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74)
그들의 죽음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주 대행을 맡고 있다지만 실력마저 바닥인 것은 아니었다.
부족함이 없는 삶 때문에 오만하고 남들을 인정하지 않고 막돼먹어서 그렇지 철검우의 무공은 강했다. 게다가 정신적인 안정을 찾아가면서 무공은 더 강하고 정교해졌다.
문제는 상대가 금장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철검우의 공격은 번번이 막혔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을 당했다.
콰앙!
“커억!”
철검우는 비명과 함께 튕겨졌다.
척!
“우엑!”
무덤 위로 내려선 그는 피를 토했다.
“차하!”
그는 곧바로 기합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도망을 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지만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다. 철검우는 자신이 패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스르르!
방금 전 철검우가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던 무덤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가 토했던 핏덩어리가 무덤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크엉!
땅속 저 깊은 곳에서 괴성이 흘러나오며 무덤이 흔들렸다. 하지만 싸움에 집중하고 있던 금장생과 철검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철검우는 계속해서 밀리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떨어진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척!
“헉! 헉헉헉!”
철검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패배한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대장장이에게 패하여 온몸에 상처를 입고 만 것이다. 꿈속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맞아. 이건 꿈이야. 꿈속이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철검우는 중얼거렸다.
슥!
그사이 금장생이 철검우 건너편 무덤으로 내려섰다.
“쿡! 확실하네.”
철검우는 피식 웃었다.
금장생의 옷에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는 걸 본 철검우는 지금 상황이 꿈속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실패를 맛보지 못한 자의 현실도피였다.
“얼굴이 밝아질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금장생은 철검우를 빤히 보며 말했다.
알 수 없는 자였다. 지금 상황이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해야 한다. 그런데 녀석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다. 마치 머리가 어떻게 된 자처럼 보였다.
“방금 널 이길 방법이 떠올랐거든.”
철검우는 히죽 웃었다.
“어떤 방법인지 궁금하네요.”
“바로 이거다.”
철검우는 단전과 진원지기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어뜨렸다. 그러자 생명의 기운인 진원지기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우!”
갑자기 힘이 쏟아져 들어오자 철검우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크아아아!”
그는 기합을 내지르며 바닥을 찼다.
파앗!
그가 밟고 있던 무덤에 깊은 자국이 생겨났다.
진원지기를 끌어 올린 철검우의 동작은 비호처럼 빨랐다. 순식간에 금장생 앞에 도착하여 오른손을 내질렀다.
금장생은 무적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차앙!
천권과 무적검이 부딪쳐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웃!”
금장생은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그는 깜짝 놀랐다. 철검우가 조금 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진 것이다.
“진원지기를 끌어 올렸군요.”
금장생은 철검우를 보며 말했다.
“맞다. 진원지기다.”
“진원지기를 끌어 올리면 죽는다는 거 아세요?”
“여, 여긴 꾸, 꿈속이니까 사, 상관없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그는 철검우가 마지막 선택을 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철검우는 지금 상황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크아아앙!”
철검우는 다시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금장생 앞에 도착한 그는 오른손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그의 주먹이 수십 개로 변했다.
철검우는 활짝 웃었다.
주먹이 수십 개로 변하는 건 그가 이론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천권의 마지막 초식인 천권진천하天拳振天下다. 천권진천하는 천권의 위력과 꼭 같은 주먹 형태의 강기 서른여섯 개가 생겨나 상대를 향해 쏘아져 가는 무공을 말한다.
하지만 그 초식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론 불가능했다. 초식을 펼치는 데 필요한 최소 내공이 십 갑자이기 때문이었다. 설사 십 갑자의 공력이 있다고 해도 펼쳐질지는 의문이었다.
그랬던 무공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고 있다.
“크크크크!”
철검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호쾌한 웃음을 터트려야 하는데 철검우의 웃음은 괴소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철검우는 자신의 웃음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온몸을 둘러싼 기운은 점점 강해져 희미한 광채마저 뿌렸다.
그럴수록 철검우의 동작은 더욱 빨라졌다.
상대가 금장생이 아니고 다른 무인이었다면, 싸움은 철검우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장생은 천 년 공력을 지닌 절대 고수.
진원지기를 끌어 올린 상태에서도 십 갑자밖에 되지 않는 그의 공력으로 금장생을 어떻게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철검우가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했지만 금장생은 침착하게 방어했다.
그는 굳이 공격을 하지 않았다. 진원지기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고 그 시간만 버티면 스스로 무너지는데 힘을 쓸 이유가 없었다.
철검우의 동작이 느려지기 시작한 건 한 식경 후였다. 철검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짐승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달려들 뿐이었다.
그의 몸에서도 광채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제 끝낼 때가 된 것 같군요.”
금장생은 무적검을 들어 올렸다.
“크아아아아!”
금장생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철검우는 조금 전과 비슷한 속도로 몸을 날렸다. 방어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슥!
그 순간 금장생의 손에서 무적검이 떠났다.
무적검은 철검우를 향해 날아가더니 심장을 뚫었다.
“크아악!”
