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103화 (103/257)

# 103

103화

요희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묘수선생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노인과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 구역의 전력이 너무 약화되었습니다. 이대로 대업을 이룬다고 해도 우리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모두 알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대업이 이뤄져도 문제가 많았다. 전과에 따라서 포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요희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묘수선생을 쏘아붙였다.

“선생께서 나이를 드시더니 노망이라도 드셨나요? 그 요물을 사용하자는 말을 하다니.”

“뭐라?”

“흥! 혈룡단을 썼다가는 모두 폐인이 되고 말 거예요. 이를 어찌 처리할 생각이시죠?”

“쯧쯧, 젊은 것들 아랫도리만 탐하더니 내가 누군지 잊은 것이냐?”

유약해 보이던 묘수선생의 몸에서 강한 기세가 일었다.

그 기세에 요희가 움찔했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이 왜 묘수선생인지.

요희가 아무 말 없이 한발 물러서자, 묘수선생은 기세를 누그러트리고 모두를 보며 말했다.

“부작용을 말하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말게. 개량을 거듭한 결과 열에 셋은 혈기를 이겨내더군.”

묘수선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정말인가?”

“선생, 몇 알까지 괜찮은 거요?”

묘수선생은 그들의 기대에 찬 질문을 받자 턱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세 알까지입니다.”

“세 알이면 삼 갑자 아닌가? 하하하.”

“선생, 정녕 세 알까지는 복용해도 괜찮단 말입니까?”

“그렇소.”

싸늘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훈훈하게 변했다.

과거 이들은 혈룡단 제조법을 입수하고 고수들을 찍어냈다.

효과도 좋았다. 한 알에 일 갑자의 내공을 가져다주는 영단은 소림대환단에 비견되었다.

만들기가 까다롭기는 했지만, 갖은 노력 끝에 제조할 수 있었다.

혈룡단을 복용한 자들은 짧은 기간에 공력이 높아졌다.

곧 천하를 손에 넣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런데 부작용을 생각지 못 했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략 일 년이 흐르자 혈룡단을 복용한 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심법수련을 하는데 잠복해 있던 혈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혈기는 너무나 거칠고 강력해서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운공을 하던 자들이 주화입마에 들었다.

결국 그들이 꿈꿔왔던 대업은 일장춘몽이 되었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지나친 욕심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차라리 혈룡단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천하를 손에 쥐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마침내 혈룡단의 부작용을 없앴다고 한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량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지금도 개량 중입니다. 더욱이 혈기를 억제할 수 있는 심법의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현재 연구 중에 있습니다.”

“선생, 심법 연구가 끝나면 어찌 되는 것이오?”

“혈룡단을 누구나 복용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하하하. 큰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떨어진 위상이 다시 오를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모인 이들은 언제 다퉜냐는 듯이 기뻐했다.

그만큼 혈룡단이 주는 기쁨이 컸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여전히 눈이 차가웠다.

얼굴이 웃고 있어서, 그의 두 눈 속에 담긴 서늘함을 발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황제가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곳은 보화전이다.

보화전 내부의 옥좌에는 곤룡포를 입은 황제가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제의 좌우에는 십여 명의 인물들이 보좌하듯 늘어서 있었고, 황제의 명을 완수하고 돌아온 청운이 중앙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신비세력의 눈을 피해서 혁련휘와 혁련종도 등 역모에 관련된 자들을 무사히 호송한 것이다.

옥좌에 앉아 있는 황제는 청운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죄인을 호송해 오는데 대륙상단을 이용했다고?”

“그러하옵니다. 신비세력이 죄인 혁련휘를 구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남성 상구에서 왜구까지 끌어들인 놈들입니다. 정식으로 호송한다면 황제 폐하의 병사들이 상할 것 같아서 대륙상단을 활용한 호송작전을 펼쳤습니다.”

황제는 기분이 좋은지 청운에게 다시 물었다.

“하하하. 역시 삼원이로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

“대륙상단은 하루에도 수백 대의 물품이 오가는 중원 삼대 상단 중 한 곳입니다. 그들의 마차를 이용하면 놈들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역시 삼원이로구나.”

“황공하옵니다. 그저 작은 꾀에 지나지 않는 일이옵니다.”

황제는 청운의 말에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남아 있었다.

황제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청운에게 물었다.

“삼원은 신비세력이 누구인지 파악했느냐?”

“아직 파악하지 못했사옵니다.”

“허,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황상,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비록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진 못했사옵니다만,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얻었사옵니다.”

“오, 그래! 그 단서가 무엇이더냐?”

황제의 실망하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러나 청운이 이 자리에서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자신을 보고 있는 인물들이 너무 많았다. 저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황상, 이 문제는 독대를 했으면 하옵니다.”

“독대?”

청운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이내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도 대신들과 사관들이 보였다.

또 환관과 궁녀들이 보였다. 족히 수십 개가 넘는 눈과 귀였다.

황제는 청운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는 윤허했다.

“허허, 삼원이 그리 말한다면 무언가 연유가 있겠지. 좋다. 그 청을 윤허하노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에게 보고를 마친 청운은 곧장 독대하지 못하고 환관의 안내를 받아서 내전으로 안내되었다.

황궁은 건청궁을 중심으로 황제와 그의 가족들이 기거하는 내전과 업무를 보는 외전으로 나뉜다.

청운은 건청궁 옆에 있는 소인전을 지나서 어디론가 안내되었다. 넓은 방에 침상과 탁자가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서책이 꽂혀 있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있자 어린 환관이 차를 내왔다.

“대인, 피를 맑게 한다는 용정차이옵니다.”

“고맙구나.”

청운은 어린 환관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 환관의 얼굴을 보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 정 내관이 있었지.”

