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87화 (87/175)

# 87

화산천검 4권(12화)

5장 어둠 속의 소란(2)

촤아악!

그러자 시큼한 냄새가 나는 어떤 액체가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퍼지기 시작했다.

푸쉬쉭!

새빨간 연기를 내뿜으며 침상을 태워 가는 극독.

조금만 늦게 움직였어도 뼈도 못 추릴 뻔하였다.

“누구냐!”

텅!

몸을 띄우며 자하검으로 매화초개를 전개했다.

콰드드득!

그러자 위에 있던 누군가가 지붕을 갈라냈는지 동그란 원 모양의 나무판자가 나의 자하검을 막았다.

황급히 치워 내고 다시 한 번 몸을 띄워 틈을 통해 올라갔다.

미약한 월광에 얼굴이 어둠에 휩싸인 한 사내가 내 앞에 검을 내밀고 서 있었다.

“…….”

얼굴을 보려 눈에 내기를 집중하는 순간, 사내가 움직였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보통 사람이 달리는 정도의 속도로만 보였다.

싸아악!

검을 피해 내자 파공성이 길게 울려 퍼졌다.

남자의 얼굴은 복면에 가려져 있었다.

요즈음 복면을 무척이나 많이 본 것 같았다.

복면을 벗기려 손을 뻗는 순간, 남자가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내 손은 당연히 남자의 복면 위를 스쳐 지나갔고, 남자는 허리를 뒤로 젖힌 반동을 통해 순식간에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궁신탄영?’

상승의 신법을 전개한 남자는 또다시 나에게 검을 겨누었다.

복면 위로 드러난 눈.

나를 잡아먹을 듯 이글이글 빛나는 눈빛이었다.

‘어째서?’

게다가 그 눈빛에 담긴 감정.

마치 철천지원수를 만난 듯 엄청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니, 그런데 천풍걸개는 어디 있는 거지?’

아직 나타날 때가 아니라 생각한 건가?

아니면 저자가 천풍걸개조차 생각하지 못한 변수라는 건가.

가능성은 반반.

‘일단 내가 먼저 행동하여 반응을 본다.’

검을 환집하고 앞으로 내달리며 다시 매화초개.

자하검의 보라색 검신이 월광 아래 빛을 발했다.

사악!

앞섶을 가른 자하검.

빠른 속도에 의해 생겨난 열기에 의해 피부에 닿지도 않았건만 잘린 앞섶을 따라 복면인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가 살기를 뿜어내더니 기묘한 보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왼쪽으로 움직이는 듯했는데,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남자의 신형.

하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매화종지를 전개해 베어 버리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매화종지는 허초.

검을 손에서 놓아 버리고 신류퇴 전추로 남자의 얼굴을 쳐 버렸다.

빠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남자가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쿵!

벽에 부딪치더니 남자가 몸을 축 늘어뜨렸다.

‘죽은 건가?’

손가락의 꿈틀거림조차 없었다.

다가가 복면을 벗기려 하는데, 남자의 눈이 떠지며 살광을 발했다.

‘속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젖히자 왼쪽 뺨에서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빛나는 묵색 비수.

묵색 도신에 붉은 피가 흘렀다.

‘큭, 독인가?’

상처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탁한 기운.

다행히 마진천이 예전에 준 선단의 영향으로 중독이 되거나 하진 않지만, 기분이 무척이나 나빠졌다.

암향표 신법으로 뒤로 물러났다.

남자가 크게 숨을 내쉬더니 복면을 벗었다.

얼굴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얼굴 전체가 검상과 같은 상처투성이인 것이다.

‘본 기억이 없다.’

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오랜만이군.”

하지만 남자는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날 알고 있나?”

경계를 풀지 않고 말하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 절대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겨 준 사람인데.”

남자가 말하며 상의를 젖혔다.

그러자 옆구리와 가슴 부근에 커다란 상처가 보였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기억이 날듯 말듯 한 모습.

“기억하나?”

남자가 말하며 검으로 가슴을 베고 옆구리를 찌르는 흉내를 냈다.

그러자 알 수 있었다.

‘생각났다.’

종남파와의 합동훈련 때, 내가 거의 다 쓰러뜨렸던 복면인들의 수장.

장포와 궁신탄영, 그리고 그 상처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화산파의 꼬맹이. 지금 그 원수를 갚아 주마.”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곤 남자가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달려들었다.

쌔애액∼!

“큭!”

옆구리를 베어 가는 단도.

그리고 똑같은 부위를 찔러 오는 기다란 장검.

자하검과 뽑아낸 청운검으로 교차해 막고 힘을 주어 튕겨 냈다.

오른손으론 매화지변, 왼손으론 매화표표.

환검으로 단도와 장검을 옭아매고 질풍 같은 초식으로 공격한다.

스걱!

허벅지를 난도질하는 질풍 같은 매화.

앞으로 일보 나서며 신류퇴 낙추로 상처를 찍었다.

“큭!”

낙추로 찍은 오른발에 힘을 주어 몸을 공중으로 띄우며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오른손의 자하검을 내던졌다.

깡!

그러자 남자가 자하검을 단도로 쳐 내며 빈틈이 생겼다.

그 빈틈은 내가 노리는 바였다.

매화검로 육 초 매화천락.

콰콰콰콰!

