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84화 (84/175)

# 84

화산천검 4권(9화)

4장 종남파 장문인과 개방(2)

“그렇다면 시험해 보겠습니까? 자랑스러운 종남파의 십검수, 금섬검(金纖劍) 허정(許政)?”

마진천의 당돌한 말에 금섬검 허정이라 불린 남자가 더욱 인상을 찌푸리더니 검병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손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검병에서 손을 떨어뜨렸다.

“화산파의 손님 앞에서 무례를 범할 수는 없기에 참는 것이다, 마진천. 그렇게 오만하게 행동하다간 언젠가 나무에서 굴러떨어질 테니 항상 조심해서 행동하도록 해라.”

“전 원숭이가 아니라 나무에 별로 올라갈 일이 없는데 말이죠.”

마진천이 비꼬듯 웃더니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싸늘한 분위기에 주변에 있는 후기지수는 물론 도오연 장로조차도 입을 다물었다.

“무례를 범해 죄송하오. 이제 일이 해결된 것 같으니 따라오시오.”

허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커다란 건물.

“이곳이오.”

허정의 옆에 있던 남자가 말하곤 문을 세 번 두드렸다.

그리고 안에다 뭐라 뭐라 말을 했다.

“이제 됐소. 들어가시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공간 안, 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커다란 장포를 입고 있으며, 희끗희끗한 수염이 보이는 검은 수염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왔군.”

노인이 몸을 일으키자 키가 무척이나 커 보였다.

나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일까?

그리고 장포가 조금 낄 정도의 단단한 몸도 보였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몸이었다.

“자네가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인가?”

“예, 맞습니다.”

공손히 말하며 인사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말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내가 바로 구파인 대(大) 종남파의 장문인, 천수신검(千手神劍) 곽형일(郭炯日)이네.”

말하며 종남파의 장문인, 천수신검 곽형일이 기세를 내보였다.

쿠쿠쿠쿵!

온몸이 무언가에 짓눌리듯 움직이기 힘들었다.

마치 화산파 장문인께서 은연중에 내보이는 기세를 나에게 집중한 듯한 느낌이었다.

‘나를 시험해 보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그에 걸맞은 예의를 보여 주어야지.

기운을 일단 중단전으로 휘돌렸다.

그러자 답답한 가슴이 뻥 뚫려왔다.

그리고 하단전에 진기를 집중하며 온몸에 진기를 조금씩 흘려보내자, 손끝에서부터 전기가 찌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전기는 온몸을 타고 돌더니 정신을 맑게 해 주고, 몸을 움직이기 쉽게 해 주었다.

상단전에 진기를 휘돌리며 염력을 발출했다.

보이지 않게 몸을 압박하던 기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흐름이 보이는 상승의 영역.

그곳에 진입하며 염력으로 그 흐름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균열을 따라 나의 몸이 움직이기 더욱 편해졌다.

화아악∼

마지막으로 기세를 떨쳐 버리자 천수신검이 눈에 이채를 띄기 시작했다.

“호오∼”

“크윽!”

이번엔 더욱 강력해졌다.

아까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두 배 정도 강력한 압력으로 내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더욱 진기를 집중하며 압력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큭!’

하지만 내가 진기를 끌어 올리면 끌어 올릴수록 압박도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종남파 장문인과 나의 기싸움.

후우웅∼

이제는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기의 파동이 나와 천수신검 가운데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꼬맹이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늙은이.”

그런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들리는 문을 여는 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퍼져 나오는 또 다른 기의 파동.

“카악∼ 퉤!”

나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가래를 뱉더니 목소리의 주인이 나의 앞을 막아섰다.

조그마한 키와, 풍겨 오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

하지만 뿜어내고 있는 기세만은 종남파 장문인과 맞먹는 듯했다.

노인이 들고 있던 청록색 봉을 앞으로 내찔렀다.

그러자 천수신검이 나에게 집중하던 진기의 압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왜 방해한 것이오? 방주.”

“밖에서 닭다리나 뜯으며 기다리는데, 갑자기 늙은이가 새파란 꼬맹이랑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보여서 들어온 것이오.”

늙은이와 새파란 꼬맹이의 힘겨루기.

천수신검이 얼굴을 붉혔다.

“나이 먹어서 이제 자라나는 새싹한테 뭐하자는 건지…….”

“화산파의 아이가 나의 진기를 받아 내는 것이 신기해 잠시 실수한 것이오. 미안하네.”

천수신검이 사과하자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대체 나를 왜 부른 건지 모르겠군.”

“할 얘기가 있어서 부른 것이오. 이리로 오시오.”

“하암∼”

방주라 불린 거지가 몸을 긁으며 하품을 하면서 종남파 장문인을 따라서 의자에 앉았다.

나도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천수신검을 쳐다보았다.

“일단 잘 왔네, 청우.”

“아닙니다.”

겸양의 얘기를 하며 서로 몇 마디 주고받았다.

옆에 있는 거지 노인이 나와 종남파 장문인의 얘기를 듣더니 점점 인상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거지는 원래 자유분방함을 좋아하지. 거지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거지보고 어서 꺼지라는 얘기 같은데?”

거지 노인의 말에 종남파 장문인이 한숨을 쉬었다.

“알겠소. 개방 방주의 체면을 봐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것 참, 기쁜 소식이로군.”

거지 노인이 흥 하고 콧방귀를 쳤다.

‘잠깐, 개방 방주?’

개방(짵幇).

천하제일방(天下第一幇)으로 불리는 거지의 집단.

