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192화
배시시 웃으며 청운 곁으로 다가온 백청청은 청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마도 몰래 따라온 것 같다.
이틀 동안 따라오는 걸 몰랐다니.
청운은 한숨이 나왔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나 여기 있다고 내공까지 흘리셨지 않소. 그냥 두고 가려다가 끝까지 따라오면서 고생하실 것 같아서 부른 것이오.”
“헤헤. 가가, 그런데 어딜 그리 가세요?”
백청청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청운에게 물었다.
“알려드리면 안 따라 올 것이오?”
“아니요.”
백청청은 딱 잘라 말했다.
지옥 끝인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안 따라갈 백청청이 아니었다. 이미 그녀에게 청운은 지아비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청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실 줄 알았소.”
“헤헤, 그러지 마시고 한번 말씀해보세요.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지난번에도 보셨죠? 제 실력.”
청운도 그녀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파리 잡듯이 커다란 손으로 첩자를 때려잡을 정도면 이번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백골존자라고 아시오?”
“네. 칠성도문에서 혈겁을 일으킨 자잖아요.”
장안을 습격하면서 잔인하게 혈겁을 일으킨 자였다.
“맞소. 그자가 여전히 혈겁을 일으키고 있소. 그래서 그자를 때려잡을 생각이오.”
“아! 그럼 싸우러 가시는 거군요.”
백청청은 펄쩍 뛰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일 나가는 아버지에게 돌아올 때 당과라도 사오라고 조르는 아이 같은 모습이랄까?
“싸우는 건 그를 직접 만난 뒤에 결정할 것이오.”
“그럼 같이 가요.”
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쯤 백영상 장로님이 걱정하고 계실 것이니 그만 돌아가시오.”
“히잉, 그냥 같이 가요. 우리 둘 다 없으면 어디서 사랑이라도 나누는지 알 거예요. 오붓하게 둘이 산책한다고 생각하시고요.”
청운은 순진한지 철이 없는지 모를 백청청의 말에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어쨌든 생사를 오가는 싸움이 벌어질 자리에 백청청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안 되오.”
“아잉, 그러지 마시고 같이 가요. 제 앞가림은 할 수 있어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청운에게 매달리자 청운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아, 안 데려 간다고 안 따라올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피비린내 나는 곳에 데려갈 수도 없고.’
백만대군이 몰려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건만 백청청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청운이다.
청운이 갈등을 할 때, 백청청이 청운의 소매를 잡으며 한 발 앞으로 내밀었다.
“가요. 제 걱정 하지 마시고요.”
“어어, 아직 정하지 않았소.”
“그냥 가요. 이럴 시간에 빨리 가서 처리하고 와요. 저 못 믿어요? 제가 백청청이에요. 천하무적 백청청이 저란 말이에요. 백가장에서도 감히 상대가 없었던 백청청요. 깔깔깔.”
청운은 못 이기는 척하며 따라갔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녀를 강하게 말리지 못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후우우.”
그저 한숨만 나올 뿐.
둘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인영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온몸이 백색으로 이뤄진 야행복을 입은 자였다.
적월.
그는 백야대주의 명령으로 백청청의 뒤를 소리 없이 따르고 있었다.
백청청과 청운이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다시 허공에서 흩어지며 소리 없이 사라졌다.
* * *
청운과 백청청이 도착한 곳은 한 장원이었다.
위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장원은 본래 정파의 세력 중 한 곳이었다.
서령검문.
장안 근교에 자리한 검파로 이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검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백골존자가 수백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습격해서 멸문에 가까운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청운과 백청청은 커다란 장원 앞에 섰다.
장원의 입구에 붙어 있어야 할 현판은 어디 가고 보이지 않았다.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불타버리다니.’
씁쓸한 표정을 지은 청운은 입구를 막고 있는 무사들에게 다가갔다.
“웬 놈이냐?”
“뭐야? 어디서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겁 없이 다가오는 거야? 어이구 예쁜데?”
입구를 지키던 자들이 청운을 보며 한마디씩 하다가 백청청의 미모를 보며 침을 흘렸다.
청운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이것들을 그냥 죽여?’
음탕한 눈으로 백청청을 바라보는 자들을 일장에 쳐 죽이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청운은 싸늘한 눈초리로 놈들에게 말했다.
“사도맹에서 맹주님의 전언을 가져왔다. 백골존자는 안에 있느냐?”
“헉, 몰라뵈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겉으로는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지만, 그의 두 눈에 담긴 비릿함은 청운을 존경하거나 윗사람으로 대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지 청운은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있나.’
청운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마당에 펼쳐진 잔인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늘어선 구조물에 사람이 묶여 있었다. 그 숫자가 수십 개나 되었다.
축 처진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숨소리는 너무도 미약했다.
백청청이 뾰족하게 비명을 질렀다.
“악!”
청운은 곧장 고개를 돌려서 백청청을 보았다.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백청청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청운은 그녀가 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음.”
청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목불인견이 따로 없었다.
나체의 여인들이 한쪽에 묶여 있었다. 살아 있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겁탈과 심한 고문을 당했는지 처참한 모습이었다.
청운은 서둘러 백청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소저, 부탁이니 잠시만 화를 참으시오. 놈들의 우두머리가 도망칠지 모르니 말이오.
백청청은 입술을 깨물며 소리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끓어오르던 그녀의 내공이 금세 흔적 없이 사라졌다.
청운은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했다. 그가 도착한 사실을 전해 들었는지 마당 건너편의 전각에서 일단의 사내들이 나왔다.
개중에서 키가 크고 깡마른 자가 보였다.
‘저자가 백골존자인가 보군.’
별호처럼 뼈밖에 없는 자였다.
청운은, 기단 위에 서서 오연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골존자를 향해 말했다.
