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332화 (332/524)

황금가 (332)

금장생이 두강양조 사장 이하운를 만난 건 나흘 후였다. 이하운은 중간 키의 평범한 얼굴을 한 사내였다.

“이하운입니다.”

이하운은 인사를 했다.

“처음 뵙습니다,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포권을 취했다.

“루주로부터 듣기론 환희루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하더군요.”

이하운은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이하운이 가장 먼저 보는 건 눈이다. 눈빛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곤 하는데, 눈동자가 맑은 사람이면 일단 신뢰하는 편이다. 그런데 금장생의 눈빛이 상당히 맑았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만 받았을 뿐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도 루주가 모두 하고 있고요.”

“그렇군요. 그런데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루주가 말하길 자금 사정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루주는 입이 무거운 줄 알았는데…….”

“두강양조를 알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극락루를 조사하다가 우연치 않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루주는 아무 잘못 없습니다.”

“극락루요?”

“한 달 전인가 극락루에서 고용한 자객들이 대거 환희루로 쳐들어온 적이 있거든요. 처음엔 어디서 보냈는지 몰랐는데 그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배후가 극락루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자들이 환희루에도 손을 뻗쳤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시 공격을 해 올 거 같아서 그쪽의 약점을 잡기 위해 조사를 하다가 두강양조에 대해 알게 된 겁니다. 물론 조사로 알 수 없는 깊은 내막은 루주로부터 들었고요.”

“그랬군요.”

이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습니까?”

“알려는 이유가 뭡니까?”

이하운은 물었다.

“만일 두강양조에 큰 문제가 없고 단기적인 자금 흐름만이 문제가 된다면 투자를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투자라고요?”

이하운의 눈이 커졌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겁니까?”

“투자 금액은 내 지분에 따라 결정될 것 같습니다.”

“지금 결정해야 하는 겁니까?”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두강양조가 자금 압박에 시달린 건 수금이 제때 되지 않아섭니다.”

“지금 받지 못한 돈이 얼마나 됩니까?”

“삼백만 냥입니다. 그 돈을 받아 내면 전장에서 빌린 돈 이백오십만 냥을 갚고도 오십만 냥이나 남습니다.”

“수금을 해 주지 않는 곳이 얼마나 됩니까?”

“백오십 군뎁니다.”

“그들 중에는 극락루도 포함돼 있겠죠?”

“네.”

“루주에게 듣기론 전장에서 빌린 돈이 이백만 냥이라고 하던데.”

“오십만 냥은 그동안 밀린 이잡니다.”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극락루에서 전장에서 빌린 돈을 포함하여 삼백만 냥을 제시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걸 어떻게……?”

이하운의 눈이 커졌다. 극락루에서 인수 금액으로 삼백만 냥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미우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금장생이 알고 있었다.

“내가 제법 강한 정보력을 지니고 있거든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맞습니다.”

이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받은 게 벌써 한 달 전이었다. 그동안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빌려준다는 전장은 없었다. 오히려 돈을 주지 않는 주루와 거래를 끊는 게 낫지 않느냐는 충고만 들었다.

“그럼 난 같은 금액에 오 할 일 푼을 제시하겠습니다.”

“삼백만 냥에 지분 오 할을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오 할이 아니고 오 할 일 푼입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제삼자에게 넘길 때 동업자인 나에게 가장 먼저 상의해야 한다는 조건도 수락해야 계약이 성사됩니다.”

“내 지분은 사 할 구 푼이 되는 거군요.”

“하시겠습니까?”

“생각을 좀…….”

“여기서 결정해야 합니다. 내 제안은 지금 이 순간에만 유효합니다.”

“한 식경만 시간을 주십시오.”

“좋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하운은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이하운이 안으로 들어온 건 정확하게 한 식경 후였다.

“하겠습니다.”

이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금장생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냈다. 그가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식과 계약하는 방식은 늘 같았다. 돈 역시 삼백만 냥을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두강주가 지금은 하남성에서만 유통되고 있지만 앞으로 일 년 안에 전국으로 뻗어 나갈 겁니다. 그럼 사장님은 지금과 같은 규모의 양조장을 두 개는 더 지어야 할 겁니다.”

“유통망을 확장하실 참입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니까 우선 술값을 받아 낼 궁리부터 해 보지요.”

“받아 낼 방안이 있습니까?”

“돈을 받아 내는 건 내 전문입니다. 녀석들은 앞으로 한 달 안에 미수금을 전부 토해 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우리가 을乙이었지만 돈을 받으러 다니는 순간 갑甲이 될 겁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 * *

똑똑똑!

손톱을 다듬던 여자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사람이 많은 곳에 던져 놓아도 금세 눈에 띌 정도로 미인이었다. 가슴이 살짝 드러날 정도로 파격적인 옷을 입은 이 여자는 정주 최고 주루인 극락루 루주 헌원유로 별호는 천상화였다.

천상화 헌원유는 화가 가주 헌원소야의 딸로 객잔업 총괄이었다.

“들어와!”

여자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손톱 다듬는 일에 열중했다. 문이 열리고 사내가 들어왔다.

사내는 극락루 총관인 제갈영우였다.

제갈영우는 전에 금장생이 발굴한 강시들을 탈취하기 위해 구성된 대외사의 군사를 맡았던 자였다.

해체된 대외사에서 제갈영우를 데려와 극락루 총관으로 앉힌 사람이 헌원유였다.

“무슨 일이야?”

헌원유는 제갈영우를 보며 물었다.

“두강양조 사장 녀석이 정신이 나간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수금을 해 갔다고 합니다.”

