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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46화 (446/524)

황금가 (446)

여섯 개의 기검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늘어섰다.

손잡이만 남기고 왜도 날이 전부 사라졌지만 금장생의 자세는 조금 전과 같았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자세는 약간 낮추고 상체는 약간 구부린 채다. 그의 전신으로 힘이 모여들었다. 마치 잔뜩 당겨진 시위 같았다.

‘설마 도가 부서진 걸 모른단 말이냐?’

금장생을 바라보는 숙윤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승리의 미소였다.

그는 금장생이 자신의 도에 날이 없어진 사실을 모른다고 확신했다. 그게 아니라면 날도 없는 도를 도집 입구에 대고 있을 리가 없을 터였다.

“끝났다, 놈!”

숙윤은 숨을 들이켰다.

“바발!”

숙윤은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검사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푸아아악!

여섯 자루의 기검은 동시에 공간을 건너뛰었다. 쩍쩍 갈라져 곧 부서질 것 같은 상태지만 여전히 속도는 빠르고 위력은 대단했다.

숙윤은 문도들이 목숨으로 만들어 낸 기검이 임무를 완수해 줄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은 승자가 돼 검각으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했다.

스악!

금장생이 도를 뽑은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실소했다.

“차하!”

금장생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날도 없는 도가 허공에 커다란 반원을 그렸다.

카카카카카캉!

도 손잡이가 그린 반원을 따라 새파란 불똥이 튀었다.

콰콰콰콰쾅!

이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오고 흙더미가 사방으로 튀었다.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구름은 시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잠시 후 두 힘이 부딪친 장소의 전경이 드러났다.

마치 수십 개의 화탄이 동시에 터진 것처럼 커다란 분화구가 생겨나 있었다. 분화구의 크기는 지름이 이 장 정도고 깊이는 반 장가량이었다. 방사형으로 줄이 쭉쭉 나 있었다. 마치 방사형 무늬를 입힌 거대한 대접을 땅에 박에 놓은 것 같았다.

그 분화구 한가운데 도 손잡이를 든 금장생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산발이 됐고 태극선의 앞섶이 풀린 상태지만 피를 흘리는 곳도 없고 호흡은 안정돼 있다. 전면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동요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방금 목숨을 건 사람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다.

거대한 기검은 금장생을 포위한 상태로 땅바닥에 박혀 있었다. 기검과 금장생의 거리는 반 장이었다.

“후우!”

금장생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숨결이 반 장을 건너뛰고 기검의 면을 스쳤다.

쩌어억! 쩌어억! 쩌어억! 쩌어억!

기검 표면에 나 있던 금이 커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퍽! 퍽퍽퍽! 퍽퍽!

기검이 폭발했다.

“커억!”

“크윽!”

“으윽!”

“커어어어억!”

진원지기를 끌어 올렸던 검각 문도 몇몇이 마지막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지만 숙윤은 그게 문도들이 내지른 비명이란 사실을 믿지 않았다. 날이 없는 도로 기검을 친다고 해서 부서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크악!”

“헉!”

바로 옆에 있던 문도가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처박히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의 시선이 금장생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금장생이 들고 있는 왜도 손잡이를 보았다.

“저건?”

그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의 손에는 도 손잡이만 들려 있는 게 아니었다. 반투명한 물체 하나가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그건 바로 부서진 왜도를 대신하고 있는 가드헬이었다. 하지만 숙윤은 가드헬이 뭔지를 알지 못했다.

“어떻게…….”

그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문도들이 모두 죽고 나자 공간이 사라지고 숙윤은 금장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는 무기가 아주 많습니다.”

금장생이 말했다.

“아무리 무기가 많다고 해도 부서진 도의 날을 대신한다는 건…….”

“이 녀석은 좀 특이하거든요.”

금장생은 도를 들어 숙윤을 가리켰다.

슉!

