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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04화 (104/257)

# 104

104화

청운이 생각을 정리할 때, 황제 역시 생각을 정리했는지 입을 열었다.

“앵속 문제와 백가장 문제는 삼원의 뜻대로 처리하겠다.”

“황공하옵니다.”

두 가지 일은 무사히 처리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한 가지였다.

청운은 가장 중요한 신비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황제의 표정이 경악과 불안감으로 물들었다.

“신비세력이라…. 삼원, 그자들이 그토록 위험한 자들이더냐?”

“그러하옵니다. 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위험한 자들이옵니다.”

“허어, 그자들이 그렇게 대단한 자들이라니. 그래, 놈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느냐?”

“황상,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황공하옵게도 놈들에 대한 꼬리만 잡았을 뿐 몸통과 머리를 잡지 못하였사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청운에게 내려진 황명은 혁련휘를 잡아들이라는 것이었다.

황제는 낮에 행한 추국을 떠올리더니 청운에게 물었다.

“혁련휘가 원흉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말은 확실한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황상, 역적 혁련휘를 구하려는 신비세력의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사옵니다. 이번 상구에서 왜적의 침입 역시 그들이 획책한 일이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상구에 출연한 왜구 문제는 장계로 올라온 상태였다. 관심 있게 보고 있었고 토벌이 거의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하온데 황상,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혁련휘를 구하기 위한 움직임이 황궁에서도 있을지 모르옵니다.”

“머, 뭐라?”

“황상, 경계를 강화하고 고수를 은밀히 배치해놓지 않으면 천추의 한을 남길 수도 있사옵니다.”

청운은 강수를 뒀다.

역대로 모든 황제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말이 역모였다.

아니나 다를까, 청운의 말에 황제가 놀라서 다그치듯 물었다.

“설마… 황궁 안까지 그놈들의 마수가 뻗어 있다는 말이냐?”

“황공하옵게도 신이 판단하기에는 그러하옵니다.”

청운의 대답에 황제가 흠칫 몸을 떨었다.

역도가 황궁에 있다면 자신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해하는 황제를 보며 청운이 빠르게 말했다.

“황상, 팔십만 금군은 먼 곳에 있고, 집단전에 특화된 자들이옵니다. 그들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사옵니다.”

청운의 말에 황제의 안색이 굳어졌다.

“대책은 있느냐? 역도들을 상대할 대책 말이다.”

“예, 황상, 먼저 고수가 필요하옵니다. 황궁무고를 개방하시고 동창과 금의위의 무공을 강화해야 하옵니다.”

“어느 세월에 무공을 익힌단 말이냐? 당장 놈들이 쳐들어온다면 어찌한단 말이냐?”

황제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비급만으로 고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과 고수가 되려면 오랜 세월 수련해야 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황궁무고의 개방은 미래를 위한 포석이옵고, 당장은 무림인들을 활용하시옵소서.”

“무림인? 그들이라면 이미 많은 숫자가 황궁에 들어와 있다. 그들만으로 안 된단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훌륭한 실력을 지닌 자들도 많겠지만, 지금 있는 자들만으로는 신비세력을 막기에 부족하옵니다. 신 역시 그들 일부를 상대하면서 목숨을 걸어야 했사옵니다.”

황제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미 보고를 통해서 청운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신과 같은 무력을 지녔다는 말에 든든했는데, 그마저도 놈들에게 힘들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더 깊어졌다.

그런 황제의 표정 변화에 청운은 활로를 알려주었다.

“황상, 무림에는 수많은 세력이 있사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세력은 무림맹과 사도맹, 그리고 마교이옵니다.”

“짐도 그들에 대해서는 들어보았다. 그런데 사도맹이나 마교는 흉악한 놈들 아니냐?”

“맞사옵니다. 그러니 일단 무림맹과 정파 고수들만 불러들이시고, 사도맹과 마교는 가까이 하지 않되 꼭 필요할 경우만 쓰시옵소서.”

“흐으음. 그런데 무림맹에서 고수들을 보내줄까?”

