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35화 (135/175)

# 135

화산천검 6권(10화)

4장 구조(2)

깡! 푸욱!

“크윽!”

자하검이 밀렸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다섯 자루 묵창이 자하검을 밀치고 복부를 찔렀다.

“그러니까, 그만 끝내야겠다.”

뽑혀져 나오며 피를 공중에 흩뿌리는 묵창이 무척이나 요사스러워 보였다.

“죽어라.”

‘막을 방법은, 염력뿐인가?’

복부를 뚫고 온 혈도를 흔들어 놓은 묵창 때문에 내공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 남은 수단은 염력뿐.

‘막힌대도, 이곳에서 죽을 순 없다!’

죽고자 덤빈 것이 아니다.

죽어도 괜찮다 한 것은 황신과 같이 동귀어진이라도 한 후일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

찌리릿!

‘뭐……지?’

전류가 척추를 타고 흘렀다.

짜릿한 전류가 이어 뇌를 울리며 상단전을 뒤흔들었다.

발출되는 염력이 엄청나다.

내 정신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엄청난 기운.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우뚝!

미간 사이로 찔러 들어오던 묵창이 멈추었다.

주르륵∼

조금 늦었는지 살짝 찔린 미간 사이로 피가 흘렀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황신의 공격을 막았다는 것뿐.

“공명인가? 곤란하군.”

황신의 팔근육이 힘을 계속해서 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 부풀어 올랐지만 그래도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신의 머리 부분에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힘과 동류인 힘이 느껴졌다.

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절대로 보일 리가 없는 염의 힘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주변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의, 실과 같은 모양의 힘이 내 염력을 움켜쥐고 옆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염력을 무용지물로 만들 한 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첫째로 보이며, 둘째로 나보다 약하다.

묵창을 쥐고 있던 힘을 살짝 분산시켜 황신의 염력을 끊었다.

얼어붙은 것만 같은 무심한 얼굴이 순간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염력이 통하지 않으니 염력으로 움직이고 있던 묵창들은 이미 땅에 떨어져 박히거나 구르고 있었고, 나머지 한 손의 창 또한 점점 염력을 강하게 하며 붙잡고 있었다.

나를 공격할 방법은 없고, 내가 공격할 방법도 없다.

그저 소모전일 뿐이고, 시간 싸움일 뿐이다.

화산파 사람들이 먼저 오느냐, 내가 먼저 쓰러지느냐.

“창마대, 움직여라.”

“존명!”

“이런, 막아라!”

지금까지, 수장끼리의 싸움과 마찬가지로 서로 싸우지 않고 황신의 뒤에, 내 뒤에서 대치하고 있던 무인들이었다. 그런데 황신의 그 명령에 창마대가 신속히 움직였다.

긴장을 놓고 있던 무인들이 순식간에 당해 버렸다.

황신과 싸우고 있기에 나를 건드리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들리는 쓰러져 가는 무인들의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는 나를 지금 죽이려 하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멈춰!”

“공명을 멈추고 나에게 죽어 준다면 물러나 주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저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네놈의 말을 믿으라는 거냐!”

“믿기 싫으면 그저 비명 소리를 들으며 즐기면 된다. 그러면 너희들의 지원군이 올 때에는 너 혼자 살아남고, 우리는 도망가 있겠지.”

“이익!”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도망? 희생? 반격?

대체 뭘 선택하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짧은 순간에 황신이 중얼거렸다.

“결국 와 버렸군.”

움찔!

저절로 몸이 떨렸다.

염력이 흔들릴 정도의 강한 존재감.

이 세상을 모두 아우를 듯한 압도적인 기세.

조화롭게 품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찍어 누르고 복종시키는 패도의 기운.

익숙한 기운이다.

예전보다 너무나 강해진 기운이지만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종남의 반룡.

마진천의 기운이었다.

“공명을 그만둘 수는 없지. 청우가 그만두려 해도 내가 그만두지 않는다면 공명은 멈추지 않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래도 이 녀석을 죽일 시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하지만 늦은 것 같군.”

무심한 말투에 살짝 감정이 깃들었다.

떨리는 목소리.

호승심? 두려움?

대체 무엇일까?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 각성도 하지 못한 주제에 언제 조언을 해 줬다고 일사도랑 싸운 건지. 일사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바로 남궁세가로 달려갔을 거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언보고 장로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화산파다! 화산파의 지원이다!”

우와아아∼

지원이 왔다는 반가운 소리.

바닥으로 떨어지던 사기가 급속도로 차올랐다.

촤아악∼ 스걱! 푸화학! 카앙!

“패경욱! 너희 조를 이끌고 부상자들을 돌봐라.”

“알았다.”

“배운정! 위험한 놈들이니까 정면대결은 하지 마. 선검수들의 실력으로는 아직 상대하기 무리인 실력자들이다. 화산파 계율을 어겨서라도 세 명 이상으로 조를 짜서 상대해. 책임은 무림맹으로 돌아가서 내가 진다.”

“알았어.”

계속해서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들.

패경욱, 금정일, 배운정.

“매화검수들은 알아서 적들을 상대하면서 보조하도록.”

마치 화산의 매화향이 맡아지는 듯하다.

이것이 순풍이 무소가 얘기했던 문파의 향기인 것인가?

절제되고 잘 연마된 검과 같은 기운의 목소리의 주인.

매화검수들이었다.

“혁아, 일아는 나와 같이 앞으로 전진한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갈 거라고요, 장로님.”

조화검 도우화 장로님과 유혁 사형, 장일 사형.

마지막으로 사부 다음으로 가장 보고 팠던 사람.

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찮게 되었군. 화산의 세 꽃과 반룡, 그리고 가장 성세를 구사하고 있는 화산파라니.”

