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06화 (106/257)

# 106

106화

뜻밖의 결과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역모에 관련된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는 다른 자들처럼 보통 능지처참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팽형이 선고되었다.

팽형은 큰 가마솥에 죄인을 삶아 죽이는 형벌이다.

한고조 유방에게 미움받은 학사들이 많이 받았다는 형벌이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다가 이번에 다시 등장했다.

혁련휘가 학사 출신이고 청운과 그의 아버지 역시 학사였기에 고심 끝에 내려진 형벌이었다.

“형을 집행하라!”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황궁에 들어온 지 열흘 만에 결정이 났고 결정남과 동시에 형을 바로 집행하라는 황명이 내려졌다.

모두가 황제의 불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무림인들이 지켜준다지만 자칫 경비가 뚫릴 수 있었다.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던 황제는 더 기다리지 못했다. 선고와 함께 형을 바로 집행해서 혁련휘를 구하려는 자들의 계략을 원천 봉쇄했다.

청운은 형을 바로 집행한다는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결국 이렇게 되었군.’

조금은 예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황제를 안심시키려고 천하제일검까지 어렵게 모셔왔다.

최대한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놈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반대가 있을까 봐서 선고와 집행을 동시에 선포했다.

못내 아쉬운 건 놈들의 새로운 꼬리를 잡지 못한 일이다.

‘최소한 일이 틀어져도 놈들의 힘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천하제일검이 버티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놈들은 전력을 투입할 것이다. 혁련휘를 꼭 구해야 한다면 무리를 할 것이다.

그럼 숨겨둔 힘까지 모두 내보이는 한이 있어도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황제의 변덕에 틀어지고 말았다.

툭.

이때 누군가 청운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청운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보고 있는 인물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천뇌님.”

그곳에는 제갈신기가 서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아쉬운가 보군. 놈들이 습격하길 바란 눈치야.”

“아시고 계셨습니까?”

“하하하. 당연한 것 아닌가. 천하제일검 목유자 님께서 계시니 놈들을 끌어들이고 싶었겠지. 다른 이들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는 고수들이지. 이렇게 모이기도 힘든 고수들이 잔뜩 있는데 나도 아쉽군. 아참! 자네도 한 칼 하지?”

제갈신기는 천하제일뇌라 불리는 인물답게 청운의 계략을 꿰뚫고 있었다.

“원래 모사는 아군부터 속이는 법이지. 자네가 요란하게 방어준비를 할 때부터 예상했다네.”

제갈신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인물도 있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부분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후후, 진무사는 잘 모르겠지만 무림맹에서 예전부터 신비세력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었네. 몇몇 사건이 오리무중이었거든. 그런데 이제 보니 자네가 말하는 신비세력과 연관이 있는 것 같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실체를 잡지 못하셨을 것 같은데요.”

수백 년간 신비세력이 꼬리를 밟히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단지 무언가 이상하지만 콕 찍어서 말할 수 없는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미제로 남았을 것이다.

“맞네. 점조직으로 된 자들이다 보니 하나를 잡으면 그게 다였네. 분명히 무언가 다음이 있어야 하는데 딱 파악한 부분에서 더 진전이 없었지.”

수백 년 전부터 무림에서 활동한 자들이라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룡궁처럼 모두가 모르는 사이에 신비세력의 일을 돕는 자도 있을 것이고.

제갈신기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형이 집행되고 있는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운 역시 그를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 장작이 쌓이고 그 위에 커다란 가마솥이 걸렸다.

물인지 기름인지 모를 물체가 담긴 가마솥 안으로 혁련휘를 밀어 넣었다.

죽음을 눈앞에 뒀으니 두려움에 움츠려들 만도 하건만 혁련휘는 저항하지 않았다.

순간 청운의 두 눈에서 불이 번쩍였다.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그의 표정이 거슬렸다.

“어?”

무언가 이상했다.

청운의 놀란 음성에 제갈신기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이상합니다. 제가 아는 혁련휘는 저렇게 초연한 인물이 아닙니다.”

