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59화 (59/175)

# 59

화산천검 3권(9화)

4장 고(1)

내원의 안으로 들어가자, 승리의 여운에 잠기지도 않고 부상자들을 돌보고, 죽은 자는 묻어 주는 무인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조금씩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고, 울음을 삼키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적의 시체를 묻어 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도 있었고, 적의 시체를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 서로 다른 마음가짐이나 일단은 다들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 또한 도와주고 싶기는 했지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철검파의 분타, 그렇다면 안쪽에 몇 가지 장부가 있을 것이다. 그 장부가 필요해.’

철검파의 갑작스러운 성장, 황신이 소검파를 도와주러 움직이신 사부를 공격했다고 했으니 황신이 있는 단체가 철검파를 도왔을 것이다.

비매각에서도 호북까지만 따라붙고 그 이후는 따라붙지 못한 그 정체불명의 비밀단체.

‘장부가 있으면 어느 곳에서 들어왔는지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여러 곳을 통해서 왔더라도 섬서성의 안에 있다면 어떤 것이든 찾을 수 있다.

비매각을 통한다면 그 어떤 것이든 찾아낼 수 있다.

약해졌다고는 해도 그것이 구파, 화산파의 힘이다.

안쪽으로 쭉 들어가자 커다란 전각이 보였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 무척이나 조용했다.

일 층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층으로 올라가자 탁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많은 종이가 보였다.

‘이것인가?’

가까이 가서 보려는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아니야!’

기이한 느낌에 재빨리 종이 뭉치로 다가가 검을 내리그었다.

후웅∼ 파카캉!

검에 닿자 부서지듯 갈라지는 바람.

“누구냐!”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다.

자연적인 바람에 예기가 실릴 리가 없었다.

이것은 검풍이다.

청강검을 바람이 불어온 방향으로 내던졌다.

피잉∼ 팍!

움직이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순식간에 뛰어오르며 나와 대치하는 인영.

질풍과도 같은 검은색의 흑풍이었다.

“…….”

잠시 나를 노려보던 온몸이 검은색 일색인 남자가 살기를 내보였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몸이 움찔할 때, 종이 더미로 남자가 달려들었다.

‘이런!’

빠르다. 속도만큼은 내가 밀릴 정도였다.

게다가 나보다 남자가 더욱 가까웠기에 지금 움직여도 막기엔 무리였다.

지금 상태로서는 막는 방법은 하나, 염력.

염력을 발출하자 남자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때를 노려 진각을 밟으며 매화초개를 전개했다.

스걱!

‘짧다.’

간발의 차이로 비껴 내는 남자.

터덕!

아까 전의 자리에 다시 서서 나를 노려본다.

‘다행이다.’

일단 종이를 자르는 것은 막았다.

하지만 뺏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이 더욱 힘든 법이다.

검풍에 살짝만 닿아도 종이는 갈가리 찢길 것이다.

‘도망치는 것이 나은가?’

하지만 화산파의 제자로서 도망치는 것은 안 된다.

‘공격한다.’

쓰러뜨리면 된다.

이 초 매화부석을 전개하자 남자가 검을 뒤집어 잡았다.

‘역수(逆手)?’

따다당! 파캉!

기묘한 검법이다.

상대해 보지 못한 기묘한 움직임에 초식이 중간에 힘을 받지 못하고 끊기고 말았다.

촤앙!

“읏!”

사각에서 베어 오는 검에 급히 몸을 숙이며 피해 냈다.

턱! 후웅∼

‘이런!’

나의 등을 타고 넘어가는 남자.

실수했다. 피하지 말고 맞부딪쳤어야 했다.

염력도 늦다.

재빨리 몸을 돌리며 검을 던졌다.

슈웅∼

하지만 가뿐히 피해 내며 남자가 종이 뭉치를 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질풍 같은 움직임이었다.

“…….”

허망하게 놓쳐 버렸다.

“젠장…….”

바로 앞에서 놓쳐 버린 단서에 허탈했다.

“아니야, 숨겨 놓은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어. 찾아보자.”

이렇게 포기하기보다는 희망을 가지자.

하지만 구석구석 잘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아∼”

바로 앞에서 놓쳐 버린 단서.

허탈한 표정으로 바깥으로 나오자 혈호가 나를 불렀다.

“안에서 무언가 찾은 것이 있나?”

어느새 거의 정리가 끝났는지 바깥쪽이 조금 조용했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낚아채 갔습니다.”

“그런가? 안타깝군.”

“예…….”

“하지만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쪽에서 단서를 찾아냈으니.”

“예?”

“이것을 봐라.”

팔랑팔랑 흔들리는, 글자가 빽빽이 쓰여 있는 종이 뭉치.

“그것뿐입니까?”

“이 정도가 어딘가? 반 정도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글자가 빽빽이 쓰여 있는데.”

“하긴…….”

“읽어 보도록. 어차피 내 일은 아니니까.”

읽어 보자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장부다!’

그렇게 찾으려 했던 것이 이곳에 있었다.

‘아쉽게도 일부분이군.’

하지만 일부분이 어딘가?

장부를 잘 갈무리하고 혈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원하던 것이에요.”

“다행이군. 일단 조금만 더 상황을 보다 가도록 하지. 관가가 바로 옆에 있어서 이곳을 태울 수도 없으니 말이야.”

