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화산천검 2권(9화)
3장 죽림현사 모청수(4)
“말해 보거라.”
손짓하자 손을 든 자, 만청풍 사형이 일어났다.
“독서에 알맞은 세 가지 여가. 독서삼여(讀書三餘)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성어를 만들어 낸 학자가 누구인지 아느냐?”
“예, 후한(後漢) 말기 헌제 때의 동우(董遇)라는 학자입니다.”
“그래, 정말 대단한 학자시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아주 대단한 분이시다. 그렇다면 세 여가가 무엇인지는 아느냐?”
“예, ‘겨울은 한 해의 남은 시간이요[冬者歲之餘], 밤은 하루 낮의 남은 시간이며[夜者日之餘], 오랫동안 계속 내리는 비는 한때의 남은 시간이다[陰雨者時之餘也].’ 즉, 자투리 시간까지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입니다.”
“그래, 너희 무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학자들이 그렇게 침식을 잊고 공부하듯이, 너희도 그렇게 무를 단련하면 절대고수니, 뭐니 꿈이 아니지 않느냐? 너희들은 할 수 있을 게다.”
모 선생님의 말에 후기지수들이 모두 감명을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말하자면, 독서에 대한 마음가짐이 있다. 바로 독서삼매(讀書三昧)다. 오직 책 읽기에만 골몰한다는 뜻이지. 독서에 집중하고 있으면 독서상우(讀書尙友)라, 그 책을 읽음으로 옛날의 현인들과 벗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뭐, 무인인 너희들이 그렇게 책에 집중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소우군이 반박했다.
“저 또한 책을 읽을 때에 그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호오, 그러하느냐? 가능성이 있구나. 나를 따라 학사가 되어 보지 않겠느냐?”
죽림현사 모청수.
높은 학식, 고고한 학과 같은 기상, 그 명성에 어울리는 어진 성격으로 이름이 높은 자다.
그런 자를 따라 학사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하지만 그것은 학사였을 때의 일.
책을 좋아하는 소우군이지만 무인이기에 이런 말은 곤혹스러웠다.
“허허허. 장난이었거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
모 선생님의 말에 몇몇 제자들이 호탕하게 웃자, 소우군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이후로 여러 얘기를 나누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어느새 수업이 끝났다.
“흐음, 벌써 이렇게 되었나?”
아쉬워하며 모 선생님이 말했다.
“자, 끝났다. 해산(解散)!”
탕탕 하고 탁자를 크게 치며 말하자, 모두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우리 조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자리에 앉아 있었다.
쾅!
문이 닫히고, 모 선생님과 나만이 전각 안에 남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모 선생님의 앞으로 다가가 포권을 취하였다.
“허허허.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네.”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데, 그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도 놀랄 정도로 순순히 모 선생님의 말에 따라 포권을 풀어 버렸다.
“일반 학사는 아니시군요.”
“아니, 일반 학사일 뿐이네.”
기운을 끌어 올리고 관찰해 보았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기였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자, 모 선생님이 피식 웃고는 붓을 들어 올렸다.
슥∼ 슥∼
난을 그리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종이의 구석에 점을 찍자 난이 완성되었다.
모 선생님과 같은 고고하고 고절한 느낌을 들게 하는 그림.
“……!!”
그것으로 알았다.
한 가지에서 극에 오른 자는 각자의 기세를 뿜어내는 법이다.
극에 이른 무인과 같다.
모 선생님 또한 학(學)의 극을 넘보는 위치에 이른 학사.
범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절한 경지에 이른 사람인 것이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하나 노력하는 자일 뿐이지.”
자타공인(自他共認)의 불세출의 학사가 하는 말이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겸손하였다.
“지나친 겸손은 반발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 정도 경지에 오르셨으면 마땅히 자랑을 하고 다니셔도 됩니다.”
조언하자, 모 선생님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 초심(初心)이 중요한 것이네. 언제나 겸손하고 겸손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지나치게 겸손하십니다.”
“흠, 그건 고치겠네. 고맙네.”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가 조언하는데도 받아들이는 저 마음씨.
무인은 아니지만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상세는 어떤가?”
“처음에 어떤 상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럴 것이네. 그 친구가 방랑벽이 심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해 의원을 차리지는 못했으나, 여러 곳에서 무명의 성의(聖醫)로 이름이 높으니 말이네.”
“……!!”
성의.
각지의 빈민촌, 수재와 같은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곳에는 언제나 제일 먼저 나타나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해 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는 무명인.
오선 중 하나인 약선과 비견될 만한 의술로 이름 높은 의원이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사람들은 죽을병에 걸려 있더라도 낫는다는 소문도 있다.
“그분과는 어떻게…….”
“깊이 파고드는 것은 좋지 않네.”
말과 더불어 얼굴이 미미하게 굳는 것이, 더 이상 얘기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예의에 어긋났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
“허허. 그렇게 무안을 주려 한 것이 아니거늘. 고개를 들게나.”
고개를 들고 모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 친구, 성의는 나에게 전언을 남기지 않았나?”
“아, 안부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런가?”
어째서인지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성의께서 만나지 않고 가신 것이…….”
“아니, 그런 일이 아니네. 다른 사정 때문에 그렇다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까 얘기 들은 대로 깊게 파고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 무슨 일이 있는가 본데, 나가 보게나.”
