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244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전력을 다한 하후경의 공격은 지하 광장을 당장이라도 무너뜨릴 듯했다.
청운은 직접적으로 맞받지 않고 만사은신사영을 펼치며 하후경의 공격을 흘려냈다.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정말로 광장이 무너질 수 있었다.
“감히! 그따위 잔재주가 통할 성싶으냐!”
하후경은 노성을 내지르며 내공을 폭사시켰다.
후아아악!
퍼버버벙!
어지간한 고수는 그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몸이 폭발할 만큼 강력한 기운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순간, 광장의 허공을 가르며 한 줄기 묵광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청운이 신혈교의 지하무고에서 얻은 비천흑룡검의 일초가 펼쳐진 것이다.
쩍!
허공이 갈라지는 소리가 머릿속을 뒤집는 듯했다.
하후경은 그 충격에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피해야 하는데 피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악다문 그는 전력을 다해서 장력을 내쳤다.
하지만 묵빛 벼락은 그대로 그의 장력을 가르고, 몸마저 갈랐다.
하후경은 두 눈을 부릅떴다. 고개가 서서히 숙여졌다.
“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믿지 못할 광경이 자신의 두 눈에 가득 담겼다.
자신의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라보는 사이, 흘러나오던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고개를 든 하후경의 혈색이 급격하게 붉어졌다.
“혼자 죽진…… 않겠다……. 이. 청. 운…….”
청운은 뭔가를 짐작하고 뒤로 훌쩍 물러서며 외쳤다.
“모두 피하시오!”
그 와중에도 하후경의 몸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풀어 올랐다.
청운은 통로 입구를 굳건하게 막고 선 채 쌍장을 휘저었다.
묵황색 기운이 밀려가며 하후경을 감쌌다.
그 순간!
하후경의 몸이 폭발했다.
콰콰콰쾅!
와르르르!
광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 여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미리 보호막을 쳤는데도 폭삭 주저앉았다.
뿌연 먼지가 폭풍처럼 몰려왔다.
청운은 기막을 펼쳐서 통로로 몰려드는 먼지구름을 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전면이 보였다.
대장군 하후경의 몸은 무너진 천장에 깔려서 보이지 않았다.
전장을 누비며 일세를 풍미한 그의 죽음치고는 너무 허망했다.
하지만 청운은 그의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통로가 무너지면서 출입구가 막혀버린 것이다.
‘빠져나갈 수 있을까?’
무너진 바위가 통로를 얼마나 막았는지가 관건이었다.
오래 걸린다면 식량이 문제였다.
* * *
황궁무고로 통하는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대장군 측에서는 통로를 치우려 하지 않았다. 비록 대장군 하후경이 안에서 나오지 못했지만 그의 권력을 이을 자는 많았다.
그를 따르던 사대장군은 마지막 상황을 전해 듣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뭐야? 대장군께서 지하무고로 들어갔다가 돌아가셨다고?”
“그럴 리가 없네. 장군께서 놈들에게 당하다니.”
“놈들이 비겁하게 대장군을 암습했을 것입니다!”
“놈들과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암요! 복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분토를 토할 뿐, 대장군 하후경이 묻혔다는 황궁무고의 통로로 달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 대장군께서 돌아가신 걸 알면 대신들이 벌떼처럼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들부터 장악해야 합니다.”
“자네 말이 맞네. 우린 장군의 유지를 이어야 하네.”
덩치가 산만 한 상승장군 조유량의 말에, 나머지 세 장군은 눈을 빛냈다.
조유량의 말뜻을 눈치챈 것이다.
“대장군께서 대의를 위해서 역도들과 등귀어진을 했으니 그분의 유지를 우리가 이어야지 않겠나?”
조유량이 마저 말하자, 세 장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우직하고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던 세 장군의 머릿속에 어느새 권력이라는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대신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조유량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못마땅한 기색으로 서 있는 사마영에게 말했다.
“사마 군사는 어디 불편한가?”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우리가 대장군을 쉽게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사마영은 조유량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의리도 모르는 이런 자들을 믿고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마영의 태도에 조유량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불편한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게.”
“예, 장군.”
사마영은 허리를 숙여 읍한 뒤 자리에서 물러섰다. 그가 돌아가는 모습을 네 장수는 물끄러미 보았다.
조유량 곁에 있던 쥐상의 좌장군 곡양기가 불쑥 말했다.
“아무래도 군사는 우리와 뜻을 함께할 생각이 없나 봅니다. 제거하는 게 좋겠습니다.”
“흥!”
조유량은 즉답을 회피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 모습에 곡양기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가 알아서 하지요. 머리에 먹물이 들어간 것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곡양기는 알고 있다. 조유량이 콧방귀를 뀌었다는 것은 싫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분위기가 사마영 때문에 잠깐 처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바뀌었다.
조유량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우리 뜻에 반하는 자들부터 가려봐야 할 것 같군.”
“반발이 심하겠지만 명분이 우리에게 있으니 충분합니다.”
“먼저 오왕야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부대인에게 말해서 따르지 않는 관리들도 이참에 모두 목을 베지요.”
* * *
무너져 내린 황궁무고 안에 갇힌 청운은 황제를 알현했다.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황제와 황족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모두 무사했다. 모두가 정 소감이 금의위와 함께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오오오, 네가 왔구나! 참으로 잘 왔다!”
