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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440화 (440/524)

황금가 (440)

콰아아아아앙!

마치 커다란 화탄이 터진 것 같은 압력이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바닥이 반 장가량 푹 꺼지고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깊은 고랑이 생겨났다.

“크윽!”

선공을 허용한 후유증은 컸다.

반격을 하긴 했지만 건륭은 일원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했다. 그는 비명과 함께 십 장 높이까지 솟구쳤다.

쿠억!

운무 속에서 튀어나온 촉수 형태의 흙이 건륭을 채 갔다.

느닷없이 고요가 찾아왔다.

촉수가 채 간 건륭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간 건가?”

자운영은 검을 쥔 채 주위를 살폈다. 그가 나타나면, 자신의 무공으로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리를 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휴우!”

자운영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자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나저나.”

자운영은 주위를 살폈다. 금장생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서 공격을 했으니까…….”

자운영은 일어났다. 그리고 분화구 형태로 파인 곳으로 갔다. 한가운데는 지름이 두 자 되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자운영은 그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구멍의 깊이는 일 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금장생은 없었다. 자운영은 밖으로 나왔다.

마냥 이곳에 있을 수만은 없었다.

쿠어어억! 쿠어어어억! 쿠어어억!

어디선가 괴성이 들려왔다.

‘그다.’

자운영은 몸을 날렸다. 방금 정령귀가 내지른 비명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소멸당했을 때 내지른 소리다. 지금 이곳에서 정령귀를 소멸시킬 수 있는 사람은 금장생뿐이었다.

다행히 운무는 옅어져 시계가 상당히 멀리 나왔다. 정령귀도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완벽한 태초의 정적만 흘렀다.

한 식경 정도를 달렸을 때였다.

쉬이익!

잔뜩 부풀었던 무엇인가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곧 협곡은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금장생은 협곡이 왼편으로 꺾이는 부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금장생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무혼과 바타르도 있었다. 무혼은 고생을 많이 한 듯 장포가 엉망이었다.

“부영반님!”

자운영은 반가운 얼굴로 금장생을 향해 뛰어갔다.

“잘 찾아왔네요. 일단 저기 앉아서 뭐 좀 먹죠.”

금장생은 절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동굴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일행은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포 안에서 가방을 꺼내 넣어 가지고 다니던 음식들을 내놓았다.

육포 한 조각을 집어 들던 무혼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절벽 안쪽에서 특이한 기운이 감지됐다. 그건 인간의 기척이 분명했다.

“일부러 여기로 온 거냐?”

육포를 입으로 가져가며 무혼이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

무혼이 물었다.

“혼천과 비슷한 무기를 든 자를 만났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무기?”

무혼은 혼천을 가리켰다.

“적부를 들었더군요.”

“고대에 만들어졌다는 그 적부?”

“네.”

“무공은 어느 정돈데?”

“천 년 공력 이상입니다.”

“…….”

무혼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천 년이란 말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아서다. 공력이란 천 년 이상을 산다고 모아지는 게 아니다. 수천 년을 살아도 부단한 노력과 특별한 기연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게 공력이다. 그런데 그런 공력을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지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는 물었다.

“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천 년 공력을 지녔다는 걸 어떻게 아는데?”

그것도 의문이었다.

자기 공력은 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공력을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다. 금장생이 천 년 공력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궁금했다.

“나와 비슷했거든요.”

“비슷해?”

“네.”

“…….”

무혼은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권말남과 자운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너희들 왜 그러지?”

천 년 공력이란 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바타르는 의아한 얼굴로 무혼과 권말남을 보았다.

“참, 넌 천 년 공력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모르겠구나. 천 년 공력은 본체 상태인 네 목을 날려 버릴 정도로 강해.”

“정말?”

그제야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응.”

“그러니까 저 녀석이 본체 상태인 내 목을 날려 버릴 정도로 강하다고?”

“십 초도 안 걸릴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인간에게 죽는다 이거지?”

바타르는 금장생을 보았다. 그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발산되는 드래곤 파워였다. 드래곤 파워는 금장생을 향해 밀려갔다.

금장생의 몸에서도 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무형의 기운은 곧 유형으로 바뀌어 바타르가 쏘아 보낸 드래곤 파워를 향해 나아갔다. 금장생 바로 앞에서 두 힘이 부딪쳤다. 엄청난 힘을 내포한 기운이지만 충격파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반발력마저도 흡수해 버린 탓이었다.

금장생이 너무 쉽게 드래곤 파워를 받아 내자 바타르의 눈이 커졌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해서 완전하지 않다고 해도, 자신이 발산한 드래곤 파워는 인간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낼 수 있는 세기가 아니다.

놀라움은 곧 더 강한 투기로 변했다.

“네 적은 장생이 아니다, 바타르.”

무혼이 투기의 흐름을 끊었다.

“끙!”

바타르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무혼을 돌아보았다.

“쓸데없는 곳에 힘 낭비하지 말라고.”

“이건 드래곤의 자존심 문제다.”

