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31)
“잘 먹겠습니다.”
금장생은 젓가락을 들었다. 오랜만에 먹는 엄마가 해 준 밥이라 그런지 꿀맛이었다. 금장생은 정신없이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형들이 생각나 질문을 했다.
“형들은요?”
“열심히 장사하고 있다.”
금고웅이 대답했다.
“힘들어하지 않아요?”
“출가를 경험하고 나면 무서울 게 없는 법이다.”
“혹시 그 출가가 집안이 망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든 규율인가요?”
열다섯 살이 되면 집을 나가 세상을 경험하는 출가가, 망했을 때를 대비한 훈련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출가 기간 중 장사를 하다가 망해도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비빌 언덕이 아주 없는 사람과 마음가짐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경험을 해 본 것과 해 보지 않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두 형이 어려움을 견디고 있다면 출가 경험 덕분일 것이다.
“그것과는 상관없어, 녀석아.”
금고웅은 웃으며 말했다.
곧 자리를 떴던 윤금이가 돌아왔다. 윤금이는 이것저것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금장생 입으로 넣어 주었다.
금장생은 배가 부른데도 내색하지 않고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미우 말로는 무공도 엄청나다고 하던데. 누구에게 배운 거냐?”
“이 반지를 주신 분께서 무공을 가르쳐 주셨어요.”
금장생은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그 반지의 주인이 전대 쇼군이냐?”
“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배운 무공 말고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냐?”
“루주의 실력이 어느 정도죠?”
“미우 말이냐?”
“네.”
“무림 백대고수를 꼽는다면 말석을 차지할 게다.”
“제 일 초 상대도 안 됩니다.”
“…….”
윤금이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는 한 아들 금장생은 열다섯 살 때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물론 어렸을 때 벌모세수를 받아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최고의 체질로 바뀐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우가 일 초 상대도 안 된다는 건 솔직하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안 믿어지세요?”
금장생은 웃으며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구나.”
윤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세요.”
“정말 그렇게 강하단 말이냐?”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안에 처음으로 초절정 무인이 나왔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금이는 여전히 아들 금장생이 초절정 고수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걸 보면 믿어 주려나 모르겠네.”
금장생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가드헬을 뽑아냈다.
“그건?”
장심을 뚫고 솟구치는 물체를 보며 윤금이는 경악했다. 그녀 역시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 가드헬의 무서움을 바로 알아보았다.
“제가 장담하건대 강호무림에서 이 녀석을 받아 낼 무인은 다섯 명도 안 됩니다.”
금장생은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그러자 가드헬이 손바닥 안으로 사라졌다.
“최고다.”
윤금이는 활짝 웃었다. 무공에 대한 금장생의 자신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아버진 엄마와 생각이 다른 것 같은데요?”
금장생은 눈빛으로 아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금장생의 아버지 금고웅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네 아버질 잘 알잖니. 쫄딱 망해 먹고 나서도 장사꾼은 무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꺾지 않고 있단다.”
“우린 수백 년 동안 그렇게 살았고 그동안 문제가 없었소. 문제가 생긴 건 이번이오. 그 한 번을 가지고 우리 가문의 전통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소.”
금고웅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무공을 익힌 걸 어떻게 하라고요?”
금장생이 말했다.
“상계와 무림에 양다리를 걸치겠단 말이냐?”
“걸치겠다는 게 아니라 무인 세력화 하지 않으면 또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왜 망한다는 거냐?”
“우리 황금전가를 몰락시킨 자들이 누구인지 아세요?”
“그걸 알아낸 게냐?”
금고웅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그동안 황금전가를 몰락시킨 자들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다가 무림 세력이 관련됐다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가 알아낸 건 거기까지였다.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 본격적인 조사를 할 수도 없었지만, 상인들도 황금전가 몰락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거대한 어떤 힘이 작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냐?”
금고웅은 다급하게 물었다.
“태양상인과 상천금가가 힘을 합쳐서 우리 황금전가를 몰락시킨 거예요.”
“그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거냐?”
“태양상인의 주인은 무림세가의 한 곳인 혈가고 상천금가의 주인은 화가예요. 그 두 세력은 서로 힘을 합치고 무인을 동원해서 황금전가를 무너뜨린 거예요.”
“그래서 황금전가의 복수를 하겠다는 거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황금전가처럼 당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래서 무공으로 막겠다고?”
“무공으로 방어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면?”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도록 철저하게 뭉개 버릴 겁니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엔 망한다.”
“망할지 더 번창할지는 두고 봐야겠죠.”
“십 할의 성공 확률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어도 구 할 이상 망한다는 걸 아느냐?”
“무인만 끼어들지 않으면 제 사업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네 사업이니까 알아서 해라만…….”
금고웅은 말끝을 흐렸다.
“나는 막내를 믿어요.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환희루도 막내에게 맡길 거예요.”
윤금이가 말했다.
“여보.”
금고웅은 윤금이를 보았다.
“적은 상인이 아니라 칼을 든 강도예요. 맨손으로 강도와 싸우면 맨손인 자가 무조건 저요. 우리도 칼을 준비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칼이 바로 막내고요.”
윤금이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정말 맛있네요.”