황제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격동한 표정으로 말하며 청운을 반겼다.
청운은 황제에게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황제를 안심시켰다.
“황상! 비록 입구가 막혔지만 역도의 수괴를 처단했습니다. 지금 입구를 치우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밖에는 황제 폐하를 구하기 위해서 무림과 오왕야께서 나서셨습니다.”
“모두 짐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다. 내 이곳을 나가면 역도를 벌하고 충신을 중용할 것이니라.”
황제는 청운을 보자 없던 힘이 불끈 생겼다.
그러나 상황은 청운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청운은 황제를 만나기 전에 정 소감으로부터 현 상황을 들었다.
‘식량이 떨어진 지 이틀이나 되었다니.’
무너진 통로를 뚫으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동안 버틸 수 있을지…….
그런데도 황제는 의연하게 청운을 보며 말했다.
“진무사. 입구를 뚫을 필요 없네.”
“예? 폐하! 신이 어떻게든 입구를 뚫을 것이니 신에게 맡겨주시옵소서.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옵고, 조금만 버텨주시옵소서.”
포기한 듯한 황제의 말에 청운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황제는 그런 청운의 모습에 빙그레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말했다.
“나를 따라와 보게.”
“예, 황상!”
청운은 황제가 다른 생각을 못 하게 바짝 붙어서 뒤를 따랐다.
* * *
한편, 황궁무고가 무너져서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황도로 들어서는 넓은 대지에 모인 수만 명은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 대혼란에 빠졌다.
대장군과 뜻을 함께한 이왕야와 무림과 함께하는 오왕야는 양측으로 나뉘어져서 대치했다.
양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역적이라 외쳐댔다.
개개인의 힘에서는 오왕야와 무림세력이 강했다. 하지만 제국의 군권을 쥔 이왕야가 숫자에서 압도했다.
그들은 설전을 벌이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렵습니다. 이 대인께서 황궁무고에 들어가자마자 놈들이 입구를 무너트렸다고 합니다.”
입구를 지켰던 이들 중 살아남은 자들이 청운의 소식을 전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청운 때문에 마존령과 무림맹은 물론이고, 백가장 쪽에서는 애가 탔다.
백청청은 당장 황궁으로 들어가겠다며 방방 떴다. 아마 백철군이 강압적으로 붙잡지 않았다면 혼자라도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무림맹주와 사도맹주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왕야 측에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세력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을 불문에 붙일 것이니 그만 물러가라.”
“관과 무림은 오래전부터 불가침이었다. 이번 일은 황궁의 일이니 무림세력은 즉시 해체하라!”
이왕야와 사대장군 측에서 무림을 흔들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불안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멸문지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을 불문에 붙이겠다고 하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허나, 무림세력에는 백철군이 있었다. 그는 앞에 나서서 떠드는 자들을 그냥두지 않았다.
“어디서 개소리냐, 이놈들!”
홀로 적진에 뛰어든 그는 한바탕 뒤집어놓은 뒤 물러섰다.
이왕야 측에서는 백철군을 막을 인물이 없었다. 잠깐 사이 수십 명을 격살하고 훌훌 날아서 물러서는 그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덕분에 양측은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팽팽하게 맞설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제갈신기가 말했다. 무림세력뿐만 아니라 오왕야가 동석한 자리였다.
오왕야는 결연한 표정이었다.
상황이 이대로 끝난다 해도 무림세력은 무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군을 일으킨 오왕야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 길은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황실을 위해서 이렇게 나서주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오. 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소. 조금만 더 도움을 준다며 내 잊지 않을 것이외다.”
무림세력 쪽에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용서를 받는다 해도 황궁에 눌려 지내야 한다.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 사도맹은 오왕야와 함께하겠소이다!”
먼저 사도맹주 용천관이 자신의 뜻을 밝혔다.
양조생도 제갈신기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도 오왕야와 함께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겠소이다.”
사도맹과 무림맹이 결정을 내리자, 백철군은 당연한 일을 왜 고민하냐는 듯 핀잔을 주었다.
“고민은 일단 놈들을 친 다음에 하시오. 아직 승리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무슨 고민을 그리하는 거요? 일단 놈들부터 칩시다!”
결국, 양측 모두 전쟁을 결정하고 황군을 움직였다.
넓은 개활지에서 양측 십만 대군이 서로를 향해 진군했다.
오왕야 측에서 먼저 불을 붙였다.
목소리 큰 자가 공력까지 실어서 소리쳤다.
“이왕야! 어찌 이러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찌! 권력에 눈이 멀어서 황상을 죽였단 말입니까!”
“닥쳐라! 누구를 역적으로 모는 것이냐? 네놈이야말로 황상을 죽인 원흉이 아니더냐?”
이왕야 측에서도 즉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크게 외쳤다.
양측은 한동안 명분 싸움을 했다. 제국의 주인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대의명분이었다.
별 소득 없는 요식행위가 끝나자, 양측은 서로에게 창검을 겨눴다.
“공격하라!”
“진격하라!”
“역도를 몰아내라!”
양측에서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로에게 역도라며 명분을 쌓고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로 하여금 싸움에서 돌아서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와아아아아!
양측 병력의 선두가 고함을 내지르며 내달렸다.
그때였다.
천둥 같은 목소리가 하늘을 뒤흔들며 울렸다.
“모ㆍ두ㆍ멈ㆍ춰ㆍ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