제갈신기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솥 안에 들어가 있는 혁련휘를 보았다.

“마치 해탈한 고승 같군.”

초연한 모습은 숭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깊은 학식을 가진 학사 중에는 득도한 고승 못지않은 깨달음을 지닌 인물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 인물들이다.

“예, 하지만, 제가 아는 휘는 겁이 많은 녀석입니다.”

“허, 아무래도 일이 생긴 것 같군. 확인해봐야겠어.”

제갈신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앞으로 나아갔다.

청운은 가볍게 바닥을 찼다.

팟.

허공으로 날아올라 곧장 가마솥 가장자리에 내려섰다.

척.

청운은 물끄러미 혁련휘를 보았다. 혁련휘도 청운을 올려다보았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미 가마솥 아래 장작에는 불씨가 붙은 상태였다.

조금씩 불길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청운은 신경 쓰지 않고 혁련휘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느냐?”

“…….”

혁련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청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했다.

“한 가지만 말한다면 살아남은 식솔들을 책임지고 살려주마.”

“…….”

“삼 년 전 일이다. 그때 내가 쓰지도 않은 글씨가 개봉에 퍼진 적이 있었지. 떡하니 내 낙관까지 찍혀서.”

“…….”

“알겠지만 그때 곤욕을 치렀다. 그때 퍼진 글씨를 아직도 수거하지 못했다. 빨리 수거해야 내 명성에 흠이 생기지 않는단 말이야. 그러려면 사들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거 네놈이 한 일이냐? 아니면 종수나 필승이냐?”

종수와 필승 역시 청운과 동문수학한 인물이다. 혁련휘 부하처럼 찰싹 붙어서 궂은일을 해주던 수족이다. 틀림없이 그들을 시켜서 일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청운의 물음에도 혁련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시선도 아래로 돌린 상태다.

청운은 그런 혁련휘를 보며 다시 말했다.

“그 사실만 알려주면 살려줄 것이다. 사실 나는 네놈이 죽건 살건 관심 없다. 이미 너와 나의 싸움은 내가 삼원이 되는 순간 끝났으니까. 나는 승리했고 네놈은 패배했다.”

“…….”

“혁련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 예전과 같이 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살아남는다면 회시에 합격한 네놈이 전시를 보고 쓰러진 가문을 다시 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네놈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 신비세력? 나와 무슨 상관이더냐? 그건 네놈이 알아서 하고 나는 가짜 글씨만 수거하면 된다.”

“…….”

묵묵부답.

혁련휘의 시종일관 같은 태도에 청운은 피식 웃음 지었다.

부드럽던 청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청운은 태화전 위에서 내려다보는 황제를 향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황상, 확인할 것이 있사옵니다. 형을 잠시만 늦춰주셨으면 하옵니다.”

청운의 난데없는 난입에 지켜보던 황제는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청운은 황제가 청을 수락하자 아래를 내려다보며 혁련휘를 들어 올렸다.

촤아!

반쯤 물에 잠겨 있던 혁련휘를 들어 올린 혁련휘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서 말했다.

“네놈은 누구냐?”

“…….”

시종일관 초탈한 모습이던 혁련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모습에 청운은 확신했다.

“누구보다 휘를 잘 알지. 세상에서 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라고 자부한다. 후후.”

청운은 혁련휘의 몸을 살폈다. 내공이 금제되어 있었다. 어디에도 내공의 흐름은 보이지 않았다.

우웅.

청운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혁련휘의 몸에 내공을 흘려 넣었다.

단전으로 청운의 내공이 천천히 흘러 들어가자 혁련휘가 부르르 몸을 털었다.

혁련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하지 말라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우우우웅.

청운은 조금 더 내공을 흘려 넣었다.

부르르.

혁련휘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세차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변화가 생겼다.

으드득.

꽈드득.

뼈마디가 뒤틀리는 소리였다. 여기에 얼굴 근육이 꿀렁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후후.”