청운은 무릎을 탁 치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던 정 소감을 떠올렸다.

‘동창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했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자신이 헤어지면서 황궁무고의 비급을 건넸었다. 주석을 달아서 혼자서도 익힐 수 있게 만들었는데 한편으로 걱정되었다.

그런 청운의 마음을 아는지 가만히 있던 혈황이 한마디 했다.

[걱정되느냐?]

-궁금하긴 합니다.

[걱정할 것 없다. 네가 없을 때도 용담호혈이라는 황궁에서 잘만 살던 아이다.]

혈황의 말대로 정 소감은 윗선에 귀염을 받았었다.

동창에 들어간 것도 윗선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니 괜한 걱정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왔으니 기회가 되면 얼굴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차를 놓고 나가는 아이를 불렀다.

“내관, 혹 내관 중 한 분을 볼 수 있겠는가?”

“누구를 말씀하시는지요?”

“동창과 관련된 분이거나, 혹은 십이태감님 중 한 분께 연통을 넣어줬으면 하네.”

“알겠사옵니다.”

어린 환관이 나가자, 청운은 용정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 *

저녁이 되어서야 황제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황제는 그동안 혁련휘와 그에 관련된 역도들을 심문하고 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황제를 맞이한 청운은 간략하게 몇 가지 사안을 아뢰었다.

첫 번째는 자룡궁 때문에 멸문지화를 당하거나 재산을 빼앗긴 자들에 관한 문제였다.

이미 도찰원 감찰관의 장계를 읽어본 황제이기에 긴 이야기는 필요치 않았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청운에게 말했다.

“그럼 백풍장 사람들은 죄가 없단 말이더냐?”

“신의 조사에 의하면 그렇사옵니다. 그들은 현재 여러 곳에 나뉘어서 노역에 동원되거나 아직도 뇌옥에 갇혀 있는 자들도 있다고 하옵니다.”

“흠. 그렇다면 풀어줘야지. 그들도 짐의 백성들이 아니더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첫 번째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

청운은 두 번째로 앵속에 관한 문제를 꺼내들었다.

먼저 앵속의 해악에 대해 설명하고, 항주와 소흥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상히 아뢰었다.

황제는 신비세력의 사주를 받은 하오문 이야기에 분노를 드러냈다.

“이런 고얀 것들이 있나. 감히 짐의 백성을…!”

청운은 백가장과 관련된 일도 살짝 끼워 넣어서 말했다.

그들이 왜 소흥을 피로 물들였는지.

이야기를 다 들은 황제는 청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백가장은 문제가 있구나. 듣자 하니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죽었다고 하던데….”

황제는 청운을 똑바로 직시했다.

청운은 황제의 태도를 보고 그가 이미 소식을 들었다는 걸 알았다.

‘장계를 받으셨군. 소흥 위소에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고, 남경왕부에서 보냈나?’

천하에 무서울 것 없는 황제가 한발 물러서서 고민한다면 남경왕부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좋은 내용이 아니었을 것이다.

‘흠을 잡으려면 백가장의 소흥 혈사뿐이겠지.’

처음부터 우려하던 일이었다. 그래서 백가장을 말렸지 않은가. 그 고집불통인 가문은 자신의 말을 콧등으로 튕겨냈지만.

그나마 그들이 무자비한 살육을 벌이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음에도 청운은 침착하게 황제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황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백가장이 죄 없는 소흥 백성을 죽였다는 장계가 올라왔다. 삼원은 어찌 생각하느냐?”

“신이 그 자리에 있었사옵니다. 백가장이 상대한 자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청운은 황제가 고민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장계가 남경에서 올라왔기 때문이겠지.’

자칫 잘못하면 황제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었다. 더욱이 낮에 있었던 추국으로 인해서 황제가 피로한 상태였다.

청운은 자신을 보고 있는 황제를 보며 그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황상, 백가장이 상대한 자들은 하오문이 아닌 신비세력이옵니다.”

“뭐라? 신비세력? 소흥의 하오문이 아니고?”

“그러하옵니다. 소흥 하오문은 제가 상대했고, 백가장이 상대한 자들은 천하를 혼란에 빠트려서 제국을 손아귀에 쥐려는 신비세력이었사옵니다.”

뜻밖의 말에 황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눕힌 그가 다시 생각에 빠졌다.

청운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황제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왕야의 장계라면 내 이야기보다 더 무게가 쏠린다. 방법은 신비세력을 걸고넘어지는 것뿐.’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흑검문을 통해 소문을 내놓은 상태가 아닌가.

“삼원, 진정 그 말이 사실이렷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사옵니까. 하오문은 신비세력의 하수인입니다.”

“호오, 그래? 그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보아라.”

황제는 흥미가 이는지 깊숙이 묻었던 몸을 등받이에서 떼며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청운은 대향림에서 싸움을 그럴싸하게 꾸며서 이야기했다. 자신의 활약보다 백가장의 활약을 부각시켰다.

상구 위지휘사가 백가장 사람이라는 것도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황제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호, 백가장이 그리 대단한 가문이었단 말이지? 어허, 인재가 없다 한탄만 했거늘. 등잔 밑이 어두웠구나.”

황제의 피로했던 안색에 화색이 돌았다. 당과를 손에 쥔 아이와 같이 기뻐했다.

‘됐다. 황제의 마음이 움직였다.’

자칫 일이 꼬일 뻔했는데 잘 처리될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남경왕부에 들렀어야 했거늘.’

청운은 이왕야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보다 자신이 한 번 봐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거늘.

그랬다면 이번 같은 장계를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되는 대로 남경왕부에 들려서 이 왕야를 뵈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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