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39)
방가려의 꿈
‘유!’
금장생의 도가 등을 때리자마자 건륭은 온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몸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밀렸다. 금장생은 왜도를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차릉!
당기는 힘에 의해 왜도가 갑옷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건륭이 앞으로 밀려간 바람에 깊이는 깊지 않았다. 갑옷을 자르는 선에서 끝났다.
앞으로 이동한 건륭은 자세를 낮추며 적부를 왼편으로 휘둘렀다. 적부는 바닥에서 두 자 높이 공간을 횡으로 잘랐다.
금장생은 왜도를 바닥에 꽂으면서 몸을 띄웠다. 왜도에 체중을 싣고 약간 누운 상태에서 왼편으로 돌며 두 발을 연거푸 차 댔다. 두 발이 노리는 곳은 자세를 낮춘 건륭의 머리였다.
“응?”
건륭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실전의 달인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상대 또한 주어진 상황을 완벽하게 이용해서 싸우는 실전 고수였다. 도끼를 이대로 휘두르면 상대의 무기를 잘라 내는 건 가능하겠지만 머리에 타격을 입는다.
자신이 손해였다.
건륭은 내공을 머리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엎어졌다.
휙!
그 순간 발을 지지대 삼아 금장생이 벌떡 일어났다. 허공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허공답보 신법을 펼치는 무인에게는 가능했다.
순식간에 절하는 자세의 건륭의 등을 점유한 금장생은 무릎을 굽히며 아래로 떨어졌다.
무릎 공격이었다.
홱!
건륭은 절을 하는 자세 그대로 오른편으로 구르며 적부를 휘둘렀다. 금장생은 왜도로 다리를 보호했다.
차앙!
무기가 부딪친 반발력을 이용해 물러난 후 자세를 잡으며 내려섰다. 건륭 또한 훌쩍 물러나며 자세를 잡았다.
“차하!”
먼저 움직인 사람은 금장생이었다.
그는 기합과 함께 건륭을 향해 쏘아져 갔다.
“타하!”
건륭은 왼팔을 들어 올렸다가 빠르게 내렸다.
쿠어억! 쿠어억! 쿠어억!
순간 운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정령귀들이 일제히 금장생을 향해 내리꽂혔다.
“파이어!”
달려가는 금장생의 왼팔 악마수에서 새하얀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오십 개 모두로 펼치는 백안이었다. 금장생 위편에서 백색 폭풍이 일었다.
백안을 펼치면서도 금장생은 멈추지 않고 건륭을 향해 달렸다.
“차하!”
그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번쩍!
새파란 광채가 왜도에서 폭발했다.
가장 먼저 배웠고 가장 익숙한 무공인 뇌섬류였다.
“억!”
건륭은 급하게 적부를 들어 올렸다. 원래는 적부 날로 막아야 하는데 뇌섬류가 워낙 빨라 도끼 자루를 가져다 댔다. 워낙 강한 쇠로 만들어진 무기라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방어 무기가 됐다.
카라랑!
건륭 바로 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웃! 차하!”
신음과 내기를 가득 머금은 기합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건륭은 손가락으로 금장생을 가리켰다. 그러자 백안에 의해 잘려 나갔던 흙기둥이 다시 머리를 들이밀며 금장생을 향해 수십 개의 촉수를 쏟아 냈다. 촉수는 하나하나가 쇠의 기운을 머금어 창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강했다.
금장생은 건륭 앞으로 바싹 붙었다.
혼자만 정령귀의 표적이 될 수는 없었다. 건륭 앞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도를 휘둘렀다.
도를 휘두르면서도 감각으로 뒤편을 살폈다.
창! 창창! 창!
정확하게 네 번을 휘두르고 철판교 수법으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자 그를 노렸던 정령귀 촉수가 건륭을 향해 쏘아져 갔다.
“차앗!”
곧바로 촉수를 따라 몸을 날렸다.
“돌아가라!”
건륭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그를 향해 쏘아져 가던 촉수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차하!”