순간 왜도 날 모양을 하고 있던 가드헬이 숙윤을 향해 쏘아져 갔다.

퍽!

가드헬은 숙윤의 심장을 뚫었다.

“커억!”

숙윤은 가슴을 붙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는 금장생을 보았다.

“우린 끝이 아니고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 검각은 너희들을 없애고 반드시 춘추오패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거다.”

털썩!

숙윤의 신형이 앞으로 처박혔다.

“분명 당신들은 춘추오패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겁니다. 그건 내가 장담합니다. 왜냐면 춘추오패도 파산할 거거든요.”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분화구 밖으로 나왔다. 오 장 떨어진 곳에 서른 구의 시체가 있었다. 모두 앞으로 처박혔는데 가부좌 자세였다.

조금 전 기검을 만들어 공격한 자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 * *

“일대가 뚫렸습니다.”

영호정이 굳은 얼굴로 보고했다.

“다 죽은 거요?”

평천일이 물었다.

“삼백 명이 죽고 살아남은 이백 명도 육 개월 이상 요양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는 말이군.”

“팔왕으로 보이는 자는 강한 정도가 아니라 상상 이상입니다.”

“그 정도요?”

평천일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그가 아는 한 영호정은 상대를 평가하는 데 인색하다. 너무 인색해 그가 말한 것보다 한 단계 위가 실제 실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그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는 건 검총파천쇄옥진으로 막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자뿐만이 아닙니다. 진식 안에 있는 자들 중 강자 아닌 자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상태로 계속 가면 우린 멸문합니다.”

“적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오?”

이번엔 평천일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적이 진식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춘추오패와 어깨를 나란히 할 거라고 자신했던 사람이 영호정이었다. 그런데 이젠 멸문을 걱정하고 있다.

“우린 춘추오패 수장 다섯 명이 최정예를 데리고 그자들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그들이 일대를 뚫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다만 뚫는 데 최소한 하루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일대를 완벽하게 괴멸시켜 버렸습니다. 그건 곧 그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스무 배 이상 강하다는 걸 뜻합니다.”

“하면 춘추오패의 수장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쫓고만 있는 것도 팔왕을 비롯한 수행하는 자들이 너무 강해서 그런 거란 말이오?”

“팔왕 일행을 겪어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춘추오패 수장들은 맹수가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몰고만 있습니다.”

“팔왕과 그 수행원들의 힘을 빼기 위해 우리를 이용한다는 거구먼.”

“그렇습니다. 만일 이 싸움을 계속하고 팔왕을 잡는다고 해도 우린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겁니다.”

“무림 세력과 일개인이 싸우는데 양패구상을 한다는 건가?”

“네.”

“……하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평천일이 물었다.

“우리도 춘추오패 수장들과 같은 방법을 써야 합니다.”

“같은 방법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가?”

“먼저 검총파천쇄옥진을 검총만상대진으로 바꾸는 겁니다.”

“검총만상대진劍塚萬狀大陣을 펼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이번엔 평천일의 얼굴이 굳었다.

검총만상대진은 적을 잡는 살인진식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상태진식이다.

검총만상대진을 창안한 사람은 검각의 시조인 검천자 육성우다. 그는 검을 만들 때, 사람 혹은 짐승 기타 자연현상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완벽한 장소를 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진식이 검총만상대진이다. 검총만상대진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상황이 검총의 현재 모습과 꼭 같은데 활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벌래 소리도 없고 새도 날아들지 않는다.

천둥이 치지도 않고 바람이 불지도 않는다. 진식을 모르는 자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안에 있는 자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완벽하게 정지된 장소가 검총만상대진 안이다. 육성우 시조는 그 진식 안에서 검을 만들었다.

진식이 구축되는 기간은 열흘이다. 그 기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검만 만들었다.

그의 제자인 칠검존 일곱 분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검총만상대진 안에서 무적검을 얻기 위해 쇠를 녹였다.

