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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07화 (10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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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개봉에는 아직 혁련휘의 일가족이 남아 있다. 그들까지 줄줄이 압송할 수 없었기에 두고 온 것이다.

개봉으로 전서응이 날아올랐다.

청운은 저 멀리 날아가는 전서응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혈황님, 혁련장이 무사할까요?”

[이미 늦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곳을 지키는 아이들도 많이 상했거나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혈황의 말대로 불안했다. 그곳을 지키는 자 중에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도 수십이나 된다.

‘놈들을 놓친다 할지라도 그들이 상하면 안 되는데.’

청운은 남겨진 부하들이 걱정되었다.

전서구가 다시 돌아온 건 사흘 만이었다.

혁련장이 괴인들의 습격으로 불탔다는 내용이었다.

청운의 전서구가 도착하기 전에 일이 벌어져서 그곳을 지키던 병사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혁련휘가 떠나고 금의위는 풍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청운에게 몸을 의탁한 금의위는 무사했다.

그래도 병사 수십이 죽임을 당하자 청운은 망연자실했고, 황제는 대노했다.

이번 일이 알려지면서 황도가 술렁거렸다.

이번 일로 허점을 드러낸 청운의 일 처리가 구설수에 올랐다.

따지고 보면 청운의 잘못은 아니었다.

이미 죄인을 황제에게 무릎 꿇린 순간 그가 할 일은 끝났다.

더군다나 이번 일의 원흉은 사라진 우시랑이었다. 형부의 이인자가 나서서 죄인을 빼돌린 것이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을 누구도 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청운이 있었다. 그래서 억지를 부렸다.

청운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보다 급한 일을 처리 중이었다.

“내 약속하지. 일의 전말과 그들이 누구인지 말한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겠다.”

사방이 돌로 막힌 좁은 밀실에 청운과 무공 사부인 삼천이 있었다.

삼천은 의자에 손이 묶인 채 앉아 있었다.

그는 신비세력과 연결할 수 있는 마지막 꼬리였다. 이자를 통하면 그들에게 좀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유 중이었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크크크. 천하의 삼원 이청운 대인께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 보군. 그런데 어쩌지? 나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는데.”

삼천은 무슨 이유에선지 죽으려 하고 있었다. 지난번 팽형을 당할 때도 순순히 받아들였으니 그의 말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럴 거라 예상은 했네. 그런데 나 역시 이번 일과는 상관이 없네. 내 임무는 역도를 황도까지 데려오는 일이었지. 다시 말해서 내 임무는 끝났다는 말이네. 그러니 자네의 말은 틀린 것이지.”

“그런가? 그거 아쉽게 되었군. 크크.”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았다.

청운은 천천히 접근을 시도했다.

“그런데 삼천은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인가?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나?”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청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버럭 화를 내는 삼천이다.

“하하, 가족이나 지인이 놈들에게 볼모로 잡혀 있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자네 같은 인재가 홀로 남겨져 있을 이유가 없지. 아니면 팽당한 것인가?”

“마음대로 생각하거라.”

삼천은 고개를 획 돌렸다.

청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다. 흔들렸어.’

삼천의 잔잔했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그 파문이 무엇 때문인지 그의 약점이 무엇인지 청운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

“아아, 그렇게 긴장할 것 없네. 자네가 죽겠다는 마음은 존중해 주지. 그보다 가족관계는 어찌 되는가?”

홱!

삼천이 돌렸던 고개를 다시 돌려서 청운을 노려봤다.

“…….”

“이야기해주기 싫은가? 상관없네. 자룡궁에는 자네에 관해 이야기해줄 사람이 많으니. 아니 그런가?”

“이, 이놈!”

가족 문제를 거론하자 삼천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흘러나왔다.

‘놈의 가족이 모처에 붙잡혀있군. 그래도 놈을 버릴 이유가 부족해. 어째서 다른 자들은 구해갔으면서 이자를 남겨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팽형을 겸허히 받아드릴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생으로 삶아지는 형벌이다. 보통의 의지로 버틸 수 없는 형벌이니 감당할 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청운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내가 맞춰볼까? 자신이 죽으면서도 혁련휘라고 말할 자가 필요했겠지. 그 적임자로 자네가 선택되었을 것이고. 자네는 약점이 잡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

삼천은 두 눈을 부릅뜰 뿐 더 비아냥거리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청운은 자기 생각이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자네 그거 알고 있나? 과연 그자들이 약속을 지킬까?”

청운의 말에 삼천이 이를 악물었다.

그도 청운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청운의 말이 화두가 되어 계속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괴로운지 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청운은 그런 그의 흔들리는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절대 안 지키지. 왜인지 아나?”

“그럴 리 없다. 나를 회유할 생각은 버려라. 죽는다 하여도 내 입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삼천은 버럭 화를 냈다. 더 이상 말을 듣기 싫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청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돌아서며 한마디 던졌다.

“쯧쯧, 고집하고는. 생각이 바뀌면 이야기하게. 아참! 아까 답을 안 알려줬는데 궁금하지 않나?”

“…….”

“이미 잡은 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법이라네.”

곧 죽을 놈에게 약속을 지켜줄 의리 따위는 없었다. 의리를 지킬 만큼 돈독한 사이라면 이렇게 버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운은 삼천의 대답도 듣지 않고 휑하니 밖으로 나갔다.

석실의 철문이 굉음을 내며 닫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삼천이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

청운은 철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앞을 보며 걸어 나갔다.

그 모습에 혈황은 혀를 찼다.

[쯧쯧. 고상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혓바닥으로 사람을 죽이는구나.]

혈황의 투덜거림이 들렸지만 청운은 앞만 보며 걸을 뿐이었다.

