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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23화 (23/257)

# 23

23화

남궁룡은 이내 고개를 돌려서 청운을 보며 말했다.

“이청운이라 했나? 내 비록 가진 재주는 많지 않지만 대 남궁가의 무공을 조금 익히고 있네. 괜찮다면 나와 한 수 겨루는 것이 어떻겠나?”

뜻밖의 제안이긴 하나, 오대세가의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남궁세가였기에 청운에게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손님을 모신 입장인 진설난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 공자는 제 손님이에요.”

“진 사매. 저자는 화산의 검을 보고 싶다고 했지 않소? 그렇다면 남궁세가의 검도 싫어하지는 않을 거요.”

“남궁 공자, 말씀 가려서 하세요. 저자라니요? 제 손님이에요.”

진설난의 차가운 말에 남궁룡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다고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는 청운이 아직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포권을 취했다.

“이 공자, 미안하네.”

“아닙니다.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청운 역시 기분은 나빴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언뜻 봐도 남궁룡은 자신보다 몇 살 많아 보였다. 이런 일로 굳이 분란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실력을 알아볼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남궁 형. 대련이라면 바라마지 않는 일입니다. 남궁세가의 검법을 견식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운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곧장 용천혈에 진기를 주입하고 한 마리 나비처럼 날아올라서 연못가에 내려앉았다.

한눈에 봐도 뛰어난 경공이었기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무공을 익히고 있었어?”

“우와! 이거 잘못하면 룡 오라버니 창피당할지도 모르겠어요.”

제갈해미의 말에 남궁룡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청운의 실력이 가늠되지 않았다. 방금 청운이 펼친 한 수의 경공술만 놓고 본다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공에서 경공술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스릉.

남궁룡이 검을 뽑아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몸을 날렸다.

청운 곁에 내려선 그는 창궁비연검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진설난이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곁에 있던 강호풍이 막아섰다. 고개를 좌우로 흔든 그가 경공을 펼쳤다.

그는 백의를 펄럭이며 청성파의 경신법인 부운약표(浮雲躍飄)를 펼쳐서 이청운과 남궁룡 사이에 내려섰다.

“내가 심판을 보겠네.”

강호풍은 둘을 돌아보았다.

대련이 될지 생사결이 될지 모를 일이었다. 남궁룡의 상태를 보면 생사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청운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남궁세가를 상대하는데도 여유를 가질 신진고수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는 최악의 순간 자신이 막아설 계획을 세우고 말을 이었다.

“생사결을 하는 게 아니니 살초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네.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안 된다는 점, 명심하게. 이건 서로의 발전을 위한 대련임을 잊지 말고.”

마지막 말은 남궁룡을 보며 다짐하듯이 말했다. 여전히 남궁룡의 두 눈에 맺힌 질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강호풍은 말을 마치고 뒤로 물러섰다.

남궁룡의 두 눈에서 불이 번쩍였다.

청운의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그런 청운의 모습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앗!”

남궁룡이 기합을 넣으면 공격을 시작했다.

청풍일검! 섬전풍운!

일직선으로 세류보를 밟으며 들어간 남궁룡은 청운에게 연격을 날렸다.

차자자장!

뒤로 물러서지 않고 허공으로 피하는 청운을 남궁룡이 따라붙었다.

그러면서 소나무처럼 강하고 바람처럼 빠르다는 송풍검을 연속으로 펼쳤다.

슈슈슈슉!

번쩍이는 검기가 허공을 그물처럼 수놓았다.

순간 장내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런”

“안 돼요!”

남궁룡이 딱히 살초를 펼친 것은 아니지만 허공으로 피한 청운이 피할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청운이 검기에 상처를 입을 판이었다.

팡팡팡!

청운은 비천무영신법을 펼쳐서 허공을 연속으로 밟으며 몸을 틀었다. 그러고는 검기의 그물 속을 노니는 한 마리 잉어처럼 유유히 빠져나왔다.