“황궁무고에 들어갔을 때 무림맹에 속한 정파의 무공비급이 있는 것을 봤사옵니다. 비급이 진본인 것으로 보아 본산에는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무공의 필사본을 내준다 하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황제는 청운의 말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러면 올지도 모르겠구나.”

그때쯤 청운이 말했다.

“하온데… 조금 전 아뢴 무림맹이나 사도맹, 마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세력이 한 군데 더 있사옵니다.”

“그래? 그곳이 어디더냐?”

황제는 궁금함에 고개를 앞으로 죽 빼냈다.

청운은 황제의 궁금증이 극에 달할 때 입을 열었다.

“강서성 백운산 자락에 운성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자리한 강서백가이옵니다.”

“강서백가? 그들이 누구더냐?”

“조금 전 신비세력을 상대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백가장이옵니다.”

“뭐라? 강서백가가 소흥을 피로 물들인 그 백가장이라고?”

황제는 깜짝 놀라며 청운에게 되물었다.

청운은 기대감에 부픈 황제를 보며 백가장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주었다.

“그러하옵니다. 황상, 백가장은 고금제일이이라 불리던 자의 후예입니다. 선조의 유지 때문에 강서성을 벗어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이 웅크린 날개를 펼친다면 천하가 숨죽일 것이옵니다.”

“하하하. 역시 삼원이로구나. 짐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버리다니.”

황제는 언제 근심 걱정을 했냐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었다.

“황상, 송구하오나 강서백가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사옵니다.”

“무슨 말이더냐?”

“조금 전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선조의 유지 때문에 강서성을 넘지 않을 것이옵니다.”

“아참 그랬지. 아니지, 절강성 소흥을 피로 물들였다고 하지 않았더냐?”

황제는 소흥혈사를 떠올리고는 청운을 보았다. 청운은 읍하며 황제에게 말했다.

“맞사옵니다. 그러나 어린 혈족의 죽음 때문에 벌어진 이례적인 일이옵니다.”

“끄응, 삼원, 방법이 없겠는가?”

“있사옵니다.”

“하하하. 역시 삼원이로구나. 그래, 그 답이 무엇이더냐?”

“예, 그 방법은…….”

청운은 황제에게 백가장을 끌어들일 여러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황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호, 좋은 생각이로구나.”

“신이 알려드린 방안 중 꼭 한 가지는 성공하셔야 하옵니다. 만일 모든 방법이 틀어진다면 다른 방법도 있으니 너무 근심하시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하하하. 알겠다. 내 삼원을 믿겠다.”

그렇게 황제와 청운의 대화는 이어졌다.

* * *

황궁 후원에 있는 어화원은 황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다.

어화원 한쪽에는 석조로 지어진 이 층 누각이 있다.

누각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청운이었다.

어화원은 황제와 그의 가족들을 위한 정원이었는데, 특별히 청운에게는 이용이 허가된 상태였다.

청운이 주위 경관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려 다가오는 이들을 보았다.

환관들이었다. 선두에 다가오는 자가 눈에 익었다.

‘조엄 태감이로군.’

지난번 자룡궁에 파견 나온 감찰관이었다.

서로 주고받은 것이 있기에 둘은 반갑게 서로를 맞이했다.

“조 태감님, 영전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감축드립니다.”

“진무사, 고맙소.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다니 반갑구려.”

쥐상의 조엄 태감은 자룡궁 일로 품계가 두 단계 올랐다.

정사품인 도찰원 좌첨어사에서 정삼품의 우부도어사에 올랐다.

자룡궁에서 그의 활약은 청운이 만들어 주었고, 황제에게 올리는 장계에도 그의 활약을 좋게 써주었으니 영전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조엄은 잘 알기에 이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다.

“진무사. 다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하하, 비밀인데 벌써 알고 계시군요.”

황제와 이야기를 마친 청운은 무림인들이 황궁으로 오기 전까지 황궁에서 상주하기로 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고 불순한 무리로부터 황실과 황궁에 보호하는 임무가 내려졌다.

비밀이었지만 이미 황궁에 소문이 파다했다.

“진무사, 그보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는데 어쩐 일이시오?”

