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93화 (193/257)

# 193

193화

한편, 청운이 놈들을 상대할 때 백청청은 온몸에 호신강기를 두른 채 주위를 주시했다.

언제라도 청운을 돕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청운이 만든 청룡들이 사방을 휘저을 때만 해도 좋았다. 그러나 청룡이 갑자기 사라지자 고운 아미가 살짝 구겨졌다.

더군다나 백골존자와 그의 부하들이 청운을 향해서 벌떼처럼 달려드는 것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이것들이 감히!”

우우우웅!

백청청의 단전이 울었다. 두 눈에서 불이 번쩍였다.

양팔을 휘저으며 자세를 잡았다.

한 손은 하늘을 다른 손은 땅을 가리켰다.

월광파천무!

백가장의 지존신공이자 고금 오대무인 중 하나인 백운룡의 진산절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콰콰쾅!

백청청의 손짓에 주변이 일그러지며 박살 나기 시작했다.

만일 그녀를 지켰던 호위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백골존자의 부하들처럼 겁 없이 달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백골존자의 부하들은 월광파천무의 무서움을 모르기에 겁 없이 백청청에게 달려들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집채만 한 손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나서 사정없이 온몸을 강타했다.

공포에 질린 자들이 파리처럼 이리저리 손 그림자를 피해서 도망쳤다.

그때 백청청을 은밀하게 주시하던 자들 중 한 명이 두 눈을 빛냈다.

흑야에서 나온 자였다.

신혈교 교주의 요청으로 청운을 잡기 위해 나섰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항상 혼자 움직이던 놈에게 조력자가 있었다.

문제는 조력자인 백청청의 무공이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었다.

‘월광파천무의 경지가 최소한 칠성이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월광파천무에 대해서는 숱하게 들은 터였다. 그 위력과 파괴력 역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꼬리를 말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지도….’

그는 백청청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두 눈이 희번덕거렸다.

‘저년을 잡으면 백가장을 상대할 때 좋은 인질이 될 수도 있겠군.’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의 입지도 달라진다.

잘하면 흑야의 주인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르고.

사내의 머릿속에 연분홍빛 미래가 펼쳐졌다.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하던 사내는 날뛰는 백청청을 보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분명히 호신갑을 입고 있을 것이니 팔다리 위주로 공격해라. 시작해.

스르륵.

사내의 명령이 떨어지자 숨죽이고 있던 자들이 움직였다.

하나같이 초절정에 이른 자들이고 몇몇은 화경이다. 자신들의 협공을 막아낼 인물이 무림에 몇이나 되겠는가.

이청운이라는 놈이 아무리 강해도 오늘 죽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리라.

청운은 숨어 있던 자들이 움직이자 이를 악물었다.

‘저놈들이!’

놈들이 백청청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었다.

백골존자와 부하들이 펼치는 진법 때문에 당장은 몸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청운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청청은 신나게 무공을 펼쳤다.

청운이 조금 전 보내온 전음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자들의 기척을 찾아냈다.

“감히!”

파밧!

백청청의 신형이 바닥을 차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우아하게 솟구친 그녀를 따라서 십여 개의 신형이 뒤를 따랐다.

순간 벽청청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허공에 멈춰 선 백청청이 양손을 하늘 위로 들어올렸다.

우우우웅!

그녀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자들을 향해서 쌍장을 휘둘렀다.

후우웅!

콰콰쾅!

거대한 손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솟구치는 검은 복면인들을 덮쳤다.

장력이 폭사하듯 쏟아지자, 섬광이 터진 듯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폭발음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청운 역시 몸을 뒤로 빼내며 고개를 돌렸다.

십여 명의 복면인이 백청청의 공격에 실 끊어진 연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피해!”

청운의 입에서 비명과 같은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백청청의 공격을 뚫고 세 개의 인영이 그대로 공격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백청청도 깜짝 놀랐는지 이를 악물며 연달아 장력을 발출했다.

퍼버벙! 버벙!

“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백청청의 신형이 중심을 잃고 뒤쪽으로 날아갔다.

공격자 셋 중 둘을 막아냈지만 왼편에 있던 자의 공격에 가슴을 내주고 말았다.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는 백청청의 모습이 청운의 두 눈에 천천히 그려졌다.

세상이 정지한 것 같았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청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떨어져 내리는 백청청의 모습을 볼 뿐이었다.

그때 무언가 희뿌연 그림자가 담장의 그늘 속에서 솟구쳤다.

휘익!

떨어져 내리는 백청청을 가볍게 받아든 그는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태산처럼 우뚝 선 희뿌연 그림자는 백색 두건을 쓴 적월이었다.

백청청이 위기에 처하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적월은 백청청을 공격한 복면인들을 향해서 한광을 뿜어냈다.

그의 등장에 백청청을 공격하려던 자들이 우뚝 멈춰 서서 신음을 흘렸다.

“설마…… 저, 적월?”

“적월이 어떻게 여기에……?”

흑야의 무사들은 어릴 때부터 백야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백야의 무공, 백야의 인물 등등.

때문에 백청청의 무공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실제 본 적이 없음에도 적월을 보자마자 그의 정체를 바로 눈치챘다.

백야의 살귀, 적월.

마음만 먹으면 천하에 죽이지 못할 자가 없다는 천하제일의 살귀가 바로 그였다.

그자가 백청청 곁에 있었다니!