바타르는 무혼을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인간을 이기면 자존심이 살아?”

“…….”

바타르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이겨도 본전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금장생은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그자가 건륭이라고 생각해?”

무혼은 권말남을 보며 물었다.

“건륭에 대한 평가는 무공은 약할지 몰라도 공력은 고금제일이라고 했어요. 최강의 공력과 사악을 부하로 부리는 두 가지만으로도 건륭이 확실해요.”

“건륭이 원나라 황족이라고 했어?”

“네.”

“그렇다면 황실에 대해 감정이 많겠구나.”

“그럴 거예요.”

권말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엔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무혼은 금장생을 보며 말했다.

“나도 그냥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냥 두는 걸로 하자.”

“네. 이제 밥이나 먹죠.”

일행은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금장생 일행이 협곡을 빠져나간 건 곧바로 건륭에게 보고됐다.

“저대로 둘 겁니까?”

잔능이 물었다.

“없애고 싶은 모양이구나.”

“좌무백보다 더 강한 자 아닙니까?”

잔능이 금장생을 좌무백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 건륭의 상태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와 투구를 벗은 건륭의 입가에 피를 닦아 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건 곧 건륭이 내상을 입었다는 뜻이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잔능이 아는 한 건륭은 중원무림 최강자였다.

일대일로 싸워서 그를 이길 무인이 없다는 건, 주저함이 전혀 없는 확신이었다.

건륭은 그만큼 강자였다.

그런 그에게 내상을 입힌 자가 나타난 것이다.

장차 가장 강력한 적이 될 게 분명했다.

“그대로 둬라.”

“그자는…….”

“그는 중원무림을 놓고 좌무백과 싸울 자다. 굳이 우리가 둘 싸움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일단은 지켜보기만 해라.”

“알겠습니다.”

“사악은 돌아왔느냐?”

“지금 막 왔습니다.”

대답과 함께 부하들을 데리고 춘추오패를 공격하러 갔던 사악 네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건륭과 잔능 앞으로 왔다.

“놈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더냐?”

건륭이 사악을 내보낸 건 단순히 골려 주라는 게 아니었다. 춘추오패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걸 알고 싶어서였다.

“우리에 비해 약하지 않았습니다.”

정악 문자욱이 대답했다.

“비슷하다는 말이구나.”

“우리가 더 나은 면도 있었습니다.”

“어떤 면이 더 나았다는 거냐?”

“우린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지만 그들은 이기기 위한 싸움을 했습니다.”

“우린 이기기 위해서는 비열한 짓도 서슴없이 하는데 그들은 가급적 정당한 방법으로 싸우려고 한다는 거냐?”

“정당한 방법으로 싸우려고 노력하는 건 아닌데, 자기네들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몸에 밴 습관 같은 거란 말이구나.”

“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떠날 준비 해라.”

“떠날 준비요?”

문자욱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잔능을 보았다.

“중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네.”

잔능이 말했다.

“저, 정말입니까?”

“그렇네. 며칠 내로 떠날 거니까 들어가서 준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문자욱은 활짝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사악 네 명은 인사를 하고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여긴 완전히 비우실 겁니까?”

잔능이 건륭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 최소 인원을 상주시켜서 여길 지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잔능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처소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잔 대부!”

잔능이 우뚝 멈췄다.

잔 대부.

오십 년 만에 듣는 호칭이다. 건륭을 데리고 황천가에서 나올 때 자신과 건륭은 신분을 버렸다.

건륭의 몸을 망가뜨려 명나라 황족의 집 앞에 버렸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안에서 사람이 나와 건륭을 데리고 들어갔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치료를 해 주지 않고 내다 버리거나, 몸이 나은 다음에라도 내쫓으면 건륭은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황족은 받아들이기로 한 듯, 보름이 지나도 건륭을 내다 버리지 않았다.

그제야 그곳을 떠났다. 이제부터는 각자 살아야 한다. 어떤 분야가 됐건 성공하면 다시 만나기로 하였고 약속을 지켰다. 자신은 악인십패의 일인인 고루시마가 됐고 그는 실전십패의 일인인 광마투신이 됐다.

그리고 어둠 속에 숨겨 두었던 황천군을 되살려 악인곡을 만들었다.

“네.”

잔능은 몸을 돌렸다.

“후회해 본 적 없어?”

“뭘 말입니까?”

“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시작한 거 말이야.”

“패할 거라고 보십니까?”

“역사라는 배는 절대 후진을 하지 않아, 잔능. 늘 앞으로만 가지. 우리 원나라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패할 거라고 보시는군요.”

“우리 상대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집착하십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

“…….”

잔능은 건륭을 가만히 보았다.

어쩌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다는 꿈은 진작 사라졌다.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건 자신도 건륭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못 하는 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고,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저도 그렇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입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풋!”

건륭은 피식 웃었다.

“클!”

이어 잔능이 웃었다.

“프!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강한 의지가 담긴 것 같은데도 왠지 모르게 공허한 그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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