떨어져 내리는 커다란 매화의 잎이 남자의 몸을 타고 휘몰아쳤다.

“끝이다!”

땅에 사뿐히 내려앉으며 오른손으로 장천수 일 초를 전개했다.

퍽! 빠악! 우두둑!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또다시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이번엔 정말로 끝이다.

피가 온몸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고,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숨을 쉬기도 힘들 것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죽을 정도지만 이미 그 타격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크다.

“후∼”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강했던 복면인의 수장이었지만, 지금은 간단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손쉽게 이길 정도로 강해졌다.

그 사실에 무척이나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런데 시체는 어떻게 하지?’

천풍걸개에게 맡겨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바깥쪽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이제 진짜가 오는 건가?’

재빨리 아래로 내려가 침상을 살펴보는데, 아뿔싸, 복면인의 수장이 뿌린 독에 의해 침상은 고열에 녹아 버린 형상이었다.

앉기에도 글렀고, 눕기에도 그른 상황.

‘어떡하지?’

기척도 가까워졌다.

몇 번 움직일 사이에 기척이 문을 열고 들어올 정도.

‘안 되겠다.’

자리에 주저앉아 상처를 한 번 쓱 훑어 피를 닦아 내고 가부좌를 틀었다.

‘천풍걸개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게다가 월광이 비치지 않는 그늘진 곳에 앉아 있으니 속이기엔 더 좋을 것이다.

휘잉∼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인지, 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인지.

바람이 나의 몸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탐색인가?’

바람이 소음을 만드는 틈을 타 재빨리 안으로 들어온 한 인영.

하지만 나에겐 통하지 않았다.

기척을 계속해서 살피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

멀리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인영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운기를 하고 있다고 착각을 했는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인영.

‘오 장, 사 장, 삼 장, 이 장, 일 장…… 지금이다!’

나의 지척에 다가온 그 순간.

눈을 번쩍 뜨며 다리를 펴 인영의 다리에 걸어 끌어당겼다.

하지만 인영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다리를 뻗자마자 어떤 의도인지 알아차렸는지 공중으로 몸을 띄우며 순식간에 손을 내밀었다.

‘뭐……?’

막으려 했는데 순간 왠지 모를 오한에 고개를 틀어 피했다.

사악!

볼에서 뜨거운 느낌과 함께 따갑고 쓰라린 고통이 왔다.

‘큭, 숯을 뿌린 비수인 건가?’

너무나 어두운, 칠흑 같은 어둠인지라 손과 비수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도신에 숯까지 뿌린지라 월광에 검광조차 비치지 않아 더욱 그랬다.

느낌에 몸을 맡긴 것이 다행이었다.

뒤로 몸을 젖히고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두 발로 괴한의 팔을 걷어찼다.

팍!

한 손을 띄우고 다른 한 손으로 몸을 빙글 돌리며 몸을 띄워 괴인의 뒤로 향했다.

괴인은 그런 나를 보더니 비수를 위로 던졌다.

쌔액∼!

“큭!”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지만 무척이나 위험했다.

암향표 신법으로 뒤로 물러나며 자하검을 뽑았다.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가 맞는가?”

괴인의 음성은 왠지 모르게 맑았다.

“맞소.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요?”

단 두 번의 부딪침이었지만 그 만만찮음에 긴장하며 기를 끌어 올렸다.

“내가 누군지는 알 바 없지. 아니, 알면 곤란하거든.”

인영이 말하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릉∼

모공을 송연하게 만드는 백광.

순간 그 검광에 눈이 부셔 눈을 찌푸린 순간, 괴인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윽!”

캉! 카앙!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는 괴인.

나 또한 매화초개를 전개할 때와 마찬가지의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속도 면에서는 내가 더욱 빨랐다.

‘가능성이 있다.’

휭∼

남자의 검을 피하고 앞으로 일보 나서며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스걱!

“큭!”

남자가 무척이나 진중한 보법으로 피하려 했지만 나의 검이 더욱 빨랐다.

허벅지에 얇은 검상을 입은 남자는 입술을 깨물며 상처 입은 발로 나의 배를 걷어찼다.

“컥!”

무척이나 강력한 경력이 담겨 있는 발차기에 헛구역질이 올라올 뻔했다.

“대체 무슨…….”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이 혈천회의 괴인은 종남파의 장로인 걸까?

가능성은 높았다.

첫째, 진중한 보법.

사도와 마도의 보법은 그 기묘함과 사이함에 주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정도의 보법이 진중하고 무척이나 경쾌한 데 반해 사도와 마도의 보법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생각될 정도로 몸을 꼬거나 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 이건 옛날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사도와 마도도 점점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정도로 진중한 보법은 절대 사도와 마도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둘째, 무척이나 정심한 내공.

이렇게 발에 경력을 실어 발차기를 맞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사도의 불쾌한 그런 내공이 아니었다.

불문이나 도가와 같은 정종의 정심한,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그런 내공이었던 것이다.

“겨우 선검수 주제에 나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라니. 역시 회에서 말한 대로 얕보면 안 되겠군.”

“역시 혈천회로군. 종남파의 장로인가?”

나의 말에 괴인의 몸이 살짝 떨린 것 같았다.

“헛소리를 하는군. 구파 같은 문파에 이 혈천회의 종이 몸을 담을 것 같으냐!”

화를 내듯이 괴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검을 움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