잔상을 남기며 허공을 밟는 청운의 경공술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척.

청운은 사뿐히 내려앉으며 검을 등 뒤로 돌렸다. 그러고는 검결을 맺으며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

진설란과 제갈해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우뚝 서 있는 청운의 모습은 경건했다.

그러나 상대인 남궁룡의 두 눈에는 청운의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피하기만 할 것이냐?”

으르렁거리는 남궁룡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곁에 있던 혈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남자는 말이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면 안 되는 거다.]

청운은 자세를 바꿨다.

등 뒤로 돌렸던 검을 앞으로 휘두르며 가슴 앞에서 오른쪽으로 펼치듯이 휘둘렀다.

한쪽 팔을 벌린 채 서 있는 자세.

사백년 전 천하제일검이라 불렸던 환우검존의 독문 기수식.

황궁무고에서 발견한 삼대절학 중 하나였다.

청운은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서서히 검에 내공이 주입되자 검신이 파르르 떨렸다.

찌이잉!

검명을 토하며 준비를 알려오는 검.

청운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남궁룡에게 입을 열었다.

“조심하십시오.”

청운은 말과 동시에 곧장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며 수평으로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간단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수많은 검의 이치와 위력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쉐에에엑

거침없이 몰려오는 검기에 남궁룡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위험해!”

“피해요!”

구경하던 이들이 모두 위험을 알렸다.

독사 앞에선 개구리마냥 남궁룡은 움직일 수 없었다.

검기가 남궁룡의 코앞에서 곧장 꺾이더니 허공으로 치솟았다.

“크윽.”

이를 앙다물며 신음을 내뱉는 남궁룡.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들었던 검이 스르르 축 늘어졌다.

‘피, 피할 수 없었어.’

완벽한 자신의 패배.

결코, 피할 수 없는 완벽한 일 초식.

“내가… 내가 졌다.”

열릴 것 같지 않던 남궁룡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녀 앞에서 만큼은 완벽하고 강한 남자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검초가 아니었다.

남궁룡은 입을 꾹 다문 채 축 처진 어깨로 뒤돌아섰다.

모두가 안타까운 눈으로 남궁룡을 바라보았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남궁룡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이거 실망인데요.”

돌아서 걸어가던 남궁룡이 우뚝 멈췄다.

뒤돌아서지도 않고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뭐라 했느냐?”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홱.

남궁룡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를, 나를 놀리는 것이냐?”

남궁룡에게 실망했다고 말한 자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청운이었다.

청운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대련이라면서요.”

“뭐?”

이 자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남궁룡은 언 듯 이해가 안 되었다.

‘대련? 그게 어떻다는 것이냐? 난 이미 패했거늘.’

이미 자신은 패배를 인정했다. 그런데 청운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었다.

패배한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청운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대련에서 승패가 중요한가요? 서로가 발전할 수 있게 여러 번 부딪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려면 이런저런 초식을 겨뤄야 하지 않나요?”

“…….”

남궁룡은 할 말을 잊었다.

청운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은 승패에 연연해서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대련의 기회를 날려버리려 하고 있었다.

청운은 빙긋 웃으며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이렇게 끝내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지요?”

남궁룡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움켜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려왔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남궁룡은 청운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이내 생각을 정리한 그가 일갈했다.

“물론! 이렇게 끝낼 수 없지!”

다시 자세를 잡은 남궁룡은 심호흡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청운을 노려보았다.

처음같이 금방이라도 죽일 듯 청운을 상대한 것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먼저 가지!”

남궁룡이 땅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청운의 오른쪽을 파고들며 연속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채채챙.

청운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남궁룡의 검을 쳐냈다.

조금 전 펼쳤던 무지막지한 검초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궁룡은 청운을 어찌할 수 없었다.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대련 내내 이어졌다.

오를 수 없는 절벽 같은 느낌.

