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45)
칠검마
환영인지 실체인지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건 바타르뿐만이 아니었다.
금장생 또한 방어에 애를 먹고 있었다.
그를 공격하는 검의 길이도 바타르와 마찬가지로 일 장 반이었다. 지금까지 금장생이 부순 검의 수는 열 개였다. 검을 부술 때마다 비명이 들려오긴 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혹은 부상을 당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철컥!
금장생은 왜도를 도집으로 집어넣었다.
오른 다리는 앞으로 내밀고 무릎을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상체도 약간 구부정하게 숙였다. 그 상태에서 검이 날아오길 기다렸다.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검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반사적으로 왜도를 뽑아 휘둘렀다.
슈캉!
왜도가 허공을 가르고 푸른 광채가 잔상으로 남았다.
카캉! 카캉! 카캉! 카캉!
왜도에 부딪친 커다란 검 네 자루가 튕겨져 올라갔다.
쩌억! 쩌억! 쩌억! 쩌억!
삼 장 높이까지 솟구쳤던 대검의 검면에 금이 쩍쩍 가더니 곧 조각으로 변하여 아래로 떨어졌다.
“커억!”
“크윽!”
“으윽!”
나직한 비명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으음!”
숙윤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검각 무인 스무 명이 쓰러져 있다. 앞으로 처박힌 그들의 입에서는 숨을 내쉴 때마다 피가 벌컥벌컥 흘러나온다.
조금 전 적을 공격한 문도들이다.
검총파천쇄옥진의 가장 큰 장점은 투입된 문도들의 공력을 두 배에서 세 배까지 강하게 해 준다는 데에 있다. 다섯 명이 일 개 조를 이루는데, 네 명은 진식으로 인해 강해진 내공을 모두 끌어 올려 거대한 기검을 만든다. 그 기검에 실린 공력은 최소 삼 갑자다.
남은 한 명은 네 명의 동료가 만들어 낸 기검을 날린다. 그때 날아가는 검의 속도는 이기어검술과 맞먹는다. 하나에 삼 갑자 공력을 머금은 검이 네 개면 총 십이 갑자, 즉 칠백이십 년의 공력이 된다.
공격이 성공하면 내공이 일시에 빠져나갈 때 오는 허탈 상태만 겪으면 되지만, 강한 반격으로 기검이 부서지면 내기기 역류하게 되고 바로 주화입마로 이어진다.
쓰러진 스무 명은 죽지 않는다고 해도 더 이상 무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가 없다.
“너희들은 우리 검각의 거름이 될 것이다. 너희들의 희생으로 우리 검각은 대문파가 될 것이고 우린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삼조는 준비하라!”
숙윤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존!”
나직하게 외치는 소리와 함께 서른 명이 앞으로 나왔다. 숙윤의 옆으로 그들이 동서남북 각 방향에 한 명씩 앉고 나머지 한 명은 가운데로 들어갔다.
“복용하라!”
숙윤의 명령이 떨어지자 서른 명은 일제히 밤톨만 한 환丸을 꺼내 복용했다. 곧 서른 명이 부들부들 떨었다.
“기기起氣!”
숙윤은 버럭 소리쳤다.
“기기!”
검각 문도들은 영창하면서 오른손 바닥은 아래로 놓고 왼손 바닥으로 덮은 후 단전 앞으로 가져갔다.
“출出!”
숙윤이 다시 소리쳤다.
“출!”
문도들은 숙윤을 따라 복창했다.
스윽!
순간 동서남북 네 방위를 점하고 있는 문도들의 정수리에서 반투명한 광채가 솟구쳤다. 허공으로 솟구친 광채는 한가운데 앉은 문도의 머리 위로 가더니 한데 모였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검 모양이 됐다. 검의 길이는 조금 전에 만들었던 것보다 두 배 큰 삼 장이었다.
가부좌를 하고 있던 가운데 문도는 양팔을 들었다. 들어 올린 두 손은 마치 거대한 검 양쪽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개안開眼!”