하지만 시조인 육성우도 그의 제자인 칠검존도 무적검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결국 칠검존은 무적검 만들기를 포기하면서 검총만상대진도 함께 파훼했다.

검각에서 그 진식을 되살린 건 이백 년 전이었다.

당시 문주는 검총만상대진을 복원하자마자 모든 제자들에게 개방했다. 검총만상대진의 개방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왔다. 검총만상대진을 통해 만들어진 장소는 단순한 곳이 아니라, 검각 최강 무공이자 시조 육성우만 펼쳤다는 검천무적마해와, 그 무공의 바탕이 됐던 철검무적검해가 숨겨져 있는 기연의 장소였다. 그런 무공은 없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절대 무공이 잠들어 있는 기연의 장소가 개방됐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자 많은 이들이 검각으로 들어왔다. 검각으로 들어온 자는 모두 검총만상대진이 펼쳐진 검총으로 들어가 기연 찾기에 몰두했다.

모두가 검총만상대진 안으로 들어가자 부작용이 생겼다. 그건 바로 검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번 안으로 들어가면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태로 지내야 하는 제약이 있었지만 제자들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결국 문주는 검총만상대진은 일 년에 두 달만 구축하는 걸로 문규를 바꿨다.

굳이 검총만상대진을 구축하지 않는다고 해도 검총의 모습은 꼭 같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잘 압니다. 하지만 검천무적마해나 철검무적검해는 오백 년 동안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자들이 그걸 발견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자들은 십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지내게 됩니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고 해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자들이 살아서 나온다고 해도 힘이 빠져 있을 겁니다. 포위당한 상태로 쫓기는 맹수처럼요.”

영호정은 나직했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말했다.

“거기에다 칠검마七劍魔와 싸우기까지 하면 더 약해지겠군.”

“칠검마라고요?”

영호정의 눈이 커졌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네.”

“그들을 풀어 줄 생각입니까?”

영호정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많은 이들이 검각 최강 무인을 문주 평천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평천일보다 더 강한 무인이 일곱 명이나 있는데 그들의 별호는 칠검마다. 칠검마는 검총만상대진이 만들어 낸 최강 무인이었다. 검총만상대진의 일곱 철상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각자 무공을 창안했고 검각 최강 무인이 됐다. 그들은 심검마心劍魔 우상, 천검마千劍魔 방낙인, 혈검마血劍魔 사적인, 영검마靈劍魔 유막, 환검마幻劍魔 각선, 묵검마墨劍魔 야수황, 역검마易劍魔 전군남이다.

그들에게 칠검마란 별호를 준 건 시조 검천자 육성우의 제자 칠검존만큼 강한 무인이라 의미였다.

모든 문도들의 우상이고 가장 강한 무인으로 추앙받던 그들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건 바로 반란이었다.

검각의 차기 문주는 전대 문주가 문주지검인 용형을 물려주는 자가 된다. 칠십 년 전에도 그랬다.

문주는 자기 아들이 아닌 대제자 평곤에게 용형을 물려주었고, 이에 반발한 전대 문주의 큰아들이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 반란을 일으킨 전대 문주 아들 편에 섰던 자들이 바로 칠검마였다.

반란에 실패하여 수뇌가 처형당하고, 자신들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칠검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평곤을 문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평곤은 그들을 감옥에 가뒀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가 서른다섯 살이었고, 그로부터 칠십 년이 지났으니까 백다섯 살 아닌가. 아직 감정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지 않네.”

“혹시 그분들을 찾아뵌 적 있습니까?”

“없네.”

평천일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문주님의 부탁을 들어주실 거라 보십니까?”

“나는 그들에게 부탁하지 않을 거네.”

“하면?”

“거래를 할 거네.”

“거래요?”

“내가 내걸 조건은 자유네.”

“그들이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들은 응할 수밖에 없네. 응하지 않으면 거기가 무덤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평천일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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