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60화 (60/175)

# 60

화산천검 3권(10화)

4장 고(2)

‘이건…….’

위험하다는 예감이었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혈호를 바라보았다.

상단전의 예감보다도 빠른 감.

그것이 바로 낭인들의 장점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강한 집착과 뛰어난 감.

그래서 낭인들은 잘 죽기도 하지만 잘 죽지 않기도 한다.

“어서 들어가지, 뭐하는 건가?”

혈호의 핀잔에 문을 열었다.

촤르륵!

치렁치렁한 주렴을 걷어 내자 탁자가 보였다. 그리고 탁자에 앉아 있는 기묘한 인영을 보았다.

퀭한 눈빛, 볼에 살이 너무 없어 볼이 푹 파인 듯해 보이는 얼굴.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죽은 사람과도 같은 희미한 기.

‘이자는…….’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는다.

인영이 말라붙은 입술을 떼고 말했다.

“앉아서 얘기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오. 하지만 양해해 주기를 바라오. 일단 소개부터 하겠소. 내가 바로 우가장의 장주인 우정군(禹貞君)이오.”

우정군, 우가장의 장주.

처음으로 보는 그 모습.

휘장의 뒤에서 보던 것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에는 그저 병자라는 느낌만이 들었을 뿐인데, 지금은 시체라는 느낌이 든다.

살아 있는 시체와도 같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음습한 한기가 바닥으로 내려와 발바닥을 타고 몸으로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서 있소? 어서 앉으시오.”

“…….”

혈호 또한 기묘함을 느낀 것인지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일단은 장주의 말대로 혈호의 옆에 앉아 장주를 쳐다보았다.

“이번에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낸 것 같아 보여 다행이오.”

“그것은 어찌 아십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을 어찌 아는 것인가?

“바깥에서 문혁이가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찌 모르오?”

“그렇습니까?”

기묘한 느낌에 너무 긴장을 했었나 보다.

조금만 집중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짝!

앙상한 손으로 장주가 박수를 치자 시비가 문을 열고 들어와 차를 놓았다.

쪼르르∼

찻잔의 안에 녹색의 물이 담겨졌다.

“녹차(綠茶)요. 정신을 맑게 할 것이니, 어서 들으시오.”

후루룩∼

장주가 차를 마시는 것을 보고 나 또한 차를 들고 마셨다.

따뜻하지만 조금 쓴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무척이나 맛있었다.

“괜찮군요.”

“저 시비의 차를 타는 실력은 우가장에서 으뜸이오. 나 또한 그래선지 저 시비에게만 차를 타게 하지요.”

후루룩∼

“잠시 기다리시오. 곧 문혁이가 올 것 같으니 말이오.”

말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몸을 갖고 있는 장주, 그리고 굳은 얼굴의 혈호.

나 또한 이런 음습한 느낌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을 많이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므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은 잠시 후 우 총관이 들어오자 깨졌다.

“아니, 장주님! 그렇게 일어나셔도 괜찮으신 것입니까?”

“괜찮으니 나온 것이지. 자네는 언제나 나를 너무 걱정해서 탈이야.”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경망스러웠군요.”

“아닙니다, 계속 얘기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아니지요, 사석도 아닌데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말하곤 우 총관이 자리에 앉았다.

“보고할 내용이 있으십니까?”

“먼저 한 가지, 마지막에 관부가 개입했다.”

혈호의 말에 우 총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관부가 개입을 했다라……. 예, 그것은 승빈이에게서 들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우가장은 이 근방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부만은 의외로 안 되더군요. 어째서인지 우리보다는 철검파를 위로 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철검파가 습격받았다는 말에 우가장임에도 그런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장원의 일이니 신경을 쓰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이 종이를 보시지요.”

혈호가 찾아왔던 종이 뭉치를 품속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자 우 총관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은 장부군요.”

“일부분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되겠지요?”

“이것으로 뭘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철검파의 급작스러운 성장, 그것은 누군가가 배후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 종이를 토대로 추적해 나가면 그 배후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흠, 우가장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화산파의 비매각이라면 가능하겠지요. 알겠습니다, 조속히 비매각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우 총관이 장부를 챙기자 장주가 말했다.

“문혁아, 잠시만 그 장부를…….”

“아, 예.”

장주의 말에 우 총관이 장주에게 종이를 건넸다.

장부의 내용을 굳은 얼굴로 다 살펴보고 장주가 다시 종이를 건넸다.

“흠∼ 내 소관은 아니군. 알아서 잘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장주님.”

“……욱!”

갑작스런 각혈(?血).

장주가 입에서 피를 계속해서 쏟아 냈다.

“무슨!”

“비키십시오!”

당황하는 혈호를 밀치곤 장주에게 다가가 명문혈에 장심을 대었다.

눈을 감고 장주의 몸에 기를 불어넣었다.

