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마존-76화 (76/257)

# 76

76화

씨익.

청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군자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자들이 일곱은 되어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은 그도 아는 자였다.

‘무공 사부군. 삼천이라 했던가?’

마침내 쥐새끼처럼 숨어 있던 혁련휘의 무공 사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쾅!

쩌저적!

청운은 갑자기 진각을 밟았다. 그가 밟은 땅이 움푹 들어가며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빠지지직.

청운의 몸 주위로 푸른 뇌기가 휘몰아쳤다.

한 마리 뇌룡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온 자들을 향해서 청운이 뛰어들었다.

뇌기를 머금은 검기가 줄기줄기 퍼져나가며 공간을 지배했다.

청운은 일검에 혼신의 힘을 담아서 공간을 찢어발겼다.

한 마리 거대한 뇌룡이 허공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모두 조심하라!”

누군가의 외침 속에 영풍장의 고수들은 각자의 무공으로 청운과 맞섰다.

초절정을 넘나드는 이들답게 쉬이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뇌기가 문제였다.

청운의 공격을 마주할 때마다 찌릿찌릿한 뇌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 바람에 무공을 원활하게 펼치기가 어려웠다.

영풍장의 고수들은 무시무시한 뇌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가자 좀처럼 청운 근처로 다가오지 못하고 외각에서 견제하기 급급했다.

“물러서지 마라! 놈의 내공이 막강해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내공을 무한정하게 끌어 쓸 수는 없다. 기다리기만 한다면 제풀에 지쳐서 쓰러질 것이다.

“하하하! 버러지 같은 놈들! 두려우냐?”

청운은 광소를 터트리며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영풍장 무사들을 조롱했다.

그 조롱이 먹혀들었는지 한 사내가 이빨을 갈며 청운이 만든 뇌기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쉐에엑.

검에 씌워진 선명한 검사가 청운의 뇌기를 잡아먹으며 영역을 넓혔다.

비릿하게 눈웃음 짓는 사내는 먹이를 찾아 나선 한 마리 늑대와 같았다.

한 명이 뛰어들자 다른 이들도 움직였다.

청운의 뒤쪽과 우측에 있던 사내가 각자의 무기에 내공을 씌우며 접근했다.

그들은 청운의 뇌기를 하나둘 가닥가닥 끊어냈다.

스르륵.

청운의 검이 아래로 서서히 내려갔다. 세 사람이 삼 장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스팟!

푸른 뇌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뇌기에 모두가 의아해할 때, 청운의 몸에서 한 줄기 맑은 기운이 꿈틀거렸다.

그 직후, 무언가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으며 튀어나왔다.

크아아앙!

조금 전까지는 뇌기를 품은 뇌룡의 모습과는 다른 거대한 용이 가까이 접근한 셋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헉!”

“커억”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청운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청색의 거대한 용이 세 사내를 휩쓸고 청운을 따라서 솟구쳤다.

모습을 드러낸 청룡은 청마룡이었다.

구룡마경 중 하나인 전설의 청마룡이 인세에 현신한 것이다.

무시무시한 청룡의 기세에 모두가 경악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헉! 요, 용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청운의 검이 빙그르르 돌며 머리 위로 들렸다. 청운의 움직임에 맞춰서 청룡 역시 허공에서 똬리를 틀었다.

이내 청운이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앙!

청룡이 괴성을 지르며 빗살처럼 빠르게 지상으로 쏘아졌다.

“막아!”

누군가 비명처럼 외쳤다.

아래에서 지켜보던 자들이 각자의 무공으로 청룡을 막아섰다.

파바바방!

콰과과광!

그러나 거대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청룡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곱 중 셋이 쓰러지고 남은 넷 중 두 명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짓뭉개졌다.

파바밧.

청운은 허공을 밟으며 몸을 틀었다.

공력이 급격히 소모되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혁련휘를 당장 잡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미련을 두지 않았다.

“하하하. 다음에 보자!”

영풍장 무인들의 귀를 때리는 음성과 함께 청운의 모습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떠나버린 청운을 뒤로하고 남겨진 영풍장 무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영풍장과 멀리 떨어진 한 장원의 지붕 위에 내려선 청운은 영풍장 쪽을 바라보며 진기를 다스렸다.

공력의 소모가 극심해서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아마 그가 끝까지 싸웠다면 영풍장은 완전히 무너졌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 역시도 중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다.

적이 사방에 널려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은 몸을 아껴야 했다.

가볍게 소주천을 운용한 청운은 영풍장 쪽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혁련휘, 오늘은 운이 좋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네 목에 올가미를 걸어주마.’

그때 혈황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랬느냐? 청마룡을 알아보는 놈이 있으면 골치 아파질지 모른다.]

흥이 올라서 그만 스승님께 얻은 청마룡을 드러냈다.

청운도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 드러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숨기고만 있을 수도 없잖습니까. 뇌신룡과 청마룡, 뭔가 어울리지 않습니까?”

[끄응, 말은…….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혁련휘도 바짝 긴장해서 더 깊숙이 몸을 숨길 것 같다만.]

“아쉽지만 할 수 없지요. 어쨌든 영풍장을 뒤집어 놓았으니 자룡궁의 배후에 있는 신비세력도 가만있지는 못할 겁니다.”

[그건 그렇지. 어쩌면 이미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자룡궁을 무너뜨린 너를 제거하려고 하겠지.]

“진무사인 저를 치려면 황궁과 싸울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놈들이 그걸 걱정했으면 너와 금의위를 죽이려 했겠느냐?]

“하긴 그렇군요.”

피식, 웃은 청운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苏杭)이라 했습니다. 영풍장과 혁련휘에 대한 감시는 개방에 맡기고, 이번 기회에 저랑 항주와 소주 유람이나 가시지요.”

[뭐?]

“제가 갑자기 사라지면 놈들도 당황할 겁니다. 그러면 비집고 들어갈 빈틈을 보이겠지요.”

혁련휘를 끌어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놈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는 못해도 분명한 건 영풍장 안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라지면 놈이 쥐구멍에서 대가리를 내밀지도 몰랐다.

* * *

영풍장은 초상집이 되었다.

암중에서만 활동하던 고수 중 절반을 잃은 것이다.

영풍장은 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활동을 중지했다.

사군자 중 셋도 그날 이후 어디로 갔는지 영풍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자룡궁에 와 있던 강호 정파의 수뇌부들은 영풍장에 사람을 보내 사군자에 대해 추궁했다.

영풍장은 사군자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며 딱 잡아뗐다.

“그 사람들은 잠깐 손님으로 머물던 사람들이었소.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라졌는데, 우리가 그들의 위치를 어찌 안단 말이오?”

강호 정파의 수뇌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영풍장에 사군자가 없으니 더 이상 다그치기도 어정쩡했다.

더구나 영풍장의 무력은 화산파가 전격적으로 공격하고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괜한 일에 휘말려서 자파의 제자가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는 강호 정파의 수뇌부들은 영풍장에 대한 감시만 붙여놓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그렇게 영풍장의 일이 진정되는 동안 청운은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는 항주와 소주를 둘러보고 올 것이네. 자네들은 개봉의 풍운장에 가 있게나.”

수많은 무림고수가 영성으로 달려와서 뇌신룡을 찾으려고 할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자신과 금의위가 공가장에서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걸 들키면 자룡궁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었다.

“영풍장에 대한 감시는 어찌합니까?”

웅천이 묻자, 청운은 준비해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일은 전적으로 개방에 넘걸 거네.”

“그럼 여기는 완전히 비우는 것입니까?”

“추적술에 능한 사람으로 일부만 남겨두게. 역도들이 언제 어떻게 빠져나갈지 모르니까.”

“예, 대인. 그럼 일조만 남기고 나머지는 풍운장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만들 나가보고, 웅 백호만 잠시 남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웅천만 남았다.

청운은 품속에서 봉인된 서찰을 건넸다.

“이 서찰을 황실로 보내게.”

웅천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서찰을 받아 품속에 넣었다.

자신만 불러놓고 전했을 때는 그만큼 은밀하게 처리하라는 뜻.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아야 했다.

◈ ◈ ◈

장강을 끼고 발달한 남경은 고대로부터 여러 왕조의 황도로 사용되었던 유서 깊은 도성이었다.

제국이 황도를 북경으로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남경은 제국의 황도였다.

그런데 봄기운이 밀려드는 어느 날.

남경을 바라보는 장강의 포구에 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 사내는 역용한 청운이었다.

방갓을 깊이 눌러쓴 청운은 강 건너의 고루거각이 즐비한 남경을 바라보았다.

황도에 뒤지지 않는 규모였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황도보다 더 화려했는데, 지금은 황제의 동생인 흥인왕이 지배하고 있었다.

흥인왕은 명군의 기질보다 장수의 기질이 강해서 호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실제 성격은 만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포구에 들어선 청운은 강을 건너기 위해서 도선(渡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선을 타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몰려 있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 앞에서 건장한 사내 서너 명이 돈을 받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병사 두 명이 서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 중 수상한 이들을 잡기 위해서 병사들이 검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뱃삯을 받는 것인 줄 알았는데 통행료라는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닷 푼.”

“예? 어제는 세 푼이었지 않습니까요?”

돈을 받고 있는 사내의 말에 장사치로 보이는 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네놈의 등에 걸린 물건을 봐라. 그 정도 부피면 닷 푼도 더 내야 해.”

“아이고 나리. 어제와 같은 짐입니다요. 그러지 마시고 조금만 깎아주십시오.”

돈을 주고받으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기에 청운은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뱃삯이나 운임을 깎는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장사치는 운이 좋지 않았다.

“안 돼. 통행료 내기 싫으면 돌아가.”

“아이고 나리,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요?”

장사치는 품속에서 얼른 철전 다섯 개를 꺼내서 사내에게 건넸다.

철전 한두 개로 살 수 있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 만두 하나를 사려고 해도 철전 두 개는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적은 돈이라 할지라도 열 번 스무 번 반복이 되다 보면 적지 않은 돈이 된다.

하지만 돈을 받는 자는 그런 장사치의 마음을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았다.

“안 된다잖아.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 때문에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내기 싫으면 썩 꺼져.”

짜증이 났는지 돈을 걷고 있는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닙니다요. 여기 있습니다요.”

장사치는 할 수 없이 닷 푼을 내고 통과했다.

이윽고 앞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청운의 차례가 되었다.

돈을 걷던 사내는 퉁명스럽게 청운에게 말했다.

“닷 푼.”

청운은 말없이 은자 한 냥을 건넸다. 잔돈으로 내고 싶어도 하필 남은 잔돈이 없었다.

사내는 청운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은자를 품속에 쑥 집어넣었다.

“다음.”

청운은 잠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왜?”

“닷 푼이라 하지 않았나?”

청운에게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은전이 아니라 금자라 할지라도 필요하다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청운은 철전 한 개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잘 알기에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검소함이 몸에 밴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그런 청운의 반문이 사내의 신경을 거슬린 듯했다.

“통행료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럼 나는 은자 한 냥짜리인가?”

“그렇지. 방금 닷 푼이라고 한 건 내가 실수한 거고, 한 냥이 맞아.”

청운의 미간이 절로 찡그려졌다.

백주 대낮에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그럼 다시 내놔. 배 안 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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