“그러게 누가 혈천회의 호법이라면서 전선에 나오라고 했나? 방 안에서 뒹굴뒹굴거리다가 마지막에나 튀어나오면 될 것이지.”

날카롭게 비판하며 마진천이 천천히 다가왔다.

저벅! 저벅! 턱!

마진천이 내 얼굴 바로 옆에 얼굴을 들이대곤 검을 뻗었다.

“오랜만이다, 청우. 그리고 창마 황신.”

스걱! 푸화학!

어깨 부분을 훑고 지나간 푸르른 검신이 달빛 아래 고고히 빛났다.

“칫, 방심했군. 피할 수 없을 줄 알았건만. 아직 한 수가 남아 있었나?”

마진천이 아깝다는 듯 혀를 찼다.

후두두둑 떨어지는 굵은 핏방울들.

황신의 왼쪽 어깨가 반쯤 갈라진 채로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역시나 가장 귀찮은 존재였군. 피해가 좀 있더라도 예전에 죽였어야 했는데.”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후회는 저승에서나 해라.”

캉! 카가가각!

공중을 유영하는 다섯 자루 묵창들이 마진천의 검을 막아 내며 불똥을 튀겼다.

“물러. 상처를 입은 것이 그렇게나 놀랄 일인가, 황신?”

순간 마진천의 검을 막아서던 묵창들이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아직 공명의 여운이 남아 있기에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마진천의 단단한 염력이 흔들리고 있는 황신의 염력을 소멸시킨 것이다.

쾅! 푸슉!

“큭.”

처음으로 황신이 신음을 내뱉었다.

강력한 경력이 깃들어 있는 일 검.

마진천의 검을 막아 낸 것은 오른팔이었건만 충격의 여파에 의해 왼쪽 어깨의 상처가 더욱더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끝내 주마.”

촤아아악!

파도가 덮쳐드는 환영이 보이는 것만 같은 일참이었다.

해남파의 남해삼십육검과 같은 바다를 본뜬 무공.

분명 비슷한 초식이건만 마진천과 남문기의 무공 실력 차이가 있기 때문인지 위력 면에서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따다다다당! 파앙!

마진천의 염력을 이겨 내고 다섯 자루 묵창이 다시 공중을 유영하며 경력을 다섯 차례 막아섰고, 마지막으로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묵창이 경력을 완벽히 해소해 냈다.

“…….”

황신의 얼굴이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지쳤다고는 하지만 수의 차이도 있고 장로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신룡들이 분발하고 있는데 창마대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마진천이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했다.

왠지 옛날보다 더욱더 성격이 삐뚤어진 것 같았다.

“도주한다.”

병장기 소리와 비명 소리, 고함 소리가 난무하는 전장이건만 황신의 작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모두들 나와 비슷한 것인지 잠깐 싸움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순간에 뒤쪽에서 퍼어엉!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웃, 뭐냐?”

“숨을 멈춰라! 독무다!”

“검풍으로 날려 버려라! 숨을 멈추고만 있으면 답이 안 나와!”

후우웅∼

싸늘한 예기를 담은 바람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넌 도망치지 않는 건가? 꼴에 호법이라고 자존심은 있나 보지?”

“죽여 주지. 덤벼라.”

“내가 할 말이다.”

피식 웃곤 마진천이 손을 내밀고 주먹을 쥐듯 모았다.

염력.

“당했던 것은 방심해서일 뿐. 통하지 않는다.”

황신의 말대로 마진천의 염력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과연 그럴지 보자고.”

콰드드드드!

크게 밟은 진각의 여파에 의해 주변의 지반이 가뭄이라도 난 듯 갈라지며 솟구쳤다.

그리고 토룡과도 같이 솟구친 지반이 황신에게 달려들었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공중을 날아다니던 묵창이 땅을 크게 한 번 훑었다.

파파파파!

그러자 마찬가지로 지반이 솟구치며 마진천의 토룡이 바로 앞에서 막혀 버렸다.

그리고 잠시 동안 시야가 가려진 사이.

후우우웅∼

마진천이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힘을 끌어 올렸다.

검을 기준으로 생겨나는 회오리바람.

팟!

마진천이 회전시키던 검을 멈추고 무언가를 밀치듯 검면으로 앞을 내쳤다.

쿠우웅!

화포(火砲)가 쏘아지듯 원을 통해 모인 힘이 마진천의 검에 밀쳐져 앞으로 날아갔다.

콰아앙!

솟구친 모래먼지 사이로 포탄(砲彈)이 터져 나갔다.

‘피했다.’

방심한 틈을 노리고, 시야를 가린 상태에서의 한 수였는데도 황신은 가볍게 피해 냈다.

상처 입은 몸이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의 실력이었다.

무심한 두 눈이 한순간 빛나며 믿지 못할 만큼의 살기를 뿜어냈다.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의 무서운 살기.

살기를 직접적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간접적으로 받은 것일진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그걸 능글맞게 받아 내는 마진천도 대단하다.

아니, 그에 맞춰 비슷할 정도의 살기를 뿜어냈다.

‘그냥 내보일 수 있는 살기가 아니야.’

사람을 엄청나게 죽여 보았다거나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만이 이런 엄청난 살기를 내뿜을 수 있다.

마진천은 어느 쪽인 것일까?

“흡!”

황신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허리를 뒤로 크게 젖혔다.

끊어질 것만 같이 숙여진 허리.

“하압!”

엄청난 탄력으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들고 있던 창을 내던졌다.

창을 타고 휘도는 회오리바람과 염력을 방해할 정도의 강력한 경력.

투창(投槍).

내가 예전에 죽음을 예감했던 그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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