금장생은 악마수를 앞으로 내밀며 발사 명령을 내렸다. 곧바로 백안이 발사돼 촉수를 없앴다. 보통 흙으로 변한 촉수는 힘없이 떨어졌다. 금장생이 악마수로 촉수를 없애는 그 짧은 시간은 밀리던 건륭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였다. 그는 벼락같이 적부를 휘둘렀다.
순간 도끼날로 이루어진 붉은 폭풍이 일었다.
폭풍은 곧장 금장생을 향해 날아갔다.
“타하!”
금장생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금장생은 왜도를 앞을 쭉 내밀었다. 순간 왜도 끝으로 모든 기운이 몰려들었다. 기운이 정점에 이르자 둥글게 원을 그렸다.
푸아악!
딱히 어떤 색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기운이 붉은 폭풍을 뚫었다. 일월대사가 남긴 일원이었다.
“헉!”
건륭은 질겁했다.
느닷없이 자신이 펼친 무공을 부수며 거대한 기운이 쏘아져 왔다. 건륭은 미친 듯이 적부를 휘둘러 방어막을 생성했다.
그 앞으로 수십 겹의 막이 생겨났다.
쿵! 쿵쿵쿵! 쿵쿵!
기운은 적부로 만든 막을 부수며 쏘아져 갔다.
“타하!”
건륭은 다시 다섯 겹의 막을 더 만들었다.
쿵쿵쿵쿵! 쿵쿵!
특이한 기운은 다섯 겹을 다 뚫었다. 건륭은 다시 적부를 휘둘렀다. 적부의 이번 목표는 특이한 기운이었다.
콰앙!
적부는 특이한 기운을 후려쳤다.
“크윽!”
건륭은 나직하게 비명을 내지르고는 뒤로 물러났다. 금장생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발자국 다섯 개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발자국을 흘끔 바라본 금장생은 건륭이 사라진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달려가는 그의 왼손 손가락 사이에는 백사아가 기워져 있었다.
푸아악!
달려가는 그를 향해 흙더미가 들이닥쳤다. 흙더미는 좌우 폭이 오 장이고 높이가 십 장에 달했다. 두께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타하!”
먼저 악마수로 백안을 펼쳤다. 백색 원반 오십 개가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차하!”
백안이 흙더미를 헤집어 놓는 순간 기합과 함께 건륭이 튀어나왔다.
“기다렸소.”
금장생은 그 자리에서 빙글 돌면서 백사아를 던졌다.
“차하!”
이미 준비가 돼 있던 터라 건륭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혈인광령부를 펼쳤다.
차르릉! 카르릉! 카라라랑!
놀랍게도 건륭은 백여덟 자루나 되는 무망을 모두 막아 냈다. 백사아가 돌아오기도 전에 흑사아를 뽑아 던졌다. 흑사아가 날아가자 새카만 폭풍이 몰아쳤다.
이번에도 역시 건륭은 흑사아를 방어해 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정령귀를 이용해 금장생을 공격했다.
두 사람의 싸우는 광경을 자운영은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사실 그는 이기어검술을 익힌 고수나 그 이상의 무인이 싸우게 되면 형체는 없고 무기만 번개처럼 오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은 무공에 막 입문한 자가 싸우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은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무기를 휘두르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격을 하기도 한다.
물론 삼류무인들이 싸우는 것과는 위력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삼류무인들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으면 피가 나지만, 저들은 스치기만 해도 그 부분이 가루로 흩어진다. 일검 일검에 모든 힘을 모으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주공도 주공이지만 저자는…….”
금장생보다 더욱 놀라운 자는 바로 건륭이었다.
그다지 강해 보이지도 않는 그가 도끼질을 하거나 손을 흔들면 하늘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한 힘이 흘러나온다.
“저 힘은 내공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다. 고로 저자는 건륭이다.”