거지의 집단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거지라고는 할 수 없어도 거의 대부분의 거지가 개방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문도의 수 때문에 약자들도 많긴 하지만, 고수들도 많이 볼 수 있는 천하제일의 방이다.

협의(俠義)를 중시하기 때문인지 속세의 사람들은 구파와 개방을 합하여 구파일방(九派一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방의 현재 방주는 바로 천풍걸개(天風乞짵) 홍소군(弘韶君).

무공은 모르겠지만 그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어떻게 개방이라는 커다란 문파의 방주가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개방에 있는 시간보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욱 많을 정도의 성격이니 할 말 다한 셈이다.

‘그 천풍걸개가 이 노인?’

종남파 장문인과 비슷할 정도의 기세를 풍기는 거지 노인이니 그 정도는 당연할 터.

몰라본 것에 자신을 탓했다.

“이번에 화산파의 장문인 검선에게서 전서가 왔소.”

“그것이 어쨌다는 것이오? 구파끼리 교류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인데.”

잔뜩 심통이 난 듯 천풍걸개는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그런 것이 아니오. 이걸 보면 잘 알 것이오.”

천수신검이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이 무엇이오?”

“화산파 장문인이 보내 준 전서요. 읽어 보면 내가 어째서 방주를 청했는지 알 것이오.”

“흥!”

천풍걸개가 콧방귀를 끼더니 전서를 들고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천풍걸개는 얼굴을 굳히기 시작했다.

탁!

마지막까지 전서를 읽고 전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자 천풍걸개는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검선이 보낸 내용이니 이곳에 쓰여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오. 검선이 미치지 않은 이상.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게다가 이곳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니 자네가 혈천회라는 곳과 무척이나 깊은 관계가 있는 듯한데…….”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황신을 생각하자 이가 갈렸다.

“방주, 이 내용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뭘 말이오?”

방주가 생각을 마쳤는지 휙휙, 고개를 젓더니 천수신검의 말에 대답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화산파 장문인은 구파의 아홉 장문인과 개방의 방주가 같이 모이자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진의가 무엇인 것 같소?”

“당연히 무림맹의 소집이겠지. 안 그렇소? 구파의 아홉 장문인과 내가 모일 정도라면 그런 일밖에는 없지.”

천풍걸개가 무림맹이라는 말을 곱씹더니 잠시 후 말했다.

“나는 찬성이오. 나는 이미 그전부터 어떤 단체가 이곳 무림에 마수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호오, 그랬소?”

천수신검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우리 개방은 거지들의 집단이긴 하지만, 정보 집단이기도 하오. 중원의 온 거지가 객잔이나 식당, 길거리에서 귀동냥으로 듣는 정보만 해도 보통 정보 집단의 열 배는 훌쩍 넘소. 그렇게 알아낸 내용이오. 믿어도 될 것이오.”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을 우리에게 먼저 얘기하지 않았소?”

“흥, 밑에 있는 놈들이 믿지 않은 것이지. 몇 년 전의 종남파와 화산파의 합동훈련을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렇소.”

“그건 누가 하자고 한 것이었소?”

“그거야 당연히 몇몇 후기지수들과 종남파의 몇몇 장로들이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이오. 그리고 화산파와 관계 개선을 할 필요가 있었기에 내가 허락한 것이고.”

“흥, 그전까지만 해도 죽여 버릴 듯이 싸웠던 주제에 갑자기 관계 개선을 하자고 한다고? 뭔가 미심쩍은 것은 못 느꼈나 보지?”

“나는 못 느꼈소.”

“그렇다면 그렇게 치도록 하지. 나중에 후회해도 나는 모르는 일이니. 아무튼 합동훈련 때의 일을 보고받은 적이 있소?”

“있소.”

“그때 호북으로 넘어간 무뢰배들을 알고 있소?”

“아니, 모르오. 그런 일도 있었소?”

천수신검은 정말로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음? 어째서?’

그때 혈천회의 잔당들이 도망을 쳤을 때 비매각과 비조각이 같이 움직였었다.

비조각은 종남파의 정보 조직.

당연히 종남파 장문인이 알아야 하는 내용이 아닌가?

“것 보시오. 아래쪽에서 장난을 친 것이지. 어때,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소?”

천풍걸개가 누런 이를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야명 사제에게 물어봐야겠소.”

천수신검이 일어나려는 것을 천풍걸개가 막았다.

“지금 가면 벌집을 들쑤시는 꼴밖에는 되지 않지. 게다가 종남파 안으로 혼란도 올 수 있고 말이야.”

“벌집을 들쑤시다니 무슨 말이오?”

“아직도 모르는 것이오? 대체 왜 그런 중요한 일을 천수신검에게 말하지 않았겠소? 바로 혈천회에서 막았기 때문이오.”

“설마 야명 사제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아니면 그 옆에 있는 다른 놈들일 가능성도 있고. 이미 명단은 준비해 놓았소. 이런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용의주도한 천풍걸개.

어째서 자유분방한 성격임에도 방주가 되었나 했더니 이렇게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냉철한 통찰력 때문이었다.

천풍걸개가 품속에서 조그만 종이를 꺼내자 냄새 때문인지 천수신검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종이를 살폈다.

“후우∼ 개방의 방주가 한 말이니 진실일 가능성이 높은데……. 솔직히 나는 믿기 힘드오. 우리 종남파의 장로와 몇몇 후기지수들이 그런 위험한 집단의 사람이라니.”

“믿기 힘들면 믿지 마시오. 나는 말리지 않으니. 나중에 가서 후회만 하지 마시오.”

최후의 통첩인 듯, 천풍걸개가 단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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