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243화 (243/257)

# 243

243화

근원을 알 수 없는 그의 검법에 혈황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군부의 무공 같은데, 이처럼 뛰어나다니.’

신공으로 분류하려면 상승의 깨달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실전으로 다져진 군부의 검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장군이라는 놈의 실전검법에는 그러한 상승의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어떤 연유로 그런 검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숱한 사선을 넘으면서 그러한 검을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타고난 놈이군.’

적으로 만났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하후경의 검이 춤을 췄다.

슈슈슈슉!

혈황은 이를 악다문 채 양팔을 교차하며 쳐냈다.

‘그렇다고 내가 물러설 줄 알았더냐!’

자신이 누군가. 삼백 년 전 천하를 지배했던 혈황 아닌가.

자존심이 있지! 조금 밀린다 해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팔 하나를 주고 목을 취하겠어!’

혈황은 눈을 치켜뜨고 하후경의 검세 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희끄무레한 작은 인영이 대장군의 검세 속으로 먼저 뛰어들었다.

그에게서 서릿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퍼버버버벙!

극성에 이른 구음신경.

둘의 싸움에 끼어든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정 소감이었다.

혈황이 밀리는 듯 보이자,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이미 정 소감을 의식하고 있던 하후경은 검세에 변화를 주었다.

가공할 검강의 기운이 몸을 두 동강 낼 것처럼 정 소감을 덮쳤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이 정 소감의 입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동시에 거미줄처럼 펼쳐진 하후경의 검세가 정 소감을 휘감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투다다다당!

붉은 기운을 머금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하후경의 검세를 쳐내고는 정 소감을 고치처럼 감쌌다.

혈황을 중심으로 주위가 붉게 물들었다. 붉은 아지랑이가 선홍빛을 뿜어내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 모습을 본 하후경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대경한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었다.

“혀, 혈황진기?”

혈황은 눈살을 찌푸렸다.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자신의 무공을 알아보다니.

하지만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

“무슨 소리지? 혈황진기라니?”

혈황은 짐짓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듯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후경은 그런 혈황을 보며 따지듯 말했다.

“네놈! 어떻게 그 무공을 알고 있지?”

“주웠어.”

“머, 뭐?”

“고서점에서 주었지.”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남성 상구에 가면 유명한 고서점이 있다. 얼마 전에도 천원검법이 발견된 곳인데, 늦기 전에 한번 가봐. 혹시 알아? 네놈도 하나 구할 수 있을지.”

혈황은 임기응변으로, 혁련휘를 잡기 위해 계략을 펼쳤던 고서점에 대해 말했다.

“뭐라?”

하후경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놈이 자신을 놀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잡아먹을 듯이 혈황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 네놈! 그 무공이 무엇인 줄 알고 하는 소리냐?”

“내가 그걸 알아야 하나?”

“뭐라?”

“심심해서 익힌 거야. 신경 쓰지 마.”

빠드득.

하후경은 이를 갈면서 검병을 고쳐 쥐었다.

처음보다 더욱 신중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팟!

하후경이 튀어나갔다.

혈황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몸 주위를 휘돌던 혈기가 요동치며 하후경의 검에 맞섰다.

한 가닥 한 가닥, 강기로 이뤄진 혈기는 하후경의 검에 수수깡 잘리듯이 잘려나갔다.

하후경도 앞으로 전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혈기의 힘이 워낙 강한 데다가, 사방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혈황도 그렇게 좋은 형편은 아니었다.

‘젠장! 내공이 부족해.’

혈황진기는 강기만큼 단단하고 신검처럼 날카로웠다. 그런데도 수수깡처럼 잘려나갔다는 것은 혈황의 공력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반면 하후경은 바닥에 내려서며 씩, 웃었다.

“듣던 것보다 형편없군. 그게 너의 전부라면 오늘 너는 내 손에 죽을 게다.”

전설의 혈황신공이 별게 없다?

혈황의 눈이 역팔자로 꺾어졌다.

“이런 개자식이……!”

“어디 남은 재주가 있으면 펼쳐 보거라. 내 삼 초를 양보하마.”

하후경은 혈황을 똑바로 바라보며 도발했다.

혈황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일초지적도 안 될 놈에게 무시를 당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당장 놈의 이마에 혈황신공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한 가지 방법은 있었다. 문제는 이 방법을 사용하면 원정지기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도에는 최후의 순간 자신의 원정을 격발해서 순간적으로 내공을 서너 배 폭발시키는 심법이 있다.

이 심법을 펼치면 잘해야 불구고 주화입마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최후의 최후까지 펼치지 않는 등귀어진 수법이다.

혈황이 고민을 할 때, 하후경이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황상! 어디 있는 것이요?”

그의 앞을 막고 있는 자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대장군은 황제를 불렀다. 그런데도 황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쥐새끼처럼 숨어만 있을 생각이시오? 그만 포기하고 나오시오. 내 그럼 목숨만은 살려드리리다.”

안하무인 같은 하후경의 말에, 안쪽으로 물러나 있던 정 소감이 분개했지만, 그로선 하후경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저 운청이 그를 막아주기만 바라는 수밖에.

그사이 혈황의 몸에서 변화가 일었다. 그의 몸 주위로 처음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아지랑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우웅!

맑은 울음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흠칫.

하후경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 미친놈이……!”

두 눈이 부릅떠졌다. 눈앞에 혈인이 있었다.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혈인.

‘설마… 진짜 혈황신공이었단 말인가?’

수백 년 전 천하를 피로 물들였던 절대신공. 피에 굶주린 악마가 사용한 마공. 그 무공을 묘사할 때 들었던 붉은 아지랑이가 눈앞에 넘실거렸다.