철검우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심장이 뚫렸음에도 철검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몸을 날렸다. 그의 심장에서 뿌려진 피가 무덤 위로 떨어졌다. 이기어검술로 던진 검에 심장이 뚫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루로 변하지 않는 것은 금장생이 세기를 조정한 탓이었다.
이곳은 마수의 무덤이다. 마수를 부리지 못하는 자는 절대 들어가지 마라. 그리고 절대 피를 뿌리지 마라. 피를 뿌리면…….
지옥암가 가주가 남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수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퍼억!
미친 듯이 몸을 날리던 철검우의 동체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갈가리 찢긴 몸뚱이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크아아앙!
어디선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섬뜩한 소성이 들려왔다.
금장생은 전방을 주시했다.
조금 전 들은 비명으로 볼 때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뭐냐?”
금장생은 무적검을 쥔 채 중얼거렸다.
쑥!
“응?”
그의 눈이 커졌다.
정중앙에 있는 무덤에서 막대처럼 생긴 것이 쑥 튀어나왔다. 금장생은 눈에 내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막대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건 막대기가 아니라 발이었다. 털로 뒤덮이고 한 자 길이의 발톱을 가진 야수의 발. 그런데 두께가 장난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어른 허벅지 두께였다.
“과연…….”
금장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팔이 나왔던 부분에서 머리가 나왔다.
“늑대?”
금장생은 눈을 비볐다. 일반 늑대보다 머리가 훨씬 크긴 하지만 늑대 얼굴이 분명했다.
곧 몸통이 빠져나왔다. 이젠 의심할 나위가 없다. 늑대가 분명했다. 이윽고 다리까지 완전하게 빠져나왔다.
‘크다!’
늑대를 본 첫 느낌이었다.
우뚝 선 채 주위를 둘러보는 늑대의 키는 무려 일장 반에 달했다. 게다가 두 다리로 서 있다.
크아아아앙!
늑대가 고개를 쳐들고 괴성을 토해 냈다. 괴성은 바닥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나게 컸다.
쑥! 쑥! 쑥! 쑥!
무덤 여기저기에서 털북숭이 앞발이 튀어나왔다. 금장생은 시체를 다루는 강신술사지만 무덤에서 손이 튀어나오는 광경을 보자 섬뜩했다.
잠시 후, 모든 무덤 위에 늑대처럼 생긴 마수들이 늘어섰다.
“엄청나네.”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지옥암가 가주는 총 일천 마리라고 하였고 불사마수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다.
크아앙!
가방 먼저 깨어난 녀석이 포효했다.
크아아앙!
그러자 나머지 마수들도 일제히 포효했다.
금장생은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이제 어떻게 한다…….”
금장생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마수들을 보았다.
사실 그는 마수들이 다시 깨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옥암가 가주의 말이 실현되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혹시 하는 마음에 철검우의 피를 뿌려 본 것뿐인데 녀석들이 정말로 살아난 것이다.
“일단…….”
금장생은 라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저 녀석들 좀 보세요.”
금장생은 악마수로 마수를 가리켰다.
―가만, 이 기운은…….
라는 말끝을 흐렸다. 익숙한 기운이 분명한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생겼느냐?
“늑대를 닮았어요. 키는 일 장 반 정도고 다리가 길어요. 그리고 특이하게도 두 발로 선 상태고요.”
―그건 몬스터의 일종인 워 울프다. 하지만…….
“왜요?”
―내가 아는 워 울프는 절대 저런 기운을 풍길 수 없다. 워 울프가 강한 몬스터이긴 하지만 언데드 몬스터는 절대 아니다.
“저렇게 생긴 녀석을 워 울프라고 불러요?”
―라이칸스로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저 녀석들이 왜 여기 있는 거냐?
“그건 나도 모르죠. 그런데 라이칸스로프가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내가 알기로는 중원으로 데리고 왔던 라이칸스로프는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죽었다.
“무덤 속에서 나왔어요.”
―무덤?
“지옥암가 가주 말로는…….”
―지옥암가 가주라는 건 무슨 소리냐?
라는 금장생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히다스란 사람의 시체를 발견했어요. 그가 유언을 남겼고요.”
―그의 여기서 임종을 맞았다는 거냐?
“네.”
―자세히 말해 봐라.
“그러니까…….”
금장생은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본 상황을 순서대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철검운가 하는 녀석의 피를 뿌리자 저것들이 깨어났다는 거구나.
“맞아요.”
―실험체가 맞는 모양이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 루하로 살 때 ‘죽은 자들의 군단’은 이미 겪어 보았다. 신족의 최고 신분이었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그들은 강했다.
결국 심장을 희생하고서야 그들 일백 구를 제압할 수 있었다.
비록 실험체라고 하지만 히다스는 성공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저들 또한 ‘죽은 자들의 군단’과 별 차이 없다는 말이 된다.
―죽은 자들의 군단에 대해 아느냐?
금장생의 말투에서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라가 물었다.
“루하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자들인데 모를 리가 없지요.”
―루하의 마지막이라는 건 무슨 소리냐?
“죽은 자들의 군단 서열 일위부터 백위까지는 저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
“저기요!”
라의 질문을 무시하고 금장생은 마수 우두머리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