“잠시만 가만히 있어 주십시오.”

“음?”

갑자기 바깥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언가가 개입했다는 소리.

병장기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말다툼인 것 같았다.

“바깥쪽이 시끄럽습니다.”

“그래, 나도 방금 느꼈다. 가 보도록 하지.”

혈호와 같이 바깥쪽으로 나가자, 낭인들과 장창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냐?”

혈호의 물음에 한 낭인이 재빨리 다가와 말했다.

“아, 관인들이 갑자기 우리에게 오라를 받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게 말이냐?”

낭인들은 대부분 폭급한 성정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살아갈 운명이기에 그렇게 변한 것이다. 몇몇은 냉정하지만 뭐 몇몇일 뿐이다.

아무튼 그렇기에 얘기를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재빨리 앞으로 나가 낭인들을 제지했다.

“관가에서 오셨습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기쁘다는 듯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관인.

“그렇소, 선량한 철검파를 어떤 파렴치한 문파가 공격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왔소.”

‘선량한 철검파, 파렴치한 문파…….’

“아닙니다, 얘기가 어떻게 그렇게 퍼져 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와전된 것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우가장의 무인들입니다.”

“우가장? 아, 이 옆의 우가장 말이오?”

“그렇습니다.”

“아…….”

우가장이라는 소리를 듣자 웅성대는 관인들.

우가장의 영향력이 대단한가 보다.

“하지만 이 피 냄새,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이지요? 일단 따라오십시오.”

“문파 사이의 일입니다.”

관부의 인물들과 무림인들은 서로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이 암묵적인 법칙이다.

그 얘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 갔는데 못 본 척할 수는 없는 일이오.”

옆에 서 있던 한 관인이 나섰다.

“그렇다면 화산파에 통보를 하시오.”

“화산파?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요?”

어리둥절한 표정의 관인들.

장포를 걷어 올렸다.

장포를 걷어 올리자 보이는 두 송이 매화.

그것을 보고 내가 어떤 자라는 것을 알았는지 관인들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알았으면 가 보시오.”

“……알겠소.”

굳어진 얼굴로 말하고 관인들이 발걸음을 돌렸다.

‘관부의 개입, 그리고 선량한 철검파. 철검파에서 관부에 개입했었나 보군.’

“우가장보다 철검파의 인지도가 높다는 소린가? 아아, 정말 아버지란 사람은 왜 그렇게 사람이 좋아 민초들에게 지지를 못 받는지 모르겠다니까?”

갑작스레 들려오는 장난스런 목소리.

옆에 있던 낭인의 검 중 한 자루를 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던졌다.

그러자 방정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앗! 위험하다고!”

타닥!

방정맞게 떠들며 내 앞에 내려앉는 남자, 우승빈이었다.

“여긴 왜 온 거냐?”

“그거야 갑자기 관부에서 사건이라면서 출동을 하니까 궁금해서 온 거지. 관가가 내가 술을 먹고 있던 전각의 옆이었거든.”

“하아∼”

입을 열자 술 냄새가 풀풀 풍긴다.

“흠, 그건 그렇고, 싸움은 끝난 건가 보지? 이렇게 놀고 있는 것을 보니까 말이야.”

“그래, 끝났다.”

“그럼 안 가고 뭐하는 거야? 어서 가자.”

“안 그래도 그럴 예정이었다.”

관부의 개입과 장부에 대한 것은 우 총관과 얘기를 해야 한다.

초풍도객을 들쳐 멘 혈호와 우리는 우가장으로 돌아왔다.

우가장의 정문 앞에는 우 총관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임무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성공입니다.”

“다행이군요. 피해는 얼마나 되지요?”

“낭인들 팔십 명 중 삼십 명이 죽었고, 반 정도가 경상, 나머지는 중상. 그리고 우가장의 무인들은 칠십 명 중에서 스물다섯 명이 죽었고, 열다섯 명이 중상, 나머지가 경상.”

“……피해가 크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 계십시오. 제가 정리를 하지요.”

혈호와 나에게 말한 후 우 총관은 모여 있는 무인들과 낭인들에게 다가갔다.

뭐라뭐라 크게 소리를 치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서로 부축하거나 응급처치를 해 주는 무인들. 그리고 낭인들은 한쪽의 전각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보고 등을 돌려 혈호와 함께 우가장의 심처로 들어갔다.

장주가 있던 건물.

별채와 비교되는, 삭막하기까지 한 건물이다.

그 건물과 몇 발자국 남지 않은 곳에서 혈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마디 해 주지. 이곳, 위험하다.”

“예?”

갑작스런 혈호의 말.

“저 장주, 기도 미약하고 사람이 좋아 보이지만 위험해.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근거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내 감이다. 내가 전장에서만 이십 년을 넘게 살아왔다. 죽음에 대한 감만은 매우 뛰어나다고 자부하지.”

“그렇다면…….”

“긴장을 놓치지 마라, 죽는 수가 있다.”

혈호가 입술을 혀로 축이며 말했다.

‘죽을 수도 있다고?’

혈호의 말을 듣자 저절로 몸이 긴장되었다.

‘상단전에는 그런 예감이 없었는데?’

상단전의 예감은 아무런 경고도 보내지 않고 있었다.

길을 따라 문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자 상단전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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