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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6화 (6/257)

# 6

6화

갈라지고 찢겨진 피부가 아물었다가 다시 찢어졌다. 뼈마디가 으드득거리며 똑똑 부러졌다가 다시 붙었다.

청운의 몸에 공존하던 두 가지 기운과 외부에서 몰려드는 대기의 기운, 그리고 태양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졌다.

“크으윽.”

혈황은 입 밖으로 새나가는 신음을 삼켰다.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르면 겨우 균형을 잡고 있던 청운의 몸이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한 치의 실수라도 생긴다면 그대로 끝이었다.

마지막 힘마저 쥐어짜서 막아내고, 무너져 내린 곳을 복구했다.

정신력의 소모가 엄청났다. 근원이랄 수 있는 혈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자신이었다.

혈황은 겨우 십이주천을 마치고 몸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아아아아아!”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바라마지 않던 환골탈태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환골탈태를 했지만 청운이라는 그릇이 너무 작았다.

더욱이 뇌기와 혈기가 상극이어서 제대로 몸을 바꾸지 못했다. 아니 잘 바뀌기는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독문신공인 혈황신공에 뇌기가 스며들었다. 혈황신공이 반쪽짜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젠장.”

절로 욕이 흘러나왔다.

혈황은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의 정점에 서 있던 절대사공이 이제는 정도 사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무공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응?”

“비켜어어어!”

쿵!

청운의 몸이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앞뒤로 흔들렸다.

동시에 청운의 몸에서 혈황이 튕겨져 나왔다.

“내 몸이야! 내 거란 말이야!”

청운이 악을 썼다.

[이런!]

청운의 몸 밖으로 튕겨진 혈황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천지가 개벽해도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을 천하의 혈황이 당혹스러움에 양손을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주춤.

청운이 몸을 뒤로 물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혈황이 어느새 자세를 잡고 청운에게 부딪쳐 갔다.

[이노오오옴! 이제 내 몸이니라!]

쿵!

“크윽”

청운이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혈황 역시 푸른 막에 막혀서 뒤로 튕겨졌다.

[또… 뇌기냐!]

혈황이 대노하며 넘어진 청운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쿵!

역시 푸른 막에 막혀서 뒤로 튕겨나갔다.

형황은 그 뒤로도 수십 번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번번이 푸른 막에 막혀서 청운의 몸에 침투할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

혈황이 쩌렁쩌렁한 소리로 악을 썼다. 분이 풀리지 않는지 청운의 몸을 감싼 푸른 막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야이, 개XX야! 씨X 놈아! 몸뚱이 내놓아아아!]

오죽하면 만사의 숭앙을 받았던 대 혈사천교 교주의 체신도 잊고 서른 살 이후 쓰지 않던 쌍욕까지 퍼부었다.

그러나 푸른 막은 출렁거리기만 할 뿐 혈황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어?”

청운은 혈황의 공격이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막에 막혀서 혈황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왜 주먹을 쓰지?”

청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그제야 혈황이 공격을 멈췄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청운의 말대로 자신이 적수공권을 펼치고 있었다. 당연히 혈황신공을 이용한 신공을 펼쳐야 하건만.

[헉! 혈기가……!]

남은 혈기가 너무도 적었다. 미미하게 남은 혈기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한동안 펼치지 않았던 적수공권을 펼친 것이다.

혈황은 이를 악다물었다. 잘게 떨리는 그의 눈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청운의 몸을 훑었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의 몸을… 환골탈태시키면서… 내 기운이 이전된 것…….]

“……!”

혈황은 한눈에 지금 상황을 파악했다.

벼락의 충격으로 엉망이 된 청운의 혈맥을 이으려고 운기행공을 했었다. 그때 대부분의 혈기가 뇌기와 함께 청운의 몸에 스며든 것 같았다.

덕분에 청운의 몸은 전설상의 신체로 탈바꿈되었다. 무공을 익히기 가장 적합한 신체가 되었고, 몸 안에 엄청난 기운이 자리 잡았다.

혈황이 보기에는 뇌기가 섞인 불완전한 반쪽짜리 몸이지만.

툭.

망연자실한 혈황은 허물어지듯이 주저앉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청운에게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복수를 위해서 수백 년을 버텼건만… 이처럼 허무하게 끝나다니…….]

혈황은 멍한 눈길로 청운을 쳐다보았다.

눈을 파르르 떨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망나니의 칼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았다.

[이걸로… 끝인가. 어찌 이리… 개 같은 일이…….]

기나긴 세월을 복수의 일념으로 버텨왔다.

너무도 억울해서,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염라대왕에게 끌고 가려는 저승사자와 악착같이 싸우며 버텼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이제 곧 자신은 소멸될 것이고, 수백 년 염원도 한바탕 꿈으로 끝날 것이다.

이청운은 주저앉은 혈황을 노려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토록 강하게 보이던 자가 바람 빠진 돼지 방광처럼 축 처져 있었다.

흉신악귀가 무서워 도망갈 정도로 무섭던 표정도 성질이 조금 고약한 옆집 아저씨의 얼굴 정도로 순해졌다.

아수라처럼 사납고 욕심만 많은 자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자신의 몸을 강제로 빼앗으려 한 것은 괘씸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 또한 분명했다.

