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34화 (134/175)

# 134

화산천검 6권(9화)

3장 만나다(4)

“허억! 허억!”

파검술을 쓴 자는 파검술에 조예가 깊은 해남파 속가 문파의 장문인, 폭렬검(爆裂劍) 서충공(徐忠恭)이었다.

들고 있던 상태에서 폭발시킨 것이 아닌, 던져서 폭발시킨 탁월한 능력.

물론 지금 상태로는 바로 쓰러져도 별반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래도 대단했다.

이어서 근처에 있던 점창파 문도가 재빨리 북초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역시 구파. 아무리 손에 꼽히는 후기지수라고 해도 저런 상처로 이런 활약을 할 줄은 몰랐다.”

무심한 목소리.

하지만 음공이라도 되는 양 가슴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

숨이 막혀 온다.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하고,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육 척 장신에 근육으로 뭉쳐진 체구.

이목구비가 선명하면서도 각이 진 얼굴, 불길처럼 쏟아져 나오는 눈빛.

강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여기 있다, 이곳에서 보았다.

나의 원수, 혈천회와의 악연의 원인.

“황……신.”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4장 구조(1)

“누구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분위기와 기도만은 범상치가 않다는 것을 알아챈 천선자 이이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선자 이이인가? 가당치도 않은 협객을 흉내 내고 있는 어리석은 늙은이로군.”

신랄하다.

하지만 너무나 무심한 말투이기에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받아들이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자네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황신의 모습은 천선자 이이에 비해서는 무척이나 어려 보인다.

적이라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무정한 세상, 어릴 적 지나가던 구파의 무인에게 도움을 받고 구파에 들어가 장로가 되었다는 과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과거를 알고 있다.

순간 천선자 이이의 몸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미 몇 십 년이 지난 얘기. 갑자기 들먹이는 이유를 모르겠소이다.”

“이 세상, 협이라는 것은 정확한 기준이 없지. 협? 억강부약과 같은 선행을 행하는 것이 진정 선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약자를 도와 내가 보고 있는 곳만이라도 웃음이 넘치게 만들고 싶은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오?”

“선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이지? 어느 곳이든 그곳만의 법도가 있는 법이다. 네가 볼 때엔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있는 것 같아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만의 법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네 기준에 어긋난다고 모든 것을 깨부수고 누군가를 억압한다? 그것이 진정 협인가? 아니, 그저 네 강함을 여러 인물들에게 증명하고픈 공명심의 발로겠지.”

“궤변이오. 들을 가치가 없소.”

“가당찮은 소리. 그렇다면 절강성에서 모용세가와 있었던 일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지?”

“그…….”

말문이 막혔다.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것보다 이 말에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런 표정이 천선자 이이의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과거의 속죄 따위에 협이란 없다. 천선자 이이.”

무너진다.

허탈한 한숨,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천선자 이이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 옆은 엄수사인가? 그리고 파검술을 쓴 것은 폭렬검 서충공. 다들 재미있는 과거를 가지고 있군.”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무심하고 무정한 말투.

“그런 헛소리에 장단을 맞춰 줄 생각은 없다.”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네가 판단할 바가 아니지.”

“시끄럽다. 상황을 보자니 네가 점창의 신룡이 말한 호법 창마 황신인 것 같은데, 시끄럽게 떠들 필요 없이 나와 겨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호기가 가득 담겨 있는 외침.

하지만 엄수사가 격렬한 파도라면, 황신은 전설에나 존재한다는 북해의 빙정(氷精)이었다.

“상대도 되지 않는 자에게 가르침을 내릴 아량 따위는 없다.”

“뭐라?”

엄수사가 눈을 부릅떴다.

“너보다는 저 녀석이 더 흥미롭군.”

눈이 마주쳤다.

세상이 멈춘다.

다른 자들의 모습과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종국에는 나와 황신, 둘만이 이 공간 안에 남았다.

“오랜만이군, 화산파.”

무심하다.

그리고 무심한 만큼, 원한은 더욱더 깊어져만 간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미쳐 버릴 만큼.

“제자와 사부, 모두 내 손에 한 번씩은 쓰러졌군. 안 그런가?”

그 말.

그 한마디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게 되었다.

머리가 반응할 시간도 없이.

이미 몸은 자리에서 튕겨나듯 뛰어가 황신의 앞에서 검을 뽑아 휘두르고 있었다.

캉! 카가각!

으득!

“황……신.”

“인사치곤 거칠군.”

상처의 고통이 없어졌다.

희미해져 가던 눈앞이 안구에 내공을 집중한 것마냥 맑아졌다.

“이곳에서 내가 죽더라도 너만은 쓰러뜨리고 가겠다.”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가 되어 살기와 함께 분출되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해 주지.”

치리링! 파캉!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집에서부터 발출되는 맑은 검명.

이어서 갈천악의 묵창과 부딪친 검을 타고 손아귀를 찢어지게 만들 듯한 강력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점창의 신룡과 같은 상황을 만들고 싶은 건가? 미안하지만 네가 만전이었을 때라도 날 이길 순 없을 것이다.”

무심한, 사실을 말하는 듯 선고하는 목소리.

“…….”

말없이 입술을 깨물며 자하검과 청운검, 두 검을 교차했다.

카아앙!

부딪친 묵창이 진동한다.

이 생사를 건 싸움이 즐겁기라도 한 듯 행복에 겨워 몸서리쳤다.

“추혼칠마창이 좋아하는군. 이런 모습은 오랜만이다.”

“시끄러!”

자하십육검 사 검.

따다다당!