숙윤은 소리쳤다.
번쩍!
그러자 안쪽에 있던 여섯 명이 번쩍 눈을 떴다. 그의 눈에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는 금장생이 보였다. 자신들과 금장생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그건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금장생의 모습은 가까운 곳에서 보는 것처럼 비교적 선명하게 보였다.
“발發!”
바로 그때 숙윤의 외침이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
“바알!”
그들은 크게 소리치고는 들어 올렸던 양팔을 앞으로 밀어 쳤다. 마치 무거운 돌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가 내던지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여섯 자루의 대검은 무서운 속도로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공간마저 건너뛰는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차앗!”
기검을 발견한 금장생의 입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허리춤으로 향한 오른손이 왜도를 뽑아 들었다. 곧 허공에 푸른 광채 하나가 남았다.
카카캉!
기검 두 자루가 튕겨져 나갔다.
“타하!”
두 번째로 악마수에서 백안 하나가 튀어 나갔다. 거대한 힘을 적안이나 흑안 혹은 백안 하나로 상대할 수 없었다. 오십 개의 백안을 하나로 합쳐 만든 거대한 백안이 기검 두 자루를 쳐 냈다.
철컥!
왜도가 도집으로 들어가고, 빈손이 된 오른손이 옆구리의 삼천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 흑사아와 백사아가 허공을 뚫었다.
카앙! 카앙! 카앙!
기검들이 튕겨져 나갔다.
“커억!”
“크윽!”
“으윽!”
검각 무인들은 신음을 내뱉었다. 고통으로 인해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이마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힘을 내라! 발!”
숙윤은 버럭 소리쳤다.
“바알!”
검각 문도들의 입에서 쥐어짜는 듯한 기합이 터져 나왔다. 튕겨 나갔던 기검들이 일제히 새로운 힘을 얻어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타하하!”
금장생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방어 순서는 조금 전과 같았다.
슈캉!
가장 먼저 왜도가 허공에 푸른색 광채를 남기면서 기검 두 자루를 쳐 냈다. 이어 악마수의 백안이 허공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사아와 백사아가 남은 기검 두 자루를 쳐 냈다.
쩌어억! 쩌어억! 쩌어억!
기검 면에 무수한 검이 가긴 했지만 부서지진 않았다.
“커억!”
“크윽!”
“으윽!”
“크으으!”
네 방향에 앉아 있던 네 명과 기검을 조종하는 자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고 한 움큼씩 쏟아져 나왔다.
“집중하라! 힘을 내라! 너희 손에 검각의 존립이 달려 있다. 패하면 어차피 죽는다!”
숙윤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추울!”
숙윤은 다시 소리쳤다.
“추울!”
검각 문도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단전에 있는 모든 걸 긁었다.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순간 각 방위에 앉아 있던 자들의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바로 생명력인 진원지기를 끌어 올린 결과였다. 진원지기를 끌어 올리자 그들이 만든 검도 시퍼런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절대 날 용서하지 마라.’
숙윤은 문도들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두 번째 외친 출出은 진원지기마저 끌어 올리라는 명령이었다. 각 방위에 앉아 있는 문도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내기를 끌어 올려야 하고 이미 텅 빈 단전에서 나올 내기는 없다. 결국 남은 건 생명력을 태워 만들어 낸 진원지기뿐이고 저들은 그걸 끌어 올렸다.
이 공격의 성공 여부를 떠나 이곳에 이는 서른 명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너희들의 복수는 반드시 해 주마.’
“일, 발!”
숙윤은 버럭 소리쳤다.
“바알!”
한 명이 복창했다.
푸아악!
삼 장 길이의 기검 한 자루가 시퍼런 광채를 뿜어내며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한 자루만 날아오면 나는 더 편하지.’
“타하!”
슈캉!
금장생은 기합을 내지르며 뇌섬류를 펼쳤다.
카카캉!
시퍼런 광채를 뿜어내는 기검이 튕겨져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검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었다.
주욱!
