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209화
맹천기는 고개를 휙, 돌려서 중앙에 앉아 있는 용천관을 쳐다보았다.
“맹주, 이놈과의 대결을 벌일까 합니다. 안 된다면 지금 말씀해주시오.”
“알아서 하게.”
용천관은 귀찮다는 듯 한 손을 휘휘 저었다.
그 모습에 맹천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아랫사람 대하듯이 하는 용천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이를 갈며 말했다.
“맹주, 내가 저 애송이를 이기면, 맹주도 내 도전을 받아주셔야 할 거요. 힘센 놈이 대장이라고 하셨으니 말이오.”
“물론 힘이 있으면 이 자리에 앉아야지. 아, 대신 패하면… 더 이상 딴지 걸지 말고, 내 말에… 복.종!해야 하네.”
용천관이 마지막 말에 잔뜩 힘을 주고 말하며 맹천기를 노려보았다.
맹천기도 지지 않고 눈에 힘을 주고 용천관을 쏘아보았다.
“약조하신 거요? 만약 또 딴소리 하시면… 스스로 맹주 자리를 포기한 거라 알겠소이다.”
“물론이지. 남자새끼가 한 입으로 두 말하면 쓰겠나?”
용천관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고개마저 끄덕였다. 그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몇 마디 덧붙였다.
“아참! 조심하게.”
“무얼 말이오? 설마 저 애송이를 조심하라는 거요?”
“하하, 눈치는 빨라. 저 친구, 아마 자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할 거야.”
“…….”
이를 악다문 맹천기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사도맹의 부맹주 이전에 사사천교의 주인이었던 그다. 저딴 애송이쯤은 단숨에 쳐 죽일 자신이 있었다.
‘흥! 어디 두고 보자, 능구렁이 같은 용 늙은이.’
용천관은 그런 맹천기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간부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들었을 거다! 부맹주가 이청운과 대결을 벌이기로 했다! 강한 자가 법인 우리 사도맹의 법도에 따라, 부맹주가 이기면 맹주의 위에 도전할 자격을 줄 것이다! 대신… 부맹주가 패하면, 그 자리는 이청운이 차지하게 될 거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장로와 고위 간부들이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사도맹의 법도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하니 토를 달 수도 없었다.
이청운은 사도맹에 들어오겠다고 했고, 맹천기가 공식적으로 대결하기를 원한 상태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맹주도 맹천기의 도전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고.
맹천기 역시 이가 갈렸지만 자신이 먼저 용천관의 자존심을 건드린 터라 따질 수도 없었다.
“대결은 대연무장에서 벌어질 것이다! 준비하라!!”
“존명!”
청운과 혈황, 그리고 맹천기를 제외한 모두가 부복하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같이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혈황은 맹천기를 보며 혀를 찼다.
‘쯔쯔쯔, 힘은 제법 센 놈 같은데, 대가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군.’
* * *
대연무장에 사도맹과 마도의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직경 이십 장의 원을 그리고 둘러섰다. 맨 앞줄의 사람들은 아예 철퍼덕 주저앉아서 앞으로 벌어질 대결을 기다렸다.
“진무사였던 자가 굉장히 강하다던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부맹주를 이길 수 있겠나? 맹주님도 승부를 가리기 힘든 고순데.”
“신혈교 공격하러 갈 때 안 가신 분이구만. 그때 이 공자가 싸우는 걸 봤다면 그런 말 못 하지.”
신혈교와의 싸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쉽게 승부를 점치지 않았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청운이 얼마나 강한지.
게다가 청운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터라 은근히 그의 승리를 기대했다.
용천관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하면 한 방에 토끼 세 마리를, 아니 호랑이를 잡을 수 있을 듯했다.
‘맹가 이놈, 어디 한번 저놈에게 혼나 봐라.’
그도 맹천기가 강한 건 알고 있었다. 감춰놓은 실력을 드러내면 자신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나 자신과 비등하게 싸운 이청운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이긴다 해도 상당한 내외상을 감수해야만 할 터, 그런 맹천기라면 한 손을 묶고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되면 그동안 고민을 안겨주었던 사도맹 내의 분열된 힘을 하나로 뭉칠 수 있으리라.
그게 바로 용천관이 노리는 바였다.
맹천기의 기를 꺾는 것.
사도맹의 분열된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
이청운을 사도맹 사람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이는 것.
‘분열된 힘만 하나로 뭉쳐도 신혈교 놈들과 정면대결을 해볼 수 있을 게야!’
용천관은 득의의 마음을 감추고 연무장 가운데에서 대치하고 있는 둘을 내려다보았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복잡한 상황을 정리할 기회를 준 이청운이 고맙기만 했다.
평생 도움이 안 되던 맹천기 놈도 오늘따라 고마웠다.
이리 쉽게 말려들다니.
‘힘만 센 곰 같은 놈. 저런 놈이 어떻게 사악한 놈들이 우글거리는 사사천교를 십 년이나 이끌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용천관은 경극을 감상하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연무장을 주시했다.
한편, 청운과 맹천기는 연무장 한가운데에 마주 서서 한동안 눈싸움을 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가공할 기운이 회오리치듯 휘돌았다.
맹천기는 그제야 그간의 소문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도맹의 장로들조차 상대하기 쉽지 않은 신혈교 고수들을 두세 명씩 상대했다고 했다.
심지어 맹주인 용천관마저 이청운이란 놈과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고 했던가?
‘새파란 애송이가 뭐 이리 강해?’
그래도 목에 힘을 주고 거만하게 한 소리 했다.
“애송이 놈,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어라.”
“귀하는 싸움을 입으로 하나 보군.”
“뭐라? 오냐, 이놈!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말로써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맹천기도 알고 있었다.