자하십육검을 펼쳤다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독사와도 같이 자유롭고 사이하게 움직이는 묵창은 경력의 맥을 물어뜯어 분쇄시키고 검날을 때렸다.

“화산파 비기, 자하십육검. 드디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나 보군.”

스르륵∼ 턱!

한 자루 묵창이 살아 있는 듯 등에서 뽑혀 나와 공중을 유영하며 황신의 손에 쥐여졌다.

‘상단전.’

아미파 불염신니와 같이 고절한 내공으로 물건을 움직인 것이 아니다.

상단전을 통해 발출된 염의 힘.

예전 종남파와의 합동훈련 때 왜 염력이 통하지 않나 했더니 이런 이유에서였다.

마진천과 같은 이유.

상단전은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니까.

“가볍게 한 수로 끝내 주도록 하지.”

또다시 움직인다.

등에서 뽑혀 나와 황신의 머리 위에 일렬로 나란히 선 다섯 자루의 창.

도합 일곱 자루.

순간 두려운 상상이 떠올랐다.

나보다 더욱 능숙한 상단전의 운용.

보인 것은 겨우 그것 하나뿐인데 어째서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냐?

‘크으윽!’

원수다.

바로 눈앞에 있다.

발만 한 번 구르면 도달할 거리에 있다.

거리낄 이유는 없다.

단 한 번.

달려가서 마지막 일격을 퍼부으면 되는 것이다.

치리링! 화아악∼

자하십육검 십오 검.

살짝 검을 비틀며 휘두르자 맑은 매화향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회의 기록에 따르면 화산파 자하의 전인과 싸울 때면 언제나 그윽하고 아찔한 매화향이 난다고 했다. 이런 뜻이었나?”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머리는 맑으나 가슴은 불타오른다.

정(精)과 기(氣)의 불일치.

그리고 바닥을 기는 신(身)의 체력.

모든 것이 나에게 불리한 상황이지만 관계없다.

쓰러지더라도, 냉정하지 못한 판단이더라도, 이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간다.’

자하십육검 십육 검.

노을의 조화로움과 신비로움을 담은 자하.

화산파 초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져 온 비전의 비기, 불패의 신공.

서로에게 예를 차리며 제압을 하려는 목적의 검공이 아니라 살(殺), 적들을 죽이기 위한 검공.

그 마지막 초식을 올올이 풀어냈다.

이 순간은 혼(魂)의 신(神)과 심(心)의 정(精), 신(身)의 육(肉)이 조화를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상관없었다.

무언가가 흥하고 성하면 다른 무언가는 망하고 쇄하는 법.

그것은 만고불변의 자연의 진리.

조화가 중용의 태극 법도라지만, 이것 또한 자연의 또 다른 법이다.

길은 다를지언정 극은 같다.

그것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그윽한 매화향 속, 찬란한 청색 광채와 자색 광채를 뿌리는 두 검.

천하를 뒤엎을 듯한 강력한 경력의 소나기.

이것이 바로 자하십육검 마지막 극의의 검.

십육 검이다.

피해 낼 구멍은 없다.

천지사방 어디로 도망가도 향기는 어디든 따라간다.

십오 검의 향기가 퍼진 모든 곳이 공격의 범위 안이다.

황신이 피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위력적이긴 하다만 부족해. 아직 마음의 검이 다듬어지지 않았다.”

점점 퍼지며 빙글빙글 도는 다섯 자루 묵창.

하나하나 공간을 일그러뜨릴 듯한 엄청난 경력을 품고 있었다.

차앙!

손에 쥐고 있는 두 자루 창이 교차하며 빙글빙글 돌던 다섯 자루 창의 중간을 꿰뚫었다.

촤촤촤촤악!

뻗어 나가는 유형화된 경력.

묵창을 닮은 심연의 어둠이 자색 노을의 광영과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저번과는 다르다.

갈천악에게 일 도에 두 개의 매화가 스러졌던 매화만천.

그렇지만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진정한 형을 찾은 자하십육검의 십육 검.

지극히 실전적이고, 살기가 넘치는 검공의 극의는 그것을 내가 완벽히 숙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엄청난 위력을 내보이고 있었다.

뚜둑! 우두둑!

초식은 서로 부딪치며 상쇄되었다.

만전이었다면, 지금의 깨달음을 내 것으로 소화했다면 내가 이겼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공중을 떠다니는 다섯 자루 묵창과 자하검, 황신의 손에 잡혀 있는 두 자루 묵창과 내 청운검이 부딪쳤다.

계속해서 힘을 주곤 있다만 마치 모든 것을 가로막는 벽에 부딪친 것마냥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뼈가 부러질 듯 비명을 지르고, 피부를 뚫고 나올 듯이 혈관들이 부풀어 요동쳤다.

팔이 터져 나갈 듯한 지독한 통증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지금 팔이 부서지더라도, 내 몸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이 기회에 이자를 쓰러뜨린다.

“말했을 터인데. 마음의 검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 완벽히 다듬어졌더라면 이미 내가 졌을 테지.”

놀랐다.

힘을 집중하느라 나는 말할 기운도 없는데 황신은 태연히, 아까 전과 같이 무심하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 황신의 눈썹이 꿈틀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군.”

“……뭐?”

간신히 힘을 내 물었다.

“포위를 당한 건가? 간단히는 빠져나가기 힘들겠군.”

‘설마, 드디어 온 건가?’

포위를 당했다는 말.

우승빈이 했던 말이다.

사문, 화산파의 사람들과 세 꽃.

그리고 종남의 반룡.

엄청난 전력의, 실력을 갖고 있는 지원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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