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75화 (375/524)

황금가 (375)

“수고했습니다.”

금장생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유공을 따라갔다. 마가는 태극천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맨 위쪽에 나란히 있는 두 채는 전가 숙소이며 그 아래쪽이 암가 숙솝니다. 세 번째는 우리 마가 처소고, 저기 보이는 건물은 해가에서 사용합니다.”

유공은 태극천 서쪽에 서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 주었다. 서쪽에는 두 채씩 쌍을 이뤄 총 여덟 채의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동쪽은 위에서부터 사가, 화가, 철가, 혈가 순으로 사용합니다.”

“다른 가문은 왔나요?”

“마왕께서 가장 먼저 오셨습니다.”

“그렇군요. 갑시다.”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일행은 마가 처소에 도착했다. 대문 위 현판에 마가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 인원이 많은데 모두 잘 곳이 있나요?”

금장생은 건물을 보며 물었다. 돌로 지어진 사 층짜리 건물이었다. 오른편 끝에서 왼편 끝까지 거리는 십이 장 정도 돼 보이고 앞뒤도 비슷했다.

“부족하면 바로 옆에 있는 암가 건물을 이용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 안쪽에는 정원이 있었는데 정원 가운데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저 물은 호수에서 끌어온 건가요?”

금장생은 호수를 가리켰다.

“열여섯 채 건물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은 팔왕대에서 끌어옵니다.”

“끌어온다는 건 수로가 있다는 말 같은데, 맞나요?”

“건물 지하에 수로가 있습니다. 각 건물에서는 그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을 사용하고요.”

“지하에 수로까지 만들 정도면…….”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하에 수로를 만들 정도면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조성했다는 뜻이 된다. 단순히 팔왕을 뽑는 비무를 치르기 위한 장소로는 규모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무를 치르기 위한 장소로는 규모가 너무 큰 것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유공이 물었다.

“군사는 그런 생각해 보지 않았나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과거에 대한 기록 같은 게 없어서요.”

“언제부터 여기서 천왕지회를 개최한 거죠?”

금장생이 물었다.

“그 역시…….”

“춘추시대 때부터라고 들었네.”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적순우였다.

“그럼 이천 년이 넘었다는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네.”

“기록이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하겠네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섰다. 문은 높이와 폭이 일 장 정도였는데 재질이 돌이었다.

유공은 석문을 왼편으로 밀었다.

석문이 열리고 내부가 드러났다. 일 층은 수십 개의 기둥만 세워져 있는 거대한 대전이었다.

―생각났어요.

그때 불여하가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뭐가요?

―여긴 우리가 이방인들과 전쟁을 하면서 만든 최후의 보루예요.

―최후의 보루라는 건, 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든 곳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하지만 우린 여길 보지 못했어요.

―여러분들이 데스 나이트가 된 이후에 세워진 곳이란 거군요.

―그런 것 같아요.

―일 층은 어떤 공간이죠?

―우리가 설계할 때 지하와 일 층은 병사들 집합 장소였어요.

―지하도 있어요?

금장생은 바닥을 훑었다. 하지만 바닥 어디에도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지하실도 있나요?”

금장생은 유공을 보며 물었다.

“없습니다. 그건 왜?”

“왠지 지하실이 있을 것 같아서 해 본 말입니다.”

금장생은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부터가 본격적인 숙소였다.

“이 층과 삼 층에는 각각 열다섯 개의 방이 있고 사 층에는 다섯 개가 있습니다.”

유공은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가재도구도 모두 석재네요?”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건물은 의자는 물론이고 탁자, 옷장까지 모든 가구들이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덕분에 천왕지회 준비 비용이 많이 절약됐습니다.”

유공은 웃으며 말했다.

“비용 절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납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으며 위로 올라갔다.

그는 삼 층은 건너뛰고 사 층으로 올라갔다.