군자는 은(恩)과 원(怨)을 분명히 가려야 하는 법.

더구나 상대는 이제 기운을 자신에게 빼앗긴 힘없는 영혼에 불과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들어올 수도 없었다.

청운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고아가 된 후 온갖 역경을 겪으며 살다 보니 편협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은혜를 모른 척할 정도로 독하지도 못했다.

또한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 순발력도 있었다.

혈황을 노려보고 있던 청운이 말했다.

“나는 내 몸을 귀하에게 내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하가 날 살려준 것을 부정할 생각도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혈황은 청운이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아서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지금의 그 모습으로는 청운을 겁줄 수 없었다.

“선친께서는 한 톨의 쌀을 얻어먹으면 한 말로 갚으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놈이 내 대신 복수라도 해주겠다는 거냐? 비실비실해서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학사 놈이?]

“제 힘으로 가능한 거라면 못 할 것도 없죠.”

[……뭐?]

“귀하 말대로 난 무공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아마 개봉부의 건달 하나도 이기지 못할 겁니다.”

사실이 그랬다. 지금은.

“그런데 귀하의 이상한 기운이 내 몸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뇌기라는 것도.”

[그건… 그런데… 그건 아직 너에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힘이다.]

혈황의 목소리가 전과 달랐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왠지 자신이 없었다.

“당연하지요. 전 그 기운의 운용법도 모르고, 제 몸은 그 기운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잘못했다가는 그 기운 때문에 몸이 터져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건 그렇지…….]

청운이 그쯤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저와 타협을 보지 않겠습니까?”

[타협?]

혈황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패해서 힘을 잃었고, 이제 소멸될 판이었다.

승리자는 이청운이라는 저놈이다.

그런데 웬 타협?

그때 이청운이 말했다.

“전 무공을 모릅니다. 몸속의 기운을 다스릴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 귀하는 무공을 잘 알고, 몸속의 기운을 다스리는 방법도 압니다.”

[…….]

“전 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몸이 없습니다.”

혈왕은 그 말에서 발끈하려다 꾹 참았다.

어린놈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욕을 퍼붓더라도 더 들어보고 퍼붓는 게 나을 듯했다.

“저에게 부족한 걸 귀하가 주십시오. 그럼 저도 제 능력껏 귀하의 복수를 도와드리죠.”

[그러니까… 무공을 가르쳐 달라? 그럼 너도 내가 복수하는 일을 도와주겠다?]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닙니까?”

어쩌면 모험일 수도 있었다. 혈황이 나중에 힘을 되찾아서 자신의 몸을 빼앗으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다 보면 모험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자신의 적은 금의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없다. 힘을 얻을 곳이라고는 오직 하나, 혈황뿐.

그런데 혈황이 조소를 지었다.

[크크크크, 이 대가리에 똥만 든 멍청한 놈아! 나는 이제 곧 소멸될 텐데…….]

한껏 욕을 퍼붓던 혈황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청운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멍청한 건 당신 같은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혈황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청운이 그 얼굴에 대고 말했다.

“해가 뜨면 소멸된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해는 지금 저기서 떠오른 지 한참 지났습니다.”

[…그럴 수가!]

“귀하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단! 귀하가 햇빛 아래에서도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사라져야 하는데…….]

청운 말대로 해가 떴다.

누군가의 몸을 차지하지 못하면 한 줌 바람과 함께 흩어져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멀쩡했다. 비록 대부분의 혈기를 잃어서 힘은 없었지만.

[어떻게 된 거지?]

혈황은 흐릿한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팔도 흔들어보았다. 어느 한 곳도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슬쩍 만져본 거기도 멀쩡했다. 있어봐야 쓸 곳도, 쓸 수도 없지만.

[분명히 영혼이 소멸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제 몸을 차지했다가 다시 나오셨잖습니까. 혹시 그것 때문에 상황이 변한 것 아닐까요?”

혈황은 청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청운의 말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네놈의 몸에 깃든 혈기와 내 몸에 남은 혈기가 이어져서 내가 소멸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직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이승에 남아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형체는 둘이지만 하나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무공을 원한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내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했지?]

“한 입으로 두 말하면 남자가 아니지요.”

[훗.]

혈황이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복수를 원했다. 그렇기에 수백 년을 영혼만 유지한 채 지내왔다. 그런데 육체가 없으니 딱히 복수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혈황신공의 기운마저 다 빼앗겨서 다른 육체를 차지할 수도 없게 되었고.

그런데 방법이 생겼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지만, 조금 손해 보면 어떠랴.

끈질기기가 말거머리 씹어 먹을 정도인 놈이라면…….

혈황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무공을 가르쳐 주지.]

“저도 최선을 다하지요. 그런데 복수할 상대가 누굽니까?”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놈들이라면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거나 세력을 형성하고 있을 거다.]

“나쁜 놈들인가요?”

[글쎄. 그들이 볼 때는 내가 나쁜 놈이었겠지. 세상일이라는 건 상대적인 것이니까.]

세상을 공포로 물들였던 천교다.

천교의 주인인 혈황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당시 무림에서 그와 원한이 없는 존재는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천교는 어떤 곳입니까?”

순간 혈황이 움찔했다.

청운이 천교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면 복수를 도와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천교 앞에 두 글자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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