적월은 축 처져서 정신을 잃은 백청청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든 그는 싸늘한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감히 네놈들이… 겁도 없이 아가씨를 공격하다니.”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였지만 흑야의 인물들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에 휩싸였다.

적월은 당장에라도 흑야의 놈들을 쳐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백청청이 정신을 잃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흑야 놈들의 목이 아니라 백청청의 안위였다.

적월은 청운을 한 차례 보더니 이내 몸을 날렸다.

“곧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복면인들은 적월의 등을 보고 망설였다.

추격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물러서야 할지.

잠시 머뭇거릴 때 그들의 대장인 사내가 모두에게 전음을 보냈다.

-놈을 추격해라. 놈과 백가의 계집을 놓친다면 백가장과 백야가 무림에 쏟아져 나올 것이다. 살고 싶다면 어서 추격해!

복면인들이 일제히 적월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청운이 몸을 날려서 그들 앞을 막아섰다.

“모두 죽인다!”

하늘을 울리는 일성!

그리고…….

후욱!

퍼버버벅!

한 줄기 뜨거운 바람이 장내를 휘몰아쳤다.

붉고 푸른 빛줄기가 솟구치더니 복면인들을 덮쳤다.

“놈을 막아!”

복면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악을 썼다.

그 순간, 빛줄기가 회오리처럼 휘돌면서 복면인들을 휘감았다.

막 경공을 펼치던 복면인들이 빛줄기에 휘감겨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크억!”

“으허억!”

비명과 함께 핏줄기가 허공에서 솟구쳤다.

청운은 좋아하는 여인이 쓰러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책감에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쳤다.

십성, 전 공력을 끌어낸 그는 복면인들을 날려버린 후 천신처럼 허공에 서서 적월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괜찮겠지?’

백청청을 구해간 자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다루는 모습이나 말투를 보니 백가장에서 나온 자인 듯했다.

청운의 시선이 다시 땅으로 향했다.

“너희들이 나를 살귀로 만드는군.”

그의 십성 공력에 휘말린 복면인들 중 반 이상이 죽고, 서너 명만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복면인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몸을 반쯤 세우고 경악에 찬 표정으로 청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강했다니…! 너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알면 됐어.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겠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청운의 검에서 다시 붉고 푸른빛이 폭사했다.

가공할 기운이 겨우 일어나서 물러서려던 자들을 휩쓸었다.

복면인들은 청운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전 공력을 끌어올린 청운의 공세는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따다당!

복면인들이 들고 있던 도검이 부러지고 튕겨나갔다.

서걱!

머리가 잘리고 사지가 잘리면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청운은 복면인들이 모두 쓰러지자, 몸을 돌려서 백골존자 쪽을 바라보았다.

오연히 서 있는 그의 옷자락이 펄럭이고, 전신에서 가공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상 더 이상의 자비는 없을 거다.”

목소리가 어찌나 싸늘한지 백골존자와 그의 부하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괴, 괴물이다!”

“아, 악마 같은 자야.”

“젠장, 저런 자를 우리보고 어떻게 잡으라고…….”

“도망쳐!”

누군가가 악을 쓰듯 외치자, 십여 명이 돌아서서 몸을 날렸다.

백골존자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겁먹을 것 없다. 진법을 유지하고 합공해라!”

남은 자들은 일제히 청운을 공격했다. 백골존자 역시 부하들과 함께 청운을 향해서 날아갔다.

청운은 검을 들어서 날아드는 자들을 향해 뻗었다.

그의 검첨에서 수십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강으로 만들어진 실, 검사(劍絲)가 극상승의 경지로 펼쳐진 것이다.

검사는 달려드는 자들의 머리와 몸을 거침없이 꿰뚫었다.

파바바바박!

콩 볶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청운을 공격하던 자들 수십 명이 달려들다 말고 몸을 뒤틀며 널브러졌다.

어떤 자는 머리에서, 어떤 자는 가슴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백골존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역시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이런… 무공을 감추고 있었…….”

청운이 그를 보며 냉랭히 말했다.

“삼백 년 넘게 정체를 숨기고 있는 놈들을 상대하면서 모든 것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나?”

태행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다시 강호에 나온 후 처음으로 십성 공력을 펼쳤다.

아마 백청청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 해도 목숨이 경각에 달한 지경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는 삼백 년 넘게 강호를 뒤에서 주무른 자들이 아닌가.

적을 속이려면 나부터 속여야 했다.

그런데 백청청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냈다.

새삼 자신이 백청청을 그렇게까지 좋아했나 싶을 정도였다.

“지, 지독한 놈…….”

“앞으로는 더 지독한 놈을 보게 될 거다. 당신을 시작으로.”

휘아앙!

청운이 검을 사선으로 긋자, 한 줄기 검기가 삼 장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백골존자의 목을 쓸고 지나갔다.

“그, 그극…….”

목소리에서 그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백골존자의 머리가 옆으로 밀리며 떨어졌다.

청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보고는 몸을 돌렸다.

살아남은 자들 이십여 명이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마당 가득 널브러져 있는 시신은 족히 백 구는 될 듯했다.

고개를 돌리자, 한쪽의 기둥에 매달린 시신들이 보였다.

무사도 있었지만, 힘없는 하인들이 다수였다.

저들의 죽음은 누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왕야가 바로 조치만 취했어도…….’

분노가 치밀었다. 백성이 죽어가는 데도 명분이나 따지고 있다니.

권력자들에게 신물이 났다.

청운은 이를 악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살귀가 되어서 힘없는 자들을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살귀가 되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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