이 있다고. 이한은 왜 연화운을 잠시 미뤄두는 일이 이토록 내키지가 않아서. 왜.

“...청건전으로 간다.”

한참 만에, 아주 고된 숨을 내쉬듯 황제가 말했다. 세게 쥐면 바스라질 것처럼 연약하고 차갑던 화운의 손이 닿은 손바닥이 다시금 따끔거렸으나 이한은 애써 모르는 척을 하며 길을 나섰다.

일찍 밝아오는 아침의 공기는 더없이 청량하였으나 황제가 내쉬는 숨은 무겁기가 그지없어. 청건전으로 가는 내내 그 누구도 감히 황제의 마음을 짐작 할 수가 없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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