사 층의 방은 모두 호수 쪽으로 나 있었다. 금장생과 아수수 처소는 가장 오른편에 있는 큰 방이었다. 외부는 석재지만 내부 벽 마감은 목재였다.

이번에 목재를 바꾼 듯 나무 향이 실내 가득 떠돌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켜자 머리가 맑아졌다.

창은 방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창 앞에는 햇빛 차단용 주발이 늘어져 있었다.

주발을 옆으로 밀자 창이 나왔다.

창의 전체 폭은 여섯 자고 두 자마다 기둥을 세우고, 그 안쪽에 여닫이창을 두 개 달았다. 창틀과 창살의 재질은 쇠였다. 햇빛과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붙인 건 얇은 천이었다. 보통은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데 오래 쓰기 위해 천으로 마감을 한 모양이었다.

실내는 두 부분으로 구분돼 있었다.

창이 있는 곳은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응접실이고 침실은 창 반대편에 있었다. 침실로 들어가는 문은 나무였다.

금장생은 창을 열었다. 밖으로 밀어서 여는 구조였다. 창을 열자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밤에 시원하게 자려면 문은 다 열어야 해요.”

아수수는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침실 창문도 열었다.

금장생은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 밖은 정원이었다. 방을 만들고 남은 공간으로 정원을 조성한 모양이었다.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나무들 아래로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한여름엔 최고의 명당자리가 될 것 같았다.

“신기한 거 보여 줄게요. 와 보세요.”

아수수는 금장생을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 신기한 게 있어요?”

“네. 이거예요.”

아수수는 욕조 한쪽 끝에 달려 있는 거북 조각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거북 조각은 욕조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수수는 거북 조각 머리에 손을 대고 내기를 주입하면서 ‘물’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거북의 입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맙소사, 마법?”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거북의 머리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하는 방법은 그가 아는 한 마법뿐이다. 놀랍게도 팔장군의 후예들은 이 건물을 만들면서 마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방금 제가 한 기술을 아세요?”

마법이라 소리친 금장생의 말을 들은 아수수가 물었다.

“이방인들이 건너올 때 가져온 기술 중의 하납니다. 하지만 모두 사장돼 현재까지 전해지는 건 없습니다.”

“그 기술을 마법이라 부르는 모양이죠?”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기술이 있었더라면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됐을 텐데, 아쉽네요.”

아수수는 다시 거북 머리에 손을 대고 ‘멈춰’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나오던 물이 멈췄다.

두 사람은 욕실에서 나왔다. 방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에 두 사람 짐이 들어 있는 궤짝이 올라왔다.

아수수는 궤짝을 가져온 시비에서 옷을 집어넣을 옷장을 가르쳐 주었다.

“이거 입을래요?”

아수수가 태극선의를 가지고 나오며 물었다.

“네.”

금장생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태극선의로 갈아입었다. 금세 온몸을 잠식하던 열기가 사그라졌다.

그는 빙긋 웃었다.

“차 준비해 두었어요.”

그때 밖에서 사미염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

금장생은 아수수를 보았다.

“백팔무영비 비주에게 차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가요.”

아수수는 금장생을 잡아끌어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사미염은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복장은 여전히 몸에 찰싹 달라붙은 야행복이었다.

“대낮에 그 옷을 입는 게 민망하지 않아?”

아수수가 사미염을 흘겨보며 말했다.

“근무복인데 뭐?”

사미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야간 근무복이잖아.”

“야간 근무복은 검은색이잖아. 이건 흰색이고.”

“아예 홀라당 벗지 그래?”

아수수가 비꼬았다.

“난 최고의 은신술을 펼치려면 어차피 다 벗어야 하는데, 낮 근무복을 살색으로 바꿀까?”

“살색?”

“네 말대로 하겠다는 거지 뭐.”

“죽고 싶어?”

아수수는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았다.

“벗으라며?”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험!”

금장생은 헛기침을 했다.

“참! 차 드세요.”

