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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35화 (135/257)

# 135

135화

외출했다가 무림맹으로 돌아가던 청운은 무거운 분위기와 들리는 말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했음을 짐작했다.

많은 무사들이 부상을 당한 채 돌아왔다고 했다.

죽은 자만 해도 백 명이 넘는다고 했다.

‘결국… 터졌나?’

맹의 정문으로 다가가자 입구에서부터 무림맹 안쪽으로 이어진 붉은 혈로가 보였다. 부상자들이 흘린 피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으로 들어가자 의당 쪽으로 향한 길목에 부상당한 무사들이 주저앉거나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밖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부상자가 많아 의당에서 모두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당했길래.’

청운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모두 보무도 당당하게 무림맹을 출발했던 무사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한 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출발할 때만 해도 삼 백 명이 넘었다. 그런데 돌아온 건 백 명이 안 된다고 했다. 삼 분지 이가 넘는 인원이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청운의 눈에 한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한쪽 팔이 사라진 사내였다.

초점 없는 눈빛과 풀어헤친 머리카락은 누군가의 피로 얼룩진 체 더럽게 엉켜 있었다.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느껴질 정도로 모습이 엉망이었다.

‘쯧쯧, 화공과 암기에 당했군. 함정에 빠지다니.’

청운은 어렵지 않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유추해낼 수 있었다.

착잡한 마음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쯧쯧, 그러게 조심하라니까…….’

청운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맹 인사들이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행동한 자만심의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청운이 숙소로 사용하는 별채에 들어서고 일각이 흘렀을 때 정 소감이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서찰이 들려 있었다.

“대인, 소식은 들으셨사옵니까?”

“보고 왔네. 처참하게 당했더군.”

“니에, 정보를 모아서 가져왔사옵니다.”

정 소감이 건넨 두루마리를 죽 펼친 청운은 빠르게 내용을 읽었다.

청운의 생각대로 놈들은 화공에 의한 기습을 펼쳤다.

협곡을 빠져나오면서 계속 공격을 받았고, 마지막에 갑자기 나타난 고수의 기습 때문에 옥선진인의 왼팔이 잘렸다는 내용이었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내려놓으며 정 소감에게 물었다.

“왜 이리 서둘렀는지는 아는가?”

“니에, 지난밤에 알려드린 몇몇 인물들이 강하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청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딱히 증거는 없었지만, 그들에 대한 강한 의혹이 일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의심하기도 모호했다. 오랜 세월 무림맹에 몸담은 자들이기에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청운은 정 소감에게 물었다.

“그들에게 감시는 붙였나?”

“둘은 붙였사옵니다. 다른 이들도 붙일 것이옵니다.”

청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정 소감에게 말했다.

“서두르지 말게, 자칫 외부에 알려지면 곤욕을 치를 수 있으니.”

“대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동창이 하는 일은 늘 은밀하옵니당.”

정 소감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말대로 동창은 은밀하게 정보를 모으는 데 특화된 자들이다.

청운은 믿음직스러운 정 소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여러 가지 이야기와 당부의 말을 정 소감에게 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정 소감이 물러났다.

홀로 남은 청운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늦은 밤, 쉬고 있는 청운을 급히 찾는 이가 있었다.

경계를 서고 있던 웅천이 청운이 쉬고 있는 전각을 향해서 말을 전했다.

“대인, 웅천이옵니다.”

“무슨 일인가?”

“전령이 대회의장으로 오시라는 전갈을 가져왔사옵니다.”

이번 사태 때문에 긴급회의를 하는데 참석해 달라는 전령이 찾아왔다.

그러나 청운은 무슨 생각에선지 무림맹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일찍 잔다고 전하게.”

“예, 대인!”

웅천이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을 우두커니 보고 있는 전령에게 차갑게 말했다.

“대인께서 깊은 잠에 빠지셨네. 돌아가게.”

전령은 입을 쩍 벌렸다.

분명히 청운과 웅천이 문 하나를 두고 대화했다. 그 내용까지 자신이 곁에서 들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전령은 웅천을 보며 따지려고 했다.

“아니, 방금…….”

그러나 차갑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웅천을 보자 급히 입을 닫았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도 없었다. 전령이 앓는 소리를 내며 웅천에게 물었다.

“끄응, 그대로 전하면 됩니까?”

“그게 자네 할 일 아닌가? 그대로 전하게.”

“알겠사옵니다. 그럼 이만.”

전령은 웅천의 확답을 듣고 몸을 휭하니 돌렸다. 올 때보다 빠르게 별채를 빠져나갔다.

전령의 모습이 사라지자 웅천은 걱정스러운지 청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대인, 괜찮겠사옵니까?

-아쉬운 건 내가 아니고 그들이지.

-알겠사옵니다.

웅천은 청운의 대답에 수긍했다. 무림맹은 아직도 청운을 파악 못 한 것 같았다.

단순히 황제의 신임을 얻은 나이 어린 관리로 생각하는 자가 많았다. 선입견으로 청운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그들은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회의에도 청운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삼천이 참석했다.

청운은 삼천에게 당부의 말을 했었다.

“누가 큰 소리를 치는지, 그리고 누가 선동하는지 알아오게.”

청운의 밀명을 받은 삼천은 회의 내내 입을 닫고 있었다.

뛰어난 기재로 소문났던 삼천은 회의가 시작되고 몇몇 인물의 말투와 행동에서 이상함을 눈치챘다.

‘선동하는 자가 둘이고, 그들의 말에 동조해서 큰 소리 치는 자가 다섯이군.’