금장생은 소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가 먹은 건 소고기를 양념해서 불에 살짝 구운 양념 소고기 구이였다. 질기지도 않고 아주 맛있었다.
“그래, 많이 먹어.”
금장생의 화제를 돌리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챈 윤금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도 안 다치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살자고요. 돈이야 먹고살 만큼만 있으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맞다. 어떻게든 우린 먹고사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보다 엄마는 막내 네게 여자 친구가 있는지 더 궁금하구나.”
윤금이는 금장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여자 친구요?”
“네 큰형과 작은형은 이미 혼인을 해서 얘가 둘이나 된다.”
“그래요?”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두 형은 물론이고 자신도 혼인할 나이가 훌쩍 지났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누굴 닮았어요?”
금장생은 물었다.
“재천이 아이들은 엄마를 닮았고 재산이 아이들은 아빠를 닮았다.”
“다행이네요.”
금장생은 빙긋 웃었다. 첫째 형 금재천은 키는 크지만 얼굴은 삼형제 중 가장 못생겼다. 그래서 혼인을 하면 자식들은 형이 아니라 형수를 닮아야 한다며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농담대로 된 모양이다.
금장생은 밤새도록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다.
“나와 함께 자자.”
막 잠이 들려는데 윤금이가 금장생의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누우세요.”
금장생은 한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금이는 빈자리에 누웠다.
“고생 많았지?”
윤금이가 말했다.
“고생은 무슨, 편하게 살았어요.”
“나는 네 엄마야. 얼굴만 봐도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어. 정말 미안하다.”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잖아요.”
“네가 동영으로 간 게 전화위복이란 말이냐?”
“거기로 가지 않았더라면 그분도 만나지 못했을 테고 그럼 무공을 익힐 기회도 없었겠죠.”
“무인이 되니까 좋아?”
“글쎄요.”
금장생은 선뜻 대답을 못 했다.
힘을 얻기는 했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보통 사람은 개를 잡을 때도 측은지심을 갖는다. 그런데 자신은…….
“희열만 느끼지 않으면 된다.”
“누군가와 싸우고 상대를 없앴을 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맞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윤금이는 금장생을 껴안았다.
“엄마 냄새 좋아요.”
금장생은 그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는 곧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아침을 먹고 난 금장생이 어머니 윤금이에게 물었다. 다시 절강성으로 돌아갈 건지를 묻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고 난 여기 있을 거야.”
“여기 어디요?”
“환희루지 어디겠어?”
“위험하지 않을까요?”
“네 아비야 대외 활동을 많이 해서 얼굴이 알려졌지만 나는 아니잖니.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알아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그렇다고 해도 활보하고 다니진 마세요.”
“조심하마.”
“그건 엄마가 알아서 하세요.”
금장생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극락루에 대한 걸 받아 본 건 사흘 후였다.
환희루에서 조사한 것처럼 극락루 배후는 상천금가였다.
아울러 극락루는 열 개의 주루를 거느렸고 그 열개의 기루 역시 열 개씩 소주루를 거느리고 있었다.
“백 개라…….”
금장생은 종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하남성 주루의 삼 할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앞에 앉아 있던 미우가 말했다.
“그들을 깨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자금력도 풍부하고 무력도 강해요.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없앨 수는 없어요.”
“그럼 약점을 만들어야지요.”
“약점을 어떻게 만든다는 거죠?”
“술은 어떤 걸 쓰죠?”
“천주가 없으면 술장사하기 힘들어요.”
“주루에서 판매하는 술 중 천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돈데요?”
“현재 사 할 정도예요.”
“만일 천주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두강주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예요.”
두강주는 하남성의 전통주이면서 고급술이었다.
“두강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죠?”
“천주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아요. 그런데 술은 왜…….”
“그건 나중에 말해 줄게요. 그보다 두강주는 어때요?”
“어떠냐는 건 무슨 뜻이죠?”
“재정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힘들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남성 주루에서 팔리는 술의 사 할을 점유하고 있는데 홰 힘들죠?”
“술은 많이 팔리는데 수금이 제대로 안 되나 봐요.”
“술을 가져간 측이 대금을 주지 않는다는 거죠?”
“네.”
“술을 가져간 측이 극락루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건 아무도 몰라요.”
“내 말이 맞을 거예요. 혹시 두강주 사장님을 아세요?”
“모르는 분 같으면 속사정을 알 리가 없잖아요.”
“그럼 좀 더 깊은 질문을 할게요. 정확하게 지금 어떤 상탭니까?”
“그게…….”
미우는 잠시 망설였다.
“나쁜 쪽으로 이용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말해 보세요.”
“그게, 이번 달 안으로 백만 냥을 맞추지 못하면 돈을 빌린 전장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해요.”
“빌린 돈이 총 얼만데요?”
“이백만 냥으로 알고 있어요.”
“그중 백만 냥은 갚아야 할 날짜가 됐단 말이군요.”
“네.”
“어떤 전장입니까?”
“하남전장이에요.”
“알았습니다.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그쪽 사장을 만나고 싶습니다.”
“언제쯤…….”
“사흘 후가 좋을 같습니다.”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환희루만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알았어요. 약속을 잡아 볼게요.”
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