“용 맹주의 부탁을 받고 온 진무사 이청운이라고 한다. 그대가 백골존자인가?”
“뭐? 진무사?”
백골존자는 청운의 정체를 듣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청운이 올 줄은 몰랐던지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기괴하게 웃었다.
“캬캬캬캬. 어젯밤 속살이 각별한 년의 심장을 꺼낸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런 대어가 스스로 찾아와서 나를 기쁘게 하는군.”
“설마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단 말이냐?”
“크크크, 눈치가 빠른데?”
청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놈이 건넨 몇 마디 말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하나만 묻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거냐?”
“크크크. 삼원을 했다고 하더니 똑똑한걸?”
청운은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은 사람들의 몸에서 알 수 없는 원독이 느껴졌다.
청운은 무심한 눈길로 다시 백골존자를 보며 물었다.
“혹, 네놈도 신혈교 출신인가?”
“캬캬캬. 염라에게 물어 보거라. 친절히 가르쳐 줄 것이니. 큭큭.”
무엇이 즐거운지 놈은 청운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러고는 청운 곁에 서 있는 백청청을 보며 한마디 했다.
“네년은 특별히 본좌가 침상에서 죽여주마. 살아남는다면 여기 있는 부하들이 극락을 구경하게 해줄 것이니, 서운해하지 말고. 캬캬캬.”
놈의 말에 주위에 있던 자들이 광소를 터트렸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렸다.
“내가 진무사이며 오호평천대장군임을 알고 있느냐?”
“크크크, 설마 위명이 쟁쟁한 삼원 이청운 대인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캬캬.”
놈은 잔뜩 흥분한 채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청운은 담담한 시선으로 말했다.
“나를 건드리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군.”
“설마 그것도 모를까? 역적이 되는 것 아니냐.”
“잘 아는구나. 용 맹주가 직접 나서지 않고 나를 보낸 이유를 이제야 눈치채다니, 멍청한 놈이군.”
“뭐?”
백골존자는 기괴한 웃음을 멈추고 청운을 노려보았다.
“어디 네놈의 입담만큼 실력이 되는지 보자. 뭣들 하느냐! 놈을 쳐 죽여라!”
“존명!”
“죽여!”
우르르르릉!
천둥이 치듯이 사방에서 청운을 향해서 무차별적인 공격이 쏟아졌다.
콰콰콰쾅!
터더더더덩!
청운의 일 장 주위로 둥근 막이 형성되었다. 쏟아지는 공격에 출렁거릴 뿐 뚫리지 않았다.
백청청은 신기한 듯 둥근 호신강기를 보더니 청운에게 한마디했다.
“가가, 제 걱정 하지 마시고 놈들을 쓸어버리세요. 이런 악마 같은 자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요.”
“같은 생각이오. 조심하시오. 혹, 눈먼 병장기에 상하기라도 한다면 내 마음이 무척 아플 거요.”
“정말요? 가가, 흑.”
백청청은 청운의 말 한마디에 당장이라도 와락 품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청운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주위의 기운을 살피는 데 열중했다.
‘은밀히 숨어 있는 자들이 있다. 하나같이 대단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다.’
숫자는 십여 명. 최소한 초절정 이상이었다.
한두 명은 경지가 잘 가늠이 안 되는 걸로 봐서 화경에 이른 고수일지도 몰랐다.
청운은 그들의 움직임을 느끼며 백청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소저, 놈들 외에 다른 자들이 숨어 있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오.
백청청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움직인 건 청운이었다. 청운은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뽑아들었다.
시리도록 맑은 검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지지지징!
청운은 막대한 내공을 검에 불어넣었다. 검신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며 쭉 뻗어나갔다.
“악귀 같은 놈들! 모조리 죽여주마!”
냉랭히 소리친 그는 적진 속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슈슈슈슉.
검강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청운을 공격하던 자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피해!”
“암기를 쏘아라!”
“놈을 죽, 커억.”
청운이 쏘아낸 검강에 사방이 초토화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백골존자는 이를 악다물었다.
이청운의 무공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이대로 무작정 공격했다가는 모조리 놈의 검에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
백골존자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백골귀마진을 펼쳐라!”
“명! 귀마! 개진!”
쿠쿵!
주위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바닥을 발로 구르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운은 이들이 진법을 펼치게 순순히 기다려줄 마음이 없었다.
우웅!
맑은 울음이 청운의 단전에서 울렸다. 검에서부터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한 마리의 거대한 청룡이 꿈틀거리며 청운을 보호하듯이 한 바퀴 휘감았다.
연달아 청운의 머리 위로 거대한 청룡이 솟구쳤다.
총 세 마리의 청룡이 승천했다.
크아아아앙!
백골귀마진을 펼치려던 무인들이 기겁했다. 갑자기 눈앞에 용이 나타났으니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운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족족 놈들을 공격했다.
“갈!”
청운의 검에서 검강이 폭사되었다.
환우폭멸!
환우구검이 펼쳐졌다. 앞을 막아서던 자들의 목이 잘리며 폭발했다.
“이놈! 막아!”
백골마존의 입에서 비명과 같은 명령이 떨어져 내렸다. 그 역시 그냥 있지 않았다. 청운을 향해서 자신의 진산절학인 고루신공을 펼쳤다.
백골존자의 공격은 매서웠다. 냉기를 날리는 장력이 환우구검과 부딪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폭발의 영향으로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안개처럼 시야가 가려졌을 때, 흙먼지를 뚫고 청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백골존자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푸캉!
백골존자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젖히며 청운의 검을 막았다.
그의 두 눈에서 흉광이 폭사되었다.
챙챙! 채재쟁!
백골존자는 부하들이 펼치는 진법에 기대어 청운을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