그런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신경을 자극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남궁룡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자존심이 유별나게 강하긴 하나 그 역시 무인이었다. 뛰어난 무공을 견식하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검초를 아낌없이 펼쳤다.

차차차차창!

둘의 대련을 지켜보던 자들은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남궁룡이 누구던가.

대 남궁세가의 차남이며 무림 후기지수 중 오룡에 속할 만큼 무공이 고강했다. 자신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강했다.

그런데 전력을 다한 공격들이 모조리 막히고 있었다. 그것도 삼류 초식 같은 가벼운 동작에 제지당했다.

새삼 청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게 말이 돼?”

“우와!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군요.”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척.

끝날 것 같지 않던 대련은 청운의 검이 남궁룡의 어깨에 걸치며 싱겁게 끝났다.

“졌네.”

남궁룡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런데도 처음과 달리 표정이 편해 보였다.

“후우. 힘들군요.”

청운은 검을 거두며 이마를 훔치는 시늉을 했다.

“역시 남궁세가의 검은 대단합니다. 사정을 봐주지 않으셨다면 일 초식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청운은 포권을 취하며 남궁룡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자세가 어찌나 예의 바른지 남궁룡은 자신도 모르게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누가 봐도 자신의 패배였다.

그렇다고 청운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남궁룡도 알고 있었다.

이미 수백 번의 검을 부딪치며 청운이 자신과의 대련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신 역시 청운과 대련하는 동안 즐거웠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기연 같은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대련을 청하고 싶습니다.”

남궁룡의 말투가 바뀌었다.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만한 변화였다.

아니나 다를까 구경하던 이들의 두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남궁룡은 남을 내려다보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내려앉아서 청운을 대우하고 있었다.

청운은 그런 남궁룡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 다른 분들과도 대련을 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청운의 고개가 다른 이들에게 향했다.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을 보던 강호풍이 먼저 나섰다.

“내가 먼저 하지.”

“사형, 제 손님이라니까요!”

진설란이 막아섰다.

그녀가 재빨리 청운 앞에 서더니 검을 뽑으며 말했다.

“화산의 검을 보고 싶다고 하셨죠?”

“하하. 영광입니다.”

청운은 거리를 벌리며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진설란 역시 매화이십사수의 기수식을 잡았다.

강호풍이 뒤로 물러서며 투덜거렸다.

“나도 손님인데 말이야.”

* * *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장식품이 한데 어우러진 정갈한 방.

삼남이녀가 커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조금 전 대련을 마친 청운과 다른 이들이었다.

남궁룡과 대련 이후 다른 사람들도 청운과 대련을 했다.

결과는 모두가 만족할 만했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대련이었으니까.

청성파와 제갈세가, 그리고 화산파의 무공은 청운에게 실전이라는 경험을 안겨줬다.

혼자서 가상의 적을 놓고 수련할 때와 상대를 앞에 두고 대련할 때의 느낌이 달랐다.

혈황의 말에 의하면, 실전은 또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이렇게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한 명의 무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며 청운에게 격려를 했었다.

또르르륵.

찻잔에 차가 담겼다.

그윽한 차향에 숨 막히던 대련의 여운이 스러졌다.

“이 공자의 무공이 이처럼 뛰어날 줄은 몰랐네.”

강호풍이 제일 연장자답게 먼저 입을 열었다.

화답이라도 하듯이 청운이 포권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덕분에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뛰어난 무공을 견식할 수 있었으니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단한 무공이었어.”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무공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하하하, 겸손할 필요 없네. 누가 봐도 자네의 무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네.”

강호풍은 청운의 무공을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청운의 무공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었다. 자신들의 경험과 견문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스승님께 여쭤봐야겠어.’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강호풍은 빙그레 웃음 지으며 청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기가 서려 있는 맑은 두 눈과 살짝 올라간 양쪽 입꼬리가 인상적이었다.

잠시 청운의 얼굴을 조목조목 살펴보던 강호풍이 눈빛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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