“수금을 해 가?”

“네.”

“어떻게?”

“폭력배들을 동원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협박을 했다는 거야?”

“네.”

“몇 군데나 털렸는데?”

“지난 닷새 동안 우리 가게 중 스무 곳이 털렸답니다.”

“달란다고 ‘네,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준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왜 내준 건데?”

“돈을 받으러 온 자들이 몸에 가격을 매긴 모양입니다.”

“어떻게 매겼는데?”

“손가락은 하나에 한 냥, 오른팔은 다섯 냥. 왼팔은 넉 냥. 오른 다리는 여섯 냥, 왼 다리는 다섯 냥. 눈은 하나에 석 냥, 코는 두 냥, 혀는 열 냥으로 계산했다고 합니다.”

“돈이 없다고 하면 방금 말한 것들을 자른 거냐?”

“제가 말한 건 자른 순섭니다. 보통 손가락이 끝나고 오른팔이 잘리면 대부분 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봤어?”

“거인파라는 조직입니다.”

“거인파?”

“신생 조직입니다.”

“규모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오십 명입니다.”

“그래? 거인파 두목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당장 천상대 대원을 출병시키겠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숙였다. 천상대는 헌원유가 거느린 세력이었다. 그 정도면 조폭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거라고 확신했다.

밖으로 나온 제갈영우는 극락루 지하로 갔다.

그곳이 천상대 대원들이 머무는 장소였다.

“어서 오십시오.”

붉은 무복을 걸친 여자가 제갈영우를 맞았다. 그녀는 천상대 대주 적호赤狐 유가영이었다.

“출병이다.”

“환희룹니까?”

유가영이 물었다. 환희루에는 청산해야 할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그럼?”

“루주께서 거인파라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을 보고 싶어 하신다.”

제갈영우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가 내민 종이에는 거인파 근거지를 비롯하여 구성원에 대한 것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알겠습니다.”

유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출병 명령을 하달했다. 천상대 대원들은 곧바로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친 천상대 대원 일백 명이 극락루를 나선 건 어둠이 내린 후였다. 극락루를 나선 그들은 빠르게 내달려 정주 최고 번화가로 향했다.

제갈영우가 가르쳐 준 거인파 근거지는 정주 중앙 시장 끝에서 동서로 흐르는 양하 북쪽에 있었다.

그곳에는 거인파 근거지와 하오밀문 지부 그리고 또 다른 조폭 조직의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천상대 대원들은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해시亥時가 되자 주위는 완벽한 어둠에 휩싸였다.

“가자.”

유가영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이렇듯 거리낌 없이 걷는 건 조폭이란 말 때문이었다. 상대가 무림 세력이라면 기습을 한다거나 건물에 불을 질러 시선을 유도한 다음 공격을 하는 등의 작전을 세웠겠지만, 덩치가 조금 큰 조폭들이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안에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했다.

조폭들은 안에 있었다.

안에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거치적거리는 놈들은 제거하고, 두목이 누군지 물어본 후, 찾아서 끌고 나오면 된다.

유가영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도망치는 놈들은 막아야겠지.”

유가영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을조는 건물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가 도망치는 놈들이 있으면 없애.”

“존!”

대원 오십여 명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을조 대원들이 건물을 포위하고 나자 갑조 대원들에게 진입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정문 앞에서 기다렸다.

대원들을 인솔해서 건물로 들어간 자는 갑조 조장 임사역이었다. 화가火家 가솔로 살아가는 바람에 강호무림에 이름이 나진 않았지만 임사역은 상당히 강자였다.

“열어라!”

문 앞에 선 임사역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대원 중 한 명이 문을 밀었다.

끼익!

거북살스러운 소리가 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응?”

임사역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게 한 식경 전이다. 그런데 불이 꺼져 있음은 물론이고 사람의 기척도 감지되지 않는다.

“벌써 나갔을 리는 없고…….”

임사역은 자신을 보는 부하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부하들은 잔뜩 경계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이어 다른 이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맨 마지막으로 들어간 자는 임사역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넓네.”

안으로 들어간 임사역이 느낀 점이었다. 밖에서 본 건물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천상대 대원 오십 명이 들어왔는데도 가득 찼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길이가 길어서 그런 거였네.”

임사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들어온 건물은 폭이 좁을 뿐 길이는 보통 건물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긴 너무 어두운데.”

임사역은 눈에 내기를 모았다. 아무리 해시가 넘고 건물 안에 불이 꺼져 있다고 해도 이곳은 너무 어둡다. 게다가 으슬으슬한 기분마저 든다.

“공동묘지에 들어온 것 같지 않아?”

누군가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임사역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묘지.

서늘하면서도 눅눅한 이곳 분위기를 나타내는 가장 적당한 표현이었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임사역은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 초가 있습니다.”

그때 내부를 더듬던 대원 한 명이 소리쳤다.

“불을 밝혀라!”

임사역의 말이 떨어지자 대원은 곧바로 촛불을 켰다. 하지만 촛불이 너무 약해 실내의 어둠을 몰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기도 촛불이 있습니다.”

“여기도 촛불이 있습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대원 십여 명이 동시에 소리쳤다.

“모두 불을 밝혀라!”

임사역은 소리쳤다.

파앗! 파앗! 파앗! 파앗! 파앗!

거의 동시에 촛불에 불이 밝혀졌다. 그리고 실내를 채우고 있던 어둠이 빠르게 물러갔다.

“억!”

“헉!”

“허억!”

여기저기서 놀람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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