“내 긴히 청할 일이 있어서 이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청하실 일이라면 혹, 정 소감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조엄은 이미 예상한 일인지 넌지시 물었다. 청운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상하고 계셨군요. 혹, 이번 일로 정원 태감께서 불편해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화를 내시기는 하셨소이다.”

“하하하. 오해라고 해도 그러시는구려. 내 그래서 은밀히 부르지 않고 이리 넓은 곳에서 보자고 한 것입니다.”

지난번 일로 정원 태감은 청운을 좋게 보지 않았다. 여전히 청운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동창의 수장인 그라 할지라도 방법이 없었다.

조엄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는 청운을 보며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정 소감은 당장 움직일 수 없소이다.”

“교육이 아직 안 끝난 것입니까?”

“그렇소. 최소 일 년을 받아야 할 교육이오. 아무래도 올해는 보기 어려울 듯싶소이다.”

일 년이 되려면 아직 서너 달은 더 지나야 한다.

청운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혹시 조엄 태감의 힘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 이리 청탁을 한 것이다.

“태감, 정 소감의 소식은 알 수 있겠소?”

“잘 지내고 있소. 함께 교육받는 아이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소. 덕분에 위에서 정 소감에게 거는 기대가 크지요.”

청운은 걱정했는데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태감, 그래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아이를 돌봐주셨으면 합니다.”

“이를 말이겠소? 내 그렇지 않아도 그 아이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뒤를 봐주고 있소. 진무사께서는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청운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잘 지낸다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쪽에 놓아놓은 보따리를 들어서 건넸다.

“이건 제가 준비한 것입니다.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흠, 원래는 안 되지만 제가 힘써 보겠소이다.”

청운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조엄에게 건네며 전음을 보냈다.

-이건 태감께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조엄은 화들짝 놀라며 청운이 건넨 물건을 서둘러 품속에 넣었다. 청운이 무엇을 건넨 것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내 잘 전할 것이니 진무사께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믿고 있겠습니다. 하하하.”

청운은 조엄에게도 거마비를 넉넉하게 챙겨주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도움을 받아서 영전했다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고위직에 오른 조엄이기에 대륙전장에서 발행한 은자 만 냥짜리 전표가 들어 있었다.

조엄과의 만남이 끝나고 청운은 자신에게 배정된 숙소로 발걸음 했다.

그런 조엄과 청운의 만남을 수많은 눈이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 황궁에는 청운에 관한 소문이 다시 퍼졌다.

청운이 어린 환관을 못 잊어서 연서를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소문이 어떻게 난 것인지 모르지만, 청운의 수발을 드는 어린 환관은 청운이 자신을 보면 경기를 일으키듯이 깜짝깜짝 놀랐다.

청운은 이상함을 느끼고 어린 환관을 방으로 불렀다.

“내관, 이리 와봐라.”

“어, 어찌 이러시옵니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아, 아무 일도 없었사옵니다.”

어린 환관은 몸을 웅크리며 잘못한 아이 같은 모습을 했다.

그 모습에 청운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 소감은 그런 청운의 측은한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힘겹게 말을 했다.

“소인에게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응? 무슨 말이야?”

청운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의아해했다.

아무래도 아이를 달래서 자초지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흠, 이리 가까이 오거라.”

“니, 니에, 흑흑.”

“응? 어찌 우는 것이냐?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구나.”

청운은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 환관이 누군가의 괴롭힘을 받고 있다고 확신했다. 자신 역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갖은 질시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던가.

“너를 괴롭히는 자가 있느냐? 있다면 말해라, 내 혼을 내줄 것이니.”

청운은 측은한 마음에 환관의 손을 덥석 잡았다.

환관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으악! 아니 되옵니다.”

“쯧쯧, 내가 있으니 걱정 말거라.”

“엉엉엉.”

“어허, 울지 말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이야기해 봐라.”

청운은 우는 어린 환관을 다독이며 달랬다.

어린것이 얼마나 서러웠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겠는가.

그때 문이 세차게 열렸다.

덜컹!

부서질 듯이 문을 활짝 연 사람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정원 태감이었다.

그는 청운과 환관을 보더니 버럭, 노성을 내질렀다.

“이, 이노오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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