칠성 공력을 팔성까지 더 끌어올린 맹천기가 먼저 한 손을 휘저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손짓에 검은 기운이 거미줄처럼 뿜어졌다.
‘호,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데?’
청운도 내심 감탄하며 우장을 휘저었다.
담황색 기운이 검은 기운을 향해서 쏘아졌다.
쾅!
충돌로 인해서 밝은 광채가 폭발했다. 바닥에서는 흙먼지와 함께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팽!
순간 흙먼지를 뚫고 무언가가 청운을 향해서 쏘아졌다.
청운은 피하지 않고 다시 손을 휘저었다. 다시 담황색 기운이 뿜어지며 강기막을 형성했다.
그 순간, 뭔가가 강기막을 뚫고 파고드는 듯 느껴졌다.
흠칫한 청운은 본능적으로 바닥을 차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스팟.
허공으로 떠오른 청운의 미간이 구겨졌다. 맹천기의 공격이 회전을 하며 파고들어서 강기막을 뚫고 옆구리를 스치듯이 지나간 것이다.
허공으로 몸을 튼 청운이 맹천기를 향해 날아가며 장력을 내쳤다.
“흥! 어림없다, 이놈!”
냉랭히 코웃음 친 맹천기가 다시 장력을 펼치며 청운의 공격에 맞섰다.
그가 쌍장을 내뻗을 때마다 거미줄처럼 강기가 쏟아졌다.
막상막하의 공방이 십여 초식 연달아 벌어졌다.
맹천기는 가슴이 답답해지자 이를 악다물고 공력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그의 쌍장에서 일던 검은 기운이 더욱 진해졌다.
청운은 장력으로 상대하려던 생각을 바꾸고 검을 뽑았다.
맹천기가 무기를 들지 않아서 자신도 장법으로 상대하려 했다. 그런데 맹천기는 장법이 주 무공인 듯했다. 그렇다면 굳이 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의 검에서 피어나던 담황색 강기가 서서히 묵황색으로 변하며 용의 형상을 띤 채 검을 감싸고 휘돌았다.
전 같으면 구성 이상 공력을 끌어올려야만 나타나던 현상이 이제는 칠성에서도 나타났다.
그만큼 공력이 현격하게 늘었다는 말이었다.
맹천기가 그 모습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눈을 치켜떴다.
순간, 그의 쌍장에서 피어난 검은 기운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우우웅웅웅!
고막을 먹먹하게 만드는 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둘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용천관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뒤로 더 물러서라!”
용천관의 말에 구경하던 이들이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그와 함께 청운의 검이 서서히 머리 위로 올라갔다.
검신을 휘감고 돌던 묵황색 용이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꿈틀거렸다.
맹천기가 쌍장을 가슴으로 모았다가 앞으로 내밀었다.
콰아아아아!
칠흑같이 검은 기운이 회전을 하며 청운을 향해서 쏘아졌다.
청운도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날리며 머리 위로 검을 든 검을 뻗었다.
쉐에에엑!
묵황색 용의 형상을 한 강기가 용틀임을 하며 뻗어나갔다.
콰과과과광!
둘의 공격이 중간에서 부딪치며 고막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맹천기의 장력이 둘로 갈라졌다.
촤아아아악!
맹천기는 이를 악문 채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청운의 검강을 밀어내려 했다.
바닥의 청석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먼지구름이 안개처럼 일면서 두 사람을 희미하게 가렸다.
청운은 자신의 공격을 겨우 막아내며 진땀을 흘리는 맹천기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더 할 거요?”
“흥! 까불지 말거라. 아직 안 끝났으니.”
“아쉽군. 그래도 쓸 만한 사람 같아서 적당히 끝내려 했거늘.”
청운은 검에 일성 공력을 더 했다.
고오오오오!
맹천기를 몰아붙이던 용 형상의 강기가 더욱 강한 빛을 발하면서 맹천기의 강기막을 가르고 들어갔다.
얼굴이 일그러진 맹천기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차라리 상대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서 몸을 가르면 고통도 없고 창피도 느낄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서히 다가오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눈앞에서 꿈틀대는 묵황색 용이 입을 쩍 벌리고 앞발을 쳐든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머리를 물어뜯어 버릴 것만 같다.
난생처음 공포심이라는 감정이 그의 뇌리 깊숙한 곳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으으으으,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안 돼!’
삼 년 전에 얻은 첩, 수수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말썽만 피우는 자식새끼 셋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속만 긁어대는 마누라도.
그때였다.
“이제 마지막이오, 부맹주!”
청운이 한 소리 내지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콰우우우우!
묵황색 용이 앞발을 쳐들고 맹천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을 부릅뜬 맹천기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공력을 끌어올려서 쌍장을 내쳤다.
“으아아아아!”
콰과과과광!
둘 사이의 공간이 터져나갔다. 흙먼지와 강력한 광채가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손에 땀을 쥔 채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먼지구름 속에서 튀어나온 맹천기가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맹천기를 따르던 자들은 믿을 수 없는 결과에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청운을 알고 있던 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쯧,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부맹주가 과욕을 부렸어.”
“맹주께서 이 공자를 대우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건데 말이야.”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좀 더 상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뒤로 날아가서 나뒹굴었던 맹천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반면 청운은 뻗었던 검을 회수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서서히 용천관에게로 향했다.
태사의에 앉아 있던 용천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렁이던 장내가 고요해졌다.
용천관이 사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드넓은 연무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다들 봤으니 결과를 알 것이다! 부맹주 맹천기는 이청운과의 대결에서 패했다! 그러므로 이청운에게……!”
그때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청운이 용천관의 말을 끊었다.
평소라면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감히 맹주의 말을 끊다니.
그러나 상대는 맹천기를 이긴 승자였다.
“무엇이냐? 말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