금장생 또한 기검을 쳐 낸 반발력으로 인해 일 장이나 물러났다. 금장생이 물러나는 광경은 숙윤의 눈에도 보였다.
“이, 발!”
“바알!”
두 번째 기검이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기검이 날아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 금장생이 일 장가량 물러나 거리가 멀어졌지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카카캉!
금장생은 다시 뇌섬류를 펼쳤고 기검은 튕겨져 나가고 금장생은 이 장을 물러났다.
“놈이 밀린다. 힘을 내라! 삼, 발!”
숙윤은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기다리고 있던 세 번째 기검이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갔다. 결과는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금장생은 기검을 쳐 내고 이 장을 물러났다.
그렇게 숙윤은 여섯 개의 기검을 전부 날렸다.
문도들은 피를 폭포처럼 쏟아 내고 있었지만 숙윤은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명령만 내렸다.
그는 절대 한꺼번에 공격하지 않았다. 두 번을 더, 하나씩 여섯 번을 공격했다. 기검에 변화가 생긴 건 세 번째 공격을 할 때였다.
쩌억! 쩌억! 쩌억!
기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제발!’
숙윤은 간절한 얼굴로 금장생의 검을 바라보았다.
쩍!
아주 작은 소리가 금장생의 왜도에서 흘러나왔다.
“됐다!”
숙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제 두 번 남았다. 그럼 놈을 잡을 수 있다. 일, 발!”
숙윤은 고함을 내질렀다.
또다시 기검이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금장생은 뇌섬류를 펼쳐 기검을 쳐 냈다. 그가 쳐 낸 기검은 쩍쩍 갈라졌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두 번째 기검도 같은 방법으로 쳐 냈다.
여러 가지 많은 무공을 익혔지만 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뇌섬류를 펼치는 게 최선의 공격이자 방어였다.
금장생은 날아오는 기검을 향해 계속해서 뇌섬류를 펼쳤다.
기검을 쳐 낼 때마다 손목이 찌릿찌릿하고 일 장에서 이 장가량을 밀렸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응?’
왜도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세 번째 기검을 쳐 내고 난 후였다.
그는 도집으로 집어넣기 전 도면을 슬쩍 보았다. 날카로운 물체로 그어 놓은 것처럼 선이 생겨나 있었다. 왜도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는 게 분명했다.
“두 번은 더 받아 낼 수 있겠지.”
금장생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푸아악!
대기가 뚫리는 소리에 이어 기검의 기척이 감지됐다. 눈으로 확인하고 왜도를 뽑으면 늦는다. 기검의 기척을 육감이 감지하는 순간 뇌섬류를 펼쳐야 한다.
“타하!”
기합을 지르며 왜도를 뽑았다.
슈캉!
왜도가 뽑히는 순간 바로 앞에서 충격파가 터진다. 곧 적이 던진 기검이 튕겨져 나간다.
멀리 날아가는 기검으로 시선을 주면서 왜도를 도집으로 던져 넣는다.
충격에 의해 몸이 밀리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충격파를 흘리기 때문에 더 낫다.
물러나면서 다음 공격에 대비한다. 다시 기검이 대기를 뚫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이 여섯 번째 공격이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상체를 약간 숙인 상태에서 뇌섬류를 펼친다. 단전에서 솟구친 내기가 빠르게 각 혈도를 지나 팔을 통해 왜도로 들어간다.
내기가 완전하게 들어간 순간 근육의 힘을 이용해 왜도를 뽑는다. 뽑힌 왜도는 최단거리로 허공을 가르고 허공에는 푸른 광채가 잔상처럼 남는다.
카카캉!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기검이 튕겨져 나간다.
쩌어억!
날아가는 기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쩌억! 쩌억! 쩌어억!
그리고 금장생이 쥔 왜도에서도 금 가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몽땅 부서져 나갔다. 금장생의 손에는 왜도 손잡이만 남았다.
“해냈다.”
숙윤의 얼굴에 희열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육합六合!”
숙윤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