청운은 가볍게 실소를 흘렸다.

눈앞에 혁련휘가 아닌 다른 자가 있었다.

무공 사부였다.

삼천이라 불렸던 무공 사부가 혁련휘를 대신해서 청운에게 잡혀 있었다.

“오랜만이군. 삼천.”

“큭, 결국, 걸렸는가? 완벽했다고 생각했거늘.”

삼천은 체념한 듯 앓은 소리를 냈다. 그런 그를 보며 청운은 말했다.

“대단한 역용술이야.”

청운도 천면만화신공이라는 역용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삼천이 사용한 역용술이 더 뛰어나서 자신도 못 알아볼 뻔했다.

단지 목소리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꼬리가 밟힌 것이다.

청운은 무공 사부를 다시 솥에 던져 넣고는 황제가 있는 태화전으로 몸을 날렸다.

기단 위에 내려선 청운은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말했다.

“황상, 놈은 가짜이옵니다.”

황궁이 발칵 뒤집혔다.

역모의 주범인 혁련휘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다른 이들을 모두 조사했지만 혁련휘는 발견되지 않았다.

혁련휘가 갇혀 있던 뇌옥으로 달려갔다.

뇌옥은 변화가 없었다. 혹시 놈들이 습격이라도 하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뇌옥 안을 살폈다. 모든 죄수에게 내공을 흘려 넣어서 역용을 한 자가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어디에도 역용한 자는 보이지 않았다.

혁련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상함을 느낀 청운은 간수장에게 물었다.

“혹, 며칠 안에 이곳에서 나간 죄수가 있느냐?”

“예, 제법 많습니다.”

간수장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놈이 이곳에 없는 이유를.

청운은 서둘러 그들의 행방을 물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느냐?”

“석방된 자는 없사옵고, 황도 동편 뇌옥으로 보내졌습니다.”

“동편 뇌옥으로 그들을 왜 보낸 것이냐?”

“연락이 왔습니다. 역모 사건과 관련된 자와 일반 죄수를 함께 둘 수 없다고 다른 곳으로 이감시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청운은 간수장의 말에 누군가 개입한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혹, 누구의 명령이었느냐?”

“형부 우시랑께서 직접 오셔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형부의 우(右)시랑(侍郞)은 육부의 하나인 형부의 부수장이다. 그가 자신의 명령도 없이 움직였다면 분명히 혁련휘와 관련자들을 빼냈을 것이 분명했다.

청운은 함께 온 금의위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형부 우시랑을 잡아들여라! 동편 뇌옥으로 사람을 보내서 누구도 뇌옥에 들락거리지 못하게 하라!”

“존명!”

금의위가 달려 나갔다.

청운 역시 금의위를 거느리고 동편 뇌옥을 살폈다.

많은 죄수가 있었지만 어디에도 혁련휘와 그 일당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우시랑도 사라진 뒤였다. 이미 사흘 전에 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황도에 있는 그의 집은 이미 다른 자의 손에 넘어간 뒤였고 어디에도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이리되는구나.”

불안했던 마음이 현실이 되었다.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생각지 못한 틈을 파고들어서 귀신같이 놈을 구해갔다.

청운은 힘없이 동부 뇌옥을 빠져나왔다.

청운은 곧장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황제는 전후 사실을 알고 대노했다.

“일을 어떻게 처리하길래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인가!”

“황공하옵니다.”

청운은 처음으로 황제에게 호통을 들었다.

황제는 몇 날 며칠을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원흉을 눈앞에서 놓쳤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눈앞에 청운 말고 다른 이가 있었다 할지라도 황제는 똑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꼴 보기 싫으니 썩 물러가라!”

황제의 명령에 청운은 대전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금의위로 돌아간 그는 금의위 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개봉에 지급으로 연락을 넣어라. 혁련장을 지키는 자들에게 조심하라 이르고, 위지휘사와 개방에 도움을 청하라.”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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