* * *

며칠이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황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림인들은 당분간 황궁에 머물기로 했다.

황제는 그들 중 대표적인 인물에게 몇몇 벼슬을 내렸다. 신비세력의 발호를 견제하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면 무림인들의 힘이 필요했다.

문제는 역모사건인데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었다. 짙은 안갯속에서 방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삼천이 다시 찾은 청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약속을 지킬 것이냐?”

“물론, 자네는 공식적으로 죽게 될 것이네. 그 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야. 그리고 가족을 구해주겠네.”

청운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삼천의 두 눈에 작은 희망이 일렁였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체념한 듯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어려울 것이다. 이미 계획이 들켜서 사로잡힌 순간 그들은 꼬리를 자르고 깊숙이 숨었을 것이다.”

혁련휘로 역용한 사실이 발각당했다. 놈들이 삼천과 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문제는 사로잡힌 삼천이었다. 그가 혹 배신한다면 여러 가지 비밀이 누설될 것이다.

전전긍긍하며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청운은 삼천의 두 눈에 여전히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아직도 기대감이 남아 있었다.

“내가 어떻게 혁련장과 자룡궁을 무너트렸는지 봤지 않나. 영풍장을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 지켜봐 놓고 나를 못 믿는 것인가?”

“하긴 어디에 숨든 귀신같이 찾아왔지.”

삼천은 그동안 청운을 피해서 도망을 쳤었다. 어디에 숨어도 청운이 찾아왔다.

귀신같은 그의 능력이라면 이번 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삼천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자네를 믿지.”

“잘 생각했네. 자네를 버린 그들에게 그 대가를 받아내도록 하지.”

마침내 청운은 삼천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미 버려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은 청운이라는 희망을 잡는 일밖에 없었다.

* * *

사흘이 흘렀다.

그동안 황도의 모든 이목이 황제를 기만한 삼천에게 모였다.

삼천이 갇힌 뇌옥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이 들렸다. 갖은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소문이 황도에 퍼졌다.

그러기를 여러 날, 황제가 삼천을 공개 처형한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결국, 이틀이 흐르고 굳게 닫힌 뇌옥 문이 열렸다.

간수들에 의해서 시체나 다름없는 죄인이 끌려 나왔다.

축 처진 채 질질 바닥을 끌려 나온 사내의 모습은 처참했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인두로 지졌는지 흉측하게 짓이겨져 있었다.

죄인은 황도 광장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나무로 만든 처형대가 세워져 있었고, 수백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구경할 수 있게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죄목이 공표되었다.

“……이에 죄인을 교수형에 처한다!”

무릎 꿇린 삼천은 간수들에 의해서 목에 줄이 감겼다.

죄목을 공표한 젊은 관리가 죽음을 앞에 둔 삼천에게 물었다.

“정녕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말이냐?”

“크크크, 어서 죽여라. 내 입에서 아무것도,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지독한 놈 같으니라고.”

삼천은 얼마나 고문을 당한 것인지 몸은 망가졌고,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그가 삼천이라고 믿지 못할 만큼 엉망이었다.

“퉤! 어서 죽이란 말이다!”

삼천은 관리에게 침을 뱉으며 악을 썼다.

다 죽어가는 그가 어디서 힘이 났는지 쩌렁쩌렁 울렸다.

관리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이, 이놈이!”

삼천이 뱉은 피가 섞인 침이 관리의 옷자락에 묻어 있었다.

“오냐! 그렇게 빨리 죽고 싶다면 그 소원 들어주마. 집행하라!”

촤라락! 팽!

삼천의 목에 걸린 줄을 간수들이 잡아당겼다. 교수대로 끌려 올라간 삼천은 발버둥을 쳤다.

비명 한마디 흘리지 못하고 높은 교수대의 나무에 대롱대롱 달렸다.

버둥거리던 삼천이 컥컥거리더니 잠시 후 축 늘어졌다.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이 집행되었고 모두가 삼천의 죽음을 확인했다.

관리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외쳤다.

“퉤! 이 빌어먹을 놈이 죽거든 끌어내려서 목을 치고 장대에 걸어서 본보기로 삼아라!”

“예! 나리.”

“아! 그리고 저자의 몸뚱어리도 천참만륙(千斬萬戮)을 내서 개먹이로 던져줘라!”

관리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자신의 옷자락에 묻은 침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냈다. 그러고는 휘적거리며 병사들과 함께 황궁으로 몸을 돌렸다.

관리가 돌아가고 몇몇 병사만이 처형대를 지켰다.

사람들도 흥미가 떨어졌는지 하나둘 돌아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줄이 풀리며 삼천을 끌어 내렸다.

곁에서 대기하던 의원이 삼천이 죽었는지 확인한 후 죽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내 수레에 실려서 안으로 옮겨졌다.

그날 사람들이 오가는 성문에 머리가 걸린 장대가 새워졌다.

* * *

십 장이 넘을 만큼 넓은 석실을 횃불이 밝히고 있었다.

조금은 어두운 석실의 한쪽에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탁자를 두고 두 사내가 마주했다.

잘생긴 얼굴의 젊은 사내와 머리를 산발한 죄수복을 입은 괴인이었다.

젊은 사내는 청운이다. 그는 괴인에게 스스럼없이 물었다.

“고생했네. 목은 괜찮은가?”

“조금만 늦었어도 들킬 뻔했어. 그리고 의원 놈이 침을 어찌나 찌르던지, 당장 일어나서 일장에 쳐 죽이려던 걸 겨우 참았어.”

뜻밖에도 괴인의 목소리는 낮에 교수형을 당한 삼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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