“예.”
바깥의 문을 열고 나가자 들려오는 소리.
“습격이다! 습격이야!”
습격이라는 소리에 얼굴을 굳히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음? 무슨 일인가?”
“적의 습격이라고 합니다.”
“습격? 흠…….”
“총검문의 심처로 가는 것이 좋을 듯싶군요. 따라오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모 선생님과 함께 수현각을 나왔다.
4장 습격(1)
총검문의 담장 앞.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인원 오십여 명이 있었다.
[안은 어떻지?]
[조용합니다. 모르고 있습니다.]
[작전은 알고 있겠지? 일 조는 혼란이다. 총검문의 식솔들을 건드려 혼란을 조장하도록. 이 조와 삼 조는 그 사이로 잠입한다. 목표는 고수의 암살이다. 화산파의 문후 장로와 종남파의 영풍 장로를 암습한다. 사 조는 나머지를 상대한다. 그럼, 출발하도록.]
조용한 총검문의 앞.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월담을 하는 십여 명의 인원들.
“응?”
총검문의 하인 하나가 그들의 눈에 띄었다.
“어어, 으…….”
촤악!
순식간에 베어 내고, 그들이 더욱 빠르게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하인을 더 죽이자, 이상함을 느낀 총검문의 식솔들이 타종을 울렸다.
쿵! 쿵! 쿵!
“습격이다! 습격!”
크게 울리는 타종 소리와 시끄럽게 소리치는 총검문의 식솔들.
그 사이로 십여 명의 복면인이 달려들었다.
“습…… 으아악!”
촤아악!
“적…… 적이…… 으악!”
종횡무진 휩쓸고 다니는 복면인.
앞에서 십여 명의 복면인이 총검문을 휩쓸고 있을 때, 뒤쪽에 남아 있던 복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여 명의 복면인을 미끼로 잠입한 그들은 총검문의 식솔들의 이목을 속이고 붉은 홍등의 전각과 파란 등의 전각에 도착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습격이라고 외치는 것 같은데?”
두 명의 푸른 무복의 무인이 보였다.
푸른 무복, 종남파의 후기지수였다.
목표는 저들이 아니었다.
다섯 명으로 두 조(組).
그들이 두 전각의 꼭대기 층으로 신형을 날렸다.
삼십여 복면인은 조용히 어둠에 스며들어 골목 사이사이에 모습을 감췄다.
한 복면인과 한 남자는 월광 아래 총검문의 전각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잘 잠입한 것 같군.”
“일 조도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총검문의 녀석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군요.”
복면인이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으로 보아 남자가 복면인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몰락해 가고 있긴 하지만, 화산파와 종남파는 구파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자들. 매화검수와 십검수가 아니라고 하지만, 나머지 후기지수 중 고르고 고른 정예다. 밀리는 곳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제가 나가지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비추는 달이 평소와는 달리 매우 불길한 월광을 내뿜고 있었다.
“저들인가 봅니다.”
총검문의 무인들과 싸우고 있는 십여 명의 복면인.
그동안 봐 왔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비정한 검 아래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저들은 미끼일 걸세.”
“예, 총검문에서 화산과 종남의 후기지수가 합동훈련을 한다는 것이 알려진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겨우 열 명이라는 인원으로 쳐들어올 리가 없죠.”
하지만 미끼라고는 해도 실력이 대단했다.
일 검(一劍)에 일 명(一命).
복면인들의 검이 휘둘러지면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다.
정확히 요혈과 사혈만을 노리는 검술.
살수들의 검술이었다.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내 생각엔 화산파와 종남파의 아이들이 위험할 것 같은데, 괜찮겠나?”
“그들은 강합니다. 제가 없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이쪽은 아닙니다. 저들을 상대하지 못해요.”
“몸도 낫지 않았는데 상대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두고 볼 순 없습니다.”
모여드는 총검문의 무인들.
그중 한 명을 불러 모 선생님을 총검문의 심처로 안내하도록 부탁하였다.
또다시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다.
그것을 보고 몸을 날렸다.
복면인의 검이 총검문의 한 무인의 목을 꿰뚫었다.
검을 목에서 뽑고, 몸을 날리는 나를 본 복면인.
복면인이 피에 범벅이 된 검으로 내 몸을 찔러 왔다.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검.
왼쪽 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며 내찔렀다.
쨍!
검끼리 맞부딪치고, 튕겨 나갔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복면인.
튕겨져 나가는 그 힘을 이용해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며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카각!
복면인은 놀랐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았다.
복면인이 차분히 나의 검을 막아 갔다.
챙! 챙! 카앙!
공격을 할 때에는 살수들과 같이 즉사할 수 있는 곳만 노리더니, 막을 때는 다르다.
흘려야 할 때에는 흘리고, 막아야 할 때는 막는다.
정련된 무인이었다.
쨍!
검을 맞부딪치고는 공중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것을 기회라 여겼는지 복면인이 순식간에 검을 쏘아 냈다.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 쏘아지는 검.
매화검로를 전개했다.
육 초 매화천락(梅花千落)이다.
피피피핏! 피피핏!
복면인의 실력은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그 순간에 위험을 감지했는지 검을 순식간에 회수하며 기묘한 신법으로 몸을 빼냈다.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발을 내리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