사미염은 찻잔을 들어 금장생 앞으로 내밀었다.

“험! 비주의 근무복이 갈수록 멋있어집니다.”

금장생은 찻잔을 받아 들며 말했다.

옷 색이 흰색이라 그런지 속살이 은은하게 비쳐 보였다. 특히 가슴 부분은 더욱 도드라졌다.

“예쁘게 봐 주셔서 고마워요.”

사미염은 활짝 웃었다.

“꼬리 좀 그만 쳐, 이것아.”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라 나도 어쩔 수 없어.”

사미염은 혀를 쑥 내밀었다.

그때 인기척이 났다.

사미염은 얼른 찻잔을 내려놓고 은신술을 펼쳤다. 금장생과 아수수 쪽으로 다가온 사람은 유공이었다.

“해왕이 도착하셨습니다.”

“그래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막 천구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해왕과 식사를 할 거니까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유공은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금장생이 무혼을 만난 건 반 시진 후 마가 처소 이 층 접객실에서였다. 무혼은 바타르, 천마, 태월령 그리고 진가장 가주 백리장광과 함께 들어왔다.

“오서 오십시오.”

금장생은 인사를 했다.

―모르는 체해 주세요.

그는 고개를 숙이면서 무혼에게 전음을 보냈다.

―알았다.

“처음 뵙습니다. 난 무혼입니다.”

무혼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을 소개시켜 주었다.

금장생은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가 금장생은 무혼을 따로 불러 사 층으로 올라갔다.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냐?”

무혼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팔왕이 될 생각인지 알고 싶어서요.”

“너만 양보해 준다는 팔왕이 될 생각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무림을 통일하고 황제가 된 후에 전 무인을 이끌고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가야지.”

“가서는 어떻게 할 건데요?”

“크로노마스 그놈을 없애고 황제가 될 거다.”

“크로노마스는 누굽니까?”

“샤이칸드리아 대륙에서 신 노릇을 하고 있는 놈이야.”

“그에게 약점을 잡혔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포로로 잡고 있어.”

“그럼 크로노마스 그자가 그분을 인질로 무 형을 협박한 거군요.”

“맞아. 놈은 내게 중원을 식민지로 만들 걸 요구했어.”

“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그 시작이 바로 팔왕이 되는 거다.”

“팔왕이 되는 걸 잠시 미루면 안 되겠습니까?”

“네가 팔왕이 되고 싶은 거냐?”

“아닙니다. 팔왕 자리를 화왕에게 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화왕?”

무혼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사실 화왕은 중원인이 아닙니다.”

“그럼?”

“그는 신족입니다.”

“정말?”

“그리고 천마 영감님과 함께 활동했던 잠마이기도 합니다.”

“그게…….”

무혼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것 말고도 아주 많은 신분을 가진 잡니다.”

“만일 비무를 하면 내가 패할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만 그자에게 팔왕 자리를 넘겨주고 싶습니다.”

“왜 그놈이라야 하는 거지?”

“그래야 신족의 나머지 세 장로와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족의 세 장로는 또 무슨 말이야?”

“잠마 헌원소야를 포함해서 신족 사장로가 모두 두 살아 있습니다.”

“장로 세 명은 어디 있는데?”

“황실에 있습니다.”

“황실?”

“네.”

“수천 년씩 산 놈들이 신하를 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고, 황제냐?”

“네. 얼마 전에 황제가 됐습니다.”

“황제가 바뀌었다는 말은 없었는…… 진짜 황제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구나.”

무혼은 바로 알아차렸다.

“네.”

“그럼 잠마 그놈과 세 장로는 어떤 사이지?”

“잠마, 즉 라헬은 자신들의 왕을 내쫓았고 세 장로는 잠마를 추방했습니다.”

“서로 척을 진 사이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들이 손을 잡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세 장로는 명나라 주인이면서 춘추오패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끙!”

무혼은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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