우우웅∼

장주의 몸에 들어가자 기가 요동쳤다.

‘이런 몸이라니…….’

몸은 거의 썩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혈도는 거의 다 막혀 있었고, 하단전은 쪼그라들어 있었다.

이런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대단하다 할 수 있을 만한 몸 상태였다.

‘각혈의 원인은 갑작스런 내기의 진탕이다.’

하단전에서 맥동하는 미약한 내기. 그것이 장주가 각혈을 하는 원인이었다.

‘진정을 시키면 되는 일이지.’

장주의 하단전으로 혈도를 뚫으며 기를 진입시켰다.

미약한 내기를 조금씩 안정시키자, 떨리는 장주의 몸이 점점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응급처치가 끝났을 거라 생각될 즈음에 명문혈에서 장심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후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자 우 총관이 물었다.

“어찌 되셨습니까? 장주님은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일단은 응급처치를 해 놓았으니 잠시 저 휘장 안에 눕혀 두시지요.”

“알겠습니다.”

우 총관이 장주를 들쳐 메고 휘장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왔다.

혈호가 나를 뒤따라 나왔다.

“보통 다른 사람의 몸에 기를 불어넣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인데 의외로 손쉽게 해냈군.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그건 그렇고, 괜찮으십니까?”

“음?”

나의 말에 혈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지?”

“모르시는 것입니까?”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

“아닙니다, 그저 헛소리일 뿐입니다.”

“흠?”

혈호는 궁금해했지만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자 고개를 젓고는 낭인들이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혈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건 무엇이지?’

내가 바깥으로 나온 이유는 바로 하단전 때문이다.

혈도를 타고 하단전으로 들어와 맥동하는 기이한 가루.

몸을 긴장시키며 기를 천천히 몸에 돌렸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정도로 무척이나 작고 은밀했다.

‘조사해 봐야겠다.’

조용히 별채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하단전을 관조했다.

‘움직인다.’

가루는 무척이나 느리게 움직였다.

그렇게 가루들이 점점 뭉치더니 하나의 단(丹)을 형성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조그마해서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단(丹)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이 꿈틀대자 무척이나 조금씩이지만 진기가 단(丹)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슨…….’

조금씩이지만 점점 빨려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 양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에 비례해 단(丹)도 조금씩 커져 가고 있었다.

‘멈춰!’

더 이상은 위험하다 싶어 상단전의 의념으로 단(丹)을 제압했다. 그러자 단(丹)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아니, 잠잠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힘으로 눌렀기에 압박을 받아 꿈틀거리는 것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다.

원래부터 움직임이 무척이나 작았기 때문에 멈춘 것같이 보이는 것이고.

그렇게 의념으로 누르고 천천히 단을 살펴보았다.

진기로 건들자, 순식간에 진기를 빨아들였다.

의념으로 짓누르자 머릿속에 ‘키이익∼’이라는 기묘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면서 비명을 질러? 고(蠱)인가?’

이런 것은 고밖에는 없다.

이렇게 몸 안으로 들어가 꿈틀대는 단(丹)이 고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다행히 독을 가진 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위험한 종류의 고였다.

‘기를 빼앗는 고라…….’

무인에게 더욱 무서운 고다.

보통의 민초들에겐 독을 가진 고가 무섭겠지만, 무인들에게는 기를 빼앗는 고가 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무척이나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그 조금이 생사를 가른다.

이런 것을 죽이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내가 고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기로 태우는 방법, 그리고 의념으로 짓눌러 죽이는 방법.’

해독제는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남는 것이다.

‘의념으로는 어떨까?’

지금 현재 가장 쉬운 방법이다.

짓누르는 강도를 조금만 더 높이면 되지 않을까?

[끼이익∼]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만이 들릴 뿐, 그 본체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실팬가?’

누르고 눌러도 짓눌려질 뿐 절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의념의 압박을 조금만 약하게 해도 다시 동그란 단의 모양으로 되살아난다.

‘지독하군.’

보통의 고는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고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가루라는 형태를 통해 하단전에 들어와 정착하는 고라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어.’

독(毒)의 조종(祖宗)이라고 불리는 사천당가(四川唐家)에서도 이런 종류의 고는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특이한 종류였다.

‘그렇다면 기로 태우는 방법이 남았는데…… 기로 태우는 것은 순수한 기의 정화(淨火)가 필요하다. 삼매진화(三昧眞火)지. 나로서는 무리다.’

삼매진화.

나로서는 발현하기가 무리인, 순수한 기의 정화다.

진기를 집중하면 생기는 뜨거운 기운.

입욕을 끝내고 난 후 기운을 일으켜 물기를 날려 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열기로는 이 고를 없앨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이것을 없애는 것은 무리인가?’

무리를 해서라도 조금씩이지만 짓누르는 압력을 강하게 해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