생각보다 많았다. 청운이 전해준 인물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다.

우두커니 이야기만 듣는 삼천에게 제갈신우가 물었다.

“그런데 천 백호께서는 어찌 아무 말씀도 없는 것입니까?”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천진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하는 삼천은 천 백호로 통했다.

너무도 냉정한 삼천의 말에 제갈신우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제갈신우는 청운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덕분에 사제인 제갈신기가 찾아와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갔었다.

‘에잉, 나이를 먹더니 잔소리만 늘어서는.’

탐탁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기분대로 금의위를 압박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제갈신기가 다시 찾아와서 온종일 잔소리를 해댈 것이 뻔했다.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은 진무사를 달랠 필요가 있어.’

상대의 의도를 알고 있으니 굳이 더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생각보다 신비세력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정파의 힘을 모아서 놈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싶었다. 무림맹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피해가 너무 클 것 같았다.

‘굳이 정파의 힘을 소진시킬 필요는 없지.’

눈앞에 놈들에게 던져줄 좋은 먹잇감이 있었다.

제갈신우가 삼천에게 말했다.

“약당에 말해서 몸에 좋은 탕약을 보내줄 것이니, 진무사께서 빨리 쾌차하길 바란다고 전해주게.”

“예, 장로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제갈신우는 삼천을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삼천 역시 웃으며 제갈신우를 보았다.

둘의 미소가 허공에서 얽혔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한 미소였다.

* * *

청운은 사흘이 흘렀는데도 두문불출하며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청운이 정말로 크게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청운과 인연이 깊은 젊은 무인들이 찾아왔지만, 웅천은 철벽이라도 되는지 그들을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말들이 많이 흘러나왔으나 정작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의 이목을 속이기 위한 청운의 계략이었다.

청운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역용을 하고 다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무림맹을 휘젓고 다녔다.

의심 가는 자들을 살피며 그들이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보았다.

또한 청운은 자신이 별채에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삼천에게 자신의 모습으로 역용하고 창가에 가끔 앉아 있게 했다.

덕분에 멀리서 별채를 살피던 자들은 청운이 별채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에 숙소를 몰래 빠져나온 청운은 싸움이 벌어졌다는 삼문협으로 향했다.

협곡을 따라서 빠르게 이동하며 싸운 흔적을 살폈다. 이미 무림맹에서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은 수거해 간 상태였다.

하지만 청운이 찾는 증거는 협곡 전체에 걸쳐서 발견되었다. 바위틈에 박혀 있거나 흙 속에 파묻힌 암기부터 절벽에 나 있는 무공 흔적은 훌륭한 증거였다.

“저 흔적은 그자가 사용하는 도가 만든 것 같은데요?”

[맞다. 거도에서 뿜어지는 도강이 만든 흔적이구나. 그놈이 사용하는 도법은 벤다기보다 찢어발기는 형태였다. 잘 보면 베어진 단면 옆으로 지저분한 흔적이 남아 있다.]

혈황은 한쪽 절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길게 베어진 흔적이 있었다. 안력을 돋우어 살피자 혈황의 말대로 찢긴 흔적이 있었다.

“무식한 도법이네요.”

[네 녀석도 상대해 보지 않았느냐. 팽가 놈들의 도법과는 확연히 다르다. 도법보다는 극처럼 두들겨 패서 찢어버리는 방식이야.]

얼마 전 청운을 습격했던 자도 같은 형태의 도법을 구사했었다. 그는 들고 휘두르기도 힘든 거대한 도를 사용했었다. 타고난 신력과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무기였다.

청운은 유심히 흔적을 살피며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 흔적을 남기는 자라면 그자일 확률이 높다.’

절벽에 난 상처를 봤을 때 그 거한이 습격에 동참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자는 나에게 부상을 당했는데 벌써 나았나?’

광존은 청운에게 제법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상태로 화경의 고수인 정준을 상대로 싸웠다니,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혈황 님, 그 덩치 큰 자가 저에게 입은 상처가 작지 않았습니다. 벌써 치료했을까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영약을 사용했거나 특별한 요상결로 치료했다면 훨씬 빨리 나을 테니까.]

혈황의 말대로라면 놈이 완치되었을 수도 있었다. 거기에 혼자가 아닌 둘이 더 있었고, 그들을 따르는 자들도 실력이 대단했었다.

청운은 협곡의 끝에 다다랐다.

처음 싸움이 벌어졌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불탄 흔적이 사방에 있었고 깨어진 항아리 파편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래도 협곡의 앞을 막았다는 돌무더기는 치워진 상태였다.

청운은 사방을 둘러보며 그날 있었던 싸움을 머릿속에서 상상했다.

한편, 청운이 흔적을 살필 때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광존과 칠야였다.

그들은 부하들을 숨겨둔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라는 자는 오지 않고 웬 이상한 놈이 나타났다.

광존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오늘도 놈은 오지 않는 것인가?”

“놈의 행보를 보면 항상 직접 움직였습니다. 기다리면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곁에 있던 칠야가 확신하듯이 대답했다.

광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긴, 큰 싸움이었으니 확인하러 움직이겠지.”

신비세력은 다시 함정을 파고 청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무림맹과 멀리 떨어진 곳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위치였다.

광존은 이번에야말로 놈의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별렀다.

광존과 칠야가 멀리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청운 곁에 있던 혈황이 고개를 획 돌렸다.

[응?]

저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곳의 나무 그늘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혈황은 휙 몸을 날려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전에 봤던 놈들이었다.

청운 곁으로 돌아온 혈황이 그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청운아, 놈들이 숨어 있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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