붉은 아지랑이 속에서 음부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다 까불었느냐?”

빠드득.

분노에 몸을 떨던 혈황이 앞뒤 가리지 않고 혈황신공을 꺼내들었다.

“네놈에게 보여주마. 본좌가 누군지. 감히 본 좌 앞에서 주둥아리를 놀릴 수 있는 자가 천하에 누구인지.”

혈황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솟구쳤다.

하후경은 빠르게 신법을 펼쳤다. 이형환위라도 되는지 잔상을 남기는 그의 신법은 놀라울 만큼 빨랐다.

퍽! 퍼버벅! 퍽!

하후경이 남긴 잔상은 혈기에 의해서 꿰뚫렸다. 연이어 허공에 흩어졌다. 하후경은 쉬지 않고 몸을 피했다.

오랜 세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답게 위험을 빠르게 감지했다.

‘잠력을 터트린 것인가? 미친놈!’

갑자기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정말 잠력을 폭발시켰다면 진기의 사용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몸을 피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극도로 분노한 혈황의 공격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퍼버버벅!

세 개의 혈기가 하후경의 몸을 꿰뚫었다.

어깨에 있는 쇄골과 한쪽 다리, 그리고 왼팔.

하후경은 온몸을 강철같이 만들며 몸을 회전시켰다.

타다당!

몸에 박힌 혈기가 엿가락 끊어지듯이 잘렸다. 작은 바늘구멍 같은 상처였지만 그 상처로 침투한 혈기는 독과 같았다.

하후경은 마보를 취하며 쌍장을 허공에 휘저었다. 강맹한 기운이 몰려들더니 광장 안을 휘감았다.

혈기가 세찬 바람을 만난 듯이 휘날렸다. 그 틈을 향해서 검을 찔러 넣었다.

슈웅!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

혈황이 상체를 흔들었다.

스팟!

혈황의 가슴 앞섬이 잘렸다.

하지만 바닥을 차고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하후경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버버벅!

둘은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빠르기로 부딪쳤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공방이었다.

펑!

“크윽.”

주르륵.

하후경은 가슴을 가격당하고 다급한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다. 볼썽사납게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비틀어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

하후경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실전으로 다져진 자신의 절대 무공이 혈황에게 통하지 않았다.

‘대체 누구에게 혈황신공을 배웠단 말인가?’

하후경은 다시 자세를 잡으며 혈황을 노려보았다.

황제를 눈앞에 두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상대가 잠력을 사용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상 조금만 버티면 자신이 승리할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슈웅!

크아아아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용울음이 대기를 가르며 대장군을 덮쳤다.

대장군은 당황한 나머지 몸을 회전하며 기습에 대항했다.

“웬 놈이야!”

회리리릭!

치지지징!

하후경을 덮친 무공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그 무공을 펼친 인물이 청운이었고, 구마룡 중 셋을 하나로 엮어서 만든 신공이었다.

콰앙!

하후경은 청운이 쏘아낸 공격을 온전히 흘리지 못하고 벽으로 날아가서 심하게 부딪혔다.

광장의 한쪽 벽이 움푹 들어갈 만큼 거대한 충격이 하후경에게 전해졌다.

통로 전체가 흔들리며 천장에서 돌조각이 떨어졌다.

울컥!

“우욱!”

안색이 창백해진 하후경의 입에서 핏기가 보였다.

“제가 늦지 않았군요.”

청아한 소리가 광장으로 이어진 통로 중 한 곳에서 들려왔다. 처음에는 없었던 통로였는데 벽이 갈라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통로였다.

“대이이인!”

“진무사!”

“빌어먹을 놈, 올 거면 빨리 올 것이지.”

청운을 아는 이들이 저마다 반가운 소리를 냈다.

“뒤로 물러나서 진기나 가라앉히세요.”

청운이 혈황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 잠력을 폭주시킨 혈황은 더 이상 입을 열기도 힘든 상태여서 속으로만 구시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청운은 그제야 하후경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귀하가 대장군 하후경이오?”

“크크…….”

하후경은 복잡한 심정의 웃음을 흘렸다.

“네놈이 진무사 이청운이로구나.”

둘은 처음 만난 사이였다. 청운이 황도에 있을 때는 하후경이 변방에 있었고, 하후경이 황도로 돌아왔을 때는 청운이 중원에 나가 있었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놈! 기습이라니, 너무 비겁하지 않느냐?”

하후경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비겁하다? 누가 비겁한지 모르겠군. 충성을 맹서한 자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맹서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주군에게 검을 겨눈 것과, 그 주군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 중 누가 비겁하다고 생각하시오?”

“사람에게는 각자의 뜻이 있는 법이니라.”

“비겁을 논한 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만.”

청운은 냉랭히 말하고는 묵광이 흐르는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하후경도 치켜뜬 눈으로 청운을 보며 쌍장을 들었다.

그는 혈황에게 부상을 입고 재차 청운의 공격을 받아 내부가 엉망이 되었다.

특히 단전에서 찌르르 울리는 진통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단전이라는 그릇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살자고 도망치는 것은 자신의 성격상 맞지 않았다.

“설마, 내가 이 무공을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군.”

우우웅!

강맹한 기운이 하후경의 몸에서 뿜어졌다.

“어디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 이청운!”

하후경이 노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얼마든지!”

이청운도 검에 공력을 집중시키고 하후경의 장력을 상대했다.

둘은 순간적으로 십여 합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면서 광장 안쪽은 죽음의 지역이 되었다.

“으아아아!”

하후경이 괴성과 같은 기합을 터트리며 청운을 몰아붙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