자운영은 비로소 건륭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
그사이 금장생은 세 번째 원을 그려 내고 있었다. 또다시 딱히 정의하기 힘든 기운이 쏘아져 나가고 적부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이번에는 건륭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전 내공을 적부로 쏟아부어 일원의 기운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카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일원으로 만든 기운이 소멸되고 도끼는 튕겨져 나갔다.
쿵쿵쿵! 건륭은 무려 열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무공이었다. 익힌 무공은 한 가지뿐이지만 남이 펼친 무공은 수천 가지도 넘게 보았다. 그 무공들 중 방금과 같은 건 처음이었다.
빛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 기운 속에 천지간의 힘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것은 정녕 하늘의 힘이었다.
만일 일천 년 이상으 내공을 지니지 못했다면 처음 공격을 받았을 때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받아 낸 이상 패하진 않는다.’
건륭은 적부를 그러쥐었다.
방금 그 무공을 넘어설 자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패할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이렇게 되면 결국엔 내공 대결로 이어지게 될 테고 승자는 내가 되겠지. 저놈이 없다면.’
건륭의 시선이 금장생 뒤에 있는 자운영에게로 향했다. 비무가 내공 대결로 치달았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타인의 방해다. 물론 내공 대결을 하는 역장 속으로 들어가면, 내공이 약한 자는 갈가리 찢겨 나가고 만다. 하지만 역장 밖에서 암기나 혹은 내공을 끌어 올리는 데 방해를 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강구하게 되면 자신이 당한다.
내공 대결은 불가다.
‘그렇다면!’
건륭은 정령귀들에게 의지를 보냈다. 그가 보낸 의지는 공격 명령이었다.
쿠어어억! 크아아아! 캬아아아아아!
정령귀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내리꽂혔다. 이번엔 직접 노리는 게 아니라 금장생 주위에 머리를 박아 넣고 벽을 세운 다음 한 방 먹여 줄 참이었다.
자신이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금장생은 지켜만 보았다.
퍽! 퍽! 퍽!
정령귀 머리는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스스스!
정령귀는 흙을 이동해 금장생 주위로 벽을 만들었다.
“나는 벽을 별로 안 좋아해.”
금장생은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있지만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도할 수가 없었다. 만일 갇히기라도 하면 적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될 뿐이다.
“응?”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거대한 흙덩어리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고 있었다. 재빨리 감각을 퍼뜨렸다. 적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감각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는 내 위치를 아는데 나는 모른다.’
금장생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정령귀의 주인인 정령귀와 의사 전달이 가능하니까 땅 안쪽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적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금장생은 올라가던 걸 멈추고 땅속으로 몸을 던졌다.
‘오뇌호령 총소만령!’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면서 뇌신을 소환했다. 곧 뇌신의 일부가 된 그는 땅속에 웅크리고 있는 정령귀를 찾아 움직였다. 정령귀는 멀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적과 싸우기 전에 없앴던 정령귀와 비슷했다. 암왕칠구와 뇌신의 창을 이용해서 정령귀를 없앴다.
그리고 곧바로 이동했다. 적이 데리고 온 정령귀들이라 그런 듯 십오 장이란 영역을 무시하고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들 역시 소멸시켰다.
정령귀들이 발광을 했지만 뇌신 앞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잠시 후 정령귀 다섯 마리를 전부 소멸시켰다.
‘이제!’
왜도를 앞으로 쭉 내밀고 천천히 올라갔다. 이미 일원을 펼칠 준비는 끝났다. 지면이 가까워지자 적의 기척이 감지됐다.
자신이 데려온 정령귀가 소멸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몸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기운으로 판단하건대 그렇다는 말이다.
“이건 선물입니다.”
금장생은 일원을 펼쳤다.
푸아악!
일원은 흙을 가루로 만들며 건륭을 향해 쏘아져 갔다.
“헉!”
건륭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는 적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땅속으로 숨은 금장생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발밑에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쏘아져 온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당황시켰던 그 기운이었다.
“차하!”
늦었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